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사회는 근현대사의 독특한 경험 때문에 갈등양상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회현상을 보인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저자이며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앨버트 허쉬맨이 제시한 ‘나누는 것이 가능한 갈등(divisible conflicts)’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non-divisible conflicts)’을 가지고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압축적·선택적 근대화를 통해 단시간에 발전했으며 그중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의 경험, 해방정국과 신탁통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한 한국전쟁, 개발독재체제와 민주화 등 다이나믹한 근현대사를 경험한 나라이다. 그래서 갈등양상이 첨예한 것과 더불어 이 문제들은 약 100년 안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갈등양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문제들은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의 문제들이 많다. 예를 들면 친일과 반일, 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 독재와 민주 같은 갈등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내 주변이나 젊은 세대들이 공유하는 가치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다른 입장을 가지는, 그것도 뚜렷하게, 세대나 집단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에서 갈등이란 불가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정국의 파행이 일어날 수 있고 정치적 무관심이나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큰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가까운 예로서 현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사태를 들 수 있다. 정부는 2015년 11월 03일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여기에는 물론 많은 반대가 존재했다.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며 길거리로 나선 많은 학생들과 대학생 시민들과 또한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는 역사학계의 약 450~500여명의 교수들까지 반대 성명을 냈다. 이것은 대중성과 전문성이 모두 결여된 하나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연하게 국정화를 지지하는 대중들도 존재했다. 이런 첨예한 갈등양상이 한국 민주주의의 큰 약점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은 젊은 세대 또는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세대갈등 중에 ‘20대 개새끼론’이라는 꽤나 과격한 담론이 형성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20대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순응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었다. 나는 20대의 정치세력화가 약한 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는 세대적 문제이다. 한국은 압축적 근대화와 함께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단 기간에 변화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정체성 형성을 만들었고 이런 단순한 구분 외에도 전쟁세대와 독재세대 민주화 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공존 중이다. 이에 따라 지금의 세대들은 매우 다른 경험들은 공유하며 정체성의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인구구조상 베이비부머 세대가 절대적 다수이다. 따라서 다수결 민주주의인 우리나라로서는 청년세대의 정치적인 주장들이 다수로 대표되는 체제에서 정책에 투입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그래서인지 젊은 세대에서는 ‘우리가 뽑아봤자 당선 안 된다.’하는 식의 주장이 어느 정도 공감을 일으키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다음으로는 선거제도상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인 모리스 뒤베르제는 정당정치에 대한 분석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의 골자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는 양당제에 친화적이고, 광역선거구 비례재표제는 다당제에 친화적이다.’이다. 이것은 뒤베르제가 주장한 이론이며 동시에 ‘뒤베르제 법칙’이라고 불린다. 사회과학에서 법칙에 가까운 현상을 찾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뒤베르제의 이론은 거의 모든 민주사회에 통용된다고 한다. 한국 같은 경우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가 주류인 선거방식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로 뽑히는 의원은 의석수 전체 300석 중 18%인 54석에 불과하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는 유권자의 정치의사가 왜곡될 확률이 크다. 또한 사표방지 심리 때문에 정치적으로 다양한 정당을 지지하기보다는 차악(次惡)의 후보를 지지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당제는 다양한 정치참여자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운데, 포스트모던 세대로 불리는 현세대들의 다양하고 다원화된 정치의사를 대변해줄만한 다양한 정당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이것을 현실화 해줄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해보자면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가 미약한 것은 청년세대의 정치적 이익이 제도적으로 투입되지 못한다는 좌절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서문에서 최장집 교수는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인 토크빌을 인용하며 민주주의는 제도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상태라는 말을 한다.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하나의 문화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한국의 제도적 민주주의는 비교적 쉽게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한 제도적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대로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제도적 민주주의와 함께 사회적 상태로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1987년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제도적 민주주의와 함께 사회적 상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까지는 많은 진통과 희생이 있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약 30년이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선진국에 비해 짧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도 제기되고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도 이 글에서 대부분 제도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민주주의를 바라본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뿐만 아니라 요즘 대두되고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 : 협치協治) 개념이나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문화가 생성되는 데에는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15.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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