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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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간주되는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참여(참여 민주주의)와 *공론장(Öffentlichkeit, public sphere)이론,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장명학, 2003: 1).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은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라는 정치사상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버마스 스스로도 공공연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작업과 이론에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현대(comtemporary) 민주주의 구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독일어 ‘Öffentlichkeit’는 공적 영역, 공론 영역, 공공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으로 번역된 하버마스의 저서를 준거로 삼고, 이를 ‘공론장’으로 통일해서 사용할 것이다.
1. 하버마스의 이론 기획 : 2단계 사회이론과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
하버마스는 20세기 이후의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경제적 분업관계에 기초한 통합은 체계통합으로 보고, 규범과 가치의 동의에 의한 상호 연관적 통합은 사회통합으로 보았다. 이러한 두 가지의 통합개념을 통해 하버마스는 2단계 사회이론, 즉 ‘체계와 생활세계’라는 이원적 사회관을 전개한다(정선기, 2011: 89). 하버마스(2016: 20)는 자신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의 기획 중 하나의 주제로서 “생활세계와 체계의 패러다임을 결합하는 2단계 사회개념”을 제시할 것을 언급한다.
우선 하버마스에게 생활세계(Lebenswelt)란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것이며, “의사소통행위의 배경과 지평”을 이루는 개념이다(하버마스, 2016: 149). 하버마스의 생활세계 개념은 개인에게 소여된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생활세계의 자명성)이며 상징과 의미로 조직된 세계이고, 개인이 경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세계이다(발터 리제 쉐퍼 1998: 59-60).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버마스의 이론에서 생활세계와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체계(System)’ 개념이다. 하버마스(2015: 413-426)에 의하면 체계란 근대화 이후에 조정매체가 제도화되면서 발생하게 된 것으로 생활세계와 분리된 영역이다. 하버마스는 권력이라는 조정매체가 제도화된 정치체계와 화폐라는 조정매체가 제도화된 경제체계를 체계로 제안한다(김재현, 1996: 132).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서 2단계 사회이론, 즉 생활세계와 체계의 구분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 이원적 구분은 그의 기획의 토대가 됨으로써 이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이후에 진행될 하버마스의 정치사회학적 논의를 더욱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두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와 체계라는 이원적 구분을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킨다. 정치사회학의 맥락에서 2단계 사회이론이 갖는 시사점을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인데, 첫 번째는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이고, 두 번째는 생활세계가 가진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관한 내용이다.
먼저 다룰 내용을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이다. 이 논의에서 하버마스는 베버의 관료제 테제를 이어받은 듯하다. 경제적 논리, 자본주의적 원리로 작동하는 경제체계와 관료제화, 법제화라는 논리로 진행되는 정치체계는 생활세계에 침투하여 생활세계 고유의 의미와 상징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생활세계를 경제‧정치체계의 식민지로 전락시킨다. 친밀성의 영역(생활세계)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들이 화폐를 매개로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치환되거나, 법제화되어 친밀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회적 행위들이 법의 영향으로 제한된다면 이런 것들은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세월호를 인양하는 문제에 있어, 당시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는 논리로 ‘비용’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세월호를 인양하는 문제는 생활세계에서의 생명이 가진 의미나, 생명의 존엄성,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겠다는 일종의 상징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인양을 반대했던 국회의원은 이런 의미와 상징의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환원해버렸다. 이런 구체적인 사건은 최소투자 최대이익이나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체계의 논리가 상징와 의미의 영역인 생활세계의 논리에 침투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김덕영, 2016: 443).
하버마스의 2단계 사회이론이 갖는 함의, 두 번째로 언급한 ‘생활세계가 지닌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관한 내용은 다음 단락의 주제와 연관되어 이어서 논의하겠다.
