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관련 추천도서

지난 한 학기 동안 <여성문제연구>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젠더 문제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학원 수업이라서 아무래도 논문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또 함께 읽은 저서 중에는 방법론이나, 전문 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저서도 있어서 다 소개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일반적으로 볼만한 책을 4권 소개해보겠습니다.

1. <젠더와 사회>,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동녘.

<젠더와 사회>는 젠더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께 입문서로 훌륭한 책입니다. 약 15개의 주제로 이뤄진 이 책은 젠더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세부적인 주제의 문제까지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장에 관련 주제와 연관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입문서이지만, 관심사를 확장·심화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한국의 저자가 참여한 책이라서 주제가 한국에 매우 적합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 책의 이전 판이 <새 여성학 강의>였을 텐데, 이를 <젠더와 사회>로 바꾸고, 남성성 문제를 다룬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2. <젠더란 무엇인가>, 로빈 라일, 조애리 외 역, 한울아카데미.

여성학/젠더학은 학제적 연구 영역입니다. 그래서 철학, 문학 등의 인문과학은 물론이고, 사회학, 정치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에서도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젠더란 무엇인가>는 사회학자인 로빈 라일이 쓴 책으로 사회학을 중심으로 젠더를 다룬 책입니다. 일단 젠더 문제를 다룬 입문서로도 훌륭한데, 특히 사회과학에서 이 문제를 보고 생각하길 원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성스러운 국민>,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 기획, 서해문집.

<‘성’스러운 국민>은 性스러운, 혹은 聖스러운 국민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주제로 근대국가 한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법적으로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글을 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량한 풍속’으로서 간통죄, 법에서의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 병역법과 성스러운 국민 만들기, 과학을 위한 몸으로 줄기세포에 관한 내용 등의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한 책 중에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4.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문학동네.

끝으로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입니다. 이 책은 사실 저도 제대로 이해를 못했습니다. 이 책에 관해서는 3월 13일에 서평을 남겼습니다. 물론 책의 핵심이 되는 수행/수행성에 관한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정신분석학에 관한 훈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워낙 현대의 고전이다 보니 관심이 있는 분께서는 한 번쯤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 책 자체를 보시기보다는, 역자인 조현준 선생님이 이 책을 소개한 2차 저작이 한국에 2권이나 있으니(<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젠더는 패러디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세라비 글에 관한 생각

안티 페미니즘 담론을 분석하기 위해 오세라비의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을 공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세라비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실증/논거도 부족하고, 레퍼런스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내용이 빈약하고, 오세라비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안티 페미니즘의 정서와 진영 논리로 소비되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어디에도 무결하고 오류가 없는 이론은 없습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국 페미니즘의 일면에는 본질주의라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성을 단일 범주로 구성하는 문제점이죠. 사실 ‘여성’이라는 범주에는 일반화할 수 없는 엄청나게 다양한, 사회경제적 특성을 지닌 개인이 존재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교차성의 측면에서도 특히 계층/계급성을 간과할 여지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일면에 그런 조류가 있다는 겁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오세라비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더라도 제대로 비판한다면 담론장에도, 사회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페미니즘 운동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일종의 성찰을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오세라비의 주장은 전혀 그러지 못하다는 게 제 평가입니다.

앞서 말했듯, 오세라비의 치명적인 약점은 실증/논거가 없다는 겁니다. 오세라비는 “법적, 사회적으로 가부장제는 이미 끝난 시대다.”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려면 그만큼의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세라비는 전혀 그런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부장제는 끝났다.’는 말을 논증하려면 그만큼 치열하게 준비하고 경험적으로 자료를 모아 논증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오세라비는 전혀 그런 논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훈련조차 안 된 사람 같고요.

그럼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요? 객관적인 자료가 하나도 없으니, 결국 저 문장을 읽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기준 자체도 존재하지 않으니, 인식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지겠죠. 이게 오세라비가 제대로 된 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닌, 안티 페미 정서를 등에 업은 장사꾼인 증거입니다.

