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이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 5,6년은 된 것 같다. ‘오리엔탈 스푼’이라는 음식점에 가본 적이 있다. 그 음식점에서는 동북, 동남아시아의 음식을 팔았다. 베트남의 쌀국수, 태국의 똠 양 꿈, 중국의 탄탄면,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일본의 야끼우동 등을 팔았던 것 같다.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은 ‘오리엔탈은 소위 중동·근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나?’, ‘우리(동북아시아)도 오리엔탈이었나?’, ‘오리엔탈은 그냥 동양·아시아를 얘기하나’ 이런 것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저작 오리엔탈리즘을 보면 광의로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전통적으로나 근대적으로 유럽에서 진행된 많은 동양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인 모든 활동이 오리엔탈리즘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앞의 서술은 글의 서두에서의 이야기이다. 논의를 이끌어가면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이를 조금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구성한 동양에 관한 담론들을, 예술과 학문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침투시키고, 제도화해서 동양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로 사이드는 플로베르가 이집트인 창녀에 대해 서술하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그것이 유럽사회에 광범하게 영향을 미친 동양여성의 모델이 되었다고 서술한다.
이제 다시 나의 경험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한국으로 한정했을 때, 오리엔탈리즘에 관해 생각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한국도 스스로 타자화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동양에 포함되는 한국 또한 오리엔탈리즘적 주체 같다는 것이다. 첫째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면, 앞서 언급했던 오리엔탈 스푼이라는 음식점은 한국이 속해있는 아시아를 스스로 타자화한 이름이다. 이런 예는 적지 않다. 서구 유럽에서 발생한 ‘근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는 서양만이 합리적인 기보법으로 음악이 발달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음악은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 되어있다. 사이드가 언급한 것 같이 오리엔탈리즘은 구별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데,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현상들을 보면 이미 한국의 인식은 서구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로 다룰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한국사회 역시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 등의 서구 중심의 이분법에서 이제는 전자에 속해 타자를 억압하는 주체로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안의 파시즘’에서 지적한 논리처럼 한국인들은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내면화했고, 이른바 제 3세계라고 일컬어지는 (경제적 측면의) 저개발국가들을 재구성하고 구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서구로부터 일종의 상징적 지배를 받는 동시에 자국보다 물질적 형편이 열악한 국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구축하고 또 우월적인 지위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한국은 여전히 근대 세계관의 중심·지배자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의 시각에서는 피지배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오리엔탈리즘은 한국 스스로도 성찰할 문제인 것 같다.
201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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