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정치사상, 정치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읽고

피에르 부르디외 2018. 3. 13. 15:35


서론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BC 322)는 그리스 북쪽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뮌타스 2세의 친구이자 주치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도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17세의 나이로 아테네에 가서 플라톤이 운영하던 유명한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다. 그는 아카데메이아에서 학생 겸 교수로서 20년 동안 머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유명을 달리하자 아카데메이아를 떠난다. 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임 원장으로 선출되지 않은 것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카데메이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아시아로 건너가 토로아스 지방 앗소스에 정착한다. 그 후 자연과학을 연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필립포스 2세의 아들의 스승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레산드로스가 동방세계를 정복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우던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스에 체류할 때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지리적 여건을 잘 이용하여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323년 원정에서 귀국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리스의 혼란기가 시작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 팽배해진 반(反)마케도니아 기운을 알아차린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방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아닌 에우보이아 섬의 칼키스로 떠나가 62세로 삶을 마친다.


본론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사상 요약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 플라톤의 정치사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철학적 지혜’와 다른 실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톤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주의주의(voluntarism)적 철학을 덧붙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함께 이상을 실현할 실천적 요소를 함께 고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와는 다르게 이론만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체제에의 여러 종류와 그 변형과 발생 과정과 전개 붕괴와 원인이나 보존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한 이해를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톤 철학이 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한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설득의 3가지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이성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핵심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감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구성되는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며 정치학의 개연성에 대해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지 않거나 전문성성이 없어도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정치학을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우연의 학문으로 간주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관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시대에 앞선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으로의 개인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좋은 개인이 곧 좋은 시민, 좋은 통치자라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란 실천적 지혜인 ‘중용의 덕’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적 성품이 좋은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통치자의 탁월함도, 개인의 탁월함도 모두 중용이라는 도덕적 성품에서 나오고 통치자는 과부족의 양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으로서 올바른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켰던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가들의 생각들과는 상이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3가지의 정체인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politeia)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들이 왜곡된 왕정의 왜곡된 참주정, 귀족정이 왜곡된 과두정, 혼합정체가 왜곡된 민주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최선의 정체를 찾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세 가지 올바른 정체 가운데 신적 권위를 가진 정체가 왜곡된 것이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왕정이 왕의 탁월함에 근거하여 통치되지 않는다면 참주제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정체가 좋은 정체일 때 최악인 것은 민주정체이고 모든 정체가 나쁜 정체일 때 최선인 것은 민주정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계승한 것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다.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중산계급(middleclass)에 결정권이 있는 정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간계급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층이 강하면 극단적 민주정체나 극단적 과두정체가 참주정제로 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 고리대금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서술이 있다. 고리대금업은 노동이나 생산이 아닌 불로소득에 해당한다고 파악한 것 같다.


monarchy, aristocracy, polity, tyranny, oligarchy, and democracy


3.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및 의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술한 내용들은 후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여러 방면에 두루 두각을 나타내며 제네럴리스트(generalist)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치학이나 윤리학, 시학, 수사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 인문·철학적인 학문체계를 성립함과 동시에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등 자연과학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저술들은 기원후 800년경부터 처음에 중동지역에서 그 다음으로는 스페인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로 유입되었다. 당시 유럽 사상의 전반은 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사상 중에 주목할 것은 스콜라 철학이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신학과 혼합되어 스콜라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 사상에 새로운 영향을 미칠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유럽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3세기 말에는 그리스어가 직적 번역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류사상으로 진입한다.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도 그의 서적 수사학, 시학,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논리학 등의 저술들은 흔히‘고전(古典)’이라 일컬어지며 지금도 가치 있게 읽히고 있다. 이에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정치철학에서 간접적인 영향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이상적 사회를 탐구했던 헤겔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덧붙여 칼 마르크스에게도 사회는 개인에 우선하는 하나의 실체라는 확신을 품게 해주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결론


4.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현대적 의의


2015년 파리경제대 교수인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 경제라는 상황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노동이 자본을 얻는 것보다 자본이 자본을 얻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글로벌 부유세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벨경제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도 2013년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을 쓰며 사회적 불평등의 현상은 사회에 균열구조를 심화하고 파괴적 심리를 낳아 사회에 결국 악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다. 이렇듯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불평등과 양극화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노동자 중 절반 이상을 상회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 대비 50%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다. 절대빈곤층이 5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5100만 명이라고 생각할 때 국민의 약 10%의 절대빈곤층이라는 것은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통계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사회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계층이 없는 것은 극단적 정치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중산층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물론 65%정도의 수치로 안정된 편이다. 하지만 감소추세에 있다. 이런 사항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분석으로 생각해서 경제·사회적 안전망 구축이나 중산층 재건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천병희, 2009, “정치학 - 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숲

아리스토텔레스 저/이창우·김재홍·강상진 공역, 2006,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북스


2015.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