다음으로는 레퍼런스 부족인데, 오세라비는 본인이 원조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책을 보면 나오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당장 페미니즘이 가진 논리의 핵심에 도달하지도 못할뿐더러, 급진 페미니즘이 해체주의로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합니다. 고작 레퍼런스라고 제시하는 건 진중권·서민 등의 인터넷 신문이 전부죠. 그런 식으로 가상의 적만 생산해 허공에 쉐도우 복싱을 합니다.

또 논리적으로도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세라비는 페미니즘의 일부 조류인 급진 페미니즘의 피해자주의를 전체 페미니즘으로 환원하고, 이를 비판하는데, 오세라비에게 정작 청년 남성은 모두 피해자입니다. 오세라비는 여성의 피해자주의는 비판하면서 정작 청년 남성의 피해자주의를 옹호합니다. 이거야 말로 자신이 비판하는 분리주의죠. 청년 남성 역시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려운 집단입니다. 다음으로는 세대론인데, 기성세대 남성과 젊은 남성을 비교합니다. 기성세대 남성 중 우리가 아는 586남성은 극소수일뿐더러 기성세대 남성 중 가부장제의 특혜를 받고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오세라비는 이것 역시 일반화하죠.

복지를 비판하는데 그냥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좋은 말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복지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복지 예산의 부정 수급을 막아야 한다” 이거 제가 금방 지어낸 말인데요, 이 정도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뭐가 문제인지 분석해야 그게 제대로 된 비판이고, 논증이죠. 제가 느낀 오세라비의 전체적인 담론 수준은 학부생 1·2학년 정도 같습니다. 조롱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오세라비는 제대로 된 훈련이 전무해 보여요. 저 같으면 이 정도 글을 쓰고 출판한다? 개명하거나 아예 절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현실’이 아닌, ‘인식’으로서 자료를 취급하기 때문에, 서술이 현실과 부합하는지는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인식에 초점을 맞추니, 다 자료이긴 합니다. 다만 그들의 인식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몇 자 적습니다.

가정폭력에 관하여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미국의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원제와 번역본 제목이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책의 원제는 “보이지 않는 멍No Visible Bruises”이고, 역서의 제목은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이다. 이 책은 어떤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은 가정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가정폭력이란 단어는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제대로 지칭할 수 없는 용어이기도 하다. 가정폭력이 문제화된 이후 여러 운동에서는 가정폭력을 ‘아내에 대한 폭력’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확히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을 다루는 책이다.
 
아내에 대한 폭력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통사회에서 아내는 가장에게 언제든 폭력을 당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런 역사는 그리스나 로마를 포함한 고대의 역사에서부터 현대의 역사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구타하면 바로 가해자가 구속되지만, 가정에서 아내를 구타하면 가해자는 구속되지도 처벌되지도 않던 시대가 존재했다. 가장이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가정의 일이자 가장의 권한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인식이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런 뿌리 깊은 습속은 사회에 잔존하고 있기에 아내에 대한 폭력은 한국의 경우, 법으로 제정된 것이 1990년대 후반이며, 그 이후에도 처벌의 수위는 동일한 수준의 다른 폭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이 책,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미국에서의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00년에서 2006년까지, 6년 동안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3,200명인데 반해, 가정 내 살인 사건으로는 1만 600명이 사망했다. 법제도 역시 기존의 가부장적 습속에서 제정되었기에,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과실치사’가 되고, 가정폭력에 대항하여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면 ‘살인’이 적용된다. 이렇듯, 우리의 인식은 사회의 오래된 규범 속에 자리하고 사회의 법, 인식, 제도의 변화는 더디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은 가정폭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멍’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저자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는 문학적 저널리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폭력을 보이는 폭력으로 가시화하고, 미국 사회 가정폭력의 근간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이를 파악함으로써, 보이지도 않는 멍을 가지고 죽어간 가정폭력의 희생자, 즉 “살릴 수 있었던”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여자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정폭력은 특히 여성 이슈 내부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 책을 통해 이런 문제가 기존보다 가시화되길 바랄 뿐이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우리 시대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 그런 책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퀴어 이론의 창시자이자,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버틀러는 1990년, 이 책을 출간하면서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성 없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섹스/젠더라는 이분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회의했다.

