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주, <오늘을 위한 레위기>

1. 레위기의 어려움: 레위기는 걸림돌이다. 읽더라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게 되는 본문이다. 그렇기에 레위기는 오용되기 쉽다. 레위기를 문자대로 해석해 적용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피를 먹지 말라고 적혔으니, 육회·순대는 안 먹는 사람(참고로 이를 제대로 지키려면 저 수준이 아니라 코셔푸드를 먹어야 한다). 반대로 율법이 모두 폐지되었다는 측면에서 이 본문을 그저 부차적 의미로 보는 사람도 있다. 레위기 자체도 까다로운데, 거기에 레위기는 보통 극단적으로 해석되니 이를 제대로 읽기는 매우 어렵다.

2. 레위기의 의미: 구약의 핵심이 오경이며, 오경의 핵심은 레위기라는 것은 클리셰일 정도로 레위기는 중요하다. 저자, 김근주 교수님에 따르면 레위기는 “구약 전체의 핵심을 차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의미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전적으로 레위기에 근거”하며, “가장 종교적일 수 있는 제의를 기반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일상의 윤리로 연결”하는 책이다. 레위기는 성서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고, 여전히 의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 된다. 나 역시 레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한참 주석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는데, 마틴 노트, 제이콥 밀그롬의 책을 제외한 책은 처분했다. 이 책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니 레위기를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

3. 이런 상황에서 <오늘을 위한 레위기>가 출간되었다. 책을 보며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저명한 랍비 구약학자인 제이콥 밀그롬의 <레위기 주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해외의 다양한 레위기 연구뿐 아니라 국내의 레위기 연구를 종합한 책이라는 것이다. 김근주 교수님의 <특강 이사야>처럼 이 책은 학술서와 대중서의 경계에 있지만, 기존 연구를 종합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과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책이다.

4. 동시에 이 책은 일반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레위기가 가진 내재적 의미를 해석할 뿐 아니라, 꾸준히 신앙의 맥락에서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신약과의 연관 속에서 레위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룸으로써 일반독자에게도 큰 유익을 제공한다. 또 본문의 의미를 한국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며 추가적인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데 이를 통해 저자는 수천 년의 괴리 속에 존재하는 본문을 오늘의 한국 개신교인에게 적합하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여러 성찰의 지점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책 자체가 쉽지는 않지만, 이런 책을 읽는 훈련이 된 분은 충분히 소화할 만한 책이다.

5. 내용: <오늘을 위한 레위기>는 교회를 위한 신학의 정석인 것 같다. 책은 주석의 전형을 따른다. 구성은 1부 개관, 4부 결론과 함께 제사를 다루는 2부, 성결법전이라고 주로 표현되는 레위기 후반부를 3부에서 다룬다. 각 장은 본문에 대한 주석과 이것의 현대적 적용 및 신약과의 연결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특별히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본문이 가진 의미와 오늘날의 쓸모를 탐구하는 게 필수적인, 어쩌면 강제적인 레위기를 읽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짧은 글에서 책의 내용을 전부 아우를 수는 없지만, 책에서 다루는 레위기 본문 전체의 개별적 주석은 매우 꼼꼼하고 충실하게 작성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여성의 부정에 관한 내용, 동성 성행위에 관한 내용, 그리고 희년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인식과 본문의 의미를 선별하고, 레위기의 본문의 진의를 추적하면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해석에 학적으로 반박하고 한편으로는 레위기를 오늘날 한국에 끊임없이 위치시키고 있다.

“레위기는 지금부터 수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 시기를 배경으로 당시 사람들을 청중과 독자로 전제하고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그 시기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세계관을 통해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내용은 글자 그대로 오늘날 현실에 적용될 것이 아니라 고대라는 상황을 통해 표현된 율법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신중하게 살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는 율법이 도리어 사람을 정죄하고 배제와 혐오를 자행하는 도구가 되어 버린다.” 627p.

