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진화 - 여덟 번째 강의
진화이론의 선택과 배제
특정 이론을 전제하는 것은 곧 다른 이론을 배제하는 것이다. 진화이론을 선택하게 된다면 창조이론과 역사이론(역사의 단계분할 구상)을 배제해야한다.
진화이론과 일반 형식
루만은 진화이론을 추상적 상태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형식이며 이는 다윈을 참조한 것이다. 진화의 일반 형식은 변이, 선택, 안정화로 이루어진다. 변이는 어떤 것이 달라짐을 의미하고, 선택은 변이된 사태들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붙잡음을 의미하며, 안정화는 선택이 성과를 가질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그 다음 나타남 속에서 원칙적으로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루만은 이를 토대로 변이, 선택, 재안정화의 3조로 구성된 구별을 제시한다. 특별히 재안정화는 어떤 특징들이 제안되고 변이되어 수용될 경우와 포기되는 두 경우 모두에서 필요하다. 이것은 혁신을 도입하지 않고 거부했을 때, 그것을 감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고, 또한 사회이론에서 중요한 논점이다.
진화이론과 우발성
변이, 선택, 재안정화 개념들의 차이는 전형적으로 우발 개념을 통해 표시된다. 이를 통해 진화이론은 비합리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고, 이것은 진화가 예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루만은 근대 인과이론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발을 “체계에 의해 조정되지 않은 모든 것”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변이·선택·안정의 도식을 수용할 때, 이 모든 것이 체계에서 발생하지만 체계는 그에 준비되어 있을 수 없다는 것, 또는 변이 역시 선택적으로 성과를 가지며 전체가 안정적일 수 있음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발이란 체계이론에 있어 체계가 완전히 고유한 것에서만 진화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지표이다.
발전이나 가능성들의 전개에는 내재적인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언제나 체계에 접한 부분에서,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환경에서도 발생한다. 체계가 환경을 완전히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우발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 경우에 변이·선택·재안정화의 통합의 부재가 존재한다.
진화이론과 두 가지 논점 : 진화이론의 목적과 방향
진화이론에 관한 첫 번째 논점은 진화이론을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루만은 진화이론이 역사적 상태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역사학자의 작업을 이론의 형식으로 옮겨 그들이 설명하여 시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진화이론의 목적이 아닌 것이다. 루만에게 진화이론의 목적은 ‘계획되지 않은 구조변경’에 있다.
루만은 계획이론을 진화이론 속에서 검토한다.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계획을 예견되거나 조정되지 않은, 우발의 효과를 지닌다. 그리고 계획은 이점에 있어서 다시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진화의 한 요인이다. 행위이론의 구상은 자원(自願)하지 않은 행위나 의도되지 않은 효과들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그것이 어떤 것에 도달하든, 하지 못하든 진화는 존재한다. 체계는 계획될 것을 수용하며, 특정하면서도 고유한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 것에 저항하기도 한다. 더불어 체계는 사물들이 빗나가도록 만들고, 사람들이 다음 순간에 그들의 계획을 번복하도록 만들고, 충족된 기대들로부터 실망들을 만들어내는 등의 반응도 포함한다. 계획은 진화를 추진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진화이론의 두 번째 논점은 진화의 방향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진화이론은 역사의 진보모델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진화는 ‘가치중립적’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경우 낙관적인 역사발전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학을 구조적인 노선으로 변화시켰고 이를 통해 진화는 거부되었으며 뒤르켐의 분업과 같은 구조의 질문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진화는 진보를 의미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진화의 방향은 첫 째, 정상화를 증대시키거나, 비개연적인 것들을 개연성 있도록 만든다. 이것은 통계학적인 개연성의 개념은 아니다. 인류는 다양한 영역들을 제도화했다. 근대 세계는 개연적이지 않음에도 우리는 새로운 진화상 성취들을 구축했고 그것들을 비교적 정상적인 것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진화의 방향성에 복잡성 개념을 추가하고, 더 높은 복잡성 구출을 진화의 반향으로 간주한다면 다른 표현도 가능하다. 