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 The Early Death of The Problem of The Social


이 장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사회학과 사회학 이론이 “사회적인 것의 문제의 죽음(the death of the problem of the social)”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회의 종말(the end of the social)”에 대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저자는 “사회적인 것의 문제의 죽음”의 책임을 일부 파슨스에게 부과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사회학’과 ‘사회의 영역(the social realm)’을 정의하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의 답변은 비슷하며, 그들이 규범, 가치 및 사회 구조의 개념을 사회학 연구의 대상과 사회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한다. 그들의 정의는 보통 파슨스에 의존한다. 파슨스의 용어는 사회학적 사고에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주된 문제는 그것이 “사회적인 것의 소멸의 문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 뒤르켐, 베버의 각기 다른 접근을 혼란시키고, 사회학과 사회세계의 비효율적인 이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사회학은 모든 사회적인 것을 연구하는 것 같아 보이게 된다. 사회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개념화할 때, 확신은 증발되는 것처럼 보이고, 논증은 순환된다. 사회적인 것, 사회적 세계, 그리고 사회적 영역을 연구하는 것이 사회학과 사회이론이다. 저자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개념의 명확성이 부족한 이유를 파슨스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파슨스는 ‘사회’와 ‘사회의 개념’을 논의하는 데 있어 계속되는 어려움 중 일부를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그는 그 문제들에 직접적으로 직면한 맑스, 뒤르켐 및 베버의 텍스트로부터의 변화를 목격한다. 사회적인 것은 파슨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며, 우리는 파슨스가 그런 문제에 관해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파슨스의 주요저작에는 주목할 만한 추정과 빈틈이 존재한다.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 Volume Ⅰ: Durkheim


파슨스의 사회적 행위의 구조(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가 담고 있는 첫 번째 요점은 그것이 “사회적”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행위는 파슨스의 작업에서 핵심인데 이것은 “사회적” 행위가 아니다. 그의 목적은 “구체적인 행위자의 행위분석과 복수의 행위자를 포함한 전체 행위체계, 행위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었다. 이것은 개별행위자와 보다 일반적인 행위체계라는 두 단계로 작동한다. 파슨스는 개인의 행위를 전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또한 이들의 큰 그룹을 “사회”라고 명명하지도 않았다. 구체적인 행위자는 “부분적으로 사회적 환경”에 있다.

파슨스의 사회적인 것의 개념의 사회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점에서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행위이론의 주관적 범주에 동물의 삶의 수준을 포함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한다. 파슨스는 사회성이 인간의 특권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홉스, 먀셜 및 파레토에 대한 파슨스의 논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파슨스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고심 없이 그 용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공하게 말했을 때, 이 지점에서는 파슨스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기보다는 홉스, 마셜, 파레토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위이론으로 지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파슨스는 뒤르켐에게 의지할 때, 그의 생각과 위치가 더욱 분명해졌다.

파슨스는 뒤르켐의 연구를 검토하면서 뒤르켐의 주요문제가 “사회집단에 대한 개인의 일반적인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뒤르켐의 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파슨스에 의하면 뒤르켐은 궁극적으로 복잡성의 증가, 분업 등의 문제가 사회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것은 인구증가에 의한 생물학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파슨스는 뒤르켐의 사회적인 것의 관찰이 무엇이든지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것과 구별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파슨스의 논증이라기보다는 추측이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뒤르켐은 사회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파슨스는 본인 또는 뒤르켐이 사회적인 것에 대한 개인 행위자를 이야기 하는 것이 이러한 개인과 그들의 더 넓은 사회적 환경 사이의 관계와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파슨스는 구체적인 개인은 개인적인 요소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그의 퍼스낼러티에는 사회적 구성요소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앞선 통찰은 파슨스에게 뒤르켐이 “사회적 사실”이 의미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도록 했다. 파슨스는 뒤르켐은 종종 사회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정의를 제공했다고 본다. 파슨스는 사회라는 범주가 제거과정에 도달했고, 따라서 사회는 잔여범주이다. 이것은 “집합의식”이 어떻게 “사회적 사실”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뒤르켐은 개인과 개인에 외재한 사회적 사실 사이의 거리에 대해 강조했다. 파슨스는 이에 대해 ‘사회적인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는 사회적 사실의 행위자에 대한 외재성에 문제제기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적 사실의 외재성은 어떻게 개인에게 사회성이 생겨났는지 설명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슨스는 뒤르켐의 논의 중에 뒤르켐이 연합(association)에 의존하는 측면을 긍정한다. 파슨스는 사회성에 대해 “사회적인 것의 요소는 집합생활에서의 연합의 사실에 기반을 둔 인간행위의 구체적 실재의 요소”라고 말했다.

파슨스는 자신의 행위이론의 핵심 요소 중 하나를 의지 또는 노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규범을 따르려는 노력을 제외하고는 행위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행동의 규범적 측면과 비규범적 측면을 노력이 매개하기 때문이다. 파슨스는 뒤르켐에게서 숨어있는 자원(自願)론적 요소를 찾았다고 믿는다. 파슨스에 의하면 뒤르켐의 분업론이나 사회적 사실의 영역은 완전히 사회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해줄 다른 요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뒤르켐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열정을 통해 “사회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연구의 어려움을 암묵적으로 해소한다고 평가했다.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 Volume Ⅱ: Weber


파슨스는 베버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베버는 파슨스에게 행위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사회학적 사고 이전에 시도했던 많은 시도들을 결합하는 역할을 했고, 파슨스에게 자신의 행동 이론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어떤 인물에 대해 열정적인 것은 가끔 중요한 결점을 간과하게 한다. 우선 파슨스에게는 베버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 베버는 파슨스가 파악한 것보다 합리성과 자유의 관계를 더 다양하게 서술했을 것이다.

베버는 “사회적 행위(Sozial Handeln)” 개념을 뒤늦게 언급했고, 그러한 행동은 사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보다 더 복잡해 보인다. 파슨스는 책의 제목은 사회적 행위의 구조라고 했지만 그의 저작에서 사회적 행위라는 문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파슨스는 베버의 사회적 행위 개념을 정의하려고 할 때 사회적 행위 개념을 사용하고 이후에는 행동에 대해 서술한다.

베버와 파슨스에 사회적 행위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첫 번째는 베버가 공동체적 행위(Gemeinschafthandeln)대신 사회적 행위(sozial handeln)라는 단어를 삶의 끝자락에서 선택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파슨스가 뒤르켐과 달리 베버에게는 ‘사회성’의 정의에 대해 엄격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슨스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생활과 행위”없이 사회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베버의 ‘사회적’ 행위와 관련된 파슨스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생활과 행위”에 관한 것이다. 파슨스에게 “구체적인 사회생활”의 구성 자체는 논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파슨스는 맑스, 뒤르켐, 베버에게서 나타난 사회와 사회성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탈피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생활은 주어진 것으로 가정되고, 이 사회성은 유전(생물학적인)과 환경(물질로 구성된 실재의 세계)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파슨스는 “사회적” 행위의 개념에서 벗어나 행위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한 논의로 돌아간다. 그러다 파슨스는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의 마지막 장에서 마침내 사회적 행위에 대해 언급한다. 사회적 행위는 그가 권력의 문제로 돌아갈 때 다시 언급된다. 이 사회적 행위체계의 양면은 권력관계의 문제와 권력투쟁의 해결책으로 간주될 수 있는 질서로 구성된다. 또한 파슨스는 사회학을 “공통가치 통합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행위체계 분석의 발전을 시도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파슨스는 “사회성”, “사회적” 또는 “사회적 행위”를 완전히 정의하지 않았고 파슨스는 사회적 행위에 대한 정의를 그렇게 늦게 남겼는지도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파슨스는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The Social System


1937년에 출간된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과 1951년에 출간된 “The Social System”에서 파슨스의 사상은 발전되고 변화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사이에는 본질적인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 근본적인 유사성은 행위의 “사회적 체계 개념(the concept of social systems of action)”이다. 이 두 텍스트의 한 가지 차이점은 파슨스가 후기에 ‘과학적 의미의 시스템으로서의 상호작용 과정’을 다룰 때, 체계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파슨스 행위 개념의 핵심은 “준거틀이 다른 행위자를 포함하는 상황에 대한 한 명 또는 한 명 이상의 행위자(기본적으로 개별 상황에 있는 생물학적 유기체)의 지향에 관한 것이다.”라는 진술이다. 여기서 파슨스는 사회와 자연 사이에 구분을 설정하는데, 개별의 인간은 고립된 생물학적 단위인 동시에 더 넓은 사회체계 안에서 특정한 종류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사회적” 행위자이다. 파슨스는 행위 측면에서 외부 대상의 세계를 ‘사회적’, ‘물리적’, ‘문화적’ 층위로 구분한다. 사회적인 것의 대상은 행위자이고, 물리적 대상은 자아 또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경험적 실제이다. 문화적 대상은 상징요소나 가치양식이다. 파슨스는 이런 편의적 구분을 했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행위를 명백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파슨스는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정의가 부족함에도 그는 문화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보이는 그의 생각에서 또 다른 변화를 나타낸다.) 파슨스 논의의 출발점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있는 곳은 기호와 상징이 공통된 의미를 얻고 행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매체가 제공된다. 의사소통을 중재할 수 있는 상징체계가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진술이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사회적’ 행위는 오직 ‘문화’가 확립되었을 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에는 다양한 상호작용 형태가 존재하지만 이것은 오직 ‘공유된 상징체계’가 발전된 형태에서만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적 전통’은 사회적인 것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파슨스는 사회체계에 대한 정의를 제안할 때, 문화가 사회적인 것보다 앞에 놓인다는 주장과 거리를 둔다.

