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합하는 시민종교들>

<시민종교의 탄생>은 시민종교란 무엇이며, 한국에서 식민성, 전쟁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했다면, 이 책 <경합하는 시민종교들>은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시민종교가 어떤 변화양상을 거쳤는지를 연대순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은 태극기와 촛불로 양분된 두 개의 대한민국의 계보학을 다룬다.

책의 1부 시민종교의 형성에서는 한국 시민종교의 신념체계를 구성하는 민족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 친미주의,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룬다. 해방을 통해 만들어졌던 집합적 열광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열광은 국가 폭력에 의해 차갑게 사그라지게 된다. 국가는 애국심을 끌어내기 위한 의례, 상징을 창출하며 통치를 공고화하고, 이 시기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성지·영웅과 반공 성지·영웅의 경합이 일어난다.

‘식민지엘리트’ 세력으로 구성된 한국의 지배층은 이런 경합에서 자신의 반민족주의적 과오 때문에 반공주의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사용해야 했다. 김구, 이봉창, 윤봉길, 이동녕, 안중근(가묘) 등이 안장되어있던 민족적 성지 효창공원에 이승만 정부는 축구장을 만들고, 박정희 정부는 테니스장·위락시설을 만들며 성지의 성스러움을 오염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2부부터 다루는 전쟁은 한국의 시민종교가 반공·친미주의로 중심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전쟁 이후 반공·친미주의는 대중에게도 내면화된다. 국가 역시 다양한 전적비, 국립묘지, 현충일, UN참전기념물 등의 기념물, 의례, 기념일 등을 만들어내며 반공·친미의 가치를 성스러운 것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미국·영국식 자유주의적 반공주의가 아닌, 일본·독일식 국가주의적 반공주의라는 것이 중요한데, 반공주의가 급부상한 시민종교 체제는 이 성스러움에 반대되는 것을 낙인하고, 배제하고, 폭력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60년의 4·19 혁명은 다시 해방 시기의 집합적 열광, 대중적 열광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으나 혁명은 부유하게 되고, 쿠데타가 일어나게 된다. 3부는 박정희 이후 시민종교를 다룬다. 박정희 정부는 민족주의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는 경제·반공·스포츠 민족주의 등 지배에 도움이 될 민족주의를 잘 활용하며 시민종교를 사용한다. 이 시기의 영웅은 대부분 전장영웅이 자리하는데, 박정희는 병영사회 건설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국난의 극복으로서 역사 서사를 만들어낸다. 또한 시민종교의 5대 교리 중 하나인 민주주의를 전면으로 비판하며 반공-국가주의의 시민종교를 창출해내고, 유신체제 이후에는 이에 대항하는 예언자 진영이 만들어진다.

막스 베버는 종교지도자를 사제, 예언자 등으로 구분하는데, 사제적 종교지도자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오는 지지와 위로를 제공하며 기존의 가치를 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언자적 종교지도자는 기존의 가치규범을 전복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유신체제 이후 한국의 시민종교에는 민주-공화주의를 중심으로 한 예언자 진영이 만들어지고, 광주항쟁 이후 균열이 본격화 된다.

이 책 마지막은 민주화 이후 시민종교를 다룬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민종교는 한의 시민종교로 통합될 여지도 가지고 있었지만, 민주화와 과거사청산을 통해 양분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저항적 시민종교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지배적 시민종교이자, 시민종교의 사제적 진영의 영웅 박정희, 전두환 등은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저항적 시민종교의 출현은 김대중-노무현의 정권 창출로도 이어지는데, 48년부터 김대중이 임기를 시작한 98년까지 약 5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한국의 지배층은 이에 반격을 시작하고 예언자 진영 역시 재반격을 가하면서 반공-자유를 중심으로 한 시민종교와 민주-공화를 중심으로 한 시민종교의 대립이 극심해진다. 이것이 태극기와 촛불로 표현된 현재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강인철 선생님은 20세기 한국사를 이해할 때 필수적인 연구를 이어오고 계시며 출판된 책만 거의 1만 페이지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시민종교의 탄생>은 세종도서로, <경합하는 시민종교들>은 대학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와 한국사회사학회에서 1회 최재석학술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 태극기와 촛불로 분할된 두 개의 대한민국의 심층에 있는 종교적이고 열광적인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책. 굳이 아쉬움이라면 ‘시민종교 정치가’로 표현된 문재인의 정권이 임기 중이라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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