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유령의 역사』는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역사학을 재구성하며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아날학파(Annales school)에 속한 장플로드 슈미트의 책이다. 『유령의 역사』는 중세 가톨릭에서 성행했던 유령의 역사의 이면을 조명하는데, 초기 기독교는 유령의 출현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었지만, 세력을 확장하던 기독교는 외연을 확장해 나갈수록 다른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유령에 대한 의견·경험, 또는 기독교인들이 경험한 ‘유령’에 관한 경험을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세 기독교는 유령에 관한 입장을 전환하게 된다.
그들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미신적이라고 여겨졌던 유령의 출현을 인정하고, 심지어 기독교의 종교지도자까지도 유령의 목격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중세 기독교는 유령을 적극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죽은 자를 위한 종교 의례를 강화하고, 종교단체로의 헌신과 물질적 기부를 촉진시킨다. 사후세계에 대한 서사를 가지게 된 기독교는 이를 통해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게 된다. 사후세계에서의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독교의 사회적 권력은 점점 강해진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유령에 관한 이야기가 중세 말기 교회를 지탱하는 경제구조의 핵심적 장치로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본래 기독교 교리에 없던 연옥 교리, 면죄부, 미사는 하나의 종교 의례로 또 종교적 서사로 조합되어서 중세 유럽인들의 사회적 행위를 추동시키게 된다. 슈미트의 분석에 따르면 중세 기독교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종교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 종교 교리, 유령, 사후세계 등을 전략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리나 세계관과는 다른 중세의 기독교만의 발명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종교의 교리, 유령,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살아있는 자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현실세계, 물리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검증될 수 없기에 오히려 암묵적으로 발화자가 처한 물질적·상징적 이해관계를 나타내기에 유리한 이점이 존재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의 이면과 진의를 밝히는 지식사회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의견, 칼 만하임의 지식의 존재구속적 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발화자의 발화나 그가 생산하는 담론은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한 때 근본주의 개신교의 사후세계 담론을 분석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그런 주술적 이야기의 이면을 살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책에서 지옥을 다녀온 사람은 미국 공화당 깃발이 불타는 것을 보는데, 이는 미국 공화당을 지지해야한다고 종교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치사회적인 지향, 보수주의적 정치담론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는 우리시대의 지옥의 역사이자, 유령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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