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사건>
읽기 힘든 책이었다. 이 책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임신중절 경험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이 책의 분류는 소설이지만, 에르노는 자신의 작업이 ‘사회학적 자기분석’임을 밝힌 바가 있다. 허구와 실재, 문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에르노의 특징은 이 책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에르노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어렵게 당시 불법이었던 낙태를 결심하고 이를 한 간호조무사에게 불법 시술받고 잘못 되어 결국 병원에 가게 되기까지 하는 순간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이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에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1960년대, 가톨릭의 나라 프랑스에서 20대 초반이 여성이 겪었던 경험은 매 순간 너무나 폭력적인 것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이것을 담담한 필치로 표현하기에 더욱 강렬하다. 자신이 처한 계급, 젠더, 사회적 낙인, 종교, 사회적 관념이 얽어져 만들어낸 ‘사회적 상처’를 느낄 수 있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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