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로슬링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 쓴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아마도 논픽션으로 2019년을 대표할만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가진 책이 2019년 12월 27일에 나온 1판 40쇄의 책이니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책이 팔렸을 거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극단적인 본능과 극단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사실충실성(factfulness)과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 책은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교육을 받는 여성이 늘고 있으며, 세계인구 대부분은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극빈층의 비율은 20년간 절반으로 줄었고, 기대수명은 늘고, 자연재해 사망자는 줄고, 예방접종 비율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통계적 ‘사실’을 중심으로 세상이 살만하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져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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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일상적인 부분에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통계가 이러니까 너희 불안해하지마 그거 팩트 아냐”라고 얘기하는 책이었다. 그래도 값어치는 하는 책이고 준수한 편이라 100점 만점에 70점정도 주고 싶다. 지인이 읽는다면 “어. 볼만 해” 이렇게 대답할 정도.
이 책은 실증주의에 기반해서 쓰인 책이다. 실증주의는 인식론에 기반을 두고, 연구대상과 연구자의 객관적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그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 객관적 진리를 포착할 수 있다고 본다. 통계를 사용해서 쓴 이 책은 소득수준, 교육수준, 건강상태 등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상태로 연결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스 로슬링이 연구자, 관찰자로서 가지고 있는 시각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스 로슬링은 국가를 소득수준에 맞춰 4단계로 설정했는데, 전세계 인구는 이와 동일한 범주를 가지고 있을까? 예를 들어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에게 예술은 인상파,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현대미술 등으로 나뉠 수 있겠지만 나같이 무지한 사람은 예술에 대해 예술품이 있고 없고 정도 이외에는 어떤 분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한스 로슬링이 가진 시각 자체를 의문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백인/유럽/남성/전문직/상류층의 시각은 아닌지, 그래서 쓸 수 있었던 책은 아닌지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설문조사를 문제 삼으면서 설문지에서 예술품이나 음식을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것 자체가 연구자, 그러니까 지식인의 인식에 의한 분류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 분류와 인식 자체에 메타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 부르디외의 ‘사회학의 사회학’, ‘성찰적 사회학’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합격률이 99%인 시험이 있다고 했을 때, 이는 누군가에게는 개꿀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외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고, 실력이 없는 누군가에게 합격률은 1%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국가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모든 사람의 행복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닌 것이다. 물론 객관적 지표가 좋아지는 모든 게 부정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 객관적인 건지 파악하는 건 숫자 몇 개로 가능한 게 아니다. 또 통계조사는 언제나 결과보다는 과정을 알아야 이게 제대로 된 조사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은 극단적 세계관을 가진 극우주의자, 기독교 종말론자, 급진적 좌파 같이 세상이 갈수록 망해간다는 불안에 빠진, 이 정도는 아니어도 세상의 일에 불안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책이고 여전히 준수한 책이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로슬링이 제시하는 ‘팩트풀’한 세계관 자체도 긍정을 지향하는 느낌이라 이게 진짜 사실충실인지 긍정충실인지 싶은 거다. 미묘한 긍정/부정의 가치판단이 딱히 과학적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같은 주제의 글을 쓴다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훈련·연습할 수 있게끔 해서 일상에서의 인식을 전환하도록 돕는 글을 쓰고 싶다. 긍정적 세계관이 극단적 세계관보단 낫지만 이것도 역시 편견이기에. 내가 서평을 쓴 2019년 마지막 날만 해도 코로나로 세계와 일상이 뒤집힐 지 누구 알았겠는가. 나는 솔직히 그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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