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의 재생산 이론


부르디외는 하비투스, 자본, 그리고 장과 같은 기본개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프랑스 사회의 교육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 때문에 부르디외는 미국에 수용될 때 교육학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부르디외는 1964년, 학업성취도의 격차를 낳는 주요 원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자본의 결과임을 『상속자들(Les héritiers)』을 통해 논증한다. 이어서 1970년, 부르디외는 1960년대에 시행했던 교육사회학 연구들을 종합해 『재생산(La reproduction)』이라는 저작을 출간한다. 재생산에서 부르디외는 상징폭력의 일반이론을 구축하면서 교육을 하나의 상징폭력으로 규정하며 교육이 사회질서의 유지에 기능하는 점을 지적한다. 부르디외의 교육과 지식사회, 엘리트주의 등에 관한 연구는 끊임없이 그의 작업 속에 이어졌고,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국가귀족(La noblesse d’État)』과 같은 연구 역시 교육체계와 지식인 사회에 관한 연구를 담고 있다(이상길, 2018: 55-71).


교육에 관한 부르디외의 작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업은 『재생산』에 담겨있다. 부르디외의 재생산은 1997년 국제사회학회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사회학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회학 도서 48위에 자리매김 했으며 단 권으로만 약 20,000회 이상 인용된 저작이기도 하다. 부르디외의 재생산 이론의 핵심을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는데, 첫 째, 사회화 과정에서 상속받은 문화자본의 차이가 ‘학업성취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둘 째, 교육과정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적 질서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기존에 한국에서 수용된 재생산 이론 연구는 문화자본에 의한 ‘학업성취의 격차’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부르디외의 재생산 이론은 이러한 결과적 평등뿐만 아니라 그 격차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질서가 정당화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부르디외 재생산 이론이 가지는 두 가지 함의를 구분해서 설명할 것이다. 먼저 재생산 이론이 설명하는 교육 불평등에 대해 다루고, 이어서 교육과정 자체가 지닌 불평등의 정당화 과정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1) 재생산 이론의 함의: 문화자본에 의한 학업성취의 격차




악셀 호네트(1986: 6-7, 55-57)에 의하면 인류학적 작업을 통해 전통사회에 가까운 부족사회들을 연구했던 부르디외는 한 사회에서 집합적으로 공유되는 관념적인, 상징적인 질서는 사회적 집단의 계급이익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부르디외는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징체계가 사회집단들의 투쟁 산물임을 주장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지배적인 상징질서는 곧 투쟁에서 승리한 특정 집단의 상징체계인 것이며, 이는 이 자체로서 상징권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부족집단이 상징권력을 두고 투쟁했던 시기와는 다르게 단순한 형태의 직접적인 상징투쟁이 아닌 문화적 지식의 습득과 보유에 관한 투쟁의 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근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문화자본을 둘러싼 투쟁이 세련된 형태인 교육으로 나타나고, 교육기관을 통해 이 질서가 주입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르디외에게 학교로 대표되는 교육체계는 사회적으로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가 아니다. 학교에서는 오히려 특정한 (지배집단의) 문화의 전달되며,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문화적 신성화의 장소”, “문화적 전횡의 장소”, “문화적 전횡이 생산되는 장소”, 이에 따라 “기존질서가 재생산되는 장소”이다(앙사르, 1994: 203). 이에 따르면 학교는 지배집단의 상징적·문화적 질서가 이미 자리 잡은 장소이다. 다시 말해 교육의 장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회공간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 지배계급이 상징권력을 획득해 상징질서를 구축해놓은 공간인 것이다. 사회적 행위자는 각기 다른 계급의 하비투스를 체화하고, 자신이 온축(蘊蓄)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가지고 교육의 장에 참여한다. 교육의 장에는 이미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있는 사회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장에 게임의 규칙에 적합한 지배계급의 하비투스를 체화하고 사회적 위치공간에서 그 계급에 적합한 자본을 가지고 장에 참여하는 행위자와 민중계급의 하비투스를 체화하고 그에 따른 자본을 가지고 장에 참여하는 행위자는 교육의 장에서 전혀 다른 수행성을 보일 것이고, 이는 ‘선별과 배제’로 이어진다.


부르디외(2003: 175-203)는 프랑스 교육체계에서 ‘시험’의 중요성과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별과 배제’에 대해 서술한다. 프랑스 교육체계 내에서 시험은 고등교육제도를 지배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부르디외가 설명하고 있는 프랑스 교육체계의 특징은 엘리트교육기관부터 실업학교까지의 위계가 명확하다는 점과 정성(定性)평가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교육을 질적으로 평가하는 프랑스 교육은 평가자의 가치와 주관이 개입할 특성이 커지는데 이는 시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시험응시자의 논구술·대면평가에서의 어조, 어투, 어휘구사력, 논술평가에서의 문체나 문장력 등의 언어능력은 물론이고 자세나 몸짓, 복장, 스타일 등도 평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부르디외가 관심을 가졌던 하나의 부분은 바로 계급 하비투스로 체화된 언어(의사소통)능력이었는데, 부르디외에게 언어능력은 계급 하비투스를 보여주는 각별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계급의 하비투스 전체는 언어적 하비투스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한다(부르디외, 2014: 99). 따라서 중립적인 것 같은 시험에서도 계급의 체화된 자본은 평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인 선별과정(시험)에서 민중계급 출신이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부르디외는 이야기한다.


이런 선별과정을 거쳐 학업성취, 그리고 학위를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더 큰 특권을 부여받는다. 이들이 가진 능력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상속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득(生得)적인 것으로 자연화(본성화)된다(부르디외, 2006: 135). 학교는 교육과정의 승리자들을 천부적인, 타고난 ‘재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하고 사회질서의 재생산을 정당화시킨다(부르디외, 2003: 239).