*이명희, “김진태, ‘세월호 인양 이래서 반대한다(3불가론)’”, 경향신문, 2015.04.05. 참조
2. 하버마스의의 의사소통 합리성과 정치적 공론장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 논의
하버마스는 ‘계몽의 적자’이다.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이 목표하는 것은 근대를 옹호하는 것(김덕영, 2016: 421)이며, 그는 1980년 9월에 있었던 ‘아도르노상’ 수상 연설에서 “모더니티(modernity)는 미완의 계획”이라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김홍중, 2015). 하버마스는 양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했던 근대성, 합리성, 이성 등의 근대적 주제들을 다시금 사회이론의 지평으로 끌어들여 후기 산업사회가 가진 병폐를 정치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노력은 생활세계가 지닌 의사소통 합리성을 일깨우는 대안으로 치닫게 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통용되는 세계이다. 생활세계 내에서의 의사소통행위는 성숙하고, 참여적이며, 이성적인, 비판적인 능력 내지는 의지를 지닌 개인들의 이해지향적 상호작용이다. 반면에 정치‧경제체계에서는 합목적적 합리성이나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적이다(김덕영, 2014: 56-57). 하버마스(2015: 515)는 “의사소통적 합리성만이, 생활세계의 자립화된 체계들의 고유역학에 의해 부속화되는 것에 저항할 때 분노만이 아니라 내적 논리를 제공해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승자답게 문화 영역에서의 식민화와 법제화를 통한 식민화를 다룬다. 이러한 권력조작적, 이데올로기적 식민화를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으로 보았던 그는 이러한 식민화에 맞서 생활세계의 의사소통행위에 내재된 ‘의사소통적 이성’의 저항력을 근거로 시민사회가 활성화 된다면 의사소통적 이성의 해방적 능력이 실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김재현, 1996: 138).
다음으로 하버마스는 공론장 개념을 자신의 정치사회학에서 중요한 자리에 위치시킨다. 공론장에 의한 하버마스(2001)의 논의는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부르주아 공론장은 당시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특정의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전근대사회의 권위가 아닌 근대적 이성에 기반을 둔 토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적 공론장은 시민들의 대화의 장이었고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며 시민혁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시장의 영역(경제체계)와 국가의 영역(정치체계)이 비대해지면서 정치적 공론장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관한 이론적 작업은 1961년에 출간되었고, 공론장에 관한 비관적인 인식은 약 30여 년을 시차를 두고 1992년 출간된 『사실성과 타당성(Faktizität und Geltung)』에서 이어진다. 하버마스는 이 저작에서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장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작업을 시도한다(하버마스, 2010: 441이하). 장명학(2003: 18-21)은 하버마스의 정치적 공론장을 “일반적으로 시민사회를 매개로 하여 생활세계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의사소통구조”로 정의하고, 그 특징을 서술했는데,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론장은 체계처럼 전문화가 진행되지 않고, 일상언어라는 매체로 작동한다. 둘째, 민주적 공론장에서의 의견 형성의 성공은 의사소통행위에 기반을 둔 담론의 수준에 의존한다. 셋째, 사회에 따라 권력화된 공론장, 즉 본래의 의미를 잃고 왜곡된 공론장도 존재한다. 넷째, 공론장에서도 영향력을 얻기 위한 투쟁이 존재한다. 다섯째, 공론장에서 형성된 의사는 권력행사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버마스(2014: 16)는 생활세계에서 비롯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사소통합리성에 의한 소통은 개인들 사이에 비강업적이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온전한 상호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언어관계를 토대로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시작된 공론장 담론을 생활세계와 정치적 담론장으로 확장시켜 민주주의의 정치사회학을 전개시킨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이론은 숙의 민주주의와 친화성을 갖는다.
하버마스(2010: 398-399)는 “토의정치의 절차가 민주주의 과정의 핵심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서 민주주의 과정에서의 규범적 내용들이 상호이해지향적 행위의 타당성의 기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언어적 의사소통의 구조와 의사소통적 사회구성의 대체할 수 없는 질서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의사소통을 통한 시민들의 공론형성,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을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반으로 본 것이다.
“토의과정을 통해 걸러지는 정치적 의사소통은 이러한 생활세계의 자원들에, 그러니까 자유로운 정치문화와 계몽된 정치적 사회화, 그리고 무엇보다 형성하는 결사체들의 주도적 발의에 의존한다.”(하버마스, 2010: 405)
하버마스는 지속적으로 계몽되고, 합리적인 시민들에 이루어지는 정치적 공론장에서의 숙의과정을 통해 생활세계의 비판적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으며, 이것을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임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숙의 정치의 핵심은 정치‧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점에 있다(하버마스, 2010: 430).
