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종교학, 신화학, 종교사회학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의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 in America) 논문 요약

피에르 부르디외 2020. 9. 20. 22:13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

*본 글은 Robert N. bellah의 논문 Civil Religion in America, 1967을 요약한 것으로, 당시의 구체적 사회적 상황에 기인한 본문보다는, 현재에도 의미있는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그를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 로버트 벨라의 시민종교 연구는 현대 시민종교 연구의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다.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 in America, 1967)

 

로버트 N. 벨라(Robert N. Bellah)

 

 

요약: 로버트 벨라의 논문, 미국의 시민종교는 케네디의 연설문 분석을 통해, 정치적 언명 배후에서 정치 권력을 성화(聖化)하는 종교적 차원을 부상시키며, 이를 시민종교로 명명한다. 시민종교를 주제로 벨라는 미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형성된 시민종교와 남북전쟁을 통해 전사자 숭배로 공고화된 시민종교의 양상을 기술한다. 이후에는 시민종교의 정치적 동원력이 가지고 있는 양가적 속성을 언급하면서, 당시 미국이 당면한 과제(베트남 전쟁)에서 시민종교 역할의 재고를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

 

초록: 개신교가 국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와 유대교 회당이 오직 “미국식 생활양식”이라는 보편화 된 종교를 기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미국에는 정교하고, 제도화된 시민종교가 교회와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논문에서는 시민종교가 존재할 뿐 아니라, 이 종교는 그 자체의 진지함, 진실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종교와 같은 동일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 케네디 취임식과 시민종교

 

시민종교, 케네디의 예시

 

“내가 여러분과 전능하신 신 앞에서 우리 선조들이 거의 175년 전에 규정한 것과 똑같은 엄숙한 선서를 했기 때문입니다. … 인간의 권리는 국가의 관대함에서가 아니라 신의 손에서 나오는 것 … 신의 축복과 도움을 청하면서 … 신이 하시는 일은 틀림없이 여기 지상에서 진실로 우리의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지를 이끌어 나아갑시다.”(1961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

 

존 F.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3번 신을 언급한다. 이러한 언급은 엄숙한 국가 행사에서 미국의 다른 대통령에게서도 거의 변함없이 발견되는 것인데, 엄숙한 행사에서 발언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깊이 자리 잡은 가치와 약속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력의 종교적 정당화

 

미국은 정교분리 국가이고 종교는 사적인 것이 되었지만, 대다수의 미국인이 공유하는 종교적 지향의 공통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이런 종교적 지향은 미국의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정치를 포함한 미국의 생활양식 전반에 여전히 종교적 차원을 제공한다. 공공의 종교적 차원은 미국의 시민종교라고 정의한 일련의 믿음, 상징, 그리고 의례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대통령 취임식은 시민종교에서 중요한 의례적 행사로, 최고 정치적 권위의 종교적 정당성을 재확인한다. 취임 선서는 헌법적 의무를 확인하는 것인데, 케네디는 그것을 국민(people)과 신에게 맹세함으로써, 대통령의 의무는 헌법을 넘어 국민뿐 아니라 신에게까지 도달한다. 주권이 신에게 속한다는 것 역시 이를 신성화하며, 대통령의 의무를 확장한다.

 

정치적 동원의 종교적 정당화

 

케네디가 인식한 정치에서의 종교적 차원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신성한 근거를 제공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치 과정을 위한 초월적인 목표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상에서 신의 뜻을 이행해야 하는 개인적, 집단적 의무를 부여한다. 이런 정신은 미국의 건국이념과 같으며, 미국 설립의 모티프로서 이후 모든 세대에 존재하는 정신이다.

 

2. 시민종교라는 발상(idea): 미국 시민종교의 기원와 특징

 

‘시민종교’라는 단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최초로 사용됐지만, 18세기 미국 국부의 사상에서도 종교, 도덕, 통합에 관한 시민종교의 개념을 엿볼 수 있다. 조지 워싱턴은 “인간사를 경영하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인정하고 경배해야 할 의무를 합중국의 국민보다 더 많이 진 국민은 없습니다. 합중국 국민이 독립국의 지위로 나아갔던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어떤 징표를 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취임사에서 연설하는데, 이러한 종교적 언명은 단순히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수감사와 기도의 날”과 같은 국가 기념일으로 지정되었다. 미국 초기 국부의 언급과 행동을 통해 시민종교의 기조와 형태가 주조되었다.

미국의 시민종교는 기독교에서 선택적으로 파생되었지만, 기독교와 같지는 않다. 시민종교의 신은 초월적 신으로서, 구원과 사랑보다는 질서, 법, 권리와 관련이 있었고, 그 신은 미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미국 역사에 참여하는 신이다. “미국 이스라엘(America Israel로 의역하자면 미국 선민사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의 사상은 빈번했는데, 이는 유럽을 이집트로, 미국을 언약의 땅으로 상정한 일종의 미국식 선민사상이었다. 시민종교는 국부의 사적 견해뿐 아니라, 공공의 관점이 반영되어 만들어졌다. 정교분리라는 역사적 합의와 계몽주의, 여러 종파의 개신교가 지배하는 문화적 배경에도 시민종교는 종교와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며 살아남았다.