“사회체계 이론은 우리가 행위이론이라고 부르는 더 큰 개념체계의 일부분이다. 이와 같이 그것은 더 큰 개념 체계에서 구별된 세 가지 하위체계 중 하나이고, 다른 두 가지는 개인이론(the theory of personality)과 문화이론이다. 이 세 이론의 상호의존성은 전체분석의 주요주제를 구성한다.” 사회체계는 행위이론의 하위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파슨스는 사회체계가 “사회적 행위의 완전하고 구체적인 체계”의 한 측면 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파슨스는 이 세 개의 체계가 각각 “물리적 또는 환경적 측면”과 “문화적으로 구조화되고 공유된 상징체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의 행위이론에는 개인적 요소, 문화적 요소, 사회적 요소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회체계에서 사회적인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것과 문화적 측면을 제거하면 만족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에 동기를 부여받는 행위자가 있다. 이것은 사회체계의 사회적 요소로 보인다. 파슨스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동기부여를 핵심 요소로 둔다. 그러나 이런 분석도 사회적 행위라기보다 일반적 행위 묘사로 보이며, 파슨스의 행위이론의 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체계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파슨스는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뒤르켐이 “사회적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정의를 제공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 비판은 파슨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파슨스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긍정적 요소는 “동기부여”이다. 파슨스의 동기부여의 핵심요소는 ‘가치 지향’이다. 그는 가치를 “다양한 지향 중에 선택을 위한 준거로 작용하는 공유된 상징체계의 한 요소”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회적인 수준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는 이전에 문화에 대한 정의로 사용했던 공유된 상징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 사회적인 것의 요소는 문화로부터 추출된다.

행위는 동기부여와 가치지향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인 행위체계는 상황과 관련된 행위요소들의 통합적 구조이다. 이것은 동기 부여와 문화적 또는 상징적 요소의 본질적인 통합을 의미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파슨스가 그의 이론에서 사회적 측면을 구성하는 것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적 측면에 대해 정의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것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다. 그는 행위자(또는 행위자 집단)의 행위, 지향, 동기부여가 사회체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파슨스의 기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파슨스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맑스, 베버, 뒤르켐의 연구보다 진보한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이어서 저자는 이 책의 실질적 분석이 왜 우리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문제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논증하는 것임을 밝히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고 하면서 이 과정을 위해 이전 장의 일부 발견을 돌아본다고 이야기한다.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 1942~ )


마누엘 카스텔 정보사회학의 거장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 1942~)은 가장 권위 있는 정보사회학자, 커뮤니케이션학자로 통한다. 그는 사회학 전공자 제외한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다섯 번째로 많이 인용된 사회과학자이다(2000-2009년 사회과학자 인용지수). 그의 특징은 정보를 키워드로 한 방대한 저서, 독창적 개념어의 창안, 기술과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광범위한 범역의 경험적·심층적 참구, 탁월한 학문적 통찰력으로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는 현 시대에 대한 풍부한 내용과 처방, 그리고 유용한 분석적 도구를 제공한다.


컴퓨팅, 유비쿼터스, 이동통신, 생명공학의 혁명적 발전, 전자적으로 통합된 전 지구적 금융시장, 가상과 현실의 융합문화, 다양한 플랫폼, 전자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컨버전스 등과 함께 일어난 정보기술 혁명은 이제 우리의 일상적 삶의 조건들이다. 마누엘 카스텔에 의하면, 197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발전된 기술혁명은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고 소통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변화시켰고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고 거래하고 관리하는 방식, 살고 죽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마누엘 카스텔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자신의 정교한 분석이 현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미래예측에 대한 강한 거부를 드러냄으로써 미래학자와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이는 정보사회학자는 아니지만 다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나 지그문트 바우만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마누엘 카스텔은 정보시대 3부작(정체성 권력,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밀레니엄의 종언)과 더불어 현대사회의 특성에 관한 선도적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


카스텔은 도시사회학자로 출발해서 정보사회학자, 미디어 사회학자의 길을 걸어온 사회학자이다. 19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카스텔은 20세에 프랑코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가담했고, 이 때문에 프랑스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196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법과 정치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1965년 알랭 투렌(Alain Touraine, 피에르 부르디외, 레이몽 부동, 미셸 크로지에와 함께 현대 프랑스 사회학의 대표적인 학자)의 지도하에 1967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곧 파리고등사회과학연구원 부교수 및 도시사회학 연구조사세미나 지도교수 등을 역임하지만 68혁명에 가담하여 한동안 추방당한다. 이후 마드리드 자치대학교 등에서 계속 연구를 이어가면서 차츰 명성을 얻은 카스텔은 1979년 UC 버클리 교수로 임용되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 15개 대학 방문교수를 거쳐 현재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애넌버그커뮤니케이션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윌리스애넌버그 석좌교수, 카탈루냐개방대학교 연구교수, MIT 기물 및 사회 방문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후에 글은 그의 사상을 키워드로 간략하게 정리한다.


1. 네오 마르크스주의


마누엘 카스텔의 학문 경향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관련이 깊다. 그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을 옹호하고 경제결정론을 배격, 토대와 상부구조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강조한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학문 활동을 시작했다.


기술 패러다임 : 기술 패러다임은 카스텔의 메타 이론 프레임의 출발점이자 문명론을 구성하는 개념어이다. 카스텔은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문명 출현을 설명하기 위해 기술 혁명을 기준으로 패러다임 단계론을 전개한다.


특별한 기술혁명은 문명적 전환을 촉발하는 근본적 힘이다. 이는 정보혁명의 핵심인 마이크로전자, 컴퓨터, 원격통신기술을 중심으로 나노기술, 유전공학, 기계공학, 기술 등 새로운 첨단 기술들을 연결하여 거대한 영역으로 수렴시킬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지식과 법적 제도, 도시, 기업 또는 노동 환경부터 인간의 일상적 경험 체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회구조로의 거대한 전환을 추동하는 힘이었다.


정보화주의는 정보통신기술 혁명으로 가능하게 된 정보가공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증대시킨 데 기초를 둔 기술 패러다임을 지칭한다. 카스텔의 기술패러다임 정의는 단순히 테크놀로지 자체의 혁명이 기술장(場)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물적 기반인 생산, 노동, 사회조직과 정치, 권력, 일상적 삶의 방식들, 가치관 등 사회 시스템 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단순히 물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조직·문화적 변화를 포괄하는 문명적 전환과 같은 의미가 된다.


발전양식 : 정보적 발전양식은 지식의 질(지식 생산, 정보처리, 상징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에 따라 잉여 및 생산성의 수중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각 발전 양식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상이한 목적 또는 수행 원리를 지니며, 이를 중심으로 기술적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조직된다.



농업문명

산업문명

정보문명

발전양식

농업적 발전양식

산업적 발전양식

정보적 발전양식

잉여(생산성) 증가 요인

생산 수단의 양적 수단 증가

신 에너지원 도입과 에너지 사용의 질

지식의 질(지식 생산, 정보 처리, 상징 커뮤니케이션)

기술 패러다임

전 산업주의

산업주의

정보화주의

수행원리

보다 더 많은 노동량과 생산 수단 동원 지향

경제성장(산출의 극대화) 지향

지식과 정보 지향



정보화주의


기술은 물질적 구조를 형성, 사회변화의 기본 동인이다. 카스텔의 이론체계에서는 경제와 기술 문제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의식과 정치문제가 뒤따른다. 카스텔은 정보기술 혁명을 중심으로 사회의 재구조화가 일어나는 지형 변화를 읽어냈다.


정보통신 기술 혁명 : 카스텔은 현재의 정보기술 혁명의 태동기를 1970년대로 잡는다. 패러다임 개념에서 이야기한 것 같이 그 시기가 다양한 핵심 기술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포함한 기술적 발견과 확산의 자율적 역동성이 급속하게 분출된 시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발명, 마이크로 컴퓨터 개발, 애플2 시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이크로컴퓨터 운영체제 생산 광섬유 등의 발명이 이 시기에 일어났다.


네트워크 사회


네트워크 사회는 카스텔의 정보사회 이론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카스텔은 정보시대에서 사회의 주요 기능과 과정이 점차 네트워크를 둘러싸고 조직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정보시대를 네트워크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카스텔은 새로운 문명의 풍경을 구성하는 핵심인자가 네트워크이며, 네트워킹 논리가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면서 생산, 경험, 권력, 문화 등 삶의 전반 조건들이 새롭게 조정되고 있다고 본다. 정보기술 패러다임이 전자정보 네트워크를 따라 조직되는 새로운 사회구조, 네트워크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네트워크 사회는 네크워크 논리가 지배적인 정보화 사회를 의미한다. 카스텔은 정보시대의 사회적 특성을 식별하는데 네트워크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네트워크는 상호연결된 노드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노드는 선들이 상호교차하는 지점이다. 네트워크는 중심은 없고 노드들만 존재한다. 서로 다른 지점에 있는 노드들이 상호소통을 통해 새로운 노드들을 통합함으로써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를 의미한다. 네트워크는 개방성, 유연성, 종합성, 복잡성, 연결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상호소통성과 다중 노드 원리를 특징으로 한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사회의 지형을 구성하는 힘이다. 카스텔은 네트워크의 존재 유무, 네트워크 간 역학 관계가 지배와 변화의 핵심 원천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생활에서의 네트워크는 의사전달구조이다.


카스텔은 정보사회, 지식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화 기술 패러다임을 토대로 정보통신기술로 에너지가 공급되고 사회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구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개방성·유연성·종합성·복잡성·연결성·상호소통성·다중 노드를 특성으로 네트워킹 원리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가 됨으로 기업 조직, 생산과 소비 국민국가 노동 사회운동 정치 문화 자아의 재구성에 이르는 사회구조의 대대적 전환이 일어나고 네트워크 사회는 지구적인 동시에 지역적인 특성을 갖는다.


시공간의 원격화


정보화 문명의 혁명성은 시·공간의 혁명성과 맞물린다. 정보기술 혁명은 정주의 공간과 결빙의 시간 개념을 허물고 녹여 흐름의 공간, 무시간성의 시간으로 변형시킨다. 카스텔은 이를 흐름의 공간, 초(超)시간으로 개념화한다.