로저 올슨, <현대 신학이란 무엇인가>

“교리와 신학은 계시와 성경에 입각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교리와 신학은 항상 상대적이고, 유한하며, 부분적이다.”
- 후스토 곤잘레스

“그러므로 교의의 내용과 진리는 교회의 합의에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의 실제 내용에 대한 인식이 그 합의를 불러일으킨다. … 하지만 그 합의는 항상 계속해서 갱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의 실제 내용의 특성 및 진리성과 관련된 성서 해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수천 년 전 고대 근동에서 시작된 한 종교가 수많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20세기 한국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바로 개신교입니다. 개신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의 종교운동은 유럽으로 확산하고, 가톨릭·정교회 등으로 발전하고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로 이어졌고, 유럽을 통해 미국에서 형성된 개신교가 한국에 전해졌습니다. 보통 우리는 교리를 배울 때 이것이 성서와 사회적 맥락 속에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탁월한 교회사학자 후스토 곤잘레스나 20세기의 신학자 판넨베르크가 지적하듯,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 같은 교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현대의 도래는 인간의 삶에 유례없는 변화를 초래했고, 기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책, <현대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현대화가 초래한 급격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근대 속에서의 현대신학의 여정(원제: The Journey of Modern Theology)을 그려내는 책입니다. 책의 저자는 신학자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저 올슨입니다. 로저 올슨은 이미 한국에 친숙한 저자입니다. 그는 복음주의 전통에 있는 신학자로, 이미 <20세기 신학>, <신학 논쟁>, <복음주의 신학사 개관>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정확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신학을 풀어내는 이야기꾼인데, 그런 장점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만큼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정보량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이야기할 때는 로저 올슨이 작고한 스탠리 그렌츠와 쓴 <20세기 신학>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올슨이 공저한 <20세기 신학>은 내재와 초월이라는 고전적인 신학적 범주를 통해 20세기 신학을 조망했습니다. 그 책의 개정을 고려해서 쓴 이번 책은 내재와 초월이 아닌, 현대성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신학을 서술합니다. 계몽주의의 토대 위에 합리주의, 회의주의, 과학주의, 세속주의, 역사주의, 낙관주의, 인간중심주의 등으로 나타난 현대성의 결과는 전통사회 위에 형성된 “전통적 기독교”를 서서히 침식해가는 산(酸, acid)이 되었습니다. 올슨은 현대성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혹은 중재하든 이 거부할 수 없는 변화에 반응하는 일군의 움직임을 현대 신학으로 정의하고 논의를 이끌어갑니다.

올슨은 현대성을 출현부터 이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 19세기 신학의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합니다. 보통 이런 내용은 쉽게 읽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올슨은 비교적 쉬운 언어로 이 변화를 읽어냅니다. 현대성이 전통적 기독교에 도전하고, 이로 인해 현대성을 통해 기독교를 재구성한 자유주의 신학, 그에 방어한 근본주의 신학, 또 이런 대립을 극복하기 위했던 중재신학을 물론이고, 신정통주의 신학의 등장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등장한 복음주의, 해방신학, 여성신학, 포스트모던 신학 등 여러 신학의 갈래를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서술의 범위가 단순히 개신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까지 포함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 현대 신학의 여정은 현대성에 대한 반응으로부터 시작되어, 현대성을 해체하는 신학에 다다르게 되는데 올슨은 이 여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한국어로 된 현대신학 책 중에 가장 교과서적이며, 서술의 범위, 방식을 고려했을 때 가장 뛰어난 개론서라고 생각합니다. 올슨은 대상 독자를 목회자, 신학생과 성도로 설정합니다. 그만큼 친절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보량이 많아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또 이 책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아마 제가 교회에 다니던 몇 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독서모임 하면서 여럿이 읽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의 유익은 신학적 사고를 확장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기독교의 전통은 넓고, 깊으며, 동시대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유익과 흥미를 가진 독자께 추천합니다.

