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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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1998)은 독일의 사회학자로서 사회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여러 분과학문의 성과들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체계이론을 구축했다. 루만의 체계이론은 사회과학에서 체계이론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고, 이로 인해 루만은 현대 사회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루만은 1970년대 벌어진 하버마스와의 『사회이론이냐 사회공학이냐-체계연구는 무엇을 수행하는가?』라는 논쟁을 통해 독일 사회학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두 이론가의 논쟁은 독일 전후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대논쟁으로 손꼽힐 만큼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김덕영, 2003: 340-341).


1. 체계이론


  루만은 1969년 설립된 빌레펠트 대학에 임용될 때, “연구대상: 사회이론, 연구 기간: 30년, 비용: 없음”이라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루만, 2014a: 21). 루만은 학자생활동안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루기 위해 일관되게 체계이론에 천착했다. 루만은 주체철학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근대적 전통을 구(舊)유럽적 사고라고 지칭하며, 기존의 패러다임과 결별을 선언한다. 루만은 포스트모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근대의 다양한 성취들은 유지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제안하는 거대서사의 해체는 결국 그 자체로 ‘거대서사의 해체’라는 하나의 메타서사가 되었다는 것이 루만의 판단이다(루만, 2014b: 1305-1307).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만이 하버마스처럼 근대를 미완의 기획으로 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기존의 근대적인 사고와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루만은 정치적 진보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상을 추구하며 하는 학문에도 회의를 가졌고, 실재를 정직하게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또한 루만은 고전 사회학의 효과에 회의적이었으며, 고전사회학적 패러다임에 집착하다보면, 현실은 가볍게 달아난다고 평가한다(루만, 2015: 27, 45-46).

  부르디외는 현대사회를 "계급이 분화된 사회"로 보았다면 루만은 그와 시각을 달리한다. 루만에게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세계로서, 분절적으로 분화되거나 중심과 주변에 따라 분화되거나 계층적으로 분화된 전근대사회와 결정적으로 구분"된 사회이다(김덕영, 2014: 57-58). 이러한 연유로 루만의 사회이론을 '기능구조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회가 계급구조로 인해 수직적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보았던 부르디외와 다르게, 독특하게도 루만에게 근대사회의 분화된 체계들에는 중심이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루만, 2001:29). 현대사회를 탈중심화된 사회라고 파악하는 이러한 루만의 시각은 하버마스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그림 1 - 체계의 개념적 도식(루만, 2010: 60)>


*루만에게 있어서, 사회체계와 사회적 체계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는 독일어로 ‘Gesellschaft’, 영어로는 ‘societal’에 가까운 의미이고, ‘사회적’은 독일어로 ‘sozial’, 영어로는 ‘social’에 가까운 의미이다. 루만에게 사회적 체계는 상호작용과, 조직, 사회(전체사회)를 포함하는 개념이고, 사회적 체계로서의 사회는 기능 분화된 정치체계, 경제체계, 종교체계 등의 기능체계를 포함한 개념이다(김덕영, 2016: 449).


  루만의 사회학에서 체계는 각각 기계, 유기체, 사회적 체계, 심리적 체계를 포함한다. 기계체계는 고유한 작동, 고유한 경계 작동상의 폐쇄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생산을 이루어내지는 못하는 체계이다. 다음으로는 유기체를 볼 수 있는데, 생물학적 유기체가 대표적인 예이다. 생물학적 유기체는 특정한 신체적인 경계를 가지고, 자기생산을 이루어내는 체계이다. 이러한 심리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는 작동상의 폐쇄성, 자기생산 등의 체계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하지만 기계, 유기체와는 다르게 심리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는 의미체계이며, 의미를 경계로 구분된다(김덕영, 2016: 452).


  루만에 의하면 그의 이론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체계’ 자체가 아니라 체계(System)와 환경(Umwelt)와의 구분, 관계이다(루만, 2010: 327; 2015).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가리키는 ‘환경’은 흔히 사용되는 환경운동에서 가리키는 자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체계와 환경으로 분할된다. 체계는 경계를 갖는 복잡한 구조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정의(definition)된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 체계가 아닌 모든 것은 환경이 된다(루만, 2015: 73). 체계와 환경의 구분은 루만의 이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며, 체계를 스스로 작동하면서 환경과 구별된다. 이 구별 속에서 체계가 구성된다. 체계와 환경의 구별은 체계의 자기생산, 즉 체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루만, 2014c: 120). 요약하자면 체계는 환경과의 구별을 통해 경계를 형성해내고, 이를 통해 자기생산, 유지, 기능하는 폐쇄적·자율적·통일적 단위이다(김덕영, 2014: 228). 체계의 기본단위는 인간, 주체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다.


  체계와 환경의 이분법적 도식은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의 대상과 지평의 이분법적 도식과도 조응한다.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에서 지향성(Intentionalität) 개념은 주체가 받을 수 있는 체험의 과부하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매체로 작용한다. 루만 또한 ‘의미(Sinn)’를 중심으로 ‘대상으로서의 체계’, ‘지평으로서의 환경’의 도식을 만들어, 세계의 복잡성을 축소하려 처리하려는 기획을 보여준다(정선기, 2017: 331-332). 루만은 복잡하게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세계로부터 통보되는 다양한 복잡성을 포착·축소시켜, 처리하는 것을 체계이론과 그의 사회학의 목표로 삼았다(김종길, 1993: 45-46).


