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설명하는 사회학 이론에 대해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이론가는 굉장히 낯설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나 마페졸리 같은 이론가들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이들을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 사회학 이론서들에도 일정부분 동일하다. 이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은 크게 느껴지는데 반해 사회학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너무 작게 느껴지거나 별로 다룰 필요가 없게 느껴졌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호명되는 데리다, 들뢰즈, 푸코 등의 이름은 사회학자라고 볼 수 없고 철학자로 분류되는 인물이기도 했고, 20세기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들로 손꼽히는 위르겐 하버마스, 니클라스 루만,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인물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하버마스는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자이고, 루만은 근대적 주체를 부정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신유럽적 사고를 제시했다고 느꼈고, 부르디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허무주의적 비난'이라고 표현하며 동시대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격렬한 논쟁을 펼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더니즘 다음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라고 느꼈고 동시에 ‘사회학은 포스트모던에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데?’, ‘지금의 근대는 19세기의 근대와 분명 다른데 사회학에서는 이 새로운 근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런 궁금증을 오랜 시간 안고 있었다. 김홍중 교수님의 저서 '사회학적 파상력'을 읽고 공부하며 김홍중 교수님에 대해 알아가던 중, 김홍중 교수님이 쓴 글 중 ‘후기근대적 전환’이라는 글이 있어 이에 대해 공부한 것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후의 내용들은 ⌜현대사회학이론⌟, 다산출판사, 2013에 수록된 김홍중 교수님의 ‘(사회학 이론의) 후기근대적 전환’을 요약한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여 압축적으로 옮겨적은 수준이니 자세한 것은 해당 책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20세기 후반 사회학 이론의 두 맥락과 후기근대론 : 포스트모더니즘, 근대성의 연장, 그리고 후기근대론
1970년 이후 서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조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류에 상징적인 저작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1979년 출간된 료타르(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다. 이 책에서 료타르는 이전의 ‘거대서사’, ‘메타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담은 형용사가 곧 ‘포스트모던’적인 것이라고 밝힌다. 료타르는 근대성을 부정하면서 근대사회의 근본을 구성했던 국민-국가, 시민사회, 정당, 직업체계, 제도, 역사적 전통과 기억, 사회적 연대, 규범적 합의, 이데올로기 등은 20세기 후반의 사회에서 더 이상 사회를 응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이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고, 철학과 문화분야에서 발생한 다각적인 근대성에 대한 반성의 흐름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미 익숙한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은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고, 사회이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프랑스의 사회이론가들이 이끌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자신의 저서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에서⌟를 통해 테러리즘에 침묵하는 20세기 후반의 대중들이 근대적 공중(public)과는 다른 포스트모던적 주체임을 지적하며,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종언을 선포한다.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근대적 국가나 주체를 부정하며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부족(tribu)’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진단했고 더불어 일상성·신화·욕망·삼정·패션·노마디즘 등의 현상들이 삶과 문명의 포스트모더니즘화(postmodernization)라고 분석해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와의 급진적인 단절을 설정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사회에서는 근대성의 기초적 원리들로는 사회의 지속이 불가능한 한계점에 다다른다고 파악한다. 또한 서구의 근대는 이성·남성·유럽·제도·역사·해방·민족 등의 주류적 기표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런 중심 가치들이 다른 가치를 대상화시키고 억압시켜 타자들의 형상은 부정적 방식으로 실체화하고 배제한다. 이런 까닭에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근대의 주류적 기표들에 대한 맹렬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류에 반기를 든 이론가들 또한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의 계몽기획이 실패하지 않았고 아직 미완에 머물러 있음을 주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도전했다. 하버마스는 미완의 근대를 구제할 가능성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에서 찾았다. 하버마스는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생활세계(Lebenswelt)에 잠재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복원시킴으로써 근대의 지대적 합리성인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이성과 폐기가 아닌 이성의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써 근대성을 발전, 연장시킨다.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근대는 미완의 기획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처럼 폐기되거나 단절되어야 하는 유산 또한 아니다. 근대성은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 미완의 기획을 완성시킬만한 충분한 자원이 존재한다.
