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개관


"허버트 스펜서는 매우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부적합하고 추상적인 논리의 바다에 빠지곤 하던 이론가였다." - 루이스 코저


따라서 스펜서의 이론을 탐구할 때는 선택적으로 검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부 사회학사 연구자들은 스펜서가 꽁트의 유기체론적 연구 방법과 진화론적 연구 방법의 계승자로 고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스펜서는 본인이 꽁트로부터 받은 심대한 영향을 스스로 부인하고 항변했고 스펜서와 꽁트는 일반적 지향에서 현저한 차이를 가진다.


“꽁트의 근본적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개념의 진보에 대해 조리 있는 설명을 하려는 것이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외부세계의 진보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꽁트는 관념의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계통관계에 대한 설명을 강조했다. 나는 사물들의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계통관계의 설명을 강조하려 한다.” - 허버트 스펜서


꽁트가 관념의 발전에 주된 목적을 가진 사상가는 아니었다. 스펜서의 주된 목적은 부수적 현상인 정신상태의 진화보다는 사회구조와 사회질서의 진화에 놓여 있었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스펜서에게도 관념을 부수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스펜서에게 있어서 진화란 “상대적으로 불확정적이고 응집성이 없으며 동질적인 상태로부터 상대적으로 확정적이며 응집력이 강한 이질적 상태로의 변동”을 의미하는데 그는 이것이 보편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스펜서는 사회학이 오직 자연적, 진화적 법칙이라는 생각에 기초를 둘 때에 비로소 과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질서가 자연법칙에 속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존재하는 한, 사회학은 완전한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에게 있어 우주의 모든 현상은 진화의 법칙에 종속되는 것이었다. 특히 유기체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에 존재하는 유사성에, 그리고 유기체적 단위와 사회적 단위의 구조와 진화에 나타나는 공통성에 사회학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생물학적 유추가 스펜서의 모든 사회학적 추론에서 특권적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스펜서는 생물학적 유추의 한계성에도 주목했다. 그는 급진적 개인주의자였기 때문에 생물학적 유추를 해나갈 때 집단주의자 꽁트는 부딪치지 않았던 사회학적, 철학적 난점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스펜서의 생물학적 유추가 가져온 가장 유용한 결과는 진화적 성장은 모든 단위의 구조와 기능에 변동을 가져온다는 개념, 그리고 양적 크기의 증가는 분화(differentiation)를 심화시킨다는 생각이었다.


성장과 구조와 분화


스펜서에 의하면 유기체적 집합체와 사회적 집합체는 모두 크기가 점차적으로 증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체 사회의 성장은 두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때로는 분리의 과정으로 때로는 통합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단위의 크기가 커지면 반드시 구도의 복합성(complexity)도 증가하게 된다. 스펜서에게 있어 성장의 과정은 하나의 통합 과정이다. 만일 유기체, 사회적 단위가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즉 생존경쟁을 한다면 통합은 반드시 구조와 기능의 진보적 분화를 수반해야 한다. 진화단계에서 낮은 수준의 동물은 각 부분이 명료하지 않고 동질적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으로 이동할수록 분할과 하위분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더 결정적으로 된다. 사회적 집합체도 마찬가지로 각 부분이 서로 유사한 상태에서 서로 다른, 분화된 상태로 성장한다. 또한 서로 달라진 부분은 상호의존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분화가 진전되면 상호의존성이 진전되며 통합이 진전된다. 분업으로 인해 동물은 물론이고 사회도 하나의 살아 있는 전체를 이루게 된다. 낮은 수준의 집합체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각 부분들의 활동이 거의 독자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발전된 집합체에 있어서는 조합이 각 부분의 생활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적 활동을 가능케 한다. 수준이 높은 복합사회에서는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는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각 부분의 활동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규제체계(regulating system)”가 반드시 출현하게 된다. 진화 초기의 사회 규제센터는 “적과 전리품”에 관련하여 외적 환경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했다. 그러나 복합적인 기능 때문에 각 부분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적응할 수 없게 되는 후기에는 이들 규제체계가 내적인 규제와 사회통제를 담당하기 위해 필요하게 된다. 스펜서에게 있어 내적규제의 엄격성과 범위는 사회의 형태를 분류하는 주요한 구분 지표가 되었다. 스펜서는 사회의 내적통제 범위, 진화적 복합성의 정도로 사회를 분류하려 했고 이 두 기준은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스펜서 이론에 난점을 낳기도 했다.