 

3. 남북전쟁과 시민종교: 남북전쟁을 통한 미국 시민종교의 성립과 전사자 숭배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시민종교는 독립(출애굽)이 중심이 되었다. 남북전쟁은 미국의 국가적 자기 이해에 두 번째로 중요한 사건이다. 전쟁은 국가의 의미에 가장 심층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 의미를 정식화하고, 상징한 사람은 링컨이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국부가 제시한 건국이념에 있었다.

남북전쟁 함께 죽음, 희생, 부활이라는 새로운 테마가 시민종교에 합류한다. 이것은 링컨의 삶과 죽음에서 상징화된다. 게티스버그 연설은 시민종교의 경전으로 이런 주제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로웰은 게티스버그 연설은 상징적이고, 성사(聖事)적인 행동이었으며, 링컨의 죽음 역시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이어서 로웰은 미국인과 미국을 위한 그의 죽음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제퍼슨의 이상을 죽음과 부활이라는 기독교적 희생 제의로 완결한 것이다. 이것은 종파나 종교를 넘어선 숭고한 가치로서 미국의 일부가 된다.

기독교적 원형을 배경으로 ‘우리의 순교한 대통령’ 링컨은 전사자, 즉 ‘최후까지 모든 헌신을 바친 자’와 연결됐다. 희생의 테마는 시민 종교에 잊힐 수 없이 기록되었다. 이 새로운 상징은 육체적·의식적 표현으로 만들어졌고, 이것은 전사자를 위한 국립묘지 건립으로 이어졌다. 전사자를 안치한 국립묘지는 가장 성스러운 기념물이 되었다.

남북전쟁과 함께 확대된 전사 장병 추모일(현충일)은 논의해온 주제를 의례적으로 표현했다. 현충일 기념행사는 순교한 전사자 숭배, 희생정신, 미국의 비전을 포함하는 사회 전체를 위한 주요 행사이다. 추수감사절이 가족을 시민종교에 통합하듯, 현충일은 지역사회를 국가 숭배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독립기념일, 보훈의 날, 워싱턴·링컨의 생일을 포함한 국가 기념일은 시민종교의 의례적 기념일을 제공하고, 공교육 제도는 시민 의례의 종교적 기념을 위한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4. 오늘의 시민종교: 시민종교의 정치적 동원력이 지닌 양가성

 

미국 초기 역사에서 미국의 종교와 정치변화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교회는 혁명이나 민주제도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의 시민종교는 종교적 전통을 선별적으로 차용하였다. 이렇게 시민종교는 국가적 연대의 강력한 상징인 교회와 반목 없이 구축되었고,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깊은 차원에서 개인의 동기부여를 동원할 수 있었다. 미국의 시민종교는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불과 3년 전에도 암살된 대통령의 장례식과 희생의 테마가 재현되기도 했고, 린든 존슨은 “오늘 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일을 주님이 정말로 이해하시고 정말로 좋아하실 것으로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종교의 자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종교가 언제나 대의를 위해 사용되지는 않았다. 미국 안에서 신-국가-국기를 융합한 보수집단은 비국교도나 자유주의자를 공격하기도 했다.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시민종교의 왜곡의 위험은 더 크다. ‘미국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는 인디언에 대한 부끄러운 처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고, 제국주의적 행동과도 암묵적으로 연계될 수 있었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은 자유 세계의 수호자인 미국과 미국의 도움의 필요로 하는 모든 정부를 동화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남베트남을 피로써 수호하는 것은 새 예루살렘 미국의 역할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죽음은 희생이라는 테마를 통해 성화(聖化)될 수 있다.

 

5. 세 번째 시험: 시민종교에 대한 염려

 

미국 시민종교의 첫 번째 시험대는 독립전쟁이었고, 두 번째 시험대는 남북전쟁이었다. 현재 미국의 시민종교는 세 번째 시험에 도달했다. 이 세 번째 시험에서 미국의 시민종교가 패권주의적으로 발현되는 것(베트남 전쟁)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시민종교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닌, 궁극적이며, 보편적 실재에 비추어 본 미국의 경험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수반되는 미국 시민종교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시민종교의 이면에는 성서적 원형이 존재한다. 탈출(출애굽), 신의 선민(選民), 약속의 땅, 새로운 예루살렘, 희생적 죽음, 그리고 부활. 하지만 시민종교는 순수하게 미국적이고 새롭다. 시민종교는 그 자체의 예언자, 순교자, 신성한 사건, 성지(聖地), 신성한 의례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시민종교는 양가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미국이 신의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회가 되고, 모든 국가에 빛이 되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며, 주의를 필요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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