페미니즘 정치학에서는 여성 공통의 경험과 함께 ‘여성의 범주’를 구성해 현존하는 여성 정체성이 있다고 가정했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통해 페미니즘 정치학은 페미니스트의 이익·목표와 정치적 재현(representation)을 추구하는 주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재현은 여성을 위한 정치, 여성을 위한 의제, 여성을 위한 정책 등으로 표현되며 여성 주체의 가시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발판으로써 작용했다.

이러한 재현은 중요했고, 기여도 존재했지만, ‘과연 ‘여성’이라는 주체는 고정된 것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주디스 버틀러가 파고 드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버틀러는 푸코의 논의를 빌어 페미니즘의 주체는 자신이 해방해야 할 정치체계에 의해 구성되었음을 지적한다. ‘포획된 저항’인 것이다. 그렇게 버틀러는 페미니즘 주체인 ‘여성’의 범주가 해방을 추구하는 권력체계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고, 구속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적 의미화의 경제를 통한 전체화뿐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의 전체화 경향 역시 비판해야 한다. 동일한 여성의 경험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역시 버틀러가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의식과 함께 버틀러에게 페미니즘 정치학의 과제는 당대 사법구조가 생산하고 당연시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다. 페미니즘의 주체로 간주된 것이 생산해내고, 은폐하는 정치적 작용을 추적하는, 여성 범주의 페미니즘 계보학을 버틀러는 내세운다.

생물학적 성(性)인 섹스와 사회적 성인 젠더의 이분법은 이제 상식이 된 이야기인데, 버틀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정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의심할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 자체에 의심을 갖게 한다. 담론 이전의 것이라 여겨져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이 고정된 범주의 근본을 뒤흔드는 기획인 것이다.

그렇게 버틀러는 ‘젠더’라는 용어에 담긴 규범적 이해마저 탈구축하는데, 버틀러에 의하면 젠더란 언제나 변화하고 맥락화 되는 현상으로 본질적 존재가 아닌 문화·역사적으로 특수한 일련의 관계에 둘려쌓인 상호 수렴의 지점이며, 총체성이 영원히 유보되어 현재에는 완전할 수 없는 복합물이고, 명사도 아니다. 젠더란 젠더의 본질적 효과, 젠더 일관성이라는 규제적 관행 때문에 “수행적”으로 생산되고 강제되는 것인데, 여기서 수행적인 것이란 목적한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젠더는 언제나 행위다.

따라서 이런 허구적 생산을 폭로하고, 이미 만들어진 명사와 형용사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규제 이탈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당연시된 젠더를 전복하고 그것의 대체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노력이다.

버틀러의 책을 처음 읽었다. 사실 사회적인 것이 몸이 된, 체현(embodiment)은 부르디외로 접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부르디외의 연구가 더 경험적이라 설득력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버틀러가 제시하는 핵심인 “수행성(performativity, *이 책에서는 ‘수행’이 쓰이고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부터 사용됨)” 개념도 이미 후기 구조주의의 맥락에서 충분히 표현된 것이기도 하고, 이 부분은 부르디외도 포함하지만 루만이 더 생산적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굳이 버틀러를 경유하지 않지 않아도 비슷한 사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버틀러가 분명 영미 사상계의 한 자리를 차지한 별이라는 생각이다. 확연히 대가의 면모와 스케일을 느꼈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버틀러가 사용하는 철학적·정신분석학적 논의는 나를 가볍게 상회하는 것이었고,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철학적 접근이 익숙하지도 또 친근하지도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버틀러가 고전이라는 데에는 고민 없이 동의할 수 있다. 그만한 무게와 규모의 책이 분명하다.

임지은, <연중무휴의 사랑>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한 책이 200권도 넘지만, 소개하기 주저되는 머뭇거려지는 책이 있다. <연중무휴의 사랑>이라는 책이 그렇다. 어려운 책도 금방금방 읽고 소개하곤 하는데, 자신의 삶이 묻어나는 글은 소개하기가 어렵다.