사회형태 : 군사형사회와 산업형사회


스펜서는 단순사회(simple society), 복합사회(compound society), 이중복합사회(doubly compound society), 삼중복합사회(trebly compound society) 등으로 구분했다. 그가 시도한 것은 구조적 복합성 정도에 의거한 분류이다. 그는 정치조직의 복합성에 따라 사회를 분류하고 사회의 정착양식의 진화에 따라 유목형, 반정착형, 정착형 등으로 서열화했다. 사회는 보통 단순사회로부터 복합사회와 이중복합사회로 각 단계를 거쳐 필연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복합성의 정도에 의한 사회 분류에 덧붙여, 그는 내적 규제 형식으로 군사형사회와 산업형사회를 구분했다. 여기서는 사회조직상의 차이점을 중시했다. 중요한 점은 이 분류가 진화단계에 기초한 구분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한 사회의 주요 환경을 구성하는 다른 사회와의 관계에 따라 사회구조의 형태를 설명하려는 사회 이론에 기초하며, 이 관계가 평화적인가, 군사적인가의 여부가 사회의 내적 구조와 그 규제 체계에 영향을 끼친다. 평화적 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분산된 내적 규제 체계를, 군사적 관계는 강제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가져온다. 여기서는 앞선 사회구분처럼 사회 진화의 수준에 의존하지 않고, 인근사회와의 갈등의 존재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군사형사회의 특징은 강제이고 산업형사회의 특징은 자발적 협동과 개인적 자율에 기초한다.


군사형사회 : 보존과 세력강화를 위해 집단적 방어와 공격, 강제적 협동과 질서의 강요, 개인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권리 제한, 모든 사적조직 배제, 집권적, 서열·직업·지역이 고정되어 지위 상속, 외부와 교류 없는 보호주의, 권위에 대한 믿음


산업형사회 : 개인적 서비스의 평화·상호적 수수, 자발적 협동, 국가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 사적 조직 고취, 분권적, 지위 이동 존재, 자유무역, 개인중심주의


스펜서는 진화적 복합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았지만 군사형 - 산업형으로 분류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축소시켰다. 그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진보주의자는 아니었다.


“1815~1850년 시기와 1850~연재를 비교할 때, 우리는 군사력의 증가와 더욱 빈번한 갈등, 군사적 정신의 부활을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강제적 규제는 더욱 심화되어 왔다. 개인의 자유는 감소했다. 이것은 전체 사회생활에서 군사적 유형이 지배적이 되는 강제 훈련으로의 복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 허버트 스펜서


진화 - 단선적인가 복선적인가?


초기의 스펜서는 인류의 단선적 진화, 즉 인류진화는 한 인간이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꼭 같이 명확하게 결정된 단계에 따라 전개된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한 표현을 많이 했다. 그러나 성숙기의 스펜서는 전체로서의 인류 진화는 분명하지만 특정사회는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진보가 나타나는 만큼이나 퇴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는 꽁트와 같은 엄격한 단계론자의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구별했다. 스펜서는 침체와 퇴보라는 요소를 이론에 추가하면서 유연성을 얻었지만 우주 수수께끼에 대한 보편적인 해답으로서의 호소력은 잃고 말았다.


