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사회학을 찬미하다” 피에르 부르디외(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금메달 수상 연설)

피에르 부르디외 2018. 3. 13. 14:02



“사회학을 찬미하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금메달 수상 연설, 피에르 부르디외 1993 번역 : 김홍중
“사회학은 제국을 현실화시키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과학에 점점 더 의존하는 권력들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비판적 대항-권력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저는 오늘 이 연설의 결과에 대해서 (사회학의 미래가 긍정적일 것이라는)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바로 그 이유로 제 이야기는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희망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 피에르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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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직업으로 삼고자하는 이들의 전망이 좋지 않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연설이다. 부르디외와 같이 연구한 학자들은 문예적 논리, 형이상학적 논리를 고수하는 지식인과 독특함과 기발함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방법도 아닌 뒤르케임적 방법론(실증주의)으로 집합적 작업을 했고 이에 따라 많은 난관을 겪었다.
사회학에 대해서
사회학은 과학을 정의하는 주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율적이며 누적적으로 성장하는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은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실들의 거대한 집합을 설명할 수 있는 정합적 모델의 형태로 가설들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회학은 정치와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는 받는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와 달리 사회학자의 연구대상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세계이다. 따라서 사회학자는 연구대상인 세계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게 되며 실천의 과정에서 선입견이나 편견에 빠질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학은 이미 이런 오류에 대한 방어책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의 장(場)은 사회학자로 하여금 세속적인 유혹과 저널리즘과 연루되지 않도록 한다. 또 세속적 유혹에 연루된 사회학자들은 학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대학(사회학의 장場)”에서 배제될 위험성을 갖게 된다.
사회학자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획득한 집합적 지식(지적 유산)을 미리 장악하여 숙달하고 있어야 한다. 사회학의 집합적 지식은 이미 방대한 것이며 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학문적인 토론에 진입할 수 있다.
사회학의 집합적 유산을 전유한 사회학자들은 서로 갈등할 때도 결국 잘 통합되었다. 왜냐하면 이 대립이 동일한 유산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유산을 가지지 않는(사이비) 사회학자들이다. 이들은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기 때문에(제대로 된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미디어와 밀착되어있다.
사회학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성찰적이어야 한다. 사회학의 장(場) 안에서 사회적인 무의식은 학문적 권위와 사회적 지배관계가 통용되어 젊은 학자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사회학자는 예언가가 아니다. 사회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만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식과 저널리즘이 제기하는 질문들과는 단절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복잡한 사회세계가 존재한다. 사회학자들은 이 세계에 있는 기능장애를 분석하고 그 갈등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에게 소크라테스적 산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좌파건 우파건 사회과학에 기대를 하고 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좌의 일 년 재정의 열 배, 스무 배 되는 재정을 소모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란 사실 과학적으로 쓸모가 없는데다가 재정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힌다. 정치가들은 진리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선동의 합리적 도구를 원하고 있다. 사회학만이 이런 사악한 방식으로 학문을 활용하여 시민을 조작하고 기만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