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는 ‘헬조선’이라는 담론이 등장한다.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양한 층위의 이유가 작용했지만, ‘수저 계급론’으로 대표되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헬조선 담론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즈음 한국에 번역·소개된 책이 바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었고, 2013년에 출간된 이 책을 통해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책을 소개할 땐, 저자인 피케티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 한다.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지식인의 통과 의례인 파리고등사범 출신으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과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부의 재분배에 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지적 전통이 프랑스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경제학자인 그는 세계의 저명한 선배 경제학자보다도 뤼시앵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 레비스트로스, 부르디외, 에리티에, 고들리에 같은 학자를 존경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프랑스의 지적전통에 편입시킨다. 이는 곧 그의 경제학이 단순히 경제학에 한정된 것이라기보다는, 폭넓은 사회과학과 함께하는 경제학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피케티 역시 이 책을 경제학과 역사학·정치학·사회학의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피케티가 증명하는 논지의 핵심은 이렇다. 이것은 “r > g”라는 단순한 부등식으로 정리되는데, ‘r’은 자본수익률을 ‘g’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이를 대략적으로 표현한다면 돈이 돈을 버는 것이 노동을 통한 소득이나 생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많은 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장기적으로 이런 현상 때문에 미래의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예측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논증한다.

책은 서장·결론과 함께,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책에서 사용될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산업혁명 이후의 경제발전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데, 여기에서는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적인 변화의 추이를 살피고, 21세기의 전망을 살핀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따라 나타나는 불평등의 양상을 보여주고, 자본 분배의 역사적인 분석을 시도하며 본격적인 전망을 분석한다. 이어지는 4부에서는 이러한 실증적인 분석에 기반을 두고,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으로 이 책의 예측이 맞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검토하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피케티는 장기적으로 자본의 분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우리 시대의 자본론”이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이다(피케티는 명시적으로 맑스주의와 거리를 두고 있다). 피케티는 서장에서 부의 분배를 다뤘던 역사적 인물들, 멜서스, 리카도, 맑스, 쿠스네츠 등의 기념비적 작업 속에 자신의 작업을 위치시킨다. 더불어 이 책은 단순히 경제적인 분석에만 몰두하지 않고, 자본 분배의 역사적 변동과정을 살피며, 능력주의와 조세 등의 경제 외적인 문제를 표면화하면서 정치학, 사회학적인 분석을 더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은 피케티가 말하듯, 일반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으로, 전공 서적이 아닌 교양 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도전하고 싶은 분께서는 겁먹지 않고 책에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그만큼 이 책은 상세하고 기초적인 이야기를 상냥하게 설명하고 있다. 팁을 주자면, 어려운 내용은 단순화해서 이해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피케티는 책의 서장에서 책에 쓰인 자료를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우리 같은 일반독자는 이걸 상세히 이해하기보다는 (대충 좋은 데이터 썼다는 말) 정도로 이해하고 큰 맥락을 중심으로 읽으면 편할 것이다.

19세기의 맑스는 『자본』을 통해 자본주의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이후 역사발전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역사철학을 전개했다. 21세기의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맑스만큼 도발적이고 강력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본 분배의 동학은 여러 변수 때문에 언제나 가변적이며 예측하기 힘든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 시대의 『자본』으로서의 이 책을 보여주는 일면일 것이다. 확정성이 감소하고, 작은 개연성들로 이루어진 사회 말이다. 또 이 책은 논쟁적인 책이기에, 이 책이 만들어낸 논쟁을 따라가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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