2) 재생산 이론의 함의: 불평등의 정당화 과정으로서의 교육과정


“상징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모두 자신의 힘의 토대인 권력관계를 은폐한 채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은 이를 통해서 권력관계에 자신의 고유한 힘인 상징권력을 추가한다.”(부르디외, 2003: 20)


부르디외 『재생산』에서 가정 처음에 나오는 명제는 상징폭력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사회의 불평등한 지배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중점을 두었던 부르디외의 사회학에서 상징폭력은 핵심적인 개념이다. 부르디외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서 지배관계를 설명했던 이데올로기(ideologie)를 ‘상징적 지배(symbolic domination)’, ‘상징권력(symbolic power)’, 또는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으로 대체하고자 했다(Bourdieu‧Eagleton, 1994: 265).


부르디외의 상징지배에 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버의 사회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베버는 종교가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데, 사회의 불평등한 복(자본)의 분배는 단순히 복, 그 자체로서의 효과를 가질 수 없고 그 불평등한 분배가 정당하다는 승인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서 전능하고 정의로운 신과 세계의 비참이라는 모순을 설명했던 것이 종교에서의 신정론(神正論)[각주:1]의 역할이었다(베버, 2015a: 134). 신정론은 사회의 불평등을 해명하는 역할로 기능했던 것이다. 이런 베버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부르디외(Bourdieu, 2011: 57)는 “신정론은 언제나 사회신정론(社會神正論)이다”라고 서술하는데, 이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의 성공과 그 결과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기제를 설명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부르디외(2003: 239-240)는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신정론의 효과, 즉 불평등의 정당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렇듯 부르디외의 상징지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의 정당화 기능이다. 앞선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지배관계는 지배관계 자체로서 기능할 수 없고, 그것을 피지배계급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부르디외(2013: 28)는 상징자본[각주:2]을 베버의 카리스마의 변형된 형태로 이해했다. 베버에게 카리스마란 정당한 지배, 즉 피지배자에게도 정당성을 획득한 지배의 신성한 근거이다(베버, 2015b: 413-414). 상징권력은 곧 상대에게서 인정(정당화)받을 수 있는 권력이며, 지배계급의 문화적 자의성(un arbitraire culturel)과 폭력성을 오인(méconnaissance)[각주:3]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다. 상징폭력은 오인으로 인해 피지배계급이 사회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될 때 발생하는 비가시적 폭력을 의미한다(이상길, 2015: 496-497).


부르디외(2003)는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행위’ 자체가 문화적 자의성을 주입하는 과정이며 이는 곧 상징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교육행위는 ‘교육적 권위’를 부여받은 것으로서 오인을 생산해 교육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는 의사소통을 통해 전달된다. ‘교육작업’은 교육행위가 중단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배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하비투스를 형성할 만큼 오랜 시간 지속되어야 하는 주입작업이다. ‘교육체계’는 문화적 자의성을 재생산(문화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사회계급을 재생산(사회재생산)한다. ‘학교의 권위’는 교육적 권위를 제도화시킨 형태로서 교육의 장에 있는 행위자들에게 끊임없이 권위를 위임받고, 교육제도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제도 자체를 완성도 높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참고문헌


강창동, “학교교육의 상징적 폭력 작용에 관한 이론적 고찰”, 『한국교육학연구』, 15(2), 2009.

막스 베버, 『종교사회학 선집』, 전성우 옮김, 나남, 2015a.

_________, 『경제와 사회·1』, 박성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b.

이상길, “부르디외 사회학의 주요 개념”, 피에르 부르디외·로익 바캉,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그린비, 2015.

______, 『아틀라스의 발』, 문학과지성사, 2018.

피에르 부르디외, 『재생산』, 이상호 옮김, 동문선, 2003.

_______________,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上』, 최종철 옮김, 새물결, 2006.

_______________, “상징자본과 사회계급”, 이상길 옮김, 『언론과사회』 21(2), 2013.

_______________, 『언어와 상징권력』, 김현경 옮김, 나남, 2014.

피에르 앙사르, 『현대 프랑스 사회학』, 정수복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4.


국외문헌


Bourdieu, Pierre. “Genese und Struktur des religiösen Feldes”, in Pierre Bourdieu Religion Schriften zur Kultursoziologie 5. Suhrkamp, 2011.

Bourdieu, Pierre ‧ Eagleton, Terry. “Doxa and Common Life: An interview”, in Savoj Zizek (ed.), Mapping Ideology, London: Verso, 1994.

Honneth, Axel. “The Fragmented World of Symbolic Forms: Reflection on Pierre Bourdieu’s Sociology of Culture”, Theory, Culture and Society, vol. 3, no. 3, 1986.

  1. “‘신’(神, 데오스)과 ‘의’(義, 디케)를 뜻하는 두 헬라어의 합성어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변호하려는 시도. 즉, 하나님이 존재하시는데 세상이 이처럼 모순투성이인지, 왜 계속 죄악이 맹위를 떨치는지,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 맞는지 등의 문제를 다루는 신학적 입장”(출처 : 교회용어사전, 생명의말씀사, 2013) [본문으로]
  2. 상징자본이란 어떤 유형의 자본일지라도 그 자본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되면 기능할 수 있는 자본을 의미한다(이상길, 2015: 518). 존경·명예 등은 상징자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상징자본은 사회적 행위자에게 위임된 하나의 인정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소유한 사회적 행위자는 상징자본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으며, 자본은 단순히 물질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본문으로]
  3. ‘오인’이란 “신비화된 인식으로서의 인정”(이상길, 2015: 510)을 가리키는 말로 역사적이고 구성적인 현실을 자연화하고 신비화하고 절대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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