복잡성 개념은 그 즉시 수정을 필요로 하는 문제 있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항상 더 복잡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더 높은 복잡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 그것은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전제조건 없는 단순한 사회 형식과 복잡한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도 동시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자기생산 개념을 덧붙이면 자기생산이 붕괴하지 안흐면서 복잡성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를 진화가 시험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도로 복잡한 체계들이 환경에 대한 높은 민감성이나 교한 가능성에도 고유한 구단들을 갖고 여전히 자기생산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자기생산이 붕괴하지 않는 조건에서 파괴적인 효과 없이 복잡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진술은 진화이론에서 가치중립적인 방향 개념을 발견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진화이론과 적응
루만은 다윈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진보이론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포유류, 조류, 곤충 등의 상이한 종의 분화가 곧 진보가 아니듯, 진화이론도 진보이론이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 루만은 ‘적응’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고전적 진화이론은 체계가 적응된다는 것을 많건 적건 도달될 수 있는 변수로 보았다. 그것은 복잡한 체계들이나 생존하는 체계들이 환경에 더 잘 적응되어 있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런 진술은 마투라나에 의해 반론을 받게 된다. 마투라나의 자기생산 개념은 앞선 고전적 진화이론을 대체하고, 루만은 이를 사회이론에도 접목하려고 한다.
자시생산 체계는 자기생산이 환경에 의해 관용되지 않으면, 더 이상 자기 생산을 해낼 수 없다. 환경은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며, 명백하게 상이한 것을 허용하면서 진화가 막 시행되는 것을 시험해보도록 추동한다. 하지만 이것은 환경이 그 시점에 앞에 내어놓는 것, 이미 현실에서 실현된 것과의 관계에서 적합성이 있다는 전제조건에서만 그렇게 한다.
이와 비슷한 문제도 존재한다. 하나의 진화하는 체계가 있고, 다른 모든 것은 환경이며 지속적으로 환경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안에 또 다른 진화하는 체계들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과 관계가 있다. 체계와 관경의 관계는 진화를 하나의 지점에서 추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도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체계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상호작용이 생성되며, 그것은 누가 누구에게 적응하는가 하는 질문을 만들기도 한다.
진화이론의 방향성 - 과정 범주
루만은 진화를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을 정상으로 간주한다. 19세기 역사 이론에서 진화와 과정을 함께 나타난다. 우선은 헤겔을 통해 구축된 과정 범주는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 존재한다. 개념사를 고찰하는 한, 과정의 보편사 모델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복제되는 화학적 또는 법률적 절차가 있다. 그것은 선택적인 사건들이 서로 조정된 연속이다. 역사는 과정의 역사인가? 다른 한 편 다윈의 차이주의적 이론은 과정을 기술한다기보다는 종의 다양화라는 결과를 기술한다. 하지만 진화가 과정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앞 선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관찰을 도입해야한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상이한 관찰과 구별을 상정할 수 있다. 먼저 차이 도식을 활용한 과학적 진화이론이 있다. 루만의 경우에는 구조 변경을 변이와 선택을 갖고 설명하고자 할 때 진화이론을 사용한다. 이것은 관찰을 위한 도구이다. 루만은 역사를 이 구별들을 통해 관찰한다. 이것은 ‘특정한 구별들을 가진 관찰자로서 작업하는 과학철학 이론’으로 작업 범주화할 수 있다.
다른 관찰은 사회가 진화이론 자체를 통해 거의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기술한다는 것이다. 사회 내에는 시점(時點)적 지향이 요구된다. 이 시점성은 진화이론을 통해 형성된다. 이에 의해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입증된 자들의 선택의 역사 같은 맥락으로 보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의 자기기술 차원에서 이에 부합하는 귀결들을 초래하는 부분적인 측면을 지니게 된다. 그 귀결은 민족주의 또는 기업가 정신과 관련된 것이다. 특별히 19세기 말의 이데올로기적 기술은 이런 토대를 과장한다.