독후감讀後感, 『창세기 설화』

1. 두 개의 맥락

종교사 학파: 1787년, 독일 알트도르프 대학에 취임한 요한 필립 가블러는 교의학으로부터 성서신학을 구별해내며, 근대의 독립된 분과학문(즉, 과학으로서)로서 성서신학을 정초했다. 가블러로부터 시작된 구약 신학의 광맥은 구속사 학파와 종교사 학파로 이어진다. 구속사 학파는 이스라엘과 세계의 역사가 신의 활동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구체적 역사 속에서 신이 섭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구약 신학의 역사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런 구속사 학파를 극복하며 출현한 것이 종교사 학파인데, 이들은 기독교를 구별되고 독립적인 유대 종교로 보기보다는, 종교 일반의 관점에서 고대 유대-기독교의 성립을 역사·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려고 했다.

자료비평: 근대학문으로 전환되고 있던 구약 신학 연구에서 구약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자료비평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이른바 모세오경 연구에 착수했다. 문서 자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벨하우젠은 모세오경이 4가지의 특정한 형태를 가진 문서로 서술되어 있으며, 이것의 연대를 추정하고 이것이 가진 시대적 의미를 추출하고자 했다.

2. 헤르만 궁켈과 이 책의 의미

이런 두 가지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 헤르만 궁켈의 『창세기 설화』이다. 궁켈은 종교사 학파에 속하는 학자이며, 구약 연구에 있어서는 벨하우젠의 자료비평을 극복하고, 양식비평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척해낸 학자이다. 그리고 이 책, 『창세기 설화』는 궁켈의 『창세기 주석』의 서론, 즉 연구 방법론과 이론적 틀을 집약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을 번역한 책이다.

책을 통해 궁켈이 새로이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설화(Sage)’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벨하우젠은 ‘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반해 궁켈은 오경이 문서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있었던 구전의 형식, 즉 ‘설화’라는 장르가 가진 사회적 작용에 주목한다. 궁켈에 의하면, 설화는 거짓말이 아닌, 민간에서 구전되는 운문의 형태로서 과거의 인물/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가 역사서가 아닌 설화라고 파악한다. 역사서는 산문의 형태인 문서로 전승되고,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사실과 목격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라면, 설화는 운문으로 구전되며, 민간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허구와 상상을 기반으로 예술적인 장르인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창세기를 더욱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궁켈은 창세기가 문서 이전에 구두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창세기는 각각의 독립적 설화들이 따로 전승되다가 특정 시점에서 종합되어 현재의 문서로 완결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양식적 접근은 종래에 성서 연구에 있어 공시적 접근, 즉 역사적 접근이 미처 보지 못한 측면을 보게 한다. 설화라는 장르로 창세기를 조망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어떤 이유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강조되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생략되기도 한 것이다. 궁켈은 양식적 접근을 통해 이야기 배후에 있는 창세기의 설화를 구전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들어가 그 진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는 성서가 실증되어야 한다고 보는 문자주의의 입장이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창세기 “설화”라는 제목에서부터 이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100여 년 전 궁켈이 쌓아 올린 이 광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궁켈은 구약 신학의 과제가 “그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이해함과 동시에 그것의 다양한 굴곡과 변화를 추적하며, 그것의 가장 심오한 사살들이 생겨난 곳을 찾아가는” 데에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접근이 성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문자적 접근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를 통해 성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 즉 과학으로서,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소개 중이신 역자 진규선 선생님께도 이런 책을 번역하신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덧. 나는 신학에 문외한이라 글에 크고 작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린다.

신학과 사회이론 단상

밀뱅크의 <신학과 사회이론>을 읽기 위해서는 광범한 철학·신학의 선이해가 필요하기에 정직하게 내가 다 소화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책에서는 자유주의, 실증주의, 변증법, 차이 등을 다루는데 관심사에 따라서 서론과 사회학을 다루는 2부 신학과 실증주의를 중심으로 책을 살폈다. 사용하는 개념이 워낙 방대해서 서론을 읽기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

영국의 좌파답게 밀뱅크는 “마가렛 대처가 한창 집권하던 시기에 오직 신학적 비전만이 당시 대두하던 신자유주의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쓴 책”이며, “가톨릭적 그리스도교의 현실관을 왜 최종적으로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려고” 책을 썼음을 밝힌다. 이것이 핵심이다. 사실 서문을 읽으면서 기대가 하락했다. 일례로 근대성을 표방하는 몇몇 사상가가 정치적 우파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얼마나 재미없고, 정직하지 못한 서술인가. 그는 꾸준히 근대성에 내재된 그리스도교적 요소는 왜곡되었으며, 근대성에는 결함이 있다고 서술한다.

