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는 소실된 키케로의 해적의 우화가 나오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 잡혀 해적질에 대한 문책을 받은 해적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것은 폐하께서 전세계를 괴롭히시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단지 저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해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고 불리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1. 핵심: 원서의 제목, <제국을 숨기는 법>이 보여주는 것처럼 제국주의 미국의 위선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 정의와 자유의 상징,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자 세계의 경찰국가인 미국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모습을 감추며 은밀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동시에 식민지를 착취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는지를 ‘영토와 통치방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적으로 구성해나가는 책입니다.

2. 저자: 대니얼 임머바르는 노스웨스턴대의 역사학과 교수로 20세기 미국의 국제관계사가 주된 연구주제라고 합니다. 그는 미국역사학회,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는 뛰어난 학자이고, 이 책은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내용: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가진 이 책은 서론, 1·2부, 결론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서론과 결론은 분량은 미미하지만 책의 전체적 윤곽과 핵심을 파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니 이 부분을 잘 읽으시는 게 이 기나긴 책을 읽어나가는 좋은 방법일 겁니다. 우선 책의 1부 ‘식민지 제국’은 미국 건국 초기와 2차 세계대전까지의 미국의 식민정책을 보여줍니다. 인구증가로 인디언의 영역을 좁은 지역에 몰아넣고, 전쟁을 치르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다를 것 없이 공격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는 미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아마도 책의 핵심이자 백미는 2부 ‘점묘주의 제국’일 것입니다. 저자도 이야기하듯, 미국인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미국을 ‘제국’이 아니라 인식하는 이유를 이 부분에서 설명합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식민지를 거의 해방시키며 다른 제국주의와는 다른 모습은 보이지만, 이 이면에는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통치방식의 변화가 뒷받침되고 있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미국은 식민지 제국 시절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은밀하게 제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직접적으로 식민제국을 통치하기보다는, 영구 임대 형태로 전략기지를 구축하거나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적 표준들(단위, 기축통화, 영어 등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는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은 지구상에 약 800여개의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으며(미국을 제외한 국가의 국외 군사기지는 총합이 30여개) 여전히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닌 ‘미국령’ 영토를 가진 ‘점묘주의 제국’이 된 겁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미국이 제국을 은밀하게 숨길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4. 느낀 점: 미국을 생각하며 저는 종종 앞선 키케로의 우화를 떠올립니다. 마블의 히어로무비를 보면 은연중에 그들은 동유럽, 독일, 러시아 같은 나라를 부도덕하고 부정의하게 그리는 반면 미국은 세계의 파수꾼이자 자유와 정의의 상징으로 그려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미국의 민낯은 성범죄, 학살, 고문, 강제추방, 생체실험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저자는 결국 미국이 제국인지 모르는 제국이며, 그들의 본질은 서부를 개척하며 원주민을 쫓아냈던 초기의 역사와 같이 여전히 ‘제국’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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