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친 님께 장춘익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장춘익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를 보며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의 경우, 번역하는 데에만 4년이 걸렸고, 루만의 『사회의 사회』 역시 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장춘익 선생님의 작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루만 최후의 기획인 『사회의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선생님의 이런 노고는 나 같은 후학에게는 등대와 같았다.
전후 독일의 지성, 사회철학, 사회이론은 루만과 하버마스로 대표될 수 있는데, 장춘익 선생님을 통해 현대 지성사의 핵심 중 핵심인 두 명의 이론가를 한국어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명을 통해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신경림이 농무(農舞)에서 자조적으로 말하듯, 한국의 풍토에서 번역하는 것은 “비료값도 안 나오는” 일이다. 그냥 번역도 아니고, 그것도 1,000쪽도 넘고 그저 읽기만 해도 버거운 책을 번역하는 일은 한국 학계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손해를 넘어 한편으로는 자기희생과 사명감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작업을 묵묵히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에는 항상 ‘역자 서문’이 가장 앞에 배치되어 있다. 역자 서문에서 선생님은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신이 범했을지도 모르는 겸손하게 인정하며 번역 제안을 부탁한다. 메일 주소와 함께. 다시, 나는 선생님을 한 번 뵌 적도 없지만,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하버마스와 루만을 공부할 때에는 언제나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곤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께 안식이 있길 바란다.
올해 2월 5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