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정치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냉철한 분석
마키아벨리,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 때의 정치철학자로서, 그의 글들은 정치철학을 넘어서 경영학이나 처세술에서도 다루어진다. 그의 저서 중 백미(白尾)는 '군주론'이다. 이는 일찌감치 고전(古典)의 반열에 올랐으며 최고의 정치철학서 중 하나로 불린다. 어느 한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저서가 집필된 당시로부터 약 50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어디서나 읽히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론에서는 정치지도자의 지침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류이다. 내가 읽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동진 편역, 해누리 출판)은 크게 국가권력론과 정치지도자론, 국가 경영론, 국가보위론으로 나뉘어있다. 우선 국가권력론에서는 군주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야 통치가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중세 봉건사상이 지배하던 16세기의 평가로는 꽤나 파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중세는 보통 암흑의 1000년으로 불리는 기간이다. 이때는 거의 모든 정당성을 신(神)적 존재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권력기반은 인민의 지지에 둔다. 이런 사상은 사회계약론을 처음 주장한 토마스 홉스의 사상보다 이른 것으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저서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마키아벨리는 국가권력론에서 군주는 힘, 즉 일정의 실력을 가져야 통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후의 시대에 군주가 왕권을 신에게로 부여받는다는 왕권신수설 사상보다 진보적인 사상이다. 그리고 지역을 점령할 때에는 그 지역을 철저히 파괴해야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흔히 말하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종래의 정치학은 보통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反)도덕, 반(反)종교적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국가 권력은 근간을 법과 군대로 보는 데 이 또한 지도자의 즉각적 판단으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정치사상의 진보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정치지도자론에서는 정치지도자의 능력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특별히 이 장에서는 이상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현실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파멸을 자초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 정치 추구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의견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가혹해도 질서가 잡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법이나 제도 또한 인민에 대한 강력한 통치와 질서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맥락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여우는 함정을 알아채지만 늑대와의 싸움에서 지고 사자는 늑대와의 싸움을 이기지만 함정을 피할 꾀가 없다. 따라서 여우의 꾀와 사자의 힘을 지녀야한다.'를 이야기 한다. 이것은 이상사회와 현실적 노력을 촉구하고 지혜와 실력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의 균형적 시각을 시사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국가 경영론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근대적 주권개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키아벨리는 '가장 튼튼한 요새는 국민들의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국가권력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 권력과 주권의 기반을 국민의 지지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지도자는 실적위주로 사람을 판단하고 유능함으로 인재를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교권과 세속권이 서로 견제하며 권력을 다투었던 당시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중세는 성직자들이 종교의 장을 넘어서 생활 전반에 대해 관여했던 시기이다. 그래서 과학이나 정치 등 여타 다른 사회적 영역에서도 그 영향력이 강력했다. 이런 교권의 비전문적 영역에서의 월권행사를 비판한 것은 비교적 마키아벨리 이후의 일인데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영역과 전문성을 구분하는 데에 근대적 사고방식을 도입했다. 다음으로는 국가보위론이다. 국가보위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한 군사적 토대이다. 마키아벨리는 용병을 쓰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로마사평론에서도 주장하는 바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력이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거듭 주장한다. 그리고 평온할 때 위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가리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오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의 텍스트(Text)가 마키아벨리의 삶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컨텍스트(Context)로 읽히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 리가 살던 당시의 이탈리아는 강대국이었던 로마의 영광은 없이 분열왕국으로 주변나라의 침공을 받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체제도 시시때때로 바뀌고 여러 가지 사회적 정황도 유동적으로 변하던 때에 사회에 절망적으로 외치던 외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마키아벨리는 찬란한 문화를 과시하던 조국인 피렌체가 유린당하는 것을 보았고 많이 정치 지도자들이 몰락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에 반해 16세기 무렵 거의 탈중세의 통일왕국인 프랑스는 유럽에서 절대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조국에 부국강병에 대해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통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나 부도덕한 것쯤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비도덕적인 방법과 질서로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더 큰 안정을 위한 부도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군주론에서도 볼 수 있듯 그저 목적을 이루는 현실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상을 위해 현실에 더욱 집중하고 노력하자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의 본뜻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현재 우리나라에는 마키아벨리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초강대국이며 윤리적인 1등 국가였던 미국이 중국의 약진으로 인해 1등 국가의 지위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범국가이며 우리나라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겨주었던 일본정부는 지위의 혼란을 겪는 미국에 분쟁지역의 자위대 파견권을 얻게 된다. 특히 아베 총리는 미국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상하원 통합 연설을 하기도 하고 천왕이 아님에도 국빈급 대접을 받으며 미국에 입성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강제징용문제나, 강제로 동원된 성노예희생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핵무기, 중국의 위상 상승, 미국의 지위하락과 일본의 군사적 권리 강화 등의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나라의 행정부 각료들과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안정과 강함을 택했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교훈삼아 우리에게 당면(當面)한 국제적 위기를 하나되어 풀어나가야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2015.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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