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사기광고를 보시고 책을 사서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실패를 줄이는 책 고르기 스킬을 몇 개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말씀드리듯, 이것은 제 제한적인 경험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이니 너무 크게 수용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줄이는 책 고르기 첫 번째는 '출판사 보고 판단하기'입니다. 책을 고를 때, 출판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출판사는 판권 계약부터 편집, 디자인, 홍보 등의 작업을 담당하고 책의 대부분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민음사,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같은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은 대체로 실패할 확률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이 출판사들은 아무나 출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돈만내면 아무 책이나 출판해주는 출판사도 있습니다. 돈많은 사람들이 출판비용을 다 지불해가면서 "내가 책도 썼다", 그렇게 자랑하는 용도의 출판사인 겁니다. 이런 출판사의 경우에는 좋은 책을 기대하긴 어렵죠. 하지만 좋은 출판사의 경우에는 저자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수한 전문 편집인들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기도 하죠. 그렇다고 메이저 출판사가 다 좋은 책만 출간하는 건 아닙니다. 문학동네에서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어느 정도는 기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출판사의 역량은 정말로 천차만별입니다. 편집인이 저자만큼이나 기여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영세출판사 중에는 대학 앞 인쇄소 같이 거의 원고를 바로 출력하는 수준의 출판사들이 있죠. 사실 인쇄소에 가까운 영세출판사에선 저자의 역량말고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물론 영세출판사라고 다 역량이 부족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유유출판사처럼 1인 출판사인데도 양질의 도서를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도 있고, 영세출판사이기에 출간가능한 도서들도 있습니다. 보물같은 영세출판사를 찾는 것도 보람입니다.

또 구체적으로 일종의 전문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이학사-과학철학, 길-인문사회고전, 명인출판사-정치학 같이요. 이렇게 어떤 영역에 특화된 출판사에서 나온 관련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수준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당 분야의 책을 여러 번 편집한 출판 전문인력이 있으니 안목부터 편집까지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책을 사기 전에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고 출판사를 한 번만 눌러보시면 출간목록을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이 출판사는 이런 책들을 출간해왔구나, 보시면서 이 출판사에서 이런 책은 괜찮겠구나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사진으로 제가 신간알림을 받아보는 출판사들을 생각나는대로 좀 적어봤습니다. 나중에 출판사 목록도 한 번 만들어볼까 싶네요. 주제별로 정리해뒀는데, 저 출판사들이 항상 해당 주제의 책만 내는 것도 아니고요, 또 개별적으로 어느 곳은 디자인이 좋거나 혹은 별로거나, 편집이 좋거나 혹은 별로거나, 비싸거나 저렴하거나 하는 장단점을 각기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또 주의할 것은, 이렇게 출판사를 분류해두면 도움도 되겠지만, 이게 일종의 확증편향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1인 출판사나 신생출판사를 저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 독서생활에 단점이 될 수 있으니 그 점을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번에 이어서 출판사를 검색해봤는데, 책이 별로 없고 판단이 어렵다 싶으시면 그때는 저자·역자 정보를 참고하세요. 저자 소개는 보통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드라이하게 이력만 적거나, 만연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거나. 보통 이력만 적은 저자들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서점으로 저자를 검색해서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보시고 저자를 판단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출판사의 이력만큼이나 저자의 이력도 중요합니다. 저자가 지금까지 이런 책들을 썼구나, 판단해보세요. 앞선 말씀드린 출판사 정보와 결합되면 더 좋겠죠.

