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은 1950년대 이후 후기 근대(late modern)사회에서의 노동, 소비주의, 그리고 ‘새로운 빈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 논의를 따라가 보면 중첩되는 핵심 사안이 존재한다. 바우만은 이 주제를 여러 책에서 다루지만 저는 그의 여러 책 중에서도 이 『새로운 빈곤(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중심내용 세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1. 노동윤리의 변화와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자 사회로의 이행: 막스 베버의 경우 근대 자본주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안분지족하는 전통주의적 생활양식이 파괴되고 합리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조직화하고 금욕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의 노동윤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바우만도 노동윤리가 근대 초기에 빈곤층을 공장으로 유인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인정하는데,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근대 초기의 ‘노동윤리’가 후기 근대에선 ‘소비미학’으로 대체되었음을 주장한다. 사회는 더 이상 생산자(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소비자를 만들어 낸다. 소비하는 것이 최선의 것이며 부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된다. 소비자를 만드는 사회에서 모든 매체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쇼핑”, 소비가 행복임을 주입시키고, 노동윤리가 노동하지 않는 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소비사회는 소비하지 않는 자를 그렇게 판단한다.

2. 복지국가의 몰락과 사회의 배제: 소비미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빈곤층은 더 이상 체계에 포용되지 못하다. 초기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그들을 산업예비군으로 명명하며 체계 안으로 끌어들였지만 소비미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들에겐 쓸모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는 해체되고 결국 국가의 의미는 ‘개인 안전 국가’정도로 전락해 국가는 더 이상 사회적 국가가 아니며 사회적 삶의 공포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 고체근대에서 액체근대로의 이행은 이를 더 가속화시키는데, 고체근대는 무거운 자본주의였으며 이들은 상호의존성으로 결합되어 있었고 그래서 육중한 공장 안에 자본과 노동을 묶어뒀다. 하지만 이제 복지국가는 해체되었고 이들의 빈곤한 삶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빈곤층’은 이제 체제 밖으로 밀려나 유동하는 공포 속 부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3. 새로운 빈곤층의 출현과 빈곤층의 의미변화: 초기 근대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체제 안으로 결속시킨 것과 다르게 현대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새로운 빈곤으로서 최하층계급이 만들어진다. 바우만에 의하면, 이들이 최초로 대중의 관심 속에 드러난 것은 1977년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를 통해서인데 미디어는 이들을 단지 ‘가난한 사람’,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들을 정상의 범주에 있지 않으며, 이질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배제되어 마땅한’ 존재로 규정한다.

소비미학이 지배하는 소비사회에 소비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배제되어 ‘쓰레기’가 되고 실업은 노동윤리를 통해 의미론적으로 비정상적인 삶을 나타나게 된다. 그들이 잉여로 규정된 것은 그들이 버려져도 무방한 존재임을 나타내며 그들은 ‘잉여’, ‘쓰레기’, ‘불합격품’, ‘폐기물’, ‘찌꺼기’와 같은 의미론적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결속은 해체되기 시작했고 탈규제와 개인화가 시작돼 새로운 빈곤층은 체제가 끌어안아야 할 존재가 아니며 계급 바깥에 버려진 회생이 불가능한 존재이며 재사회화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추방되어야 할 없어져야 할 존재가 된다. 이들에 대한 배제는 의미론적인 배제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이루어지고, 생계수단이 없는 이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강제로 추방되어 분리구역으로 몰려 생활하게 된다.

제목 번역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은 현재 동녘출판사에서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한가?』 라는 제목으로 재번역 되었다. 나는 바우만의 논의가 후기 근대사회의 새로운 빈곤층의 출현을 역사적으로 잘 추적하고 있다고 보고, 지금 현대사회의 빈곤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소비미학(사회), 복지국가 해체(정치), 잉여(문화, 사회인식)라는 복잡한 사회작용의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책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은 편이니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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