앞서 본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이론과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사회이론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근대성의 전개과정에서 ‘근대성과 단절될 것이냐, 연속될 것이냐’의 문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언어·관점·가치·방법을 통해 규명해낼 것을 주장하고 하버마스에 의하면 서구의 근대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두 가지의 이론적 입장, 단절론과 연속론을 모두 비판적으로 지양하면 등장한 이론이 바로 후기근대론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론 흐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명적 초월의 선언은 구체적인 사회현실과 대면시키고 검증하며 비판하고 근대성의 주제로 회귀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식의 연속론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이들은 근대의 가능성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근대의 낙관주의를 비관적으로 해체한다. 이런 이론의 흐름의 구성하는 학자와 이론으로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안토니 기든스의 ‘탈전통사회(post-traditional society)’,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등이 있다.
후기근대론의 전개
후기근대적 전환을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일정부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의 사회가 19세기 후반의 사회와 매우 다른 사회구성을 하고 있음에 동의한다. 1980년대 이후의 서구사회는 복지국가의 쇠퇴, 금융자본주의의 등장, 환경문제, 정치적 참여의 쇠퇴, 사생활과 친밀성 영역에서의 새로운 사회문제들, 양극화와 신빈곤의 등장, 냉전의 종식과 자유주의의 잠정적 승리, 이데올로기적 동원력의 약화, 개인화의 심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의 문제를 겪는다. 후기근대 이론은 이러한 사회변동의 성찰의 결과물이다.
20세기 후반의 사회문제들은 고전사회학이 해결하고자 했던 산업사회의 문제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기근대성을 논하는 이론가들은 근대와 포스트포던의 단절을 설정하며 근대를 극복/지양된 전대미문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이 보았을 때 20세기 후반 선진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은 근대성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세기의 근대와 20세기의 근대에서 단절이 아닌 일종의 연속성, 최소한의 재귀성(reflexive)을 발견한다. 이틀은 변화와 상대성을 긍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동시대 보다 더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20세기 후반의 사회현실은 근대성의 고유한 이성과 합리성의 만개가 가져온 부정적 상황들에 의해 특징되고 이런 문제들은 합리성에 의한 구제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하버마스의 낙관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후기근대 논의의 핵심 테제들
1. 후기 근대는 초기 근대성이 ‘단절’되고 등장한 완전히 다른 시대가 아니라, 초기근대가 성숙하고 발전하고 심화되어 나타난 초기근대의 재귀적(再歸的) 형태이다.
2. 포기근대와 달리 후기근대는, 초기근대성이 자명한 것으로 여기던 수많은 가치, 이념, 제도, 이상들의 붕괴와 파산의 위기적 상황에 주목한다.
3. 후기근대론적 사회이론은 포스트모던적 사회이론과는 달리 20세기 후반의 사회상황을 순수하게 긍정적인 새로움으로 보는 대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집합으로 파악한다.
울리히 벡과 안토니 기든스는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사회이론가로서 이들은 20세기 후반의 사회의 당대사회를 ‘후기 근대(late modern)’, ‘*재귀적 근대(reflexive modern)’, ‘2차근대(second modern)’, ‘고도 근대(high modern)’로 지칭하며 근대성을 이원적으로 개념화하며 19세기의 근대와 20세기의 근대를 구분한다. 심화해서 이들은 근대성과 탈근대성 사이에 재귀적(reflexive) 회귀 과정을 설정하며 연속성을 확보한다.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벡은 ‘위험사회’로 기든스는 ‘탈전통사회(post-traditional society)’로 읽어내며 모던/포스트모던이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과제 읽어내는데 성공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포스트모던과 여러 지점을 공유한다. 그는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홀로코스트 분석을 통해 진보와 해방 그리고 이성에 의한 거대서사의 암울함을 지적했다. 그는 ‘액체 근대성(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변화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달리 현대사회의 액체성과 가치의 휘발이 가져온 혼돈과 고통을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 개념 역시 근대와 탈근대성중 하나의 선택이 아니며 거리를 두고 새로운 이론적 입장을 제시하는 점에서 벡과 기든스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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