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핵심: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번역은 반역인가>를 집필한 역사학자 박상익 교수님의 한국에서의 번역에 관한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요는 한국의 번역문화에 큰 문제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시장이 아닌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한다는 겁니다.

2. 저자: 박상익 교수님은 서양사학자로 이미 20여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시고 또 굵직굵직한 고전 번역을 해오신 연구/번역자이십니다.

3. 내용: 이 책은 “고전을 영어로 읽으면 되지 굳이 번역해야 되냐”는 식으로 고전번역 예산을 삭감해버린 기재부 관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정말 미천하고 비루한 인식이죠.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책은 번역의 중요성, 한국 번역의 현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됩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왔던 문명연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을 한껏 칭송했습니다. 언제나 있는 한글 찬양의 이면에는 컨텐츠 빈곤이라는 한계가 숨어있죠. 마음먹고 고전이란 걸 읽는다거나 어떤 자료가 필요할 때,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자 박상익 선생님은 그 지점을 지적하십니다. 한국의 열악한 번역현실과 그를 가로막는 관료들과 학계까지 지적하며 번역의 현실을 다루시고 번역은 지식의 문제인 동시에 국가 경쟁력이며, 이를 위해서 더는 이 문제를 방치하면 안 되고 번역청, 그러니까 국가가 나서서 번역문제를 위해 힘써야 된다고 촉구하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4. 느낀점: 박상익 선생님은 <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출간과 번역청 설립 국민청원을 통해 여러 운동도 하셨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번역사업의 진전은 미미했습니다. 물론 박상익 교수님과 여러 번역증진 운동 덕에 번역사업 예산이 2배 가량 증액되며 노무현 정권 때 수준으로 복구되었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되려 퇴보한 거죠.

일례로 번역 문제는 지식의 민주주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지식에 도달하고 이걸 통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공화국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국의 개인들이 민주주의의 기원이 됐던 사상들과, 현대 민주주의 담론에 대해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죠. 민주주의의 기원이 되는 고전들은 번역되지 않았고, 현대 담론들 역시 그렇습니다. 개인 스스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는 요원한 구조인 것입니다.

굵직한 고전번역을 해오신 박상익, 김덕영 선생님께서는 거의 비슷한 말을 하시곤 했습니다. 외국어를 한 30년 정도 공부하면 이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라는 얘기었습니다. 심지어 김덕영 선생님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강의까지 하시는데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국어로 읽고 사유할 때 가장 쉽고 독창적이죠. 한국어로 번역된 고전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르디외도 학자 초기에 자신이 직접 후설과 베버를 번역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프랑스의 학계가 후진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접 출판사를 통해 번역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죠. 그 프랑스도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며 번역에 힘썼는데 한국은 할많하않입니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번역에 관해 문제제기한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입니다. 책이 얇고 쉬운 편이니 두루 읽히며 번역에 관한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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