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의 Liquid Modernity

 

지그문트 바우만의 Liquid Modernity 번역에 관해
 
바우만은 최근 10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회학자다. 바우만 컨텐츠의 매력과 이런 분위기에 부응하듯, 이일수 선생님의 번역으로 <Liquid Modernity>가 액체 “근대”가 아닌 액체 “현대”로 복간됐다. 이뿐만 아니라 윤태준 선생님이 번역하신 <유행의 시대>에서도 Liquid Modernity는 유동하는 “현대”로 번역됐다. 나는 이 번역이 아쉽게 느껴져 글을 쓴다.
 
이일수 선생님의 경우, Modernity란 19세기 서구 산업화 이후 오늘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며, 바우만이 과거의 Solid Modernity과 구별되는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인 Liquid Modernity을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오늘날을 구분하는 의미에서 ‘현대’를 사용했다고 밝힌다. 윤태준 선생님은 더 단호한데, “‘modern’을 근대로 옮기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말하며 바우만이 가리키는 근대성의 두 국면(Solid와 Liquid)에서 Solid를 가리킬 때만 Modernity는 근대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액체’라는 표현은 절대로 ‘근대’라는 단어를 꾸미는 말이 될 수 없다.”라고도 말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학에서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주제는 매우 각별하다. “사회학은 근대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정의가 있을 정도로. 19세기 이후 근대성을 연구한 사회학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사회를 어떤 근대로 볼 것인지 고민하는데 하버마스는 근대를 미완의 기획으로 보면서 여전히 근대의 자원을 신뢰하고 료타르, 마페졸리, 보드리야르 등은 근대와의 급격한 단절을 설정하면서 국민-국가, 시민사회, 정당, 직업체계, 제도 등의 근대적인 것으로는 더는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들은 포스트 모더니티 담론으로 분류된다.
 
반면 바우만은 이론은 후기 근대(Late Modenity)로 분류된다. 앞서 설명한 양자와 다르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후반 사회의 차이는 긍정하면서도 새로운 국면의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보지 않으면서도 이런 문제를 미완의 기획이 아닌 ‘근대성’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는 시도를 후기 근대론으로 분류하고, 대표적 학자로는 바우만, 기든스, 울리히 벡 등이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점은 20세기 후반 사회가 분명 다르긴 하나, 이것이 급격한 단절 속 전례 없는 새로운 근대는 아니라는 거다. 지금 목도하는 사회 역시 이전 근대성의 결과다.
 
이런 근거에 따라 ‘Liquid Modernity’의 번역어는 ‘액체 근대’라고 생각한다. 바우만은 Solid Modernity와 Liquid Modernity의 차이를 이야기하지만, 근대성의 연속 속에서 급격한 단절이 있다거나 사회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포스트 모더니티에 관한 책을 내기도 한다. <액체 근대>(1999) 출판 훨씬 전인 1987년부터에. 하지만 이것은 건축양식, 예술 사조로서의 사상을 전유한 것이지 사회의 변동을 설명한 것은 아니고 자신을 탈근대론자로 분류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액체 근대』가 출간된 후 한 대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포스트 모더니티라는 어휘 자체가 목욕물(기존 근대에 관한 설명)를 버리며 아기(근대성)를 함께 버리는 것을 피하려 액체 근대를 조어했다고. 포스트 모더니티라는 단어는 근대성 이후를 암시하는 거라고 못 박으면서 말이다.
 

“21세기에 진입한 우리 사회는 20세기에 진입했던 과거 사회 못지 않은 ‘근대성’을 지닌다. 다만 좀 다른 방식의 근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그문트 바우만. 2009. <액체 근대>. 이일수 역. 47p. 

 
모더니티를 현대로 옮길지, 근대로 옮길지는 여전히 합리적인 이견이 존재할 수 있는 사안이다. 더불어 다른 부분은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기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는 것이고, 바우만의 어려운 논의를 번역하고 출간해주신 이일수, 윤태준 선생님, 그리고 필로소픽, 오월의봄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참고
김홍중. 2013. “후기근대적 전환.” 『현대사회학이론』. 한국사회학회. 다산출판사.
Bauman, Zygmunt and Tester, Keith. 2001. Conversations with Zygmunt Bauman. Cambridge: Polity Press.
Dawson, Matt. 2010. “Bauman, Beck, Giddens and our understanding of politics in late modernity.” Journal of Power. 3(2). 189–207.
Outhwaite, W. 2009. “Canon Formation in Late 20th-Century British Sociology.” Sociology. 43(6). 1029–1045.
Tester, Keith. 2004. The Social Thought of Zygmunt Bauman. London: Palgrave Macmillan.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