생산관계


정보기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더불어 가장 우선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물질적 기초가 되는 생산관계의 변화이다. 산업적 사회경제 발전 모델이 위기에 처하자 자본주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재구조화에 들어간다. 정보기술은 네트워킹, 원거리 통신 정보의 저장과 가공 노동의 유연화와 새로운 의사결정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자본주의의 출현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카스텔은 정보기술을 도구로 재편된 새로운 자본주의를 정보자본주의라 명명하고 정보자본주의의 생산과정, 노동, 자본의 새로운 특성들을 고찰해 생산관계의 변화를 제시한다. 포드주의 이후로 정보 자본주의의 특징은 생산성과 경쟁력의 근원이 지식 기반 정보를 효율적으로 생성·가공·적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점(정보화), 생산·소비·순환의 핵심적 활동은 물론 그 구성요소인 자본·노동·원자재·경영·정보·기술·시장 들이 직접 또는 경제행위자들 사이에 연계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적 규모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글로벌화), 지구적 네트워크 기반의 조직 형태와 정보기술 혁명 사이의 역사적 연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네트워크화)이다.


권력관계


카스텔은 근대적 국민국가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판단한다. 반면 네트워크 국가는 지구화된 세계에서 정치관리의 실제적 운영 단위가 국민국가, 국제기구, 국민구가의 연합체, 지방정부, 비정부기구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개념화된다. 전지구적·국가적·지방적 쟁점들을 협상하고 관리하며 결정을 내리는 다양한 수준의 거버넌스 유형들은 네트워크 국가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네트워크 국가의 출현과 함께 국민국가의 대응도 시작된다. 국민국가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첫 째, 국민국가는 서로 연합하여 국가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둘 째, 국민국가는 지구적 이슈를 다루기 위해 유엔같은 일반적 목적의 기관부터 전문기관, 국제기구와 초국가기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셋 째, 국민국가는 권력을 지역정부와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NGO 참여채널을 개방하고 있다.


권력 : 카스텔의 권력 개념은 베버의 권력개념과 상통한다. 권력이란 다른 행위자들의 결정에 권력을 가진 자의 의지·이익·가치를 관철시킬 수 있는 비대칭적 관계 역량을 의미한다.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통용되는 세 개의 권력 개념을 제시한다.


네트워킹 권력(networking power) : 포함-배제의 원리로 작동하는 권력 형태이다. 지구화된 네트워크 사회의 핵심이며, 네크워크에 포함된 행위자와 조직의 권력으로서 네트워킹 권력이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은 집단이나 개인을 지배하는 권력이다.


네트워크 권력(network power) : 배제가 아니라 포함의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행사되는 형태의 권력이다.


네트워크화된 권력(networked power) : 이 권력은 네트워크 사회에 소속된 여러 기관의 내재된 구조적 지배력이 지배적 행위자의 의지를 타인의 의지에 부과하는 역량으로 이해된다.


카스텔은 권력이 더 이상 국가와 자본주의 기업과 같은 상징적 지배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권력·정보·이미지의 전지구적 네트워크 확산되어 있으며, 가변적인 기하학과 탈물질화된 지리 시스템에서 순환하고 변화한다고 평가한다.


계급 재구조화


정보자본주의의 내적 원리는 유연성이다. 카스텔은 정보자본주의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하나는 자본·노동·정보 및 시장 네트워크가 세계 도처에서 유용한 기능, 인력, 지역성을 통하여 연계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압력, 노동의 개별화와 분절화다. 이는 전통적 계급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노동 계급의 종말 : 노동 가치론의 폐기와 지식가치론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로 전통적 노동계급 감소하고 노동이 비육체, 여성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전통적 노동계급이 소멸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디어 정치


카스텔은 우리가 매개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 역시 그 매개된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미디어 정치’라고 확신한다. 현실적으로 미디어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 정치는 주변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트워크 사회에서 권력의 형태, 권력 장악자의 소재와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당한 권력의 지배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권력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력은 제도화 된 미디어이다. 여기서 카스텔은 현대의 정치활동이 스캔들 정치에 역점을 둔, 매스미디어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음을 강조한다. 정부는 선전도구로 미디어의 사용을 보존하며, 인터넷은 새로운 정치도구이다.

카스텔은 뇌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와의 교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프로그래밍되는 과학적 사실을 네트워크 이론에 적용한다. 우리에게 현실은 객관적이지도 주관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내리고 싶은 결정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마음상태이고, 시민 전체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들만이 국가에서 권력을 창출하고 정치 기관을 지속적으로 장악해 나갈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기 초래할 수 있다. 미디어 정치는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저항 권력에게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상의 존재적 근원에 대한 강조, 그리고 사고행위를 다른 사회적 행위들 가운데의 하나로 보아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 그것이 어떤 형태의 질적 변화를 겪었던 간에 - 마르크스 사상 중에서 아직까지도 그 타당성이 지속되는 한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 과정에 대한 그의 경제적 해석과 함께 계급이론, 그리고 현대 사회 내의 사회생활의 소외적 측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사회학적 업적 중 불멸의 것이 되었다.” - 루이스 코저


전반적인 사상체계


마르크스는 사회를 볼때 진화론적 입장 출발했다. 그에게 진보란 평화로운 성장이 아닌 갈등이었다. 긴장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사회적 갈등은 역사과정의 핵심이다. 그에게 역사의 추진력은 자연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려는 끊임없는 투쟁 속의 인간 관계의 형태였다. 인간은 의식주라는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쟁했고 이것이 만족되면 새로운 욕구를 추구했다. 원시공산발전단계를 벗어나자마자 적대적 협동관계가 시작되었고 분업이 시작되고 적대적 계급들이 등장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상체계는 물론 인간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도 각 시기에 특수성을 지닌 상대주의적인 것이라고 파악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투쟁에 참여해 싸우는 사람에 따라 변화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는 상이한 상황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류의 진보가 주로 관념이나 인간정신의 진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헤겔이나 꽁트의 사상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마르크스의 출발점은 인간의 물질적 조건과 그를 위한 인간의 결합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리나 기후 같은 비사회적 요인으로는 사회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것은 간접적인 것이다.


“국가의 형태는 물론 법률관계도 그것 자체로 또는 이른바 인간정신의 일반적 발전으로 파악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헤겔이 〈시민사회〉란 이름 아래 포함시킨 모든 것, 즉 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뿌리박고 있다. 정치경제학은 시민 사회를 해부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상호연결된 전체로 파악했고 이것은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헤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공헌은 마르크스는 헤겔의 체계에서 중요시되지 않던 변수, 경제적 생산양식을 원인으로 확정시킨 데 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적 현상은 수많은 요인들의 상호작용이긴 하나 경제적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요인들은 결과에 불과했다. 생산관계, 즉 생산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본의 원료나 기술을 이용할 때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총체가 그 위에 사회의 전체 문화적 상부구조가 형성되는 실질적 기반을 이룬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생산 속에서 그들은 필수 불가결하지만 자신들의 의지와도 독립적인 일정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그들이 가진 특정한 단계의 물질적 생산력과도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구성한다. 이것은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출현하게 되는 실질적인 토대가 되며, 여러 형태의 사회적 의식과도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은 생활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과정의 일반적인 특징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특정 계급에 속하게 되면, 사회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취할 행동양식은 이미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계급구조에 있어서 상이한 위치는 상이한 계급이해관계를 가져온다. 그러나 상이한 이해관계는 개인들 간에 계급의식이 형성되었거나 형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관련된 객관적인 위치로부터 생겨난다. 인간 행위의 구속성이라는 객관적 결정 요인을 강조하면서도 마르크스는 개인들을 희생시키면서 사회나 계급을 물화시키지는 않았다. 개인의 사회적 존재이며 따라서 개인의 생활이 표현하는 바는 사회적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개인이 사회적 구속을 없애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계급론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사회는 계급이익의 추구를 위해 대치하고 있는 여러 계급들로 나뉘어져서 존속한다. 마르크스는 희소한 자원과 권력에 대한 그들의 상이한 소유에 의해 그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사회학에서 계급이익이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회적 위치와 함께 특별한 사회적 상황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의 계급이익은 공리주의학파나 영국 고전정치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개인적 이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추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비슷한 위치에 속한 개개인들이 공동의 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대중적 의사소통망이 발달하고 그리하여 자기들의 공동운명을 의식하게 되면서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변화된다. 자기이익의 추구를 조화로운 사회의 조정자로 생각한 공리주의자들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가들 사이의 개인적 이익 추구를 자신들의 계급이익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고 이것이 결국 자본주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합리적인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는 심화되고 공공의 이익이 파괴된다.


소외론


마르크스에게 있어 인류역사는 양명적인 특성을 가진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증대하고 동시에 인간의 소외도 증대되고 있다. 소외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갇히는 역설적인 개념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사회의 모든 중요한 제도들, 종교, 국가, 정치경제 같은 제도들은 소외라는 상황에 특징지어진다. 객체화는 소외가 구체화 된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사람의 존재를 공작인(Homo Faber)로 보았고 따라서 작업장에서의 소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동의 영역에서의 소외는 4가지 측면을 지닌다. 생산한 대상으로부터, 생산과정으로부터, 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동료들의 공동체로부터의 소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의해 산출된 대상, 즉 생산물은 외부적 존재론서, 생산자와 독립된 힘으로 노동과 대치하게 된다. 노동자가 노동의 대상, 생산과정으로부터 소외되면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는 자기 개성의 다양한 특면들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노동할 때 노동자는 그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된다. 노동자와 그 자신의 행위와의 관계는 자기 행위가 그와 무관한 외부적인 어떤 것으로, 행위가 괴로운 것(수동적인 것)으로, 힘이 무력함으로, 창조가 나약함으로, 노동자의 개인적인, 육체적, 정신적 힘과 개인적 삶 등이 그와는 독립적이고 무관한, 그리고 그에게 대적하는 행위로 나타나는 관계이다.” - 칼 마르크스


마지막으로 소외된 인간은 인류공동체로부터, 즉 그의 종(種)으로부터도 소외된다. 마르크스는 그의 후기 저작에서는 소외라는 개념을 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소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상품의 물신화”라는 개념에서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소외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상품은 인간 노동의 소외된 산물이며, 결정된 표현이다.


