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2008)을 보고
용의자 X의 헌신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남자 주인공 뫼르소는 다툼이 있었던 남자를 총으로 살인하게 된다. 경찰은 뫼르소와 그의 친구 그리고 그들과 다툼이 있었던 총살된 남자에 대해 조사를 하고 살인의 이유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툼’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뫼르소의 살인의 동기는 단순했다. 이는 명료하다. 단지 햇빛이 자신의 눈을 눈부시게 했기 때문에 뫼르소는 그를 살인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뫼르소에게 범행동기의 진정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러한 범행 동기를 국가 당국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를 ‘미친놈’이라고 할 뿐이다. 사회학은 개인의 우연성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일정한 흐름의 거시적 사회적 움직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학적으로 모든 현상이 예측되거나 추론되기는 힘든 경우가 있다. 앞서 본 까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도 그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뫼르소가 보여준 일탈처럼 개인의 우연성이
영화 속에서는 이시가미와 야스코 모녀의 일탈이 드러나 있다. 야스코 모녀는 우발적으로 그들을 괴롭기는 야스코의 전 남편을 살해하게 되었고, 이시가미는 이를 은폐하고 또 다른 살인으로 이 사건을 덮어 버렸다. 영화에서는 특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이시가미의 일탈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시가미의 주요한 일탈의 원인은 ‘애정’에 기인한 것이다. 이시가미의 일탈적 행위의 원동력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2차적인 일탈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시가미는 영화 속에서 물리학자가 친구라고 칭하자 자신에게는 친구가 없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 이시가미는 자살, 즉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하려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이시가미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인 사실이 크다. 그는 친구도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자신의 꿈을 완전히 이루지도 못한 사람이다. 이는 사회적 유대약화의 원인이 되어 이시가미에게 비행의 단초를 제공할 이유가 되었다. 그는 대부분이 사는 사회에서 항상 소외받고 외톨이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이는 사회에 대한 애착의 결핍으로 나타날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이시가미는 친구인 물리학자의 얼굴을 보며 그의 외모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외톨이었다고 회고하는 과거를 보았을 때도 그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그의 세계에서 그는 통상적인 집단 다시 말해 학교나 주변인들을 보고 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기대, 그에 따른 보상과 좌절 등을 통해 자아의 성향이 결정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의 이시가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수학에 대해서는 애착이 있지만 그 외에 교사의 삶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시가미의 일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관점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우선 이시가미가 자살을 시도한 사건을 보았을 때, 이시가미는 사랑을 얻고 자살을 포기했으므로, 이시가미는 사랑과 같은 삶에 대한 애착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여 일탈했을 수 있다. 또한 저명한 물리학자도 인정하는 그의 능력이 적절히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경제적인 이유로 그의 삶을 억압해버린 사회구조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또한 살해된 남편이 비교적으로 정상적인 삶에 궤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낙인화하여 그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은 조직폭력배를 조사하는 등의 낙인이론적 관점의 수사가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보았을 때, 이시가미는 범죄를 완전하게 은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추론 때문에 그는 범죄를 선택했을 것이다. 또한 상당 부분 그의 추론이 맞아 떨어지고 범죄가 은폐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물리학자의 등장으로 인해 그는 다시 그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알리바이 사건을 꾸민 것도 그러하고 범죄의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는 노숙인을 살해한 것 또한 그러하다. 범죄에 대한 기대이익은 사랑하는 여인이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결과였다. 또한 사회유대 이론으로 보았을 때, 이시가미의 일탈은 사회에 대한 유대나 애착의 결여가 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