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자들


1. 창조론은 만들어진 전통이다.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5명의 역사학자들과 함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에서 역사학자들은 사실 고대나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 같은 전통들이 사실은 근대의 산물이며 조작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창조론자들에서 폭로하는 창조론자들의 면면들이 만들어진 전통과 상응한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교부의 전통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에 있어 문자주의로 해석되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 신학에 큰 획을 그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창세기의 ‘날’을 문자 그대로의 24시간으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이라고 일컬어지는 장 칼뱅조차도 창세기 주석에서 ‘모세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기록했고 천문학이나 과학의 기록도 존중해야한다.’라는 골자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로넘드 L. 넘버스의 『창조론자들』도 이를 지적한다. 책의 1장 ‘다윈 시대의 창조론’에서는 19세기의 창조론자들도 문자적인 창세기 해석과 전지구적 홍수설, 젊은 지구창조론을 지지하는 이는 드물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부의 전통, 종교개혁자의 전통과 달리 문자주의로 창조를 설명하는 창조론 운동이 맹아를 틔운 것은 겨우 20세기 초의 일이었고, 이는 약 3000년 동안 지속된 유대교·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미미한 시점이다. 창조론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기독교적 전통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또한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만들어진 전통은 현재의 제도나 지위를 유지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생성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평가와 창조론자들을 두고 지켜봐야 할 점은 창조론자들의 정체성 혼란과 그로 인한 반작용으로 창조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의 저자는 담담하게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로널드 L. 넘버스가 서술하는 창조론의 이면에는 근대와 실증주의로 인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그에 따른 반발로 시작된 창조론의 민낯이 드러난다.


2. 창조론은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저서 옥중수고를 통해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헤게모니는 일종의 내면화된 지배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의미는 '지배'를 가리킨다. 헤게모니는 강제력이나 물리력을 통한 지배만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합의가 있는 지배이다. 창조론자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들만의 창조론을 종교의 영역이나 신앙의 영역에 한정해서 창조론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든 학회를 만들거나 학교를 세우거나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창조론이 개설되도록 힘쓴다. 이것은 결국 통치의 주체인 국가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일종의 공신력을 얻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반진화론을 포함한 창조론은 전형적인 헤게모니 싸움의 발로이다. 조지 프라이스나 휘트컴이나 모리스를 비롯한 대표적인 창조론자들은 물론이고 그들로부터 시작된 미국과학진흥협회나 미국과학자연맹 등의 학술단체들은 사실 주류 과학자나 주류과학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칼 포퍼의 과학철학까지 적용해서 창조과학을 주류과학의 한 형태로 편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창조론자들은 공립교육에 편입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의 공적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세계관 싸움이자 헤게모니 싸움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세운 나라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개신교 신앙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이고 개신교인의 비율도 높고 정치적 아젠다에서 개신교가 좌지우지하는 영역들이 많다. 따라서 진화를 필두로 진입하는 진화주의자, 무신론자들과의 창조론 논란은 교회와 교회영역을 벗어나 발현된 지배규범의 세계관 싸움이다.


3. 창조론, 그 근본주의적 기원과 한국


사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서 생물학적으로 발견되는 진화라든지 그로 인해 도출되는 진화이론이 아닌 진화에 기반을 둔 무신론, 진화주의 때문에 창조론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책에서 가끔씩 언급되는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도 생물학적으로 발견되는 진화를 사회과학에 맞게 적용한 이론이다. 진화주의, 무신론, 사회진화론 등의 사상들은 사실 자연과학이나 실증의 문제라기보다 지극히 가치지향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창조론자들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실 과학사가인 로널드 L. 넘버스의 창조론의 태동과 발전과정에 대한 서술과 미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의 발흥과 발전이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자유주의, 무신론의 도전에 개신교는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근본주의가 발흥한다. 이런 근본주의 신학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창조론자들이다.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들은 구프린스턴 신학의 영향을 받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성서무오설, 성결운동을 기치로 하는 무디와 무디커넥션의 신학과 창조론자들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창조론은 결국 세계관과 신학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근본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아펜젤러나 언더우드는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이 되었고 한국 개신교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창조론자들에서 로널드 L. 넘버스는 한국의 사례를 특별하다고 평가하는데 아마 이는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적 토양 때문일 것이다.


4. 창조론자들에 대하여


창조론자들은 일종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열렬한 근본주의자였고 또 창조과학을 달달 외워 전파하는 믿음 좋은(?) 청년이었다. 나는 여러 신학적인 통찰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통해 전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향의 결정판은 이 창조론자들이란 책에 있었다. 전지구적 대홍수설, 탄소연대측정 법의 반대, 공룡과 공존한 인간 등, 내가 예전에 성경만큼이나 신뢰하고 지지하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게 되었다. 또 이런 미국의 창조론이 어떻게 한국의 나에게까지 전해져 나의 세계관 속에 들어왔는지를 과학사가인 로널드 L. 넘버스는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저자가 담담한 서술이 아닌 창조론자들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길 바랐지만 성실한 사가는 가끔씩 가치평가가 드러나지만 최대한 있는 사실과 방대한 자료로 창조론자들의 비밀을 밝혀낸다.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새물결플러스 서평공모전 우수상 시상작


2016.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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