지식사회학


마르크스 주장에 의하면 사상은 그 사상을 지지하는 자들의 생활조선과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부르주아 작가의 사상은 부르자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부르주아 시대 초기에 나타난 사상들과 그 시대의 최고 정점에서 나타난 사상간의 구분이 이뤄져야 한다. 미성숙하고 투쟁중인 부르주아와 성숙하고 지배적인 부르주아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한 계급을 대표하는 사상가나 정치적 대표자는 꼭 그 계급의 모든 물질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슷한 성품을 공유하고 나타낸다. 마르크스의 후기저작, 1890년대부터 주목할만한 엥겔스와의 일연의 편지에서는 초기의 노쟁적인 저작에 나타나는 날카롭게 모난 측면들이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이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하부구조”가 전적으로 관념적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단지 그것이 “궁극적인” 또는 “최종적인” 결정인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후기저작에서 마르크그와 엥겔스는 상부구조의 내재적 자율성은 인정한다.


사회변동의 동학


사회변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은 그의 모든 저작을 특징지을 정도로 중심적인 사상이었다. 그에게 역사발전의 동력은 “신의 뜻”이나 “객관적 정신”이나 초인간적 주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환경에 있어 능동적이다. 자연과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연합된 노동을 통해 그들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하여 인간은 특수한 생산양식에 부합하는 특수한 형태의 사회조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사회조직은 원시공산주의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적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상대적인 희소성이 지배하는 상황 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경제적 잉여가 축적되었든지 그것들은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지배력을 획득한 사람들에게로 귀속되었고. 그러나 이러한 지배력은 불변의 상태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이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개관


"허버트 스펜서는 매우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부적합하고 추상적인 논리의 바다에 빠지곤 하던 이론가였다." - 루이스 코저


따라서 스펜서의 이론을 탐구할 때는 선택적으로 검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부 사회학사 연구자들은 스펜서가 꽁트의 유기체론적 연구 방법과 진화론적 연구 방법의 계승자로 고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스펜서는 본인이 꽁트로부터 받은 심대한 영향을 스스로 부인하고 항변했고 스펜서와 꽁트는 일반적 지향에서 현저한 차이를 가진다.


“꽁트의 근본적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개념의 진보에 대해 조리 있는 설명을 하려는 것이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외부세계의 진보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꽁트는 관념의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계통관계에 대한 설명을 강조했다. 나는 사물들의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계통관계의 설명을 강조하려 한다.” - 허버트 스펜서


꽁트가 관념의 발전에 주된 목적을 가진 사상가는 아니었다. 스펜서의 주된 목적은 부수적 현상인 정신상태의 진화보다는 사회구조와 사회질서의 진화에 놓여 있었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스펜서에게도 관념을 부수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스펜서에게 있어서 진화란 “상대적으로 불확정적이고 응집성이 없으며 동질적인 상태로부터 상대적으로 확정적이며 응집력이 강한 이질적 상태로의 변동”을 의미하는데 그는 이것이 보편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스펜서는 사회학이 오직 자연적, 진화적 법칙이라는 생각에 기초를 둘 때에 비로소 과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질서가 자연법칙에 속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존재하는 한, 사회학은 완전한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에게 있어 우주의 모든 현상은 진화의 법칙에 종속되는 것이었다. 특히 유기체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에 존재하는 유사성에, 그리고 유기체적 단위와 사회적 단위의 구조와 진화에 나타나는 공통성에 사회학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생물학적 유추가 스펜서의 모든 사회학적 추론에서 특권적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스펜서는 생물학적 유추의 한계성에도 주목했다. 그는 급진적 개인주의자였기 때문에 생물학적 유추를 해나갈 때 집단주의자 꽁트는 부딪치지 않았던 사회학적, 철학적 난점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스펜서의 생물학적 유추가 가져온 가장 유용한 결과는 진화적 성장은 모든 단위의 구조와 기능에 변동을 가져온다는 개념, 그리고 양적 크기의 증가는 분화(differentiation)를 심화시킨다는 생각이었다.


성장과 구조와 분화


스펜서에 의하면 유기체적 집합체와 사회적 집합체는 모두 크기가 점차적으로 증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체 사회의 성장은 두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때로는 분리의 과정으로 때로는 통합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단위의 크기가 커지면 반드시 구도의 복합성(complexity)도 증가하게 된다. 스펜서에게 있어 성장의 과정은 하나의 통합 과정이다. 만일 유기체, 사회적 단위가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즉 생존경쟁을 한다면 통합은 반드시 구조와 기능의 진보적 분화를 수반해야 한다. 진화단계에서 낮은 수준의 동물은 각 부분이 명료하지 않고 동질적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으로 이동할수록 분할과 하위분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더 결정적으로 된다. 사회적 집합체도 마찬가지로 각 부분이 서로 유사한 상태에서 서로 다른, 분화된 상태로 성장한다. 또한 서로 달라진 부분은 상호의존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분화가 진전되면 상호의존성이 진전되며 통합이 진전된다. 분업으로 인해 동물은 물론이고 사회도 하나의 살아 있는 전체를 이루게 된다. 낮은 수준의 집합체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각 부분들의 활동이 거의 독자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발전된 집합체에 있어서는 조합이 각 부분의 생활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적 활동을 가능케 한다. 수준이 높은 복합사회에서는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는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각 부분의 활동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규제체계(regulating system)”가 반드시 출현하게 된다. 진화 초기의 사회 규제센터는 “적과 전리품”에 관련하여 외적 환경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했다. 그러나 복합적인 기능 때문에 각 부분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적응할 수 없게 되는 후기에는 이들 규제체계가 내적인 규제와 사회통제를 담당하기 위해 필요하게 된다. 스펜서에게 있어 내적규제의 엄격성과 범위는 사회의 형태를 분류하는 주요한 구분 지표가 되었다. 스펜서는 사회의 내적통제 범위, 진화적 복합성의 정도로 사회를 분류하려 했고 이 두 기준은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스펜서 이론에 난점을 낳기도 했다.


사회형태 : 군사형사회와 산업형사회


스펜서는 단순사회(simple society), 복합사회(compound society), 이중복합사회(doubly compound society), 삼중복합사회(trebly compound society) 등으로 구분했다. 그가 시도한 것은 구조적 복합성 정도에 의거한 분류이다. 그는 정치조직의 복합성에 따라 사회를 분류하고 사회의 정착양식의 진화에 따라 유목형, 반정착형, 정착형 등으로 서열화했다. 사회는 보통 단순사회로부터 복합사회와 이중복합사회로 각 단계를 거쳐 필연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복합성의 정도에 의한 사회 분류에 덧붙여, 그는 내적 규제 형식으로 군사형사회와 산업형사회를 구분했다. 여기서는 사회조직상의 차이점을 중시했다. 중요한 점은 이 분류가 진화단계에 기초한 구분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한 사회의 주요 환경을 구성하는 다른 사회와의 관계에 따라 사회구조의 형태를 설명하려는 사회 이론에 기초하며, 이 관계가 평화적인가, 군사적인가의 여부가 사회의 내적 구조와 그 규제 체계에 영향을 끼친다. 평화적 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분산된 내적 규제 체계를, 군사적 관계는 강제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가져온다. 여기서는 앞선 사회구분처럼 사회 진화의 수준에 의존하지 않고, 인근사회와의 갈등의 존재여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군사형사회의 특징은 강제이고 산업형사회의 특징은 자발적 협동과 개인적 자율에 기초한다.


군사형사회 : 보존과 세력강화를 위해 집단적 방어와 공격, 강제적 협동과 질서의 강요, 개인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권리 제한, 모든 사적조직 배제, 집권적, 서열·직업·지역이 고정되어 지위 상속, 외부와 교류 없는 보호주의, 권위에 대한 믿음


산업형사회 : 개인적 서비스의 평화·상호적 수수, 자발적 협동, 국가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 사적 조직 고취, 분권적, 지위 이동 존재, 자유무역, 개인중심주의


스펜서는 진화적 복합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았지만 군사형 - 산업형으로 분류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축소시켰다. 그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진보주의자는 아니었다.


“1815~1850년 시기와 1850~연재를 비교할 때, 우리는 군사력의 증가와 더욱 빈번한 갈등, 군사적 정신의 부활을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강제적 규제는 더욱 심화되어 왔다. 개인의 자유는 감소했다. 이것은 전체 사회생활에서 군사적 유형이 지배적이 되는 강제 훈련으로의 복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 허버트 스펜서


진화 - 단선적인가 복선적인가?


초기의 스펜서는 인류의 단선적 진화, 즉 인류진화는 한 인간이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꼭 같이 명확하게 결정된 단계에 따라 전개된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한 표현을 많이 했다. 그러나 성숙기의 스펜서는 전체로서의 인류 진화는 분명하지만 특정사회는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진보가 나타나는 만큼이나 퇴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는 꽁트와 같은 엄격한 단계론자의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구별했다. 스펜서는 침체와 퇴보라는 요소를 이론에 추가하면서 유연성을 얻었지만 우주 수수께끼에 대한 보편적인 해답으로서의 호소력은 잃고 말았다.


기능주의


스펜서는 기능의 변화 없이 구조의 변화는 있을 수 없으며 사회 단위의 단위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행위의 점진적인 분화가 야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펜서의 출발점은 언제나 분석하려는 특정현상이 수행한 기능을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하나의 조직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발전하였는가를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허버트 스펜서


스펜서는 사회제도를 그것이 속해있는 전체적인 구조와 관련시켜 분석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상하고 불쾌한 것으로 보이는 관습들이 다른 특정사회에서도 전혀 무가치했을 것이라고 파악하는 공통적인 오류에 대해 그는 ‘원시인의 미신도 단순히 쓸모없는 것으로 보는 대신 그것이 사회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스펜서는 사회제도가 행위자들의 정교한 의도나 동기의 결과가 아니라 기능적, 구조적 위기로부터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인간행위의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스펜서는 제도를 연구함에 있어 진화단계와 단계가 수행하는 기능의 측면을 함께 연구할 것을 요구했다.