이 책, <연중무휴의 사랑>은 저자 임지은 선생님이 서문에서도 언급하듯 ‘페미니즘 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이 페미니즘 에세이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페미니즘이 중심이 된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페미니즘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저자의 삶이 담겨있는 것도 확실하다.

페미니즘과 개인 서사를 다룬 책, 글은 많다. 이 책 역시 그런 책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았던 건 단순히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 관한 서사뿐 아니라 저자 스스로 그렇게 살아내고 고민하며 망설였던 순간들이다. 어떤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고, 이 안에서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때로는 타인에게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겪었던 망설임을 주저 없이 그려낸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글로, 또 책으로 출간하며 저자는 여러 번 망설이고 주저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 책은 때로는 축축하고, 매캐하기도 하다. 동시에 긴장된다. 긴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같이 응시하게 된다. 책에서 저자는 몸은 긍정의 대상도, 부정의 대상도 아닌 수긍할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저자가 몸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역시 수긍하고 그대로 껴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삶과 페미니즘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수많은 덜컥거림을 적어낸 것 같다. 페미니스트의 연애, 탈코르셋, 바디 포지티브, N번방, 비혼·결혼 등, 페미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의 문제와 그 사이에서 있었던 수많은 머뭇거림은 분명 겪어낸 사람의 것이다. 그런 감각이 느껴진다.

페미니즘과 이 책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그만큼 “임지은”이라는 한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여성만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임지은이라는 사람이 가진 차이를 만들어내는 고유성이 있다. 아마 사람을 만들어내고, 사람이 만들어낸 켜켜이 쌓인 겹들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을까, 읽으며 생각했다.

글을 따라 읽으며 언제는 저자에게 의뭉스러웠다가, 언제는 동조하고, 언제는 이해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문장이 좋았고, 언젠가는 읽었던 글과 문장 같아서 찾아보니 저자께 기억도 안 나는 시간에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해둔 걸 알게 됐다. 진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그때 내가 이 글을 이렇게 읽었지, 하면서 글을 다시 보게 됐다.

글을 읽으며 가족을 다룬 초반부에 많이 공감했다. 글이 진행되면서 저자의 여성으로서의 삶이 짙어질수록 공감의 정도는 옅어졌다. 그래서 더 나에게는 여러 고민을 남기는 책이다. 나의 삶의 덜컥거리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이 책은 페미니즘 에세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조금 울퉁불퉁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혹은 담담하게 끌어안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대중문화는 어떻게 여성을 만들어내는가>

1. 이 책, <대중문화는 어떻게 여성을 만들어내는가>는 여성의 생애주기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에서 여성을 어떻게 그려내고, 어떠한 여성성을 압박/강제하는지, 또 이런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여성은 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책으로, 페미니즘·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분은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2. 이 책은 대중문화·미디어 연구·여성학을 연구하는 멀리사 에임스와 커뮤니케이션·여성학을 연구하는 세라 버콘의 공저입니다. 그리고 번역은 <문화코드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이전에 소개한 <젠더란 무엇인가>를 번역한 대전·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영문학자들이 맡았습니다. 아마도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번역·출간된 책일 것 같고, 또 한 분, 한 분 번역 이력이 있으신 분이라 번역이 매끄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 이 책은 책, 영화, TV 프로그램, SNS 등 대중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가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여성은 그 이미지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그려냅니다. 대중문화가 강제하는 여성성이란 성적 매력을 가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결하고 정숙해야 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하지만, 남성에게는 종속되어야 하는 모순적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 책은 결론을 서론, 결론을 포함해 11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서론에서는 책의 대강을 살핍니다. 이어지는 1·2장에서는 유년기, 청소년기의 여성을, 3장에서는 연애, 로맨스의 문제를, 4·5장에서는 결혼식과 결혼생활의 문제를, 6·7장에서는 임신, 육아의 문제를, 8·9장에서는 중년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뒤에 결론에서는 이런 대중문화의 강제와 압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하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5. 이 책의 장점은 쉽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여성주의, 페미니즘 저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렇게 광범한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책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련된 주제를 공부하는 데 유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여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문제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책은 우리가 사소하게 보고 경험하며 받아들여 왔던 대중문화의 속성을 세밀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6. 이 책은 TV 리얼리티쇼부터, 소설,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자기계발서에 이르는 다양한 실례를 통해 주제를 구성하는데 이 부분도 탁월하지만, 한편으로 함께 읽기 좋은 책이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책에서 사용된 예는 미국의 사례가 중심이 되지만, 한국은 미국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 함께 읽고 공부하면서 책을 읽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디즈니의 <겨울왕국>, 영화화된 소설 <트와일라잇> 등도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데 책을 읽고 함께 공부하면서 같이 겨울왕국, 트와일라잇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볼 수 있겠고, 책에서 제시된 사례는 아니지만, <여자라면 ××처럼>, <여자, ××에 미쳐라> 류로 대표되는 여성대상의 자기계발서 등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이 인상 깊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년기·청소년기 여성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TV 리얼리티쇼로 소녀 미인대회가 방송되고, 이를 준비하는, ‘섹시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런 영향으로 유년기·청소년기 여성이 겪는 섭식 장애와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트의 문제까지. 대중매체가 가진 구속력을 느낄 수 있는 실례였습니다.

