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루만>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이론가이다. 그는 경제, 과학, 법, 예술, 정치, 교육, 종교 등으로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거대 이론, 일반 이론을 구축하기에 힘쓴 사회학자로, 시스템·체계이론이 주는 경직적인 느낌, 보수주의적 혐의 때문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론가는 아니지만, 독일 사회학에서는 이미 일반 문법으로 자리한 학자이다.
“칸트의 가면을 쓴 니체”라는 한 선생님의 평가처럼, 그는 정치하고 정직하지만 한 편으로는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이론가이다. 그는 플라톤에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서구의 존재론과 형이상학, 서구 근대의 주체 중심의 인식론과 계몽이라는 전통적 인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사이버네틱스, 인지생물학, 현상학 등의 여러 분과 학문의 성과를 사회학 이론에 포함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구축한다.
루만에게 현대사회는 어떤 중심도, 정점도, 위계도 없는 하나의 복잡계로 인식된다. 복잡한 사회를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학문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복잡한 사회 이론이 요구된다. 사회를 설명했던 기존의 이론들, 계몽주의 철학, 근대 자연과학, 헤겔의 가족-시민사회-국가 도식, 맑스의 토대와 상부구조, 그람시의 국가-경제-시민사회 도식, 하버마스의 체계-생활세계의 도식 등은 루만에게 있어 더는 설명력을 갖지 않는 구(舊)유럽적 사고방식이기에 그는 이와의 단호한 결별을 선언한다. 그는 서구의 계몽이라는 미몽을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몽의 계몽’인 것이다.
루만은 복잡성이 점증하는 현대사회가 다면적이고, 예측 불가해졌음을 지적하며 복잡한 현대사회를 포착하고 설명할 이론으로 ‘체계이론’을 주창한다. 루만의 체계이론은 급진적 구성주의, 자동생산 체계이론, 인간 없는 사회 이론을 기본으로 한다. 그의 기획에 따르면, 사회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져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할 때마다 현재화되는 사회적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쓴 이야기는 루만에 관한 알맹이라기보다는, 루만에 대한 두서없는 사전정보에 가깝다. 이 책, <쉽게 읽는 루만>은 국내에 출간된 루만 입문서 중에는 가장 친절한 책으로, 루만의 생애와 인식론, 그리고 체계이론 일반과 사회적 체계 등의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개념부터, 이런 기본 이론을 기반으로 매스미디어에 이를 적용시키는 실질적 분석도 함께 담고 있는 책이다. 루만의 이론은 그 추상성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이 책은 추상적 이론과 실질적 분석을 모두 담고 있기에 더욱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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