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르켐 이후, <자살의 사회학>
1. 마르치오 바르발리: 책의 저자 마르치오 바르발리는 피렌체, 볼로냐 등의 대학에서 공부한 이탈리아 사회학자다. 이탈리아어를 할 수 없어 접근하기 어렵지만, 그는 사회학 기초 과목의 교재를 작성한 학자이며, 저자 정보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섹슈얼리티>라는 작업을 통해 반향을 일으켰고, 이 책 <세상과의 작별: 동서양의 자살(원제: Congedarsi dal mondo: Il suicidio in Occidente e in Oriente)>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탈리아 사회학자의 책이 번역되었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중역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파레토 법칙의 파레토나, 지니계수의 지니는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인데, 이탈리아의 사회학 역시 한국에 제대로 번역되어 한국 사회학의 기초가 튼튼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뒤르켐 이후: 뒤르켐 <자살론>은 자살 연구의 준거가 되었다. 이 책은 뒤르켐부터 시작된다. 뒤르켐의 핵심은 사회의 통합과 규범에 있다. 통합이 적을 때 이기적 자살이, 과잉일 때 이타적 자살이, 규범이 없을 때 아노미적 자살이, 과도할 때 숙명적 자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연구는 개념 정의, 데이터의 측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뒤르켐은 죽었고 사회는 변했다. 뒤르켐은 개인의 종속이 약해지면서 이타적 자살이 드물어질 것이라고 보았고, 또 경제성장과 불황을 거듭하며 이기적·아노미적 자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 비서구권에서 이타적 자살이 중요성을 갖게 되고(예를 들면, 종교집단에서의 테러나 순교 등), 서유럽의 자살률을 꾸준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3. 한계: 바르발리가 보기에 뒤르켐은 유럽의 위기를 가정하고, 사회학이 학문으로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자살을 사회 위기의 징후로 파악하고, 또 다른 학문의 기여를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바르발리는 뒤르켐의 한계 속에서 자살 빈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화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지 도식, 분류 체계, 믿음과 규범, 의미와 상징 등으로 구성된다.
4. 뒤르켐의 자살 연구를 준거로 삼아 <자살의 사회학>은 뒤르켐 연구의 한계를 드러내고, 뒤르켐 이후 진행된 사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경험적으로 자살의 사회학을 전개한다. 이 책 1부는 이른바 ‘서구사회’에서의 자살의 역사적 변동을 다룬다. 서구사회에서의 자살률의 변화와 그 기반에 있는 복잡한 규칙, 믿음, 해석 유형, 상징 등을 분석한다. 2부에서는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다룬다. 아시아와 중동의 자살은 뒤르켐의 연구에서도 다루지 못한 것인데, 인도와 중국 등은 중심으로 자살과 연계된 문화적 레퍼토리를 분석한다. 아마도 뒤르켐이 후 가장 포괄적인 자살에 관한 사회학적 접근이 아닐까 한다. 책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책은 뒤르켐의 한계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변화된 사회의 양상과 그에 대한 분석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5. 고전의 의미: 종종 철학과를 다니던 친구에게 농담으로 플라톤·아리스텔레스 같이 만물이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졌다는 원시인 이야기를 뭘 배우냐고 농담하곤 했다. 그렇듯, 고전의 반열에 있는 책은 지금의 기준에서는 한계적인 도구와 재료로 쓰였기에 오류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저번 포스팅에서도 말했듯, 고전의 의미는 그것의 정답을 가르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구성된 방법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에 준거해 이렇게 훌륭하게 비판하는 작업물 역시 고전을 비추는 빛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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