8. 이 책은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 선진국에는 완전한 성평등이 이뤄졌다는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며 시작합니다. 하물며 한국은 어떻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문제 되지 않은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고, 이 책이 제시하는 것처럼 새로운 교육, 다양한 사회참여, 그리고 인식개선을 통해 변화를 촉진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한 시작점이 될 책입니다.

<젠더란 무엇인가>

1. 젠더란 무엇인가. 내가 젠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후로 약 10년이 지난 것 같다. 생물학적 성은 sex, 사회적 성은 gender라는, 이제는 고색창연한 범주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이 개념을 알게 된 이후로 생각보다 사회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던 기억이 있고, 또 한편으로 2015년 이후로 페미니즘, 성소수자 인권 문제 등의 의제가 표면화된 이후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젠더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젠더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말이다.

2. 대개 사회가 그렇듯, 젠더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 역시 매우 편협하다고 볼 수 있다. 그저 생물학적 성과는 무관한 무언가로 젠더가 이해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젠더를 사유하는 것, 그 자체가 조롱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젠더는 이제 ‘일상적 표현’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구든 ‘젠더’라는 말을 들으면 무언가에 관해 상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젠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이든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나 역시 젠더에 관한 입장을 다시금 정리하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책이 바로 로빈 라일의 <젠더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은 젠더 입문서이다. 로빈 라일은 미국의 사회학자로, 여성학·사회학 교재로 또 교양서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그런 목적에 부응한 책인 듯하다. 또 이 책은 9명의 영문학자들이 공역을 했는데, 번역도 매끄럽게 된 편이다.

4.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도입부라고 볼 수 있는 1장 ‘젠더 마주하기’와 2장 ‘사회학과 젠더 이해하기’에서는 성의 육체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 대한 기초를 다진다. 이 부분에서는 기본적 논의를 충실하게 다루는데, 평이하면서도 본질을 명료하게 다룸으로써 좋은 논의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젠더와 ‘몸’에 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장에서는 미가 가진 억압성을 일상적인 예시로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남성의 몸에 관해 다루는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이런 논의에 덧붙여, 마지막 장은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권력의 문제 역시 미시적 권력에서부터, 거시적이면서 제도화된 권력의 문제 포괄하며 논의가 마무리된다.

