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사회불평등, 사회계층

‘아픔’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피에르 부르디외 2020. 8. 18. 00:25

“우리는 폭력의 보전 법칙을 면할 수 없다. 즉 모든 폭력은 대가를 치른다. 예를 들어 해고와 임시고용 등 금융 시장에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은 다소 장기간에 걸쳐 자살·비행·범죄·마약 복용·알코올 중독과 크고 작은 일상적 폭력들로 그 대가를 치른다.” - 피에르 부르디외

1. 핵심: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역학자 김승섭 선생님의 책으로,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음으로써,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구조를 개선해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고, 사회구성원을 더욱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역학은 질병을 단순히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으로만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와 사회문제들을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이 책은 사회역학의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질병을 앓고 있는지, 어떻게 고통 받고,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이를 위해서는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를 다룹니다.

2. 저자: 저자 김승섭 선생님은 이 책과 함께 많은 출판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르셨습니다. 제가 가진 책은 현재 22쇄인데, 이런 분야의 책이 이렇게 판매고를 기록하기는 쉽지 않죠. 김승섭 선생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연구 자체도 왕성하게 하시는 걸로 알고, 대중서 집필도 꾸준히 하고 계신 모범적인 학자시죠.

3. 내용: 우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알았던 자살이 사회적인 것인 걸 밝힌 뒤르켐의 고전적 연구처럼, 이 책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다룹니다. 한 사회구조가 경쟁적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끊임없는 지위경쟁에 몰리고 시달릴수록 그 구성원들은 더 스트레스를 받고 질병에 소통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책에서는 모든 수준의 사회적 약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에는 여러 가지 균열이 존재합니다. 성별, 성적지향, 경제력, 학력, 지역, 인종, 육체적 능력 등 다양한 균열 사이에서 위치와 시간에 따라 어떨 때는 강자인 사람도 어떨 때는 약자가 되기도 하죠. 어떤 집단에 대한 낙인과 비과학적 시각들은 질병을 더욱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집단은 비정규직 노동자, 빈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다문화가정, 소방공무원,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성소수자, 교도소 재소자 등입니다. 책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질병이 오롯이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다분히 사회적인 것이며, 그렇기에 사회가 바뀌면 아프지 않아도 되는 사실을 말하죠.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실증적이고 전문적이라는 거고, 그렇게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대중적으로 풀어썼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인용하는 연구를 쉽게 합리화하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측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4. 느낀점: 책을 읽으니 마음이 편치 않네요. 한 편으로는 의지도 생기고요. 저는 사회역학을 사회계층론 수업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고, 김승섭 선생님의 SNS의 글을 받아보기도 해서 읽지도 않고 이 책을 두 권이나 사서 선물하기도 했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었습니다. 뜬금없이 인용한 부르디외의 말처럼 어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사회의 폭력은 사회 속으로 침투해서, 개인 하나하나를 병들게 합니다. 뉴스에선 단순히 “실업률 ××%”라고 표현되지만 그 안에 있는 수십만의 사회적 고통은 수치화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 책이 필독서가 되어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관련된 많은 정보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