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4월입니다. 4월 3일은 제주에 역사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부터 시작됐고, 이승만 정권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에 걸쳐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살인, 강도, 강간 등 숱한 비극이 펼쳐집니다. 이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큰 학살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주변화되어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2. 핵심: 이 책,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는 이런 제주 4‧3사건의 전체적인 윤곽과 내용을 다룬 입문서로, 구어체로 평이하게 쓰였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하고, 역사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절하게 사건과 연관된 역사의 배경을 보충 설명해줌으로써 입문자가 읽기에 굉장히 적합한 책인 것 같습니다.

3. 저자: 책의 저자 허영선 선생님은 시인이시고, 제주 출생으로,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제주4‧3평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셨고 현재는 제주4‧3연구소 소장으로 계십니다. 또 4‧3사건 당시의 아동학살 문제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으시기도 하셨어요. 여러 방면에서 제주 4‧3이라는 외면된 역사를 시와 연구물로써, 한편으로는 참여로써 현재화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4. 내용: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4월의 제주를 묻는 ‘너’를 청자로 호명하며 평이하면서도 군데군데 객관적인 화자라기보다는, 사건과 분리되지 않는 화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책은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9개의 장은 시간 순으로 서술되어있는데, 이 시간의 배열이 꼭 소설을 보는 것처럼 발단부터 결말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해방 후 제주에서 일어난 자치에 대한 열망부터, 4‧3이 남긴 비극과 그 후유증까지를 다루고 적재적소에 큰 틀에서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 놓였는지를 설명합니다. 또 구술증언으로 사건을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따로 분리해서 서술한 아동과 여성에 관한 서술입니다. 4‧3의 피해자의 1/10이 아동이었으며, 동시에 여성이 겪은 참상에 관해 다룰 때는 이런 사회적 비극이 약자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5. 감상: 부르디외가 이야기하듯, ‘현재’는 평온한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뜨겁고 논쟁적인 무엇’일 겁니다. 제주 4‧3은 오월의 광주가 무언가로 규정되고 호명되는 것과 달리 여전히 “제주 4‧3”으로 명명되는데 이는 그만큼 이를 규정하는 데에 아직은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방증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대추정치로 제주도 사람의 1/8이 목숨을 잃은, 이 비극 속에 누군가는 무언가를 열망했고, 누군가는 무고한 희생자였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역사의 비극은 가해자가 아닌 남겨진 자의 몫으로 남곤 합니다, 저자의 서술에서 은연 중에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대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입증의 책임은 언제나 피해자에게 전가되고, 피해자는 슬픔과 동시에 ‘빨갱이’와 함께 분류된 의미론의 공간에서 무죄함을 위해 분투해야합니다. 이런 것이 더 비극이고, 남겨진 자들의 끔찍한 지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비극을 견디고 “사난 살앗주(사니까 살았다)”하고 살았던 삶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논문에서 근대 사회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재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근대 한국의 파국적인 역사 속에서 관찰자는 엄밀하고 대상과 분리된 존재라기보다는 사회를 겪고 앓는 자(patient)라고 지적하면서. 저자이신, 또 이를 포함해 4‧3을 주제로 다루는 대부분의 관찰자들 역시 겪는 자인 듯합니다. 저자 허영선 선생님은 이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대상과 거리를 두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또 그럴 수밖에 책입니다.

감상이 조금 길었네요. 4‧3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추천해 드리는 책입니다.

 

제주43사건 제주43 43사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