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오월의 사회과학』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국 사회과학의 한 성과이다. 이 표현은 나의 말이 아니라 서울대 사회학과의 김홍중 선생님의 표현이고, 대전대 정치학과의 권혁범 선생님 역시 이 책이 수작이라고 평가하셨고, 이 책을 언급하셨던 많은 분들 역시 그렇게 말씀하곤 했다. 저자 최정운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광주항쟁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작업을 진행하셨고 이 작업을 사회과학에서 광주를 다룬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오월 광주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광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사회과학 이론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앞서 소개한 『5월 18일, 광주』나 이후 소개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같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다룬 다른 책을 먼저 보고 읽어야 좋은 책이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졌다. 우선 1부, “폭력과 언어의 정치: 5·18 담론의 정치사회학”에서는 광주항쟁 둘러싼 다양한 담론(폭도론, 불순 정치집단론, 유언비어론, 과잉 진압론, 민중론, 민주화론, 혁명론 등)의 각축을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기서는 광주항쟁을 규정한 광주시민과 광주 외부의 담론을 분석한다. 광주 내부의 담론은 생존을 둘러싼 항쟁의 목소리가 민주화의 요구로 변환된, 전쟁에서 공동체로의 변화를 가리키는데, 이런 담론은 그 당시 광주 외부로 나가 광주항쟁의 성격을 규정할 힘이 되진 못했다.
반면 광주 외부의 담론은 신군부가 광주를 폭도, 남파간첩, 고정간첩과 불순분자 등의 폭동으로 규정한 것을 가리키고 이것이 한동안 광주를 규정한 정통이 되었다. 이런 광주에 대한 담론은 학생 운동권에 의해 부활하고, 이들은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광주시민을 운동의 주체인 ‘민중’으로 개념화했고, 이것이 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2·3부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폭력과 사랑의 변증법: 절대공동체의 등장”, “삶과 진실: 해방광주의 고뇌”라는 제목이 붙었다. 2부에서는 『5월 18일, 광주』에서 김영택 선생님이 논증한 것처럼 광주에서의 학살이 사전에 계획되었다는 데에 무게를 두면서, 신군부가 음모론을 통해 광주항쟁의 주체를 자신과 동등한 권력체로 인식시키려고 했음을 지적한다. 이후에는 광주항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다수의 시민이 시위에 동원될 수 있었던 이유로 민주화 요구, 지역차별, 공동체와 계급구조 등의 이론을 통해 동원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런 목적과 함께 지위, 나이, 성별할 것 없이 구성된 항쟁의 주체를 “절대공동체”로 정의한다.
3부에서는 항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시민군과 일반시민, 즉 항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광주시민과의 분리, 그리고 항쟁 참여에 나섰던 시민의 계급적 차이, 그리고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집단 내부의 온건파와 저항파와의 갈등 등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4부, “해방광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석의 시도와 이론적 문제점”은 일종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5·18이라는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신군부의 폭력의 논리와 광주시민의 저항의 논리를 각각 정리하고, 광주항쟁에 대한 담론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내가 다 설명하기는 어려울 만큼, 다양한 층위와 관점에서 광주항쟁을 다룬다.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광주에서 자행된 공수부대의 폭력이 단순한 폭력이 아닌 전시(展示)폭력임을 밝힌다. 그들은 작정한 듯, 백주대낮에 대검을 가지고 사람을 자르고 찔러서 죽였다. 그건 압도적이고 처절한 폭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저항의지도 꺾어보려는 의도였다. 당시 일제강점기도, 6·25전쟁도 겪었던 노인은 공수부대의 폭력이 일본 순사의, 공산당의 폭력보다도 잔학했음을 회고한다. 그 폭력을 목도하며 광주시민은 그것을 국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국가가 아닌 그것에 대항하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애국가를 부르고 시체에 태극기를 두르며 항쟁했다.
이 책은 20년도 더 된 책이다. 지금 보면 몇몇 과도한 해석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5·18을 다룬 고전적 연구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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