5. 이 책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읽을 때 더욱 좋을 책이다. 교양서이자, 입문서로서 책은 질문 상자(토론), 문화적 사실(실례), 생각할 문제(적용 및 사고), 젠더 연습문제(젠더 프로젝트 구상해보기), 주요 용어 정의 및 읽을거리 등을 제공하는데, 책의 목적에 매우 적절한 것이다. 책은 원서의 9장 중 한국에 적합한 4개의 장을 번역한 것인데, 이 역시 책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적합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6.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사유를 촉발하고 자극하는 데에 있다. 책은 기본기를 쌓기 매우 좋은 형식으로 되어있고, 저자가 의도한 바는 분명 존재하지만, 저자는 가능한 많은 조류와 답변을 소개함으로써 책의 독자로 하여금 복수의 입장에서 자신의 관점을 만들기를 요구한다. 책을 통해 독자는 새롭고 다양한 사유방식의 지평을 얻게 되고 한편으로 그 길을 직접 걸어보게도 된다. 그 길이 단단한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왜 이 길을 걷게 되었고, 또 다른 길은 어떤 길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번 장에서 당신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젠더 이해 방식을 전적으로 반대할 수도 있다. 당신이 젠더를 이해하는 방식과 전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진적 페미니즘이 왜 틀렸는지 설명하려면 그들의 생각에 대응해, 자신의 젠더 이해 방식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젠더 불평등에 대한 다른 사람의 설명이 그저 틀렸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틀렸는지 입증하고 당신의 설명이 왜 더 나은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젠더 이해 방식이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 스스로 만든 한 쌍의 날개라면, 다른 젠더 이론을 배우는 것은 날개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보려고 시험비행을 거치는 것이다.” - 48p.

여성의 날이 한참이나 지났죠. 뒷북큐레이터는 이제야 페미니즘 입문을 위한 책을 몇 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여러 번 이야기 드렸듯, 저는 페미니즘에 관해 매우 기초적인 수준의 이해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부분보다 더 초보적인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1.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의 일곱 가지 구호』, 안-샤를로트 위송 글 토마 마티외 그림 김미정 옮김

이 책은 제가 페미니즘 입문서를 추천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책입니다. 일단 그래픽노블 형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내용이 쉬울뿐더러 거기에 내용이 충실하고 깊기까지 해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7가지 구호,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어야 한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백인 여성들이여 들어라”, “우리의 욕망은 혼란이다”, “페미니즘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남성우월주의는 매일 사람을 죽이고 있다”, “내게 자유를 줄 필요없다, 내가 스스로 자유로워 질 테니까”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페미니즘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상호교차성, 블랙 페미니즘, 퀴어 등의 현재적 주제, 쟁점들을 매우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적재적소에 적절히 학자들과 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학적인 정확성과 담론의 풍성함을 갖추고 심화적인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여러 페미니즘 서적 중에서도 입문서로서 분명 훌륭한 책 같습니다.

2.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이경아 옮김

페미니즘이 중대한 이슈로 자리매김한 뒤 누구나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페미니즘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데에 큰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벨 훅스는 매우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죠. 벨 훅스는 이 책을 통해서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페미니즘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는 벨 훅스가 입문자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만의 것이라고도,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모두가 페미니즘에 한 발 더 다가오게 설득하지 못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했다.” 책 내용 중.

3. 『여성학』, 이박혜경·이재경·민가영·조영미·박홍주·이은아 공저

마지막으로 다룰 책은 대학 교양교재, 개론서 정도의 책입니다. 2014-15년 즈음 페미니즘 이슈가 대두되고, 그때 저는 여성정책, 여성학을 전공하는 선생님 두 분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자, 저한테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앞에 다룬 두 책보다는 약간 난도가 높지만, 당연히 내용의 충실도도 가장 깊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책 자체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고, 책의 장이 끝날 때마다 더 읽을 거리라든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제시하고 있어서 특히 이 책은 함께 읽으며 스터디를 하면 더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발간되고 시간이 조금 지난 책이라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길>, 책에 관해

1. 들어가며: 최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사태를 중심으로 일명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즉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레디컬 페미니즘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시기에 1990년대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건너온 레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잘못된 길>이 나왔고, 이 책을 읽는 중에, 책을 간략히 소개하고 책이 가진 논쟁적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부족한 글을 써봅니다.