“담론이론은 민주적 절차나 정치적 공론장들의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상호이해 과정의 한 차원 높은 상호 주관성을 고려한다. 이 주체 없는 의사소통이 의회와 그 심의기구들의 내부와 외부에서 토의의 장을 형성하고, 이 토의의 장 속에서 사회 전체와 관련되고 규제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관해 일정 정도 합리적인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이 일어난다.”(하버마스, 2010: 401)
이 서술에서 하버마스는 정치‧사회적 문제의 해결로 심의기구와 그를 둘러싼 내부, 외부의 숙의 과정, 숙의의 장에 대해 언급하고, 이러한 숙의 민주주의적 요소로 합리적인 의견형성, 의지형성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하버마스는 자신의 사회이론의 특징인 의사소통행위와 공론장 개념을 중심으로 숙의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고,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숙의 민주주의 정책과 친화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하버마스의 시민사회 이론과 참여 민주주의 논의
하버마스는 합리적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주장했던 이론가이다. 하버마스는 시민사회 개념을 정초하면서, 시장법칙의 익명적인 지배를 내재화해서 상호경쟁하는 개별주체를 상정하고 있는 의식철학적 패러다임과 결별을 고한다. 대신 하버마스가 제안하는 개별적 주체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찰하기 위해 목적합리적으로 행위하는 개인들이 아닌, 의사소통의 주체들이다(이진우, 1996: 183, 202).
특별히 참여 민주주의에 관한 하버마스의 담론은 ‘생활세계와 체계’라는 2단계 사회이론을 기저에 두고 진행되며, 앞서 다룬 의사소통행위이론, 정치적 공론장 개념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진행된다. 하버마스(2010: 401-402)는 시민사회를 자율적 공론장의 사회적 기초로 규정했다. 이 맥락에서 시민사회는 두 체계, 경제적 행위체계와 공정 행정으로부터 구별된 개념이다. 하버마스는 오직 의사소통적 행위에서만 사회통합의 힘이 자율적 공론장을 통해 제도화된 민주적 의견형성을 구성하고, 화폐와 권력을 매체로 운영되는 경제체계와 정치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내적 식민지화’에 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내적 식민지화를 저지할 수 있는 역량을 시민사회와, 시민들의 참여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을 가지고, ‘신사회운동’으로 명명하고, 신사회운동은 종래의 초기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르게, 탈물질적 가치를, 예를 들면 삶의 질이나 개인의 자아실현 등의, 중심으로 다루는 사회운동이다.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은 상호의 대상화, 물화(物化), 계량화가 일어나지 않은 의사소통으로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의사소통 합리성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위협받는 생활세계를 방어하고, 식민지화에 저항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성장 중심주의적 이념을 공유하지만 생활세계에서 발생한 의사소통은 대안적 제도들을 제시하고, 그것이 자리 잡을 환경도 제공할 수 있다(권용혁, 1996: 282-285).
하버마스는 시민사회에 관련한 정치사회학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나, 민주주의에서의 시민의 저항권에 대한 논의도 다루고 있다. 하버마스는 시민의 불복종이 헌법 자체에 근거를 둔 당연한 근대의 정치권임을 강조한다. 다만 그는 68혁명을 경험하면서, 비폭력 노선을 굳건하게 지지한다. 그럼에도 하버마스는 다양한 시위와, 집회 등의 시민의 참여 민주주의적 요소를 옹호한다. 숙의 민주주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부여된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그도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더라도 사회의 문제들은 완전히 해결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일방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정치참여에 관해 조심스러웠고, 정당성뿐만 아니라 근대 법치국가에서의 합법성 또한 고려할 것을 균형감 있게 제안했다(발터 리제-쉐퍼 1998: 127-130).
정리해보자면 하버마스의 정치사회학은 미완의 근대를 완성시키려는 하나의 거대서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버마스는 계몽되고 합리적인 개인들이 근대의 문제를 정치적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행위’와 비판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 통해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정치사회학적 논의를 진척한 하버마스는 자연스럽게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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