그리고 소개가 만연한 경우에는 또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업적이 진짜 많아서 길게 객관적 정보가 서술된 경우(eg. “카셀 대학에서 게오르그 짐멜과 막스 베버에 대한 비교 연구 논문과 사회학 및 철학에 대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쓸데없는 주관적 정보로 서술된 경우(eg. 1. “온라인 서밋과 프로그램에 자주 글을 기고하고” 2. “대학을 2.2의 학점으로 졸업했다. 스물한 살 때부터 아버지의 빚에 보증을 서기 시작했다. IMF가 터지면서 아버지의 빚은 전부 신용정보회사로 넘어갔고, 이때부터 살인적인 이자가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요. 전자와 후자의 소개의 분량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검증 가능한 객관적 정보가 나열되어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검증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주관적인 정보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제 제한적 경험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대개 별스럽지 않은 글들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역자 역시 중요합니다. 역자는 보통 전문가 역자와 번역전문가 둘로 나뉘어요. 전문가 번역은 그런 겁니다. 예를 들면 괴테의 책이라고 했을 때, 괴테를 전공한 독문학자가 번역한다면 그건 전문가 번역이고요, 번역전문가 같은 경우 한 영역의 전문적인 자격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번역 자체를 많이 하시는 분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번역 자체를 직업으로 삼으신 분들인데요, 이상률·남경태 선생님 같은 분들은 사실 번역전문가이시지만 이미 해당 분야, 인문·사회계열에 전문적인 번역서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번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시죠. 이분들은 전문화된 번역전문가이신 겁니다. 그런가하면 특별한 능력이 필요없는 평이하고 쉬운 수준의 단순한 책들을 많이 번역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 같은 경우는 자기계발서나 교양서적 수준의 책은 전문번역인의 책을 봐도 무방한 것 같고요, 고전이나 학술서의 경우에는 거의 무조건 전문가 번역이나, 전문화된 번역전문가의 책을 보시길 추천해드려요. (그리고 가능하면 중역이 아닌 원본을 번역한 책을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을 다루는 책인데, 인문 쪽 전문번역가가 번역을 하면 대체로 오역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전문가 번역이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교수들 중에 대학원생 시켜서 번역시키는 경우도 꽤 많으니까요. 이때도 역시 인터넷서점에서 역자를 클릭하신다음에 판단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실패를 줄이는 책 고르기 마지막입니다. 무언가를 많이 이야기하긴 했는데, 도움이 되셨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도 제한적인 경험이라서요. 이번에는 잡다한 이야기들을 해볼까 해요. 일단 원하시는 책의 제목, 그리고 목차를 확인하시는 건 너무 기본이고요 가능하시면 오프라인 서점에 가셔서 책을 직접 읽어보고 사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설사 못가시면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책 본문이라도 읽어보시고요. 오프라인으로 책을 읽어보실 때는 가능하면 맨 뒤에 있을 (모두 있진 않지만) 인명·주제·단어 색인 확인해보시는 건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사시기 전에 가능하면 직접 만져도 보고 읽어도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주위에 도움을 받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로컬 오프라인서점, 독립서점, 전문서점에 가시면 아마 책방 주인께 북큐레이션을 받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얼마 전에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라는 책에 문제가 있다는 포스팅을 꾸준히 했는데요, 지역의 서점·독립서점·전문서점 같은 곳에서는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같은 책은 잘 팔리지 않죠. 그리고 책방 사장님이 대개 읽고 좋은 책들을 추천해주시니 이것도 믿을만한 루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저 같은 북큐레이터들도 많이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서도 물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여담으로 신문의 신간 소개는 그렇게 믿을만한 게 못되는 것 같고요, 신문에 가끔씩 신간소개로 우루루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책들을 대개 읽을 가치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항상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책은 굳이 얼리어답터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각 영역·분야가 전문화된 근대사회에서 우리는 무지한 전문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뇌를 고칠 수 있다>를 계속 비판하지만 정작 그 분야에 무지한 저는 그 책을 아무리 읽어도 비판거리를 찾기 어려울 겁니다. 신뢰할만한 전문가 선생님들의 비판을 읽고 저도 배운 것뿐입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대중성이 확보되었다는 건데요, 대중성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독서하시는 취향에 따라 다른 걸 텐데 저는 정말 믿을 작가분이 아니면 신간은 바로바로 구매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어느 정도 신간이 읽히고 평가가 나올만큼 기다리고 책을 삽니다. 저도 신간 샀다가 낭패 본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신간을 빨리빨리 사서 읽으시는 분은 어쩌실 수 없으시겠지만 가능하면 조금 시간차를 두고 책을 고르시는 것도 좋습니다.

예, 저도 자칭 북큐레이터고요,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DM 등 다양한 루트로 저한테 책에 관한 질문을 하시거나 이야기를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책 고르기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내공이 더 쌓이면 더 이야기해볼게요.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스스로 판단하실 여러분 자신입니다. 제 조언 아닌 조언은 가볍게 생각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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