오늘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녹색평론』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연락이었다. 친구는 홈페이지가 다운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나는 ‘아마 격월간으로 구독이 가능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위해 “녹색평론”을 검색하니 발행인이자, 대표이신 김종철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다. 『녹색평론』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할 만큼 무언가가 없어 친구에게 그저 과월호도 쉽게 중고나 헌책으로 구할 수 있고, 김종철 선생님이 편집하신 선집이 있으니 그것부터 읽어도 좋을 거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제 한 5년 정도 되었나. <환경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녹색평론사>라는 출판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만큼 이 출판사의 책을 잘 알지 못한다. 도시에 살았지만, 어릴 때 시골에서의 귀중한 경험도 있었고 자연을 좋아하기도 해서 생태, 환경은 언제나 관심이 가는 주제였기에 <녹색평론사>를 늦게 알았지만 단숨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연 농법을 소개하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티벳의 소수민족의 삶과 생태적 대안을 소개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근대 문명이 지닌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며, 삶의 성찰의 자리로 이끄는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근대의 발전주의 청사진에 제동을 거는 C.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장일순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 장일순을 중심으로 편집된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김종철의 『땅의 옹호』 같은 책을 한 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관심사는 생태, 환경보다는 (순전히 내 관점에서) 더 절실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로 이동했다. 녹색평론의 담론을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순진한, 너무나 이상적인 거라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서 앞서 이야기한 책들을 중요한 책을 두는 책장에서 다른 책장으로 옮기게 됐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한참 전 일이다.
이런 내 개인적 맥락이 있었고,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한 선배님과 통화를 했는데, 요즘 선진국에서는 생태, 환경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생태, 환경에 관심을 다시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오늘 우연히 김종철 선생님의 부고를 보게 된 것이다.
한국의 생태주의 운동에서 녹색평론이 기여한 것과 차지하는 위치는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생태 문제를 이야기하면, 냉소의 말이 돌아오곤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해 생태 담론을 지탱할 토대를 만들었고, 녹색평론은 언제나 생태주의의 구심에 있었다. 나 역시 현실이라는 핑계로 거리를 두었고, 또 한 편으로 녹색평론의 담론이 완전히 무결한 이야기도 아니겠지만, 언제나 다른 삶을, 변화를, 대안을, 희망을 생각하는 어느 자리에는 김종철 선생님의 꿈이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작은 애도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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