개인주의 대 유기체론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던 스펜서는 그의 유기체론적 접근 방식과 개인주의를 조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꽁트는 기본적으로 반개인주의적 철학을 지니고 있었고 개인이 사회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반대고 스펜서는 사회의 기원을 개인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용어로 파악하고 사회를 개인의 목표달성을 위한 도구로 파악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 결속하는 것은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회의 질이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질에 의존하는 것이다. 스펜서는 단위들의 속성이 전체모임의 속성을 결정한다는 일반원칙을 주장했다. 그러나 스펜서는 개인주의적 토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꽁트보다 엄격하게 유기체론적 사고를 추구했다. 그는 사회유기체와 생물유기체간의 유사성을 밝힌 후 차이점을 밝히는 데 노력했다. 생물유기체는 치부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사회는 언어라는 매개체에 의해 결속되어 있다. 그럼에도 스펜서는 집합적 정신을 소유한 사회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했고 개인들은 기능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자의 행복과 만족을 갈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임과 적자생존


스펜서는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사회적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을 꽁트와 동일하게 굳게 신뢰했다.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사회가 법칙을 가조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약 사회에 법칙이 없다면 그 현상에는 질서도 확신도 체계도 있을 수없다. 마약 법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른 우주의 법칙과 비슷할 것이다.” - 허버스 스펜서


그러나 꽁트는 사회의 법칙을 발견하려는 목적이 사람들이 사회세계 안에서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 반면 스펜서는 연구의 목적이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않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학자인 목사의 정신적 힘을 통하여 사회를 인도하려 했던 꽁트와는 달리 스펜서는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정부나 개혁가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확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펜서에게 국가가 유일하게 지닐 수 있는 힘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스펜서에 의하면 좋은 사회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간의 계약 위에 기초한 사회이다. 국가가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이것을 방해하면 그것은 전제적이고 군사적인 사회 질서 초기로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국가의 개입은 개인들의 사회적응의 교란을 낳을 뿐이다. 이런 그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맬서스(Malthus)에게 배워온 적자생존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재능을 요청받고 이를 통해 지적으로 열등한 집단이나 개인은 소멸될 것이며 전반적인 지식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객관성의 장애물


꽁트와 마르크스와는 아주 다르게 스펜서는 사회과학에 있어서 객관성의 문제를 상당히 깊게 고민했다. 꽁트도 사회연구에 있어 과학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에게 과학적 객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으며 마르크스도 초연하고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이론이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실천과 연결된 것이었다. 이와 달리 스펜서는 연구자 자신이 참여하는 있는 사회세계의 탐구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특수한 객관성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여기서 자연현상의 연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는 사회과학자는 편견이나 감정, 즉 시민으로 생활하는데 필수적이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사용할 경우 그 작업을 무효화시키게 되는 편견과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저작 “사회학연구”는 절반이상 편견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장의 제목은 “애국주의의 편견”, “계급적 편견”, “정치적 편견”. “신학적 편견”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스펜서는 여기에서 사상적인 또는 물질적인 이익의 옹호가 어떻게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고 또 왜곡시키게 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초보적인 지식사회학을 발전시켰다.

고전사회학 공부를 조금 나눠볼까 합니다. 순서는 오귀스트 꽁트(Auguste Comte) -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 칼 맑스(Karl Marx) - 에밀 뒤르케임(Emlie Durkheim) -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 막스 베버(Max Weber) -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 칼 만하임(Karl Mannheim) 순서입니다.


오귀스트 꽁트(August Comte, 1789~1857)




1. 사회적 배경


오귀스트 꽁트가 살았던 시대는 정권이 일곱 번이나 뒤바뀌고 수많은 폭동과 반란, 그리고 대중 봉기가 나타나던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프랑스는 무질서와 혼란의 온상이었고 더불어 유럽 과학발전의 독보적인 중심이이기도 했다.


2. 개인적 배경


꽁트는 1789년 1월 19일 남부 프랑스 도시 몽펠리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이며 신중한 왕당파인 하급공무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년의 꽁트는 혁명을 경멸했고 가톨릭 박해를 비난했다. 그는 질서에 애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린 꽁트는 작고 섬세하며 많은 병을 앓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공화주의자, 황제를 혐오하는 혁명을 꿈꿨다. 다니엘 앙꽁뜨르(Daniel Encontre)는 꽁트의 수학교사로 개신교 목사였고 그는 꽁트에게 광범위한 지식의 롤모델이었다. 꽁트는 거의 모든 기간 파리에 살았다. 이공대학에 진학했지만 이 이공대학은 황제에 의해 군대식으로 개편되었고 꽁트는 이에 반발했다. 공화주의자였던 꽁트는 제정과 왕정에 열렬한 비판자였고 결국 처벌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한참 뒤에야 재입학 기회를 받지만 결국 이공대학에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수학 사강사(私講師)를 하면서 영어로 된 기하학 서적에 참여하는 등의 일을 했다.


쌩-시몽과의 만남


1817년 여름 꽁트는 정기간행물 산업(Industrie)의 편집자였던 앙리 쌩-시몽(Henri Saint-Simon)을 만나게 되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쌩-시몽은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질서하고 불같은 성미를 지닌 사람으로 꽁트의 생애와 저작에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젊은 꽁트는 벌써 60이 다 된 쌩-시몽에게 매력을 느꼈다. 꽁트는 그의 비서이자 가까운 협력자였다. 꽁트는 쌩-시몽에게 돈을 받지 못하면서도 함께 일했고 둘은 서로 영향을 끼쳤다. 꽁트는 쌩-시몽을 만난 이후 곧 엘리뜨적 견해로 전향하게 되었고 이런 견해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줄곧 유지되었다. 꽁트가 쌩-시몽과 가깝게 지내던 시기에 한 구상은 꽁트 후기 주된 사상들의 핵심이 담겨있다. 1824년 둘을 논문에 누구의 이름을 쓸 것인가를 문제로 돌아서게 된다. 또한 행동주의자였던 쌩-시몽은 언제나 당장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반해 꽁트는 개혁적인 행동에 앞서 이론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과 과학적 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 어떠한 실천적 영향을 도모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꽁트는 당시 지식인들과 교류했지만 제대로 된 직장도 지위도 소득도 없었다. 꽁트는 1825년 결혼했고 안정적이지는 못했지만 잠시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가졌다. 이 기간 꽁트는 실증철학을 세련되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꽁트는 사강좌를 열었고 많은 지식인이 참여했지만 4번째 강의를 하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쇠약을 겪었다. 이 기간 꽁트는 투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나 고향 몽펠리에로 긴 여행을 한 이후 서서히 회복되었다. 1829년 강의는 시작되었지만 꽁트는 점점 과학자들의 모임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꽁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과학의 모든 업적을 자신의 백과사전식 학문체계에 포함시키려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야망을 매우 경멸하였다.

실증철학강의를 집필하면서 열심을 다하는 동안 꽁트는 재정적 어려움, 학계의 비난, 가정의 불화를 겪으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1838년부터 더 이상 과학서적은 읽지 않고 단지 소설과 시민 읽기로 작정했다. 말년에 그가 되풀이해서 읽었던 책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꽁트의 저작은 영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제자도 생기기 시작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논리학 체계(1834)에서 꽁트를 “일급의 사상가”들 중 하나도 꼽고 그를 격려했다. 밀은 꽁트를 지지하는 영국학자들에게 돈을 모아 그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적이 많았던 꽁트는 대학에 재임용되지 못했으나 클로틸드 드 보(Clothilde de Vaux)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연인은 세상을 떠났고 꽁트는 남은 여생을 “나의 천사”를 그리는데 바치기로 했고 실증정치학체계는 자신의 애인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지성에 대한 감성의 우위를, 정신에 대한 감정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꽁트는 오랫동안 남성적 사유의 거친 서경이 지배해온 인류에 대한 따뜻한 여성적 힘의 치유력을 거듭 강조했다.

꽁트는 자신이 최고사제인 인류교라는 종교를 이야기했고 여기서부터 합리주의자들과 추종자들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모든 문서에 “보편종교의 창시자, 인류교의 대사제”라고 서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청중들을 새로운 신조로 개종시키려 노력했다. “실증교리문답”, “보수주의자들에게 바람”같은 호소문을 쓰기도 했다. 꽁트는 사도 바울처럼 해외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실증학회”의 정기집회가 있는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 ~ 9시 사이 꽁트는 집에서 파리의 제자들과 접견했다. 전직 공예사, 미래의 정치인, 지식인, 노동자들이 그의 스승에 대한 큰 사랑 안에 뭉쳤다.


“꽁트는 젊었을 때 지녔던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이제 멀리 벗어났다. 몽펠리에의 저항적이었던 학생이 이제 복종의 미덕과 질서의 필연성을 설교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루이스 코저, 사회사상사 23p.


3. 지적 배경


오귀스트 꽁트는 18세기 후반 진보철학, 특히 튀르고(Turgo)와 꽁도르쎄(Condorcet)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꽁트는 계몽주의에 한정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18세기 전반 지배적인 개인주의적 사회이해 방식에 철저한 반대자였던 드 보날(de Bonald)과 드 메스뜨르(de Maistre)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상가였다. 그는 사회질서의 붕괴와 그로인한 충격 속에 전통주의적 사상과들과 같이 도덕공동체를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서 장 바띠스트 세(Jean Baptiste Say)에 이르는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꽁트는 칸트를 “실증철학에 가장 근접한 형이상학자”로 간주했고 1824년에는 칸트를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많은 노력을 절약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베이컨(Bacon)과 데카르트(Decartes)의 상이한 과학적 전통의 계승자로 자처하였으나 보쉬에(Bossuet)의 가톨릭적 관점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외에도 유명한 자연과학자들, 몽테스키외(Montesquieu), 흄(Hume), 드 꽁디약(de Condillac)과 관념학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꽁트는 전통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어느 하나에 몰입하지 않고 여러 주장을 섭렵하며 나름의 독자적인 종합을 이루었다.


