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이 책은 라틴어로 쓰였다. 이세운(필로소픽), 정의채(바오로딸), 박문재(현대지성) 역이 라틴어 원본을 번역했다. 일단 박문재는 철학보다는 신학 중심의 번역가이기에, 이세운, 정의채 번역 중에 고민했다. 이세운은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학자고, 정의채는 중세철학의 권위자다. 각자의 매력이 있어서 두 개 중에 한 책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바오로딸 출판사의 책을 본 적이 없고, 필로소픽 출판사의 만듦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필로소픽의 책을 선택했다.

2. 마키아벨리, 『군주론』: 군주론은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이 책은 번역본이 정말 많은데, 김경희(까치, 공역), 박상섭(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곽차섭(길) 역은 이탈리아어에서 완역된 책이면서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출판사도 만듦새가 좋은 편이라 이 중에서 선택하는 게 좋다. 나는 세 역본을 다 모았고 읽었기에 곁가지로 추천하자면, 군주론을 교양으로 읽는 독자에게는 김경희 역과 영어 중역이지만, 최장집의 해설이 있는 박상훈(후마니타스) 역을 추천하고, 더 전문적인 독자에게는 박상섭, 곽차섭 역을 추천한다.

3.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 책은 독일어로 쓰였다. 10개 정도의 역본 중, 김덕영(길), 박성수(문예출판사), 박문재(현대지성), 문성화(계명대학교출판부) 역이 독일어 번역이다. 거를 책은 문성화 역인데, 이 역본은 본문만 번역하고 본문 만큼의 분량이 있는 각주를 번역하지 않아서 반쪽짜리다. 이건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거라 오프라인 서점에서 보고 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역자와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 깎이기 마련이다. 이 책은 김덕영 역을 여러 번 추천했지만, 책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부담스러우신 분께서는 박성수/박문재 역 중에 한 권을 골라보시면 좋을 것 같다.

4.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책도 독일어로 쓰였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하고, 괴테의 문학사적 위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독문학자의 원전 번역이고, 대개 내로라하는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럴 때는 취향 차이다. 나는 베르테르빠라서 시중의 7개 역본을 모았고, 이것을 원문이랑 비교 대조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서 번역가가 오역하는 걸 찾기도 했고, 번역가마다 어떻게 다르게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는지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친구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이라 구어체이면서도, 오역이 적고, 서정적인 표현을 잘 살린 문학동네 안장혁 역본을 가장 좋아한다.

5. 파스칼, 『팡세』: 팡세는 프랑스어로 쓰였다. 팡세도 역본이 많은데, 김형길(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현미애(을유문화사), 이환(민음사), 하동훈(문예출판사), 정봉구(육문사)가 불어 원전을 번역했고, 다 불문학자이지만 김형길, 현미애는 파스칼 전공자이기에 이 책을 보기로 했다. 팡세는 독특하게 판본이 있는데 산발적으로 쓰인 글을 묶은 유고집이라 그렇다. 김형길 역은 가족이 보관한 제2 사본으로 만든 살리에판을, 현미애 역은 편집을 거쳐 만들어진 제1 사본으로 만든 라퓨마판을 저본으로 삼는데, 나는 유족에 의해 원형이 보존되고, 고증이 진행된 제2 사본을 사용한 김형길 역을 한 권으로 꼽는다. 그러나 현미애 역도 다른 판본을 배려했고 팡세가 내게 중요한 책이라 두 권을 다 구매했다.

6.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같은 시리즈를 출간하는 대형출판사의 책은 일정 수준이 담보되는 편이다. 역자도 보통 명성 있고, 편집부의 역량도 보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존 번역본이 가진 한계를 가지고 자신만의 차이 만드는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도 눈여겨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도서출판 길 등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쪽 출판사의 책이 신경을 조금 더 많이 썼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고전은 가령 작년의 군주론 열풍처럼 가끔 분위기를 타면 시장성이 생겨서 엉터리인 번역서가 우후죽순 나오기도 해서 번역서를 고를 때 신중해야 한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고 싶은 생각에 두서없이 내 경험에 비추어 글을 썼다. 내 글은 언제나 내 제한적인 경험과 능력에 의해 쓰는 거라 한계적이고 잠정적이다. 가장 좋은 건 직접 읽고 따져보시는 것이니, 내 의견은 참고만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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