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계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중심이 없는 사회에서 정치체계는 사회의 핵심적인 기능체계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기능체계일 뿐이다. 이러한 루만의 시각은 기존에 국가·정치를 사회 조종의 핵심과 중심으로 파악했던 한나 아렌트와 같은 학자들의 입장과 대립된다(서영조, 2008: 50). 루만에게 있어서 국가는 정치체계의 한 요소일 뿐이다(루만, 2011: 341). 사회에 있어 정치의 힘을 회의하고, 정치가 사회를 조종한다는 의견에 부정적인 루만의 시각은 ‘조종 비관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서영조, 2011: 16). 결국 루만에게 있어 정치는 다양하게 분화된 사회의 특정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루만은 막스 베버의 권력 개념을 계승한다. 루만 역시 권력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고 서술한다(발터 리제 쉐퍼, 2002: 95). 정치체계에는 매체로서 권력이 작용하고, 이는 ‘집합적인 구속력을 가진 결정’을 위한 것이다(루만, 2014a: 146). 루만에게 권력은 지배나, 억압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소통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권력을 통해서 비로소 ‘정치적인 것’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정치체계로 분화될 수 있다(서영조·김영일, 2009: 17).


루만(2014b: 577)은 정치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코드화가 필요함을 환기시키면서, 이 코드는 “우월한 권력(공권력)”과 이에 “복종하는 자의 구별(통치자/피통치자) 및 공권력을 여당/야당 도식”으로 조건화된다고 지적한다. 권력의 우세와 열세는 차이, 아마도 최초의 차이는 무력으로 결정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평화를 요구 받고 무력과는 다른 안정적인 수단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공직이 발명되고, 이를 통해 공직에 통치자/피통치자의 차이가 재규정된다. ‘공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정치체계는 한층 더 탈인간화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 정치의 출현으로 인해 정치는 다시 한 번, 여당/야당으로 재코드화된다(서영조, 2013: 279-280).


체계이론 일반에서 다루었듯 체계에서 코드는 불변적 속성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가변적 속성을 갖는다. 루만의 상이한 코드와 프로그램의 개념을 통해, 전자의 기능으로 복잡성을 축소하고, 후자의 기능을 통해 체계의 유연성을 확보한다. 예를 들어 여당/야당이라는 이항코드는 불변의 것이다. 하지만 집권을 하느냐/하지 못하느냐는 정치체계의 프로그램에 달린 결과이다. 따라서 문제는 어떤 정치적 세력이 특정의 정치체계의 프로그램을 결정하느냐에 달리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정치체계의 프로그램은 체계의 밖에서 일어나는, 즉 환경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반응한다. 루만은 프로그램을 “출입문”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는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배제된 것을 다시 체계 안으로 ‘재진입’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서영조, 2013: 289).


루만에게 있어 정치체계의 기능과 구체적인 특성을 4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정치적인 것’을 주제로 발생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결정’이라는 형태로 압축된다.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결정과 연관을 갖는다. 둘째,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결정은, 의문 없이 다음 결정을 이어지는, ‘구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셋째, 이러한 구속은 ‘집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여기서 집합적이라는 것은 결정이 그 체계에 포함된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체계는 결정들의 사실적 연속성, 결정의 여부와 상관없이도 언제라도 결정하는 있는 능력과 연관된다.


참고문헌


서영조, "니클라스 루만의 정치체계론", 『한국시민윤리학회보』 21(1), 2008.

______, "정치와 사회 조종 - 루만의 “조종 비관주의”를 중심으로", 『현상과인 식』, 35(1/2), 2011.

______, "자기생산체계로서의 정치체계 - 루만의 새로운 정치이해", 『사회와 철 학』 (25), 2013.

서영조·김영일, "니클라스 루만의 권력이론: 소통수단으로서의 권력", 『21세기정치 학회보』 19(2), 2009.

니클라스 루만, 『사회체계이론 2』, 박여성 옮김, 한길사, 2011.

_____________, 『예술체계이론』, 박여성·이철 옮김, 한길사, 2014a.

_____________, 『사회의 법』, 윤재왕 옮김, 새물결, 2014b.

발터 리제 쉐퍼, 『니클라스 루만의 사상』, 이남복 옮김, 백의, 20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