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포퓰리즘,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적 위기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으로, 책 표지에 쓰인 원제 “정체성: 존엄에 대한 요구와 분노의 정치에 대하여”에 걸맞게 21세기 대두된 ‘정체성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1. 맥락: 이 책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안에 위치시킬 때 더 선명한 책이다. 후쿠야마는 89년 <역사의 종말? (The End of History?)>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서 후쿠야마는 인류 역사가 종국에 자유주의 국가에 도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후쿠야마는 ?를 중요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주장에서 후쿠야마는 존엄을 인정받으려는 열망이 자유민주주의의 해결과제이자 걸림돌임을 지적했고, 현재 그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이 책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위기의 근원인 투모스(이후 설명), 인정, 존엄, 정체성, 이민, 민족주의, 종교, 문화, 난민 등의 문제를 다룬다.
2. 문제의식: 이 책은 트럼프의 당선,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사건 (민족주의의 표면화) 속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우리 시대 정치의 위기상황을 진단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후쿠야마는 이런 위기의 근원에 존엄에 대한 요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중심으로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3. 내용: 이 책은 크게 1) 정체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접근, 2) 근대화 이후의 정체성 문제, 그리고 3)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선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존엄에 대한 정치철학을 개관한다. 먼저 투모스란, 플라톤의 『국가』에서 인간 혼의 한 부분으로 규정된 것으로 격정, 기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존엄에 대한 열망의 근원이며 인간은 투모스적 주체이다. 인정, 존엄에 대한 요구는 루터, 칸트, 루소, 헤겔 등의 저작에서 이미 언급되어있으며 이것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행위 심층에 있는 인정에 대한 열망을 끌어낸다. 이후에 책은 이러한 근원적인 욕망이 근대화(사회의 급변)를 거치며 어떻게 문제로 발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전통에서 근대로의 사회적 변화와 근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개인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고, 개인의 정체성은 민족이나 종교에 기탁되는 식으로 발현되었다.
4. 핵심: 20세기 후반, 21세기 들어 우파에서는 민족주의, 종교가 중심이 되고,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혁을 바랄 수 없게 된 좌파에서는 계급정치가 쇠락하고 소수집단의 정치화가 중심 과제/전략이 되었다. 이른바 정체성 정치, 즉 젠더·종교·인종 등의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정치 운동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이자, 정치/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후쿠야마는 이질적인 집단과 정체성을 동화시킬 수 있는 ‘국민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정체성을 통합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체성’은 분열의 도구인 동시에 통합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5. 나가며: 일단 이 책은 ‘인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층위는 다르겠지만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과 비교하거나,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필로소픽에서 꾸준히 출간 중인)의 책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체성 정치의 문제는 한국에서도 언젠가 쟁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출생률 저하로 노동력 수입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인데, 현재의 조선족·중국인·동남아인 등에 대한 인식을 보면 이것이 쟁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후쿠야마를 잘 모르기에 조심스럽지만, 이 책은 아마도 미국의 정치 위기 속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리버럴(자유주의자)의 한 응답일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이 진보에서 보면 보수적일 것이고, 보수에서 보면 그 반대일 것인데, 해결책을 제외하더라도 21세기의 정치적 변동을 다룬 분석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다. 나는 아직 어떤 입장을 가질 만큼의 공부는 안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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