진보의 전통


꽁트는 꽁도르세의 영향을 거듭 인정했다. 그러나 꽁도르세의 두 가지 주요한 주장, 즉 개인주의에 대한 신념과 상대적 평등성에 대한 견해는 따르지 않았다. 꽁트의 생각은 강한 위계적, 반개인주의적, 그리고 차등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질서의 전통


꽁트는 전통주의자들을 무척 찬양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과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등을 돌린 사람들은 도덕덕 공동체의 연대감에 의해 결속되지 않은 사회는 고립된 원자들로 이루어진 모래산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라 생각하였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계몽주의자들의 자유로운 개인을 전통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개인이라고 평가했다. 질서, 위계, 도덕공동체, 정신적 힘, 개인에 대한 집단의 우위는 꽁트의 사상에서 많은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꽁트는 계몽주의로부터 배운 낙관적, 미래지향적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고 과거지향적 견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자유주의의 전통


꽁트는 아담 스미스를 빛나는 철학자라고 불렀고 그를 찬양했다. 꽁트는 분업에 대해 긍정적이었으나 자유방임이 무정부상태를 체계화 한다고 생각했고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어떤 형태의 조정적 간섭도 없애는 것을 일종의 교리”로 내세우는 한 꽁트는 그들을 자신의 세계관과 함께 존립불가능한 적대자로 여겼다. 그래도 꽁트는 분업을 비판하거나 찬양할 때 모두 스미스의 전통에 입각해서 작업을 하였다.


4. 사상 개관


꽁트는 사회학의 아버지로서 인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진행과정을 예견하기 위해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을 만드는 일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를 지배해 온 하나의 운동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사회적 안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를 공식화하려고 노력했다. 사회동학(변동과 진보), 사회정학(질서와 안정)은 콩트의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핵심이다.


꽁트는 인간사회도 자연계를 연구하는 것과 똑 같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사회가 복잡하지만 그래도 기본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동일하다고 이야기했다. 자연과학이 이런 법칙성을 찾아낸 것에 반해 사회과학은 이런 법칙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꽁트가 처음 정립하려고 했던 새로운 과학을 “사회물리학”이라 불렀다. 후에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결합시켜 “사회학(Socialogy)”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이것은 사회연구에 있어서도 경험적 방법과 인식론적 기반에 있어서 뿐 아니라 인류에 대한 기능에 있어서조차 전적으로 자연과학을 추종하여 만들어졌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이로움을 가져다 줘야 하고 인간조건을 개선하는데 몫을 담당한다.

"과학으로부터 예측이, 예측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이처럼 사회적 행위를 인류에게 유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 진보의 운동법칙을 정립하고 그리하여 사회질서와 시민적 협조의 기반이 확립되어야 한다. “인간이든 신이든 지배자의 자의적인 간섭 때문에 늘 교란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믿는 한 다시 말해 사회적 행위는 아무런 법칙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시킬 일치된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학이 인간사에 있어서 발전과 질서의 불변적 법칙을 정립하고 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회현상을 불변의 자연적 법칙 즉 각 시대에 있어서 사회적 행위의 한계의 특성을 분명하게 규정해주는 법칙에 전적으로 복종시키는 외에는 어떤 질서나 합의도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회의 기본법칙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오만한 자부심을 고칠 수 있게 된다. 즉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 순간에 있어서도 사회적 행위라는 사회유기체의 적절한 기능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을 수준으로 제한되어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사회적 법칙들을 그들 자신의 목적에 알맞게 변경시킴으로써 주어진 한계 내에서 의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회)과학의 임무는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시키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그 법칙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 중략 - 어떤 사회질서가 행위에 부과하는 구속조건들을 명확히 파악함으로써 인간은 필연성이 경계지어 놓은 영역 내에서 그들 사회를 자유로이 개조할 수 있다.”

꽁트의 실증과학은 오랜 전통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즉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주장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영원히 타당한 율법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인간 이해의 끊임없는 발전과 과학적 작업의 자기수정적 성격을 강조했다. “존재의 본질과 그것의 최종, 궁극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탐구는 늘 절대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상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은 상대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실체, 관찰의 점진적인 발전에 따르는 끊임없는 사색의 진정 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꽁트는 과학의 강한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자유로운 참구의 권리나 독단적인 무한한 양심의 자유 같은 것에 대한 환상적인 요구를 포기하는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적절한 지식을 공유하는 상황 하에서 보편적으로 존중되는 기본법칙에 근거하여 여러 결과들의 실제적인 상호연관성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과학적 논의가 지금 요구하는 일은 헛된 사색이나 구속되지 않는 이상주의에 대해 강한 제한을 가하는 일이다.


5. 탐구의 방법


사회학이 진보의 법칙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할 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관찰과 실험 그리고 비교의 방법이다. 관찰이란 예비적 이론에 의해 한 사회적 사실이 다른 사실과 관련을 맺게 될 때 비로소 그 사회적 사실은 과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관찰은 현상의 정적이거나 동적인 법칙들에 입각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험은 사회과학에서 부분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직관적 실험은 인간세계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상의 규칙적인 과정이 명확한 방식으로 간섭을 당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실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상의 규칙적인 과정이 명확한 방식으로 간섭을 당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실험이 이루어진다. 사회형태에 있어서의 혼란은 개인유기체에 있어서의 질병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병리적 현상의 연구는 정상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유리한 방법일 수 있다.

과학적 탐구방법 가운데 사회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집단 간의 비교가 중요하다.

네 번째는 역사적 방법이다. 인류의 일관된 상태에 대한 역사적 비교를 새로운 정치철학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과학적 방안일 뿐 아니라 그 본질에 관계없이 과학의 하부구조를 형성한다.


6. 인류의 진화법칙


꽁트는 중심 개념인 인류의 진화법칙 또는 삼단계법칙을 정립했다.

인류의 정신적 진화는 개인의 정신 발달과 병행해 왔다. 인간집단이나 전체 인류의 발전을 다루는 계통발생론은 개별적 인간유기체의 발전을 다루는 개체발생론에서 찾을 수 있다. 꽁트에 의하면 인간정신은 진화된 것이다. “새로운 체계의 구성은 낡은 것이 붕괴되어야만, 그낡은 정신적 질서의 잠재성이 완전히 소멸되어야만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정신이라도 그 이전 단계의 정신이 붕괴되기 전에는 다가오는 시기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신학적·공상적, 형이상학적·추상적 또는 실증적 단계를 거쳐 왔다. 신학적 상태에서 인간 정신은 존재의 근원과 모든 결과의 궁극원인을 찾고 모든 현상은 초자연적이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상태에서 정신은 모든 현상을 산출해 낼 수 있는 추상적 힘, 확실한 실체들을 상정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실증적 상태에서 정신은 절대자 우주의 기원과 종착지 모든 현상의 원인 등에 대한 쓸모없는 탐구를 초기하고 대신 법칙을 연구하는데 몰두한다.”


꽁트는 인류의 역사는 낡은 질서의 소멸이라는 진통으로부터 순조롭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붕괴로 이루어진다. 또한 인류 역사는 유기적 위기적 시기의 두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유기적 시기에서는 사회적 안정과 정신적 조화가 폭 넓게 이루어져 있고 사회의 여러 부분들이 균형 상태를 이룬다. 반면 위기적 상태에서는 기존의 확신이 무너지고 전통이 붕괴되고 사회가 근본적으로 불균형상태에 존재한다. 그러나 위기도 결국 유기의 필연적 전주곡일 뿐이다.

꽁트의 삼단계 법칙은 정신주의·관념론적 편향성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인류의 각 정신적 단계를 그에 대응하는 사회조직이나 정치적 지배유형의 특성들과 연결했다. 신학적 단계는 사제와 군인에 의해 지배되었다. 가족이 전형적인 예이다. 형이상학적 단계(대체로 중세와 르네상스)에서는 성직자와 법률가들이 주도 집단을 주도하고 국가가 중요하다. 실증적 단계에서 집단은 기업경영자들과 과학자의 도덕적 가르침으로 지배한다. 전인류가 실질적 사회 단위이며 정신적 진화가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진화정도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는 인구증가이다. 더불어 분업이 사회진화의 강력한 추진력이다.


7. 과학의 위계


꽁트의 두 번째 이론은 과학의 위계론이다. 꽁트는 인류의 발전이 명백한 단계를 지니며 과학적 지식도 비슷한 발전단계를 거친다. 과학도 상이하게 발전정도가 다르다. 자연과학 중 가장 일반적이고 단순한 천문학이 제일 먼저 뒤를 따른다. 가장 복잡하고 다른 모든 과학들이 발전하여야 나타날 수 있는 사회과학은 위계상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다. 사회과학은 실증적인 방법의 완성이다. 사회과학은 여러 과학이 발전시킨 모든 자원을 동원할 뿐 아니라 비교가 아닌 연속적 계통론에 의해 탐구되는 역사적 방법까지 사용한다. 사회과학 바로 아래에는 생물학이 있는데 사회과학은 이에 크게 의존한다. 생물한은 다른 과학과 달리 전체적인 성격이 있다. 유기체 전체를 연구함으로써 발달한다. 사회학이 생물학과 공유하는 있는 점이 바로 유기적인 측면과 유기적인 단위에 대한 강조이다.


8. 사회정학과 사회동학


생물학에 해부학과 생리학의 구분이 있듯 사회학에서도 정학(靜學)과 동학(動學)을 구분하는 것이 옳다. 이 구분은 사실들의 구분이 아닌 이론적인 구분이다. 사회의 진보와 질서, 변동과 안정은 곧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에 대응된다. 질서는 사회적 존재의 영속적인 조화에 기초하고 진보는 사회발전의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서나 빈보, 정학과 동학은 늘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학의 정태적 연구는 사회체계의 상이한 여러 부분들간의 작용-반작용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회 내에 이루어지는 균형적인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며 전체로서의 사회에는 각 부분들간의 자생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조화가 결핍되었을 때 사회는 병리적인 사례에 직면하게 된다.