사회과학적 역사 연구의 진일보 <임진왜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제가 즐겨쓰진 않는 걸 아실 겁니다. 화제의 책, 김영진 선생님의 『임진왜란 – 2년 전쟁 12년 논쟁』입니다. 한국인에게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적인 침략, 선조의 무능, 이순신을 포함한 국군의 선전, 의병의 봉기 정도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순신”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7년 전쟁에서 직접적 교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2년여의 기간이었으며 이 시기에 있었던 한·중·일의 군사적 대결을 넘어 외교와 정책 등의 비군사적 대치는 12년 정도였기에 이를 고려해 임진왜란을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재해석합니다.

이 책이 흥미롭고, 또 제가 “압도적”이라고 한 이유는 저자가 ‘정치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정치학과에서 방법론 수업을 들을 때 학위 논문 이야기를 하시면서 교수님은 이순신을 외교적으로 분석하려던 지도학생이 있었는데, 이순신으로 논문으로 쓰려면 당장 당시 조선의 1차 자료뿐 아니라 일본의 이순신 자료까지 읽어야 해서 그 주제로는 논문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게다가 16~17세기 자료는 근대 이후의 언어와는 차이가 있기도 하죠.

아무튼 사학자가 이 주제를 다룬다면 사료 분석 능력은 탁월하겠지만 사회과학만큼의 이론적 틀이나 해석이 범위는 비교적으로 제한될 것이고, 반대로 사회과학자가 다룬다면 이론적 틀, 해석의 범위는 비교적 풍부하겠지만 사료 분석 능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텐데, 김영진 선생님은 그 어려운 걸 해내신 겁니다. 그것도 참고문헌까지 1,000쪽 분량으로 묵직하고 성실하게요. 임진왜란은 한중일이 전면전을 벌인 유일한 사례이지만 한국, 중국, 일본의 원사료를 사용한 통사가 출판된 건 세계적으로 최초라고 합니다.

현재는 언제나 뜨거운 무엇입니다. 앞서 지적했듯, 기존까지의 임진왜란 연구는 각 나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중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한국도 마찬가지였죠. 한편으로 타국의 연구는 패권주의인 시각에 긴박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진 선생님께서는 자국 중심주의, 패권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 국수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닌 입장에서 균형 잡힌 임진왜란 12년의 통사를 재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임진왜란을 한국의 측면에서, 군사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전쟁의 신, 이순신이 남겠지만, 시각을 넓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비군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순신은 상대화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아닌, 조선이라는 전장에서의 명과 일본의 전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교적 측면에서 조선의 왕은 명의 차관급인 송응창같은 지위였고, 당연히 왕 이하의 모든 신하는 송응창의 부하였지, 대등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외교적 선택에 있어 명나라에 모든 걸 위임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선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한층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군사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이순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명 조정 역시 이순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순신의 승리가 국제관계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승리로 인해 명나라는 자국의 해상 방어가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이를 통해 조선에 원활한 원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책은 군사적 요소 역시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해석합니다.

저는 국제관계사 측면에서 역사를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순신으로 표상되던 임진왜란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해줍니다. 이런 사고의 전환 속에서 인식의 운신이 넓어지고, 사유의 폭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 알았던 것을 극복하는 건 어떨 때는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6세기 역사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대국의 세력 균형 사이에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관심 있는 분께 정말 추천하는 책입니다.

민주주의의 황혼,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

1. 이 책,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는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애플바움은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동료들과의 추억을 회고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과 지금은 친구는커녕 얼굴 보기도 민망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는 겁니다. 애플바움은 ‘왜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친구들이 이제 권위주의를 추종하게 되었을까’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 원인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제입니다.

2. 이 책은 독특하게 폴란드의 사례로 시작됩니다. 폴란드의 극우·보수정당인 ‘법과 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이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 정당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당으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자유 구역’(Streffy wolne odiologyii LGBT) 같은 정책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자유 구역이란, 노키즈존 같이 성소수자가 없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이런 정당이 득세하게 된 원인을 고민해보는 겁니다.