밀뱅크는 사회사상에 포함될 수 있는 사상가, 사회학자를 ‘실증주의’로 묶어 설명한다. 꽁트, 뒤르켐, 베버, 파슨스, 루만에 피터 버거, 브라이언 터너도 다룬다. 여기서도 논조는 비슷하다. 나는 밀뱅크의 평가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밀뱅크는 이론가를 평가할 때, 두 가지 자료를 사용하는데, 하나는 해당 이론가의 영역본 저서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드먼, 기든스, 스윈지우드 등 영미 사회학자의 2차 자료다. 그는 한사코 실증주의 역시 신학의 한 변종이며, 이들의 사상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결론과는 무관하게 사회학자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에 큰 의문이 들었다.

해석의 준거가 되는 영국학자의 영향이 강하고, 그 해석은 순전히 영미적인 한계가 다분했다. ‘실증주의’라는 단순해 보이는 사상도 사회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미국의, 프랑스의, 독일의 실증주의는 모두 다른데 밀뱅크는 저 각기 다른 모든 사상을 하나의 실증주의에 욱여넣는다. 개별 사상가의 해석 역시 편향적 해석이라고 느낀 부분들이 상당했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나 따져볼 생각이다.

번역에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일단 ‘the political’, ‘the social(das sozial, le social)’ 같이 이미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으로 번역된 어휘를 굳이 ‘정치부문’, ‘사회부문’이라고 번역했는데, 문의해보니 ‘~적인 것’이 직관적이지 않아 그렇게 했다는 답변을 얻었다. 나는 도통 ‘~부문’을 읽으면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차라리 ‘~적인 것’으로 옮겼으면 해당 번역어를 쓰는 서적이나 학술자료가 많기에 이해에 도움이 됐을 것.

그리고 사회학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어인 ‘action’을 ‘행동’으로 번역했고, 루만을 다루는 부분은 개념어 중에 맞는 개념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 이 부분은 장춘익 선생님의 역어대조표를 가지고 출판사에 수정을 제안했다. 번역어 이외에도 루만이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에 대해 다루면서 아마도 ‘미분화된 상태’를 서술하는 것 같은 대목에서 원서에는 ‘lower stage’로 표현된 것을 ‘저급한 단계’로 번역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안 좋은 평가를 했지만, 이 책은 대단한 책이다. 책에 크게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밀뱅크가 가진 이론적 스케일은 여느 학자와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다. 또 이런 관점에서 근대 사상의 넓은 범위를 조망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만듦새의 한계도 지적했지만, 뚝심으로 이런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도 감사한 마음이다.

여담으로 이 책이 나온 다음 한 기독교 출판사 편집장이 2부를 ‘신학과 실증주의’로 옮긴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분이 헤겔의 Positivität 개념과 관련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헛소리다. 2부의 Positivism은 꽁트의 실증주의이고 헤겔이 중요하게 언급되는 부분은 3부 ‘신학과 변증법’이다. 뭘 모르면 헛소리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거다. 이 글을 읽고 책을 접하는 분께서는 혼동이 없으시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 성경 주해와 해석: 동성 성행위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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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개신교 성서에서의 동성 성행위에 관한 7개의 본문을 성경주해와 성서해석학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책으로, 이 책의 유익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성서해석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배움으로써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준수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동성 성행위’에 관한 성서구절에 얽힌 오해를 해소함으로써, 기존 기독교의 그릇된 해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저자: 19년 12월 28일 포스팅을 확인하세요.

3. 구성: 이 책은 총 4개의 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 2부에 해당하고, 3, 4부는 1, 2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우선 1부 ‘성경 주해와 해석’에서는 성서에 관한 접근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가 먼저 다루는 것은 문맥에 따른 접근, 즉 성서비평의 방법입니다. 성서비평은 근대과학이 발전하면서 나온 신학의 한 방법론인데요, 저자는 근대에 발전한 이 방법을 통해서 성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더불어서 저자는 비평에 따른 이해를 넘어서 성서 전체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원칙과 성서 개별의 입장이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서가 쓰일 당시 역사의 구체적 맥락 속에 담긴 보편적인 가르침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성서의 특수한 가르침을 파악하는 방법도 제시합니다.