꽁트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개인이 아닌 가족이라고 판단했다. 기본적인 이기적 성향이 사회적 목표를 위해 다듬어지고 길들여지는 곳이 바로 가족이다. 개인이 타고난 개성에 기초하여 성장하고 강력한 본능에 순응해 가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족이다. 개인은 타고난 개성에 기초해 성장하고 강력한 본능에 순응해가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족이다. 가족은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인 동시에 모든 결합체의 원형이다.

꽁트는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하여 파악하였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곤란한도 알고 있었다. 생물유기체는 피부로 둘러싸여 있어서 물리적 경계를 분명하게 갖고 있지만 사회적 단위체는 정신적 결합으로 하나가 된다. 그리고 꽁트는 언어와 종교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

언어는 이전세대의 사상과 선조의 문화가 저장되어 온 그릇이다. 언어는 개인을 결합시켜주고 이전 세대와 연계시켜준다. 공통의 언어는 연대와 합의의 필수적 요소이다. 또한 공통의 종교적 신념은 개인들의 상이함에 공통의 바탕을 제공하고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극복하게 해준다. 또한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들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질서의 근원이다. 정부의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어떤 세속적 권력도 정신적 힘의 지지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언어와 종교 외에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제3의 요인은 분업이다. 원칙적으로 분업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의 발전을 도와주면서도 각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개인들의 연대성에도 공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분업은 일반적 정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소멸하거나 제한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꽁트는 언어, 종교, 분업 등 사회제도를 고찰할 때, 전체적인 사회질서를 파악했고 이것은 기능주의적 사회 분석의 최초로 파악된다.


9. 규범적 학설


꽁트는 앞으로 다가올 실증사회, 즉 새로운 실증적 종교의 정신적 힘과 은행과 기업 지배자들의 정신이 지배할 사회에 대한 복잡한 청사진을 그렸다. 그들은 과학적인 사회학자인 동시에 설교자이기도 하고 우월한 지식의 힘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의무와 복종을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지도자가 되고 그 집단의 검열관이 될 것이다. 미래의 실증적 사회통치(sociocracy) 아래서는 선악에 대한 실증적인 지식을 획득한 인류교의 성직자(동시에 과학자)가 사람들을 의무에 굳게 묶고, 타고난 권리라는 파괴적인 사상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인류교의 최고사제가 조화와 정의, 진실과 평등으로 전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새로운 실증적 질서는 사랑을 원리로, 질서를 기초로 그리고 진보를 목표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지녀온 이기적 성향은 이타주의로 바뀔 것이며 개인들은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할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과 법칙적으로 결정된 방향을 통하여 미래에 대한 예측을 구체화할 수 있는 지혜를 지닌, 영혼을 다루는 실증적 공학자들이 따뜻한 존경을 받을 것이다. 꽁트는 특히 말년 동안 사회과학자로뿐만 아니라 인류를 모든 고뇌로부터 구원 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 또는 창시자로 자처하였다.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사회학 이론에 대해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이론가는 굉장히 낯설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나 마페졸리 같은 이론가들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이들을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 사회학 이론서들에도 일정부분 동일하다. 이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은 크게 느껴지는데 반해 사회학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너무 작게 느껴지거나 별로 다룰 필요가 없게 느껴졌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호명되는 데리다, 들뢰즈, 푸코 등의 이름은 사회학자라고 볼 수 없고 철학자로 분류되는 인물이기도 했고, 20세기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들로 손꼽히는 위르겐 하버마스, 니클라스 루만,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인물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하버마스는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자이고, 루만은 근대적 주체를 부정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신유럽적 사고를 제시했다고 느꼈고, 부르디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허무주의적 비난'이라고 표현하며 동시대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격렬한 논쟁을 펼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더니즘 다음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라고 느꼈고 동시에 ‘사회학은 포스트모던에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데?’, ‘지금의 근대는 19세기의 근대와 분명 다른데 사회학에서는 이 새로운 근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런 궁금증을 오랜 시간 안고 있었다. 김홍중 교수님의 저서 '사회학적 파상력'을 읽고 공부하며 김홍중 교수님에 대해 알아가던 중, 김홍중 교수님이 쓴 글 중 ‘후기근대적 전환’이라는 글이 있어 이에 대해 공부한 것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후의 내용들은 ⌜현대사회학이론⌟, 다산출판사, 2013에 수록된 김홍중 교수님의 ‘(사회학 이론의) 후기근대적 전환’을 요약한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여 압축적으로 옮겨적은 수준이니 자세한 것은 해당 책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20세기 후반 사회학 이론의 두 맥락과 후기근대론 : 포스트모더니즘, 근대성의 연장, 그리고 후기근대론


 1970년 이후 서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조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류에 상징적인 저작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1979년 출간된 료타르(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다. 이 책에서 료타르는 이전의 ‘거대서사’, ‘메타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담은 형용사가 곧 ‘포스트모던’적인 것이라고 밝힌다. 료타르는 근대성을 부정하면서 근대사회의 근본을 구성했던 국민-국가, 시민사회, 정당, 직업체계, 제도, 역사적 전통과 기억, 사회적 연대, 규범적 합의, 이데올로기 등은 20세기 후반의 사회에서 더 이상 사회를 응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이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고, 철학과 문화분야에서 발생한 다각적인 근대성에 대한 반성의 흐름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미 익숙한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은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고, 사회이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프랑스의 사회이론가들이 이끌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자신의 저서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에서⌟를 통해 테러리즘에 침묵하는 20세기 후반의 대중들이 근대적 공중(public)과는 다른 포스트모던적 주체임을 지적하며,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종언을 선포한다.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근대적 국가나 주체를 부정하며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부족(tribu)’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진단했고 더불어 일상성·신화·욕망·삼정·패션·노마디즘 등의 현상들이 삶과 문명의 포스트모더니즘화(postmodernization)라고 분석해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와의 급진적인 단절을 설정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사회에서는 근대성의 기초적 원리들로는 사회의 지속이 불가능한 한계점에 다다른다고 파악한다. 또한 서구의 근대는 이성·남성·유럽·제도·역사·해방·민족 등의 주류적 기표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런 중심 가치들이 다른 가치를 대상화시키고 억압시켜 타자들의 형상은 부정적 방식으로 실체화하고 배제한다. 이런 까닭에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근대의 주류적 기표들에 대한 맹렬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류에 반기를 든 이론가들 또한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의 계몽기획이 실패하지 않았고 아직 미완에 머물러 있음을 주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도전했다. 하버마스는 미완의 근대를 구제할 가능성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에서 찾았다. 하버마스는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생활세계(Lebenswelt)에 잠재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복원시킴으로써 근대의 지대적 합리성인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이성과 폐기가 아닌 이성의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써 근대성을 발전, 연장시킨다.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근대는 미완의 기획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처럼 폐기되거나 단절되어야 하는 유산 또한 아니다. 근대성은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 미완의 기획을 완성시킬만한 충분한 자원이 존재한다.

 앞서 본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이론과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사회이론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근대성의 전개과정에서 ‘근대성과 단절될 것이냐, 연속될 것이냐’의 문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언어·관점·가치·방법을 통해 규명해낼 것을 주장하고 하버마스에 의하면 서구의 근대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두 가지의 이론적 입장, 단절론과 연속론을 모두 비판적으로 지양하면 등장한 이론이 바로 후기근대론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론 흐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명적 초월의 선언은 구체적인 사회현실과 대면시키고 검증하며 비판하고 근대성의 주제로 회귀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식의 연속론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이들은 근대의 가능성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근대의 낙관주의를 비관적으로 해체한다. 이런 이론의 흐름의 구성하는 학자와 이론으로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안토니 기든스의 ‘탈전통사회(post-traditional society)’,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등이 있다.


후기근대론의 전개


 후기근대적 전환을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일정부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의 사회가 19세기 후반의 사회와 매우 다른 사회구성을 하고 있음에 동의한다. 1980년대 이후의 서구사회는 복지국가의 쇠퇴, 금융자본주의의 등장, 환경문제, 정치적 참여의 쇠퇴, 사생활과 친밀성 영역에서의 새로운 사회문제들, 양극화와 신빈곤의 등장, 냉전의 종식과 자유주의의 잠정적 승리, 이데올로기적 동원력의 약화, 개인화의 심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의 문제를 겪는다. 후기근대 이론은 이러한 사회변동의 성찰의 결과물이다.

 20세기 후반의 사회문제들은 고전사회학이 해결하고자 했던 산업사회의 문제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기근대성을 논하는 이론가들은 근대와 포스트포던의 단절을 설정하며 근대를 극복/지양된 전대미문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이 보았을 때 20세기 후반 선진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은 근대성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세기의 근대와 20세기의 근대에서 단절이 아닌 일종의 연속성, 최소한의 재귀성(reflexive)을 발견한다. 이틀은 변화와 상대성을 긍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동시대 보다 더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20세기 후반의 사회현실은 근대성의 고유한 이성과 합리성의 만개가 가져온 부정적 상황들에 의해 특징되고 이런 문제들은 합리성에 의한 구제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하버마스의 낙관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후기근대 논의의 핵심 테제들


1. 후기 근대는 초기 근대성이 ‘단절’되고 등장한 완전히 다른 시대가 아니라, 초기근대가 성숙하고 발전하고 심화되어 나타난 초기근대의 재귀적(再歸的) 형태이다.


2. 포기근대와 달리 후기근대는, 초기근대성이 자명한 것으로 여기던 수많은 가치, 이념, 제도, 이상들의 붕괴와 파산의 위기적 상황에 주목한다.