진화이론의 진술 능력을 제한하는 시도의 목록에서 마지막 관점은 19세기 진화이론이 오늘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 특정한 전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진화가 진보, 복잡성, 사용될 수 있는 것, 능력 있는 것들을 구별함, 그것이 무엇이든 그 방향으로 점진적인 변화라고 보았는데, 이는 이제 기각될 주장이다. 역사에는 후퇴와 정체, 급격한 변화도 존재한다. 더불어 불연속성, 발생을 정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비약의 영역들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루만은 비약성, 돌방성을 진화이론에 포함하여 이론을 구축할 때, 고전의 이론을 극복하고 이론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 다른 질문은 진화가 필연적이라는 의미에서 특정 역사적 법칙을 전제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상이한 발전의 계기들이 있으면 결과가 생성되고, 그럼으로써 필연성이 진화에 덧붙여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확신이며, 이것은 등종국성이라는 표제어를 통해 입증될 수 있다. 등종국성은 상이한 출발점에서부터 같은 결과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변이·선택·재안정화로 고려했을 때, 필연성을 의심할 수 있게 된다. 변이·선택·재안정화로 보면 분화가 어떻게 성립하는가를 묻게 되기 때문이다. 선택과 연관이 없고, 선택을 미리 형상화하지 않으며 단순히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는 변이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진화적인 구별의 진화의 테제로 이끈다. 진화 자체가 진화의 결과이다. 진화는 모든 것이 우연적이라는 테제로 이끈다.
사회문화적 진화이론의 특수성
변이·선택·재안정화의 추상적인 표현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생물학적으로 변이는 돌연변이가 담당한다. 변이는 유전적 구조에서의 화학적 변화이며 양성(兩性)에 의한 재생산을 통해 강화되었다. 선택은 성징(性徵)의 발전이나 재생산 능력에까지 이르는 생존이다. 한 유기체는 다신의 변이된 유전자를 가지고 다음 유전자를 전달할 때까지 생존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환경이 작용한다. 안정화는 그것이 인구의 차원, 유전자 풀의 차원에서 완전히 분리될 때 나타난다. 이는 돌연변이가 어떤 특정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범주의 수용에 대한 결정적인 이의 가운데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이 사회문화적 진화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여기서 하나의 목적론적 구조가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행위에는 어떤 지향적이 구조가 존재해서 변이·선택·안정화의 분리에 순응하지 않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에 대응한다고 툴민은 사회문화적 진화이론 적응에 이의를 제기했다. 루만은 이 이의에서 언제나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함으로써 툴민의 주장이 반박될 수 있다고 한다. 행위이론, 주체이론, 기질주의적 접근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고려하지 못한다.
루만은 자신을 세포들, 유기체들, 인구들처럼 제한된 체계는 보는 것을 배제하는 지시구조의 문제가 “의미” 매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의미를 지니는 지향은 그 자체 안에 공간 경계와 시간 경계를 갖지 않고, 그러한 관점은 기제들을 상이한 체계 층위에 배분하여 변이는 이 체계에서 일어나고 선택을 다른 체계가 책임지고, 재안정화는 또 다른 체계가 결정한다고 말하지 어렵게 한다. 이렇기 때문에 변이·선택·재안정화의 물질화나 어떤 기제들을 통해 사용되는지의 기본 질문에 대한 다른 해결책이 요구된다.
변이는 사회체계 안에서 요소들, 작동들, 사건들의 층위에서 발생한다. 어떤 것은 그 순간 달리 발생하고 다시 사라진다. 선택은 구조의 사안이 된다. 사건들의 연동을 위한 구조 형성은 어떤 구조가 사용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 광범위한 선택 결정이 내려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재안정화를 위해서는 체계 형성 그 자체 또는 ‘체계-환경 차이’가 고려 대상이 된다. 선택된 구조가 안정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체계가 다른 구조들의 수많은 수정들을 통해, 그 변경이나 변경의 억압에 적응하여 ‘체계-환경 관계들’이 자기생산을 계속해서 관용하게 될 때일 것이다.
