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쌀 재난 국가>

화제의 책을 읽었다. 이철승 선생님의 <쌀 재난 국가>는 한국 사회의 현재적 문제의 기원을 찾는 책으로, 한국 사회의 많은 명암이 벼농사 체제에서 기원했음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목표하는 바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근대국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쌀이라는 동일한 ‘생태적 환경 공간과 먹거리’를 공유했던 선조의 삶과 오늘날 우리 삶의 패턴의 기저에 있는 공통의 구조에 주목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벼농사 체제이다.

저자는 밀 농사권 지역과 벼 농사권 지역을 대비해 농업 체제에 따른 사회의 습속 차이를 설명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집단 협업이 필요하지 않은 밀농사 지역에는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집단 협업이 중요한 벼농사 지역에는 집단주의가 자리 잡는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런 구분 속에서 벼농사 체제가 남긴 7가지 유산을 이야기한다.

첫째, 벼농사 체제는 자연재해에 취약했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는 재난에 대비하는 재난 대비 구휼국가가 되었고 이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작동했다. 둘째, 벼농사 체제는 공동생산(품앗이 등)을 위해 작동하는 협업 조직이었다. 이들은 모두의 논에서 공동의 생산을 위해 협력했으며 동시에 같은 노동을 들여도 생산량의 차이가 있었기에 경쟁도 체화했다. 셋째, 이런 집단 협업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기술 표준화 시스템이 작동한다. 넷째, 벼농사 체제는 마을 단위 협업 시스템을 유지하는 위계 구조인데, 이는 현대의 연공서열제로 이어졌다. 다섯째, 벼농사 체제는 여성 배제의 사회구조로 이어졌다. 여섯째, 벼농사 체제는 선발체계(과거제)와 엮여 시험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상승으로 이어져 현대에는 시험의 숭배, 고용형태 차별로 이어졌다. 일곱째, 벼농사 체제는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씨족 계보·혈연을 중심으로 한 사적 복지체제로 작용했다.

이 책은 이런 분석과 함께 문제의식으로 현재 한국의 불평등의 원인이 벼농사 체제에서 기인했음을 논증하고, 이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먼저 책은 단순히 ‘근대국가’ 정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한국, 또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저에 있는 역사학의 교황 브로델의 용어로 ‘장기지속’을 밝혀내는 야심 있는 기획이다. 다음으로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벼농사에서 현대 한국의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있는데, 심지어는 그게 꽤 개연성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탁월한 생각이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매우 평이하다. 그러니까 학술적 내용을 담고 있고, 한편으로 학술적 논증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가 읽고 이해하기에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책이 잘 쓰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존재한다. 첫째, 과도한 일반화다. 이 책을 접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이철승 선생님은 베버를 호명하며 서양은 농업 생산물이 신과의 계약이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다고 설명했는데, 과연 여기서 서양은 구체적으로 어디인가? 러시아와 터키는 서양인가, 아닌가? 1905년의 베버도 개신교 지역 일부를 선정해 연구를 진행했고, 일반화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시대의 학자가 그 복잡한 양상의 문명을 단순/일반화하는 건 분명한 실수다. 물론 이 책은 동아시아와 한국을 설명하기에 저것과 상관은 없지만, 주제를 설명하는 저자의 태도는 비슷하다.

둘째, 책에는 한국의 벼농사 체제에 대한 1차 자료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벼농사가 아닌 지역도 있고, 혹은 농업이 아닌 지역도 있을 텐데, 거기에서도 작동하는 벼농사 체제의 부산물을 저자는 다루지도, 해명하지도 않는다. 벼농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대에 연결되었는지를 1차 자료를 통해 제대로 논증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실증도 부족해 보인다.

셋째, 저자가 끌고 오는 브로델은 역사학의 사회과학화로 설명되는 아날학파에 속해 있지만, 저자는 사회학자다. 책에서는 장기지속을 설명하기 위해 벼농사 체제를 고대부터 설명하는데 고대, 중세와 근대 이후의 사회는 아예 다르다. 그래서 지금의 시각에서 고대·중세에 적용해선 안 된다. 사료를 읽는 것부터 적용까지 역사학 방법론이 필요할 텐데 저자는 그 역시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은 문제 제기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아직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이 정도의 분량으로 해명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철승 선생님의 후속 작업을 기대하는 마음이며, 책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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