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관한 정치적 비평
1. 들어가며: 시작하기에 앞서 확실히 할 것은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일종의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마도 자기계발서로서의 가치를 보는 게 중요할 것이고, 조던 피터슨은 자신의 세계관에 기반해 나름 진지하게 조언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의 조언을 통해 전해지는 정치적 의견을 비평해보려 한다.
2. 셀럽 지식인: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건, 조던 피터슨이 셀럽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그에게는 학자, 교수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는 명문 맥길 출신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하버드의 강단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심리학자로서 학술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은 게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 참여하면서 유명해졌다. 피케티의 경우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을 통해 명성을 얻은 반면 피터슨은 심리학에서의 새로운 학술 작업을 통해 유명해진 게 아니다. 자신의 전공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정치 참여로 명성을 얻었기에 그는 논객 혹은 대중 지식인이 맞다. 한국으로 치면 서민이나 진중권 같은 위치로 볼 수 있다.
3. 피터슨과 실증?: 피터슨은 책을 통해 이른바 진보, 좌파의 사상을 겨냥하면서 그것이 실증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실증적인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학 저작 <의미의 지도(Maps of Meaning)>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그는 경험적 데이터, 통계를 가지고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칼 융, 엘리아데, 니체 등을 통해 신화해석을 하는 심리학자다. 그가 말하는 ‘임상’은 데이터 과학이 아니라 ‘상담’인데, 이는 그가 자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피터슨은 전혀 실증주의 전통에 있는 학자가 아니다.
4. 피터슨의 ‘사회’: 피터슨은 ‘고전적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한다. 나는 그의 사상이 많은 부분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고, 스펜서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자의 한 사람이다. 문제는 피터슨은 사회계약론의 가설을 인용하고, 사회진화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실증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원초적 상태를 상정한다고 해보자, 이로 인한 최초의 계약을 실증할 수 있는가? 또 사회진화론은 유사 사회과학이다. 아직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통해 만들어진 게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이다. 조던 피터슨은 실증적이지 못하다.
5.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나는 그가 다분히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게 그게 셀럽 지식인의 운명이다. 이미 학자보다 논객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설득하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지적으로 정직한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는 불평등을 설명하면서 바닷가재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건 자연주의적 오류다. 가재와 인간은 다르다. 그리고 수평적 생활을 하는 다른 생물 집단이 있다. 보노보 같은. 그렇다면 왜 인간을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보노보가 아닌 바닷가재로 설명하는가? 그냥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지 못하게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속해서 비판하는 마르크시즘이나 페미니즘 조류는 적어도 실증과 맞물려 있다. 마르크시즘 전통에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는 에릭 올린 라이트는 물론이고, 인류학적 전통의 페미니즘은 굉장히 실증적이다. 하지만 피터슨은 성별 차이를 도교의 음양으로 설명한다.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르크시즘을 비판하지만 정작 마르크스를 모르는 게 들통난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6. 한국과 피터슨: 피터슨은 사실 요청된 저자다. 그러니까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에 반발하는 사람이 어디 기댈 곳을 찾다가 나온 사람, 그 정도.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만한 백인, 남성, 명문대 지식인이다. 피터슨은 한국으로 치면 100분 토론에 나오는 논객이다. 나는 정치적 의견을 갖기 위해 피터슨을 보려면 차라리 제대로 된 정치철학서를 보는 게 도움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유주의 담론이 이렇게 유치한 형식이 아니라 정교화 되고, 전문화되는 게 한국사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많이 발전했다.
다시,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그가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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