이런 성서해석의 기본적인 입장과 원칙을 기반으로 이어지는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성서에 나온 동성 성행위를 지칭하는 본문 7개를 다룹니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성애는 1867년 독일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인 것부터 언급합니다. 성서 당시 사회에서는 우리가 가진 동성애라는 개념은 없었고, 그저 동성 성행위를 가리킬 뿐이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쨌든 그것을 통해서 성서 내부에 있는 동성 성행위를 언급하는 본문이 현대의 동성애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그것이 가리키고 그것을 통해서 성서가 지향하는 것은 어떤 절제되지 못한 욕망에 의한 폭력의 한 형태로서 그것을 지칭하고 비판하는 것이라는 걸 밝히고 있습니다.

일례로 소돔에서 나온 나그네를 향한 동성 성행위는 실질적으로는 성폭행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동성간의 성행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성폭행을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이성이든, 동성이든 동의없이 하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소돔 본문이 비판하는 바이지, 근대에서야 인식하게 된 동성애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는 겁니다. 책은 이런식으로 성서에 나온 동성 성행위에 관한 7개의 본문에 오해를 교정합니다. 저자는 ‘사랑의 해석학’의 중요성을 피력합니다. 되려 성서는 소수자를 위한 텍스트라는 겁니다.

4. 느낀 점: 책 자체가 비싸거나 두껍지 않고 어렵지는 않은 편이니 부담없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신앙인이 아님에도 계속 개신교와 페미니즘, 성소수자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개신교 내부에서 그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맥락을 모르는 분이 보기엔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시는 걸 알지만 저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에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그 안에서 정체성의 문제로 타인을 통해 겪는 폭력은 물론이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이런 비참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라며 책을 소개합니다. 또한 기존의 개신교인이시더라도 부디 한 번쯤 읽고 고민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잭 로저스, 『예수, 성경, 동성애』

1. 핵심: 『예수, 성경, 동성애』는 미국장로교회 총회장을 역임한 저자, 잭 로저스가 20여 년간 미국 장로교에서 어떤 연구와 합의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이루었는지를 성경·교리·역사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입니다. 성소수자 사안에 관심있는 기독교인들이 모범적 사례로 참고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저자·역자: 잭 로저스는 미국 장로교회 총회장을 지낸 종교인이자, 네덜란드에서 개혁주의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풀러 신학교 등 보수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학자이며, 신앙적으로 보수적인 복음주의자입니다. 보수적인 신앙/신학을 추구한 종교인·학자가 기독교의 전통 안에서 미국 장로교에서의 동성결혼 승인과 성소수자 목회자 허용 등의 성소수자 친화적인 변화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백미입니다. 번역은 한국외대에서 학부와 석사 공부를 하시고, 호주에서 신학 학사·석사를 하신 조경희 선생님이 하셨고, 번역의 질은 나쁘지 않은데 만듦새·편집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3. 내용: 이 책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에서는 동성애를 연구하게 된 목회적 차원의 계기와 자신의 신앙적 스탠스가 보수적인 전통에서 형성되었고, 자신이 여전히 보수적 복음주의자임을 밝힙니다. 2장은 지금껏 교회가 성경을 오용해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해온 역사를 다룹니다. 성경을 통해 정당화되었던 노예제,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역사를 다루고 이런 성경 오용 ➡️ 약자 억압의 패턴이 성소수자 억압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지적합니다. 3장에서는 20세기 신학의 교부이자 대문자 신학자인 칼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신학을 통해 기독론적, 즉 예수의 사역의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전통(보수)적인 신앙고백에 근거한 성서해석의 7가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이를 근거로 5장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동성애 관한 구절들이 성소수자의 인권 억압으로 이어지는 성서해석을 비판합니다. 전통적 신앙고백에서 만들어진 성서해석의 기준을 통해 성소수자에 관한 성서해석의 오해를 재해석·교정하는 겁니다. 한 편으로는 최신학문들의 성과로 발견된 성소수자에 관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7장에서는 성소수자의 경험적 현실을 다루면서 이들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룹니다.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저자는 미국 장로교회의 변화를 제안하고, 마지막장에서는 이런 현실 속에서 장로교가 예수처럼 변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부록으로는 LGBT 평등을 향한 미국 내 다양한 교단의 입장을 소개하고, 한국의 현황이나 이 책의 스터디 가이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 느낀점: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조직신학자 판넨베르크, 탁월한 역사신학자 후스토 곤잘레스 등의 거장들은 기독교의 교리는 언제나 새로 합의, 갱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소수자 인권문제는 사회의 보수주의+종교 근본주의의 부정적 인식을 통해 진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 국가 또는 전통이 있는 서유럽·북유럽은 대부분 동성혼이 합법화되었죠. 반면 동성혼이 불법인 국가들은 대부분 종교 근본주의가 득세한 한국(개신교),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저는 이 책이 기독교에서 동성애 사안을 다루는 어떤 전범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러한 전환이 정통 개신교에 기반한 변화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은 인본주의(악마의 속삭임)에 물들어서 그런 거다, 이렇게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국보다 기독교의 전통과 문화, 신학이 깊은 미국 장로교에서 생긴 변화를 한 번 지켜보시는 걸 권해드리겠습니다.

