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 근대성과 <사회학적 파상력>
지난 3월 사회학 고전 독서회 3번째 모임을 했다. 모임에서는 사회사상의 전통에 있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토대로 김홍중 선생님의 <사회학적 파상력>에 수록된 7장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라는 논문을 봤다. 김홍중 선생님은 한국 청년세대의 세대심(世代心)을 생존주의로 규정하는데, 생존주의로 수렴되는 청년세대의 특징은 이들만의 특징이 아닌 한국 근대의 심층에 자리 잡은 생존경쟁으로 귀결되는 사회진화론의 사회적 상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진화론을 알기 위해 허버트 스펜서를 다루게 됐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학사에서 오귀스트 꽁트와 함께 사회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스펜서는 경험과학적인 사회학을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사고로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스펜서가 보기에 자연과 사회, 우주를 관통하는 제1원리는 다름 아닌 적자생존의 법칙이었다. 단순한 것이 복잡해지고, 열등한 것이 우등해지고, 그 과정에 적합하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혹은 도태되어야만 사회가 문명화되는 과정을 상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가난한 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에게 복지는 도태되어야 할 열등한 자를 살려내는, 즉 진화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스펜서의 사회사상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들불처럼 번졌다. 그의 책은 20세기 이전에만 약 37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특히 미국의 부유층에게 인기를 얻었고, 우리가 잘 아는 카네기도 스펜서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스펜서는 미국 사회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섬너(습속), 쿨리(거울자아)의 사회학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펜서를 재평가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우리가 인식하는 것 같은 악마적 사상가가 아니라는 것인데, 스펜서는 자신의 저작에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표현을 넣었고, 당시 서구에 만연했던 우생학/사회진화론/문명론 등과 조응하며 자유방임, 침략·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스펜서의 사상은 미국, 일본(사회진화론은 social darwinism의 일본 번역어다), 중국을 통해 한국에도 전해졌다. 특히 개화파 지식인, 식민지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서재필, 윤치호, 일본에서 공부한 여러 지식인, 그리고 청(중국)을 통해 량치차오식 사회진화론이 한국에 유입된다. 당시 한 신문에 글을 올린 일본 유학생은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동물계부터 인간세계까지 남을 잡아먹지 못하면 도리어 잡아먹힌다.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은 만고의 정의다.”
제국주의 열강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모더니스트는 조선의 비참함 앞에 조선의 미개함과 근대를 이룩한 국가의 우등함을 비교하며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진화론이 독특한 것은 기득권 옹호의 논리임에도 이것이 당시에는 ‘과학’으로 포장되었기에 근대정신으로 지식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식민지배, 한국전쟁, 군부독재, 냉전체제, IMF 이후 신자유주의화라는 생존을 강제하는 역사 속에서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마음을 체화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은 한국 근대의 트라우마적 기원이 만들어낸 한국의 마음 심층에 자리한 원리가 된다.
그렇게 신자유주의화된 문제공간 속에서 청년세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존주의 세대’로 변모한다. 생존주의 청년세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애과정 전체에서 진행되는 경쟁상황에서 도태·낙오되지 않는 상태가 생존이다. 둘째, 이 생존은 경쟁에서 이겨 그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상황을 연장하는 것이다. 셋째, 경쟁상황에서 서바이벌을 위해 개인은 자신의 모든 잠재적 역량을 자본화하는 자기통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넷째, 생존은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평범함을 위한 분투다. 이런 진단과 함께 논문은 과연 생물학적 생존 정도로 삶의 의미가 축소된 현재 한국사회는 어떻게 성스러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질문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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