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종교의 탄생>
“시민은 국가를 왜 사랑하며, 국가는 어떻게 시민을 지배하는가”
2016년 이후, 대한민국은 태극기와 촛불로 나뉘게 되었다. “그들은 왜 태극기/촛불을 들게 되었을까?”에 관한 많은 설명이 제시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설득력 있게 느낀 것은 바로 이 책, <시민종교의 탄생>에서 제시되어있다.
시민종교란 “한 사회를 통합하고, 도덕적으로 결속시키며, 그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공하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성스럽게 여겨지거나 최소한 존중의 대상이 되는, 폭넓게 공유되고 합의된 가치 및 신념 체계 그리고 그와 연관된 상징, 신화, 의례, 실천, 장소, 인물들의 체계”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국가에서 국가는 성스러운 후광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왕권신수설로 정당화된 서구의 절대왕정도, 황제를 천자(天子), 곧 하늘의 아들로 규정하여 지배를 신성화했던 통치도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통치를 정당화하고 권력에 신성한 후광을 부여할 문화적·종교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국가는 합리적 권위 이면에 있는 종교적이고 열광적이고 비이성적인 충성심을 끌어내는 ‘무엇’을 만들어야 했다.
국민 마음의 종교적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해 국가는 종교처럼 고유의 신념체계, 축제, 의례, 노래, 상징, 영웅, 성인, 성소, 숭배대상을 구축한다. 예를 들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라는 의례, 현충일이라는 국가 기념일과 이를 비롯한 행사, 독립운동가라는 영웅, 독립운동 유적지라는 성소, 애국가 등은 합리적 지배 이면에 있는 유사종교적인 충성심을 만드는 시민종교의 요소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저자는 한국 시민종교를 분석한다.
책에서는 한국의 시민종교를 주조한 세력으로 ‘식민지엘리트’ 세력을 지목하며, 식민지 경험, 한국·베트남전쟁이 이를 구축하는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엘리트 세력이란, 식민지시기 근대적 교육을 통해 근대적 직업인으로 활동했던 세력으로 이들 안에는 반일적인 개인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집단 수준에서 반민족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위치에 있었고, 조선인이라는 민족보다 일본의 민족 이익을 우선했던 세력이다.
문제는 ‘해방’이었다. 민족지도자이자, 민족의 선각자였던 그들은 해방 후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대중에 의해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되며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받게 되며 한순간에 반민족행위자로 전락한다. 과거사 청산에 관한 대중적 열기가 있었는데도, 미군정은 이 요구를 무시했고, 결국 식민지엘리트는 일제강점기에 이어 대한민국 정부의 지배 세력으로도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망에 응답할 수 없는 반민족주의적 지배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지배의 정당성을 끌어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시민종교를 강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한국전쟁이었다.
식민성과 전쟁의 상흔 속에서 식민지엘리트가 주도한 한국의 시민종교는 민족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 친미주의, 자유 민주주의라는 5대 교리로 발현한다. 민족주의는 과거사 청산, 통일 등의 위험한 민족주의가 아닌 스포츠 민족주의로 대변되는 건전한 민족주의로 변모하고, 반공주의는 전쟁을 통해 대중의 몸 속 깊이 자리하게 되며, 근대화·경제발전으로 나타나는 발전주의 역시 전쟁이 만든 절대 빈곤 속에서 각인되고, 식민지엘리트의 생존 자구책에 불과했던 친미주의 역시 전쟁을 통해 내면화되고, 자유 민주주의는 북한 체제에 대항하는 허울의, 명목의 교리로 작용한다.
한국의 시민종교는 전쟁을 통해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책에서는 48년 체제 전후 한국 시민종교의 형성기를 주로 다룬다. 지배 세력이 구축한 한국 시민종교의 5대 교리는 국가에 의해 전사자 숭배, 각종 기념물, 행사 등을 통해 성스러운 가치로 변모하고, 그 안에서 교리의 수호자와 이탈자를 구별해 성과 속, 포함과 배제의 기준으로 작용하며 폭력을 정당화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 특유의 폭력성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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