3. 후기근대론적 사회이론은 포스트모던적 사회이론과는 달리 20세기 후반의 사회상황을 순수하게 긍정적인 새로움으로 보는 대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집합으로 파악한다.


 울리히 벡과 안토니 기든스는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사회이론가로서 이들은 20세기 후반의 사회의 당대사회를 ‘후기 근대(late modern)’, ‘*재귀적 근대(reflexive modern)’, ‘2차근대(second modern)’, ‘고도 근대(high modern)’로 지칭하며 근대성을 이원적으로 개념화하며 19세기의 근대와 20세기의 근대를 구분한다. 심화해서 이들은 근대성과 탈근대성 사이에 재귀적(reflexive) 회귀 과정을 설정하며 연속성을 확보한다.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벡은 ‘위험사회’로 기든스는 ‘탈전통사회(post-traditional society)’로 읽어내며 모던/포스트모던이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과제 읽어내는데 성공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포스트모던과 여러 지점을 공유한다. 그는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홀로코스트 분석을 통해 진보와 해방 그리고 이성에 의한 거대서사의 암울함을 지적했다. 그는 ‘액체 근대성(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변화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달리 현대사회의 액체성과 가치의 휘발이 가져온 혼돈과 고통을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 개념 역시 근대와 탈근대성중 하나의 선택이 아니며 거리를 두고 새로운 이론적 입장을 제시하는 점에서 벡과 기든스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학사, 사회사상사, 사회학이론사 도서목록

철학에 철학사가 있듯, 사회학에도 사회학사가 있습니다. 친구가 사회학사를 알 수 있는 책이 있냐고 해서 제가 본 책들을 조금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는 *학부생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연구한다는 관점보다는 과제를 위해서 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읽었기 때문에 숙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상비평에 가까울 것이고,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저의 독해력 부족을 책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1. 스무 살의 사회학, 랠프 페브르·앵거스 밴크로프트 지음


제가 사회학 입문서로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소설의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사회학과에 진학한 스무 살의 주인공 ‘밀라’가 “너 사회학해서 밥은 먹고 살겠어?”하는 주변인들에게 사회학이 무엇인지, 사회학 이론으로 현실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어거스트 꽁트 같은 사회학의 창시자들과 사회학 3대장, 파슨스, 피에르 부르디외와 시쿠렐·고프먼 등의 미시이론가 같은 선명한 사회학자들을 꽤 방대하게 다루고 있고, 푸코나 버틀러 같은 사회사상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학과 사회학 이론에 대해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서 보시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자체는 조금 부드러운 형식이지만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직접 서술한 책입니다.


2. 사회사상의 흐름, 레이몽 아롱 지음


부르디외의 스승이었던 레이몽 아롱 교수가 쓴 책입니다. 먼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몽테스키외나 토크빌 같이 사회학자로 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회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학자들도 다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거의 고전 사회학자라고 분류되는 학자들입니다. 몽테스키외, 꽁트, 마르크스, 토크빌, 뒤르켐, 파레토, 베버 이렇게 7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계신 김건우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이 책을 극찬하셨습니다. 탁월성, 명료함, 그리고 이론의 정수에 도달하는 학자적 능력이 발휘되는 책이라고 하셨습니다.


3. 사회이론의 역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 책은 사회학 이론이라고 호명되는 이론들 외에도 광범위한 사회이론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맹아가 틔워진 시기부터 고전 사회학과 현대 사회학 그리고 근대성과 탈근대성 논쟁 등의 현대의 논쟁들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방대한 양을 다룬 책입니다. 또 저자가 네오 마르크시즘 전통에 있어서 그런지 최근의 반자본, 반제국주의 이론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4. 사회학 이론의 형성, 조나탄 터너·레오나드 비글리·찰스 파워스 지음


이 책은 고전사회학자들을 주로 다루는 책입니다. 사회학의 기원부터, 오귀스트 꽁트, 허버트 스펜서, 칼 맑스, 막스 베버, 게오르그 짐멜, 에밀 뒤르켐, 빌프레도 파레토, 조지 허버트 미드 이렇게 총 8인의 사회이론가를 다루는 책입니다. 구성은 특정 사상가의 사상의 기원과 배경, 그리고 특정 사상가의 사회학 이렇게 사상가 1인마다 2챕터씩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술이 꽤 명료하게 되어있다고 느끼고 고전 사회학 책 중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입니다. 다만 이 책도 절판이라 구하기가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5. 사회사상사, 루이스 코저 지음


아마 고전사회학을 다룬 책들 중에 한국의 사회학과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고전사회이론가를 중심으로 다루었고 여기에 베블런, 찰스 쿨리, 로버트 파크 등의 사상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은 쓴 루이스 코저 자체도 갈등 기능주의 전통의 이론가이고, 저는 고전사회학을 이 책으로 배웠습니다. 분량이 600여 쪽 정도 되는 방대한 책입니다. 가끔은 읽다가 지치기도 했습니다. 사상가를 사상, 개인적 배경, 지적 배경, 요약 이렇게 4챕터로 다룹니다. 사진에 있는 시그마 프레스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은 절판되었고 작년 9월에 한길사에서 기존의 이론가들과 더불어 ‘피티림 소로킨, 윌리엄 토머스, 플로리안 즈나니에츠키’ 등의 이론가와 미국 사회학의 최근 동향을 추가해 출판되었습니다. 아직 저도 새로 개정출판된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추사된 이론가들이 굉장히 생소한 이름들이고 추가된 미국 사회학의 최근 동향이 역자들이 추가한 것인지 코저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코저는 2003년에 사망했습니다.


6. 사회학 이론의 구조 · 현대 사회학 이론, 조나단 터너 지음


사회학 이론의 구조와 현대 사회학 이론을 같이 묶은 것은 이 둘이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학 이론은 사회학 이론의 구조보다 많은 내용들이 추가 되었습니다. 우선 사회학 이론의 구조는 절판됐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론가들을 기능주의 전통, 갈등주의 전통, 교환이론 전통, 상호작용론 전통, 진화론적 전통, 구조주의적 전통, 비판이론적 전통 이렇게 큰 맥락에서 분류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들에서는 현대 사회이론가들을 다룹니다. 그래도 부분 부분 맑·뒤·베라고 불리는 사회학 3대장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제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번역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글들을 좀 보았습니다. 저는 원서와 역서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비판할 수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독해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둘 중에는 사회학 이론의 구조의 번역이 조금 더 매끄럽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7. 사회학 이론 · 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 조지 리처 지음


‘맥도날드화(化)’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조지 리처의 저작입니다. 우선 사회학 이론이라는 책은 약 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방대한 고전 사회이론가들과 현대 사회이론가들을 모두 다룹니다. 아마 여기 소개한 책 중에 가장 많은 이론가를 다루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양이 많아도 다루는 이론가들 또한 많은 만큼 아쉽게도 각 이론가에 대한 서술이 깊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론가의 대강을 파악하기에는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도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처의 책은 대체적으로 평이하게 서술되었고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8. 제가 지금 보지못한 책 중에는 김덕영 교수님의 '사회의 사회학'이 사회학사를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 책은 목차를 보니 굵직 굵직한 사회이론가들을 중심으로 정리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서 책의 부제에도 써있듯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는 아마 김덕영 교수님의 문제의식인 서구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통한 한국의 근대성 전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쓰인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이 책이 한국인에 의해 쓰인 최초의 사회학사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쓸데없이 이걸 왜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도움이 안되실 것 같습니다. 공부하면서 중간중간 추가해보겠습니다.

파슨스, C. 라이트 밀즈와 함께 미국 사회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버트 K. 머튼(Robert King Merton, 1910~2003)


로버트 머튼은 크게 미국사회학의 중흥을 이끌었던 기능주의 이론의 맥락에 있는 학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기능주의의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로버트 머튼은 구체적으로 구조 기능주의 이론가로서 거시적인 이론들을 생성했던 파슨스에 비해 중범위적 이론을 전개한다. 더불어 머튼은 비교적 칼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에도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구조 기능주의자들이 사회구조나 제도가 다른 구조나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머튼은 이와 달리 사회구조와 제도의 역기능에 초점을 두고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머튼의 분석에 따르면 구조는 전체 체계에 역기능적이면서도 여전히 존재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머튼은 분석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구조들, 즉 역기능들도 제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는 개선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를 통해 머튼은 기능주의 이론을 보완한다.


머튼의 아노미는 가치 있는 문화적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적법한 사회적 수단 사이에 괴리가 존재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머튼은 이런 사회구조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방법들을 5개의 유형으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순응’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대처방식이다. 주어진 상황을 단순히 수용하고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상태에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혁신’인데 혁신은 가장 일반화된 일탈적 대응이다. 기존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되 부당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목표를 이루는 것이 혁신의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모반’이다. 모반은 수단과 목표를 모두 거부하고 체제의 무력화나 전복 같은 새로운 목표와 수단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네 번째로는 ‘은둔’을 들 수 있다. 은둔은 도피적 방법으로서 사회적인 낙오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목표뿐 아니라 목표달성의 시도조차 포기하는 경향이다. 마지막으로 ‘의례’를 들 수 있다. 의례는 투쟁을 포기하고 규범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획득한 것을 유지하는 경향이다.





로버트 머튼은 통합된 사회를 추구했다. 이것은 기능주의 이론의 연장선에 있는 머튼의 입장이라고 파악할 수 있는데, 머튼에게 통합된 사회란 사회구조(승인된 사회적 수단)와 문화(승인된 목표)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아노미 이론은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적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하위계층의 범죄나 비행이 증가할 것을 주장한다.


로버트 머튼의 이론과 함께 메스너(Steven Messner)와 로젠필드(Richard Rosenfeld)도 아노미와 일탈에 대해 설명한다. 메스너와 로젠필드의 경우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아노미는 승인되지 않은 제도적 방법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제하는 통제제도의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행위자로 하여금 일탈을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메스너와 로젠필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강조되는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구조적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을 전망했다. 이런 경험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종국에 제도적 합법성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처한다는 분석 또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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