기능주의


스펜서는 기능의 변화 없이 구조의 변화는 있을 수 없으며 사회 단위의 단위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행위의 점진적인 분화가 야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펜서의 출발점은 언제나 분석하려는 특정현상이 수행한 기능을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하나의 조직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발전하였는가를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허버트 스펜서


스펜서는 사회제도를 그것이 속해있는 전체적인 구조와 관련시켜 분석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상하고 불쾌한 것으로 보이는 관습들이 다른 특정사회에서도 전혀 무가치했을 것이라고 파악하는 공통적인 오류에 대해 그는 ‘원시인의 미신도 단순히 쓸모없는 것으로 보는 대신 그것이 사회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는 사회제도가 행위자들의 정교한 의도나 동기의 결과가 아니라 기능적, 구조적 위기로부터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인간행위의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스펜서는 제도를 연구함에 있어 진화단계와 단계가 수행하는 기능의 측면을 함께 연구할 것을 요구했다.


개인주의 대 유기체론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던 스펜서는 그의 유기체론적 접근 방식과 개인주의를 조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꽁트는 기본적으로 반개인주의적 철학을 지니고 있었고 개인이 사회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반대고 스펜서는 사회의 기원을 개인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용어로 파악하고 사회를 개인의 목표달성을 위한 도구로 파악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 결속하는 것은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회의 질이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질에 의존하는 것이다. 스펜서는 단위들의 속성이 전체모임의 속성을 결정한다는 일반원칙을 주장했다. 그러나 스펜서는 개인주의적 토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꽁트보다 엄격하게 유기체론적 사고를 추구했다. 그는 사회유기체와 생물유기체간의 유사성을 밝힌 후 차이점을 밝히는 데 노력했다. 생물유기체는 치부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사회는 언어라는 매개체에 의해 결속되어 있다. 그럼에도 스펜서는 집합적 정신을 소유한 사회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했고 개인들은 기능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자의 행복과 만족을 갈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임과 적자생존


스펜서는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사회적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을 꽁트와 동일하게 굳게 신뢰했다.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사회가 법칙을 가조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약 사회에 법칙이 없다면 그 현상에는 질서도 확신도 체계도 있을 수없다. 마약 법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른 우주의 법칙과 비슷할 것이다.” - 허버스 스펜서


그러나 꽁트는 사회의 법칙을 발견하려는 목적이 사람들이 사회세계 안에서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 반면 스펜서는 연구의 목적이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않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학자인 목사의 정신적 힘을 통하여 사회를 인도하려 했던 꽁트와는 달리 스펜서는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정부나 개혁가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확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펜서에게 국가가 유일하게 지닐 수 있는 힘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스펜서에 의하면 좋은 사회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간의 계약 위에 기초한 사회이다. 국가가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이것을 방해하면 그것은 전제적이고 군사적인 사회 질서 초기로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국가의 개입은 개인들의 사회적응의 교란을 낳을 뿐이다. 이런 그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맬서스(Malthus)에게 배워온 적자생존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재능을 요청받고 이를 통해 지적으로 열등한 집단이나 개인은 소멸될 것이며 전반적인 지식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객관성의 장애물


꽁트와 마르크스와는 아주 다르게 스펜서는 사회과학에 있어서 객관성의 문제를 상당히 깊게 고민했다. 꽁트도 사회연구에 있어 과학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에게 과학적 객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으며 마르크스도 초연하고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이론이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실천과 연결된 것이었다. 이와 달리 스펜서는 연구자 자신이 참여하는 있는 사회세계의 탐구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특수한 객관성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여기서 자연현상의 연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는 사회과학자는 편견이나 감정, 즉 시민으로 생활하는데 필수적이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사용할 경우 그 작업을 무효화시키게 되는 편견과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저작 “사회학연구”는 절반이상 편견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장의 제목은 “애국주의의 편견”, “계급적 편견”, “정치적 편견”. “신학적 편견”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스펜서는 여기에서 사상적인 또는 물질적인 이익의 옹호가 어떻게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고 또 왜곡시키게 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초보적인 지식사회학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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