2. 핵심: 책의 저자가 핵심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성 결정론에 기반한 성별 분리주의이고, 둘째는 레디컬 페미니즘이 가진 희생자주의 서사입니다. 전자는 사회적 구성주의를 통해 비판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서사가 분리주의로 발현해 남성을 변화할 존재가 아닌 없애야 할 존재로 보고, 여성의 능동적 태도와 성취, 행위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된다고 비판합니다.

3.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철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학제적 접근을 통해 17-20세기 사회사를 분석해 모성의 신화를 비판하는 <만들어진 모성>을 집필한 유명한 학자로, 그랑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바댕테르는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계시와 같이 느끼며 독서했음을 회고했고, 이런 경험을 통해 68혁명과 함께 싹튼 프랑스의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고, 낙태합법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동주의적 페미니스트입니다.

4. 내용: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먼저 1장 새로운 ‘방법 서설’에서는 1990년대 대두된 프랑스 내부의 앵글로 색슨계의 레디컬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바댕테르는 레디컬 페미니즘이 남성의 ‘폭력의 남용’이 아닌, ‘남성’자체를 문제시하는 조류를 비판하면서 이들의 주장에는 사실관계가 왜곡되었고, 이들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성을 무시하면서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돌아가 역설적으로 전통적 여성성을 옹호하게 된다고 비판합니다.

이어지는 2장 언급되지 않은 여성 폭력에서는 일방적 희생자로 간주되었던 여성이 자행했던 폭력의 실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여성에 의한 폭력의 현실을 다루면서 희생자주의를 비판합니다. 다음 3장 모순에서는 당시 레디컬 페미니스트가 성에 대해 방어적 페미니즘으로 대응한 뒤 오히려 여성의 성의 해방과 에로티시즘이 저해됐다고 비판합니다. 남성의 성을 제한한 것이 여성의 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이야기하죠. 90년대 프랑스에서의 레디컬 페미니즘의 부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이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뒤, 마지막 4장 퇴보에서 이러한 조류가 프랑스 내의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 모성신화 등의 사회 문제에서 오히려 퇴보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며 책을 마치고 있습니다.

<잘못된 길>, 맥락들

글에 앞서, 저는 페미니즘(이하 페미)에 관해 아주 기초적인 이해를 가진 정도라고 알아주세요.

1. 급진 페미니즘(이하 급진): 급진의 시작은 대체로 196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으로 봅니다. 이들은 여성 억압의 원인을 자유주의(제도적 불평등), 사회주의(경제적 불평등) 페미와 달리 억압의 토대를 성(sex, sexuality 등)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와 이성애 질서를 해체하는 목적을 두고, 여성의 공통 경험에 주목하며 여성은 여성이기에 억압당하고, 남성은 남성이기에 억압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급진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발현됐고 여성인권 증진에 기여도 존재합니다.

2. 본질주의: 급진은 여성의 공통 경험을 의제화하고 남성에 의한 피해를 강조해야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옹호하는데, 이는 페미·여성학이 18·19세기의 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생긴 그릇된 이론(우생학 같은)인 성차의 생물학적 결정론, 남성의 우월함/여성의 열등함을 본질화하는 시도에 반박하기 위해 젠더(사회적 성) 개념이 나온 것을 고려했을 때, 모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젠더의 관점에서 여성의 범주는 불변의 것이 아닌 구체적 맥락에서 현재화되는 정체성입니다.