조금 더 심화해보면 변이를 작동의 층위, 즉 발생하고 그 즉시 다시 비현재화되는 소통들의 층위에서 관찰하면, 변이는 언어 코드의 부정적인 면의 사용으로 생각할 것이 추천된다. 어떤 기대가 있고 그 기대가 주도적이든 반응적이든 부인되면 이것은 기존의 기대 구조와 관련하여 변이이다. 이것은 개별 작동에서만 변이이다. 구조 변경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변이들은 많다. 그 다음에는 어떤 가속화 기제가 작동한다. 이는 양성적 재생산과 유사성을 생각해볼만하다. 소통 안에 아니오를 구축할 가능성은 진화의 결과로서 증가하고, 이제는 대향의 아니오들 대량의 부정들이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을 구조들이 선택의 압력을 받게 된다는 의미에서 진화를 가속화한다.
이 개념의 측면에서 선택과 관련하여 문제는 구조들의 층위에 있다. 다시 말해 구조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사건들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체계를 구성하는 “재료”는 불변의 성질이다. 변경 가능성을 구축하려면 시간 상수를 만들어야 한다. 구조의 층위에서만 변경 압력이 발생가능하다. 그리고 그 층위에서만 어떤 변경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다. 변경이 거부되더라도 이 또한 이전의 구조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체계는 일정한 기억을 갖는다. 거부된 것은 조건이 바뀌고 새로운 생각들이 고려되면서 다시 나타나고 이것이 재안정화가 한 번 더 필요한 이유이다. 루만은 종교의 예를 들어 설명을 진행하고, 부분적으로 종교는 적응시키고 부분적으로 압력을 거부하고 더 큰 변이의 범위를 처리할 수 있는 결정 구조를 가지며 압력을 흡수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다음 단계는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의 발전을 변이를 관철시키는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를 통한 발전은 종교를 통한 변이와는 달리 반드시 규범적인 근거를 갖출 필요가 없는 변경 가능성들이 만들어진다. 매체 발전과 종교나 도덕의 발전 사이의 괴리는 근세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고도문명을 관통한다. 이에 따라 구조적인 선택성이 형성되자마자 종교를 통해서나 매체를 통해서 진행되며 비교적 유일신적 방식으로 대변되어야 할 것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결과들을 가지게 된다. 아니라면 다양한 매체들의 관계들과 같은 상이한 매체들을 갖고 작업하고, 그 다음에 변이 제안들에 대한 반응의 범위 내에서 조정되지 않은 상태를 수용해야 한다.
루만은 이 고려를 진척시켜 안정화 또는 재안정화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루만은 체계 경계의 재생산 또는 체계의 자기생산 그 자체가 안정화나 재안정화의 기제라고 정의한다. 변이된 구조들과 관계를 갖게 될 때는 그것이 사회 내에서 어느 정도로 ‘체계-환경 관계들’을 수단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근대사회가 지금 그러한 정도에서, 선택적인 구조변경을 통해 변이들을 유효하게 하고, 이때 ‘체계-환경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안정적일 수 있을지는 질문하게 된다. ‘체계-환경 개념’을 갖고 안정화 요소를 선택 과정으로부터 더 분명하게 분리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질문해야 한다. 이것은 근대의 특수성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일차 기제의 이러한 이중 상황을 갖게 된다. 사회에 경계가 없다면 내적 분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적 분화를 통해 한 번 더 안정성을 위한 잠재력을 상승시킨다. 이것은 사회 차원의 조정을 포기한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청치체계들이 혼자 힘으로 안정화되고 자신들의 환경에서 좌초할 수 있는 문제들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면, 그것을 통해 사회 차원의 질서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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