3. 저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등으로 수면에 오른 포퓰리즘의 준동, 영미 정치의 위기를 다루는 일련의 서적이겠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폴란드, 헝가리 등의 동유럽 사례나, 유럽의 사례가 나왔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이 책도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등의 문제를 영미와 함께 유럽 전체로 확장해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서구의 충격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크 릴라, 그리고 마이클 샌델 같은 굴지의 정치철학자도 이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4. 앤 애플바움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애플바움은 이 문제를 공화주의, 자유주의의 정치철학적 논의와 같이 거창하고 거대한 문제로 다루지 않고, 권위주의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 기제를 다루며 보다 실제적이고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노지탤지어의 부활, 능력주의에 대한 실망, 음모론의 부상과 더불어 현대적인 담론 자체의 논쟁적이고 호전적인 성격도 현재 위기의 한 원인이다.”라고 분석합니다.

5. 그렇게 이 책은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와 같은 문제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경한 유럽에서의 포퓰리즘의 준동과 극우에 가까운 보주 정당의 부상을 보다 미시적이고 친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교양으로서 새로운 정보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외에는 ‘서구’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인데, 유럽 각국 정치 상황에 대한 여러 내용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6. 애플바움은 자유주의자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우파 자유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실 때 고려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에 내용이 많은 편인데, 감상과 맥락 위주로 책에 관해 적어봤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이 생소한 유럽 정치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각주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해줬으면 독서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물론 번역이 좋았고요, 기본적인 어휘를 설명하는 각주가 도움이 됐습니다.

7. 곁가지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에는 이런 권위주의 정당이 득세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의 기본적인 상황 자체가 이미 그런 기반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분리주의(인종주의 기반), 국가주의, 성소수자 인권 옹호, 페미니즘 같은 주제는 한국 주류 정당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죠. 적극적이지도 않고요. 한국은 집권당 당 대표가 흑인 보고 얼굴이 연탄 같다고 농담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의 평균을 따지면 책에서 나오는 보수·극우 정당과 비슷할 겁니다. 다만 한국은 이민 국가도 아니고 국경도 폐쇄되어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뿐입니다. 자유주의를 제대로만 지지해도 한국에서는 진보주의자가 될 겁니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하는 한국 정치인 중에 탈권위주의 입장에서 모병제를 국가에 의한 강제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의 필요,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일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벌써 7년째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제정되는 즈음 이른바 단통법도 시행되면서, 도서정가제는 ‘책통법’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통용되곤 했죠. 저는 처음부터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편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군소 출판사가 많기 때문에, 지나친 경쟁이 발생하면 출판생태계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언제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이라 도서정가제 이전이 종종 그리울 때도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요.

이 책,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일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는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엮고,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국출판정책연구회 회장인 백원근 선생님이 집필하셨습니다. 책은 도서정가제의 필요성, 개정(현행) 도서정가제의 긍정적 효과, 도서정가제 폐지론에 대한 반박, 도서정가제의 미래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도서정가제의 취지와 논리를 설명하고, 도서정가제 이후 긍정적 변화를 사실에 기반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독서생태계의 다양성 보호’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책은 문화적 공공재입니다. 책에서 나오듯, 책의 공공재적 성격 때문에 부가세가 면제되고, 국비로 도서관을 운영하죠. 그래서 자유시장의 논리보다는 이것을 어느 정도 완화할 규제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도서정가제입니다.