3. 교차성: 여성의 공통경험에 기반을 둔 급진 페미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과연 어떤 여성의 경험이 진짜 여성의 경험인가’하는 문제에 빠진 거죠. 여성 집단의 단일적 경험을 추출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여성 내부에 있는 인종·계급·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 교차성 페미고, 이들은 여성범주의 다양성을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의제화함으로 억압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4. <잘못된 길>과 성찰의 지점: 바댕테르가 겨냥하는 ‘급진’은 1980년대 미국의 조류입니다. 브라운밀러·매키넌·안드레아 드워킨 등으로 대표되며 이들 역시 ‘본질주의’(생물학적 성)를 특징으로 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희생자주의와 반-포르노그라피 운동인데, 서구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가 읽기에 약간 고민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희생자주의의 경우 바댕테르가 기존 통계를 비판하지만 한 편으로 여성의 폭력이 남성 수준이라는 것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 같고 반-포르노 운동이 지향하는 섹슈얼리티는 이미 서구에서도 기존의 보수주의, 이성애 규범성을 강화한다고 비판을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육체/성폭력의 구체적 실태는 한국적 맥락에서 고민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자율적 성적 동의 문화가 한국에 제대로 정착됐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5. 한국의 맥락: 한국의 급진은 2015년 전후 메갈리아에서 미러링의 사용, 퀴어에 대한 혐오표현 여부로 분화되어 ‘워마드’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 이들은 급진의 생물학적, 이성애적 토대라는 공통적 기반을 두고, 동일하게 여성의 공통 경험을 강조하며 트랜스 여성을 배제·혐오하는 방식(TERF)으로 발현됐습니다. 이들이 바댕테르가 겨냥하는 페미니즘과 다른 것은 이들은 기존의 여성성을 해체(탈코르셋)하려하며, 보수적 성규범과 다른 운동전략(4B, 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6. 마무리: 책을 읽으며 저는 바댕테르 역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로서의 한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극단적 사고에 대한 비판은 매우 적실해보입니다. 다만 구체적 사안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길>은 먼저 길을 간 프랑스 사회의 고민을 반추하며, 앞으로 가게 될 길을 생각하는 토대로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이제 막 길을 걷게 될/된 한국사회에서 논쟁적으로 읽혀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2016 대전의 성평등·학생인권과 관련된 시민운동


지난 2015년 6월, 대전광역시는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를 ‘양성평등 기본법’에 따라 개정하였고 이 과정에서 ‘성평등 기본조례’라는 명칭을 모법인 ‘양성평등 기본법’에 따라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변경한 일이 있었다. 이런 개정을 통해 ‘성소수자’와 관련된 조항은 모두 삭제되었다. 이것은 여성가족부의 권고와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런 성평등 기본조례의 개정안은 인간의 성을 단순히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인식하고, 또 그들만의 권리를 성문화하였고 그 외에 생물학적 성으로나, 사회적 성으로나 성소수자에 포함되는 LGBTAIQ등을 성의 주체나 성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이에 대전지역 시민단체, 전국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과 대전여성단체연합은 기자회견·집회·피켓시위 등을 통해 대전광역시의 조례재정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반해 대전지역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성평등 조례에서 성소수자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 것은 성소수자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정을 찬성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시민단체들의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요구는 입법과정에 투입되지 못하고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띠는 시민단체는 솔롱고스라는 대전 성소수자 인권 모임이다. 솔롱고스라는 모임은 16세 청소년부터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중심인 모임이다. 이들은 성평등조례 개악 저지운동을 하며 모여 지금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임의 멤버들은 후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추모와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개선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대전 페미액션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 중이다.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는 학생들의 개성 실현 권리, 양심·종교·의사표현의 자유, 자치 및 참여의 권리를 포함한 대전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 25일 대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준비되어있었다. 하지만 공청회는 보수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보수단체들은 봉고차를 대동하여 공청회장을 미리 점거하여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세월호 리본은 철거하려했던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정함철이라는 극우인사까지 동원되었다. 결국 대전충남인권연대를 비롯한 여러 대전 시민단체는 4월 28일 대전 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결국 무산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역사회의 시민단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성소수자와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대전 시민사회에서 여러 단체들이 모여 보수교육감이라고 평가받는 교육감의 교육정책을 평가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내며 활동 중이므로 점진적으로 학생인권 증진이 기대된다. 또한 성소수자와 페미니즘과 관련된 모임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의 젠더인권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참고

규환 "[전국퀴어자랑]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허핑턴포스트』, 2016. 3. 18.

갈홍식 "성소수자 조항 사라진 대전 성평등조례 의회 통과",『참세상』, 2015. 9. 21.

이종섭 "대전 학생인권조례 제정 무산 위기",『경향신문』, 2016. 4. 27.

송애진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 "대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정 촉구"",『뉴스1』, 2016. 4. 28.


2016.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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