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와 부르디외

부르디외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신 홍성민 선생님은 부르디외가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느꼈다고 이야기하셨다. 부르디외와 푸코의 비교연구를 하기도 하셨던 선생님은 푸코가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부르디외는 '폭력'이라고 부른다고, 푸코와 그의 차이는 아마 폭력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부르디외는 폭력과 구별되는 권력 개념도 사용한다.)

은폐된 사회의 지배구조를 폭로함으로써 지배당하고, 고통받는 자들로 하여금 무죄를 입증한다는 목적을 가진 부르디외 사회학은 '지배의 사회학'이며 무엇보다도 '폭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장 이론이 세계의 근원적인 폭력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는 이상길 선생님의 규정은 부르디외 사회학의 핵심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사회 내에서의 불평등한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할은 부르디외에게 '상징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상징폭력이란 피지배자가 지배계급의 자의성을 오인함으로써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어 발생하는 비가시적 폭력을 의미한다. 폭력이라는 부르디외 사회학의 핵심적인 개념과 전체적인 세계상을 생각해봤을 때, 베버가 부르디외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을 갈수록 느낀다.

[세계종교와 경제윤리]라는 베버의 유명한 종교사회학 논문에서 그는 사회적 불평등을 종교가 정당화하는 과정에 대해 다룬다.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관념들이 제거될수록 전능하고 정의로운 신의 세계에는 부당한 고통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는 설명을 필요로 했고, 불평등한 복의 분배는 정당한 것이 되어야 했다. 신정론은 세계의 비참의 원인과 사회의 불평등한 복의 분배가 정당한 것임을 설명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맥락에서 부르디외는 [종교장의 기원과 구조]라는 논문에 "신정론은 언제나 사회신정론이다"라고 서술하는데, 이 대목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사회적인 성공과 성공한 자의 복, 자본의 불평등한 분배를 포함한 모든 수준의 정당화를 다뤄야하는 사회학의 기능에 대한 서술일 것이다. 또 이는 부르디외가 "베버는 종교사회학이 권력사회학의 한 장(章)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상징자본을 개념화할 때 베버의 카리스마 개념을 기반으로 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르디외가 문화사회학을 오늘날의 종교사회학이라고 명명한 것은 곧 문화사회학이 권력사회학이며, 지배의 사회학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베버는 종교 영역이 점증적으로 다양한 가치영역으로 제도화·전문화 되는 과정(근대화)에 주목하면서, 분화가 진행중인 근대사회에서 각각의 독립적인 가치이념이 객관적 의미체계를 구축하고 일정한 분화수준에서 전문가 집단의 출현을 통해 구성되는 공동체의 교조적 원리의 체계화를 설명한다. 부르디외의 장 이론은 이 베버의 다양한 가치의 제도화라는 생각에 빚지면서 동시에 전문가 집단의 체계화된 도그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설(Orthodoxie)과 이설(Heterodoxie) 대결, 정통/이단의 대결이라는 베버의 아이디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에서 지배관계를 설명했던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상징권력, 상징폭력, 상징지배 개념의 기저를 이루는 독사(Doxa) 개념을 이끌어낸다.

이런 부르디외 사회학의 결정적인 세계상과 더불어 부르디외 사회학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하비투스는 베버의 에토스를, 자본은 베버의 자산(asset)을 기반으로 발천시킨 개념이며 부르디외의 계급론 또한 베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