출판사와 서점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형 출판사’와 ‘대형 서점’이 경쟁에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출판사 같은 경우 출판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어서 가격 경쟁을 시행해도 출판 부수로 이윤을 보전할 수 있을 겁니다.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인터넷 서점의 경우에는 출혈적인 가격 경쟁, 과도한 마케팅을 해도 유통가를 지역 서점보다 훨씬 낮게, 많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고, 대형 오프라인 서점도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군소 출판사와 지역 독립서점은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지겠죠. 이런 상황에서 독서생태계의 다양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전 세계가 시장인 OECD 영어권 국가를 제외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등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이후, 출간 도서의 다양성이 크게 증진되었고, 독립서점이 500개 이상 설립되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독서생태계의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한때,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이 등장해 이슈가 됐죠. 이 책에서는 해당 국민청원에 대한 팩트체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당 청원은 1)서점 수 감소 2)독서율 감소 3)책 값 인상 4)출판사업 매출 규모 축소 5)평균 발행부수 감소 6)해외와의 차이를 들어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했죠. 하지만, 책의 자료에 의하면, 1)참고서 위주가 아닌 독립서점의 증가로 전체 서점 수 증가 2)독서율 감소의 주된 원인은 사회 환경 변화(문체부 국민 독서실태 조사) 3)정가제 이후 상승률이 감소,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 대비 적게 상승 4)매출 규모 상승(문체부 통계) 5)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변화 6)한국 출판문화의 차이 등의 이유로 해당 청원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 출판계의 반박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책이 정말 싼 편입니다. 해외 서적을 구매하시는 분들은 다 느끼실 겁니다. 저는 큰 틀에서 현행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편이고, 완전 도서정가제로 개정되는 것도 동의합니다. 물론, 출판 시장의 위탁 판매제도나 유통구조 개선은 정가제와 관계없이 개선되었으면 좋겠고, 오래된 서적의 오프라인 할인 판매 등의 개정은 좋지 않나 싶습니다. 독서생태계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요.

책에서 사용하는 몇몇 논거는 조금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느끼기도 했지만, 이 책은 2,000원짜리 팸플릿이고 간명하게 사실을 전하고 있기에 그런 건 독자의 몫이겠죠. 저는 도서정가제를 지지합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나만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책은 공공재다’, ‘독서생태계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같은 가치함축적인 문장에 충분히 다른 생각을 가지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고 출판계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시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보수 개신교에 관한 정교한 분석,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태극기는 보수 혹은 극우의 상징이 되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태극기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상징이었으나, 2016년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와 문재인 정권 이후 문제가 된 태극기 집회의 연속 안에서 태극기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함께 극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먼저 이 책,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은 한국 교회의 보수 혹은 극우 개신교도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해를 넘어 정교한 이래를 목표로 보수/극우 개신교에 대한 정치(精緻)한 분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매우 다채로운 관점에서 이들을 다루고 있다.

우선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은 보수 개신교인에 대한 사회조사다. 이 집단에 대한 사회조사는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는 ‘표적 집단 면접 조사’로,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거나 (지방의 경우) 참여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20대부터 70세 미만까지 30여 명 선정하여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다음으로는 설문 조사인데,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의 개신교인 중 보수적 성향을 가진 570명을 표본으로 진행된다. 이 조사를 중심으로 한 글 두 편이 책의 서두에 자리하고 있다.

이어지는 글은 극우 개신교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중심이다. 최경환 선생님은 공공신학과 교회의 정치에서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극우 개신교의 정치 참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신교의 정치 참여가 지향해야 할 대안을 제시한다. 송인규 선생님은 ‘극우적 사고’에 초점을 맞춰 극우적 사고가 현실적, 종교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배덕만 선생님은 교회사학자답게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우의 융합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행한다. 미국의 근본주의와 한국 근본주의 접합, 그리고 한국의 근본주의자의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다. 김지방 선생님은 2000년대 교회의 정치 참여와 2020년의 교회의 정치 참여를 비교하면서 이 차이를 서술하고 한 편으로는 개신교 내부에서 새로운 시각에서 정교분리를 재고해야 함을 지적한다. 김현준 선생님은 호프스태더의 반지성주의 논의에 기대어 한국 개신교 내부에 극우파의 출현을 반지성주의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책은 먼저 다채로운 시각에서 쓰였다는 장점이 있다. 사회학자, 기자, 신학자 등이 필진으로 참여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글 서두에 2편이 다루고 있는 사회조사다. 표적 집단 심층 면접, 그리고 570명을 표본으로 하는 설문 조사는 그 자체로 보수 개신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여러 측면에서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이들은 무엇 때문에 보수 개신교인으로서 자각이 시작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정보량이 정말 많기에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사회조사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심층 면접에 있어서 대졸자가 과잉 대표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30여 명 정도의 표본 중, 대졸 미만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4명에 불과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저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간 사회조사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총 7장 중 4장 정도는 종교의 여부와 관계없이 극우/보수 개신교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 내용이고, 이 현상을 종교의 입장에서 다루는 장에서도 현실적 분석이 선행되기 때문에 얻을 정보가 많다는 말씀을 드린다. 책을 읽고 극우/보수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기존보다는 구체적으로 잡히게 돼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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