  체계는 고유한 매체, 코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유한 기능을 담당한다. 고유한 코드와 프로그램은 기능 체계들의 결과이며, 조건이다(루만, 2014a: 655). 이 코드는 이항코드로서, 긍정값 내지는 부정값이 할당된다. 이러한 할당이 제대로 구성되는 지를 정하는 기준이 ‘프로그램’이다. 체계에서 “구조적으로 결정적인 것은 고정된 코드와 가변적인 조건화(프로그램)의 차이”이다. 이러한 코드화는 한 매체가 다른 매체들과 구별, 분화, 독립, 특수화되는 것을 보장한다(루만, 2014a: 426-427, 443). 현대사회의 각각의 기능 체계들은 코드로 인해 고유한 자기생상으로 작동하며, 이로 인해 비로소 독립분화를 - 예를 들면 정치체계, 경제체계, 법체계, 과학체계 등의 - 이룰 수 있다(루만, 2014b: 863).


기능체계

코드

프로그램

매체

기능

경제

소유/비소유

희소성/가격

화폐·소유·권력

물질적 재생산

합법/불법

법, 질서

법·의사결정

안전, 갈등 해결

과학

진리/거짓

연구

과학적 인식

새로운 인식 생산

정치

여당/야당

정치사상, 이데올로기

권력 경쟁

집합적 의사 결정의 산출

대중 매체

정보/비정보

전달

커뮤니케이션 매체·언어·영상

정보·대화

도덕

존경/멸시

가치관

가치 판단

하위 제도적 정향·규제

윤리

정의/불의

실천 철학

도덕

도덕 성찰·논증·규제

<표 1 - 기능체계의 도표(발터 리제 쉐퍼, 2002: 184-185)>


  분화된 기능체계들은 체계 작동상의 폐쇄성을 갖는다. 체계는 전적으로 자기준거에 기반을 두고 내재적으로 작동한다(루만, 2014c: 121). 즉 기능체계들은 서로에게 닫힌 체계로서 작동하며, 따라서 서로는 서로에게 환경이다. 경제체계는 ‘소유/비소유’라는 고유한 이항코드, ‘희소성/가격’이라는 조건화, 즉 프로그램, ‘화폐·소유·권력’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사회에 ‘물질적 재생산’이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예로 정치체계는 ‘여당/여당’이라는 고유의 이항코드, ‘정치사상과 이데올로기’라는 프로그램, ‘권력(경쟁)’이라는 매체에 근거해 ‘집합적 의사 결정의 산출’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과학체계는 ‘진리/거짓’이라는 고유의 이항코드, ‘연구’라는 프로그램, ‘과학적 인식’이라는 매체에 근거해 ‘새로운 인식 생산’이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루만(2014a: 443)은 “이론은 법률이 아니고, 연애관계에 투자하는 사람은 기업가처럼 행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특정한 체계가 다른 체계에 대해 일정한 폐쇄성을 가진, 닫힌 체계라는 것, 즉 체계 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설명해 근대의 분화된 특정한 기능체계들의 고유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이다.


  기능적 분화들에 의해 구성된 사회에서 각각의 부분체계들은 체계 사이의 독립성과 의존성이 함께 증가한다(루만, 2014b: 696, 856). 왜냐하면 모든 체계들이 작동상으로는 서로에게 폐쇄적이지만, 모든 기능체계들은 구조적 결합을 통해 체계 간의 결합이 진행되어, 사회 내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예를 들 수 있다. 법과 정치는 헌법을 통해 규제된다. 헌법은 정치체계를 법에 결속시키고, 이 때문에 위법은 정치체계에서의 실패로 산출될 수 있다. 헌법은 또 다른 한 편으로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입법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서 법체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계들 사이의 의존성에 대한 설명이다(루만, 2014b: 892-896).


참고문헌 


김덕영,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 한울아카데미, 2003.

______, 『환원근대』, 길, 2014.

______, 『사회의 사회학』, 길, 2016.

김종길, "니클라스(N. Luhmann)의 일반 체계이론 - ‘복잡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 도’", 『한국사회학』 27(SUM), 1993.

니클라스 루만, 『복지국가의 정치이론』, 김종길 옮김, 일신사, 2001.

_____________, 『사회체계이론 1』, 박여성 옮김, 한길사, 2010.

_____________, 『사회의 사회 1』, 장춘익 옮김, 새물결, 2014a.

_____________, 『사회의 사회 2』, 장춘익 옮김, 새물결, 2014b.

_____________, 『체계이론 입문』, 디르크 베커 편집, 윤재왕 옮김, 새물결, 2014c.

_____________, 『사회이론 입문』, 디르크 베커 편집, 이철 옮김, 이론출판, 2015.

정선기, "Luhmann의 사회이론에서 의미와 관찰", 『사회과학연구』 28(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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