1. 핵심: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는 앞서 다룬 근본주의의 성경이해, 즉 문자주의적 성경해석을 극복하면서도 온건한 신앙을 유지하길 바라는 기독교인을 위한 책으로 입문자들이나 신학의 기초가 없는 분들도 비교적 읽기 쉽고, 개인적으로 제가 주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선물한 책이기도 합니다.

2. 저자: 이 책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학·신학 석사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 이사야서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김근주 목사/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수님께 구약 입문과정을 배웠습니다. 특히 저자는 성서에서도 구약 성서와 예언자들의 정의와 공의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른바 12예언자들에 관한 연구를 책으로 출간하고 계시고, 사회의 각종 문제에 참여하시는 실천가이시기도 합니다.

3. 내용: 이 책은 얇고(180여 페이지), 싼(8,000원) 문고판 책입니다. 이 책은 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에 연재되었던 글 12편을 모으고 편집해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기존 교회의 일명 성경묵상, QT에 관해 문제제기하며 시작됩니다. 성서에 나온 지엽적인 이야기만 읽고 적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나온대로 신을 아는 것,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부하는 성경읽기를 강조합니다. 저자는 성서를 덮어놓고 믿는 게 아니라 성서는 신의 글인 동시에 인간의 글이기에, 문학적 양식을 검토하고, 문맥을 고려하고, 시대적 상황을 살피며 성경을 읽어야한다고, 이런 비판적인 독해야말로 성서에 나온 인물들의 모범적인 성서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성서를 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서 내부에 있는 보이는 모순들과 마주치는 것이기도 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겉으로는 모순돼 보이는 본문에서 본질을 성찰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신학적 읽기는 성서이해의 상대화·객관화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부터 책은 성서의 신학적 의미가 어떻게 풍요로운 성서해석으로 이어지는지 논하고, 구약학자답게 구약의 중요성과 구약과 신약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결론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신앙의 본질로서 ‘사랑의 법’에 기초한 성서 해석을 제안하며 책을 마치는데요, 성서를 지엽적이고 부분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성차별·인종차별·노예제와 같은) 폭력을 지적하며 성서의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준거가 될 수 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법’에 근거해 성서본문을 해석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4. 느낀점: 저는 저자분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다. 현재 김근주 교수님은 근본주의 개신교에 의해 여러 공격을 받고 계신데요, 실제로 교수님은 제가 교회를 떠날 때 어떻게든 교회에 출석하는 걸 추천하신 그런 건실한 신앙인이십니다. 저는 지금 신앙이 없지만 이 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신앙서적이기 때문에 굳이 비기독교인들께서 보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독교인이시고 제 글을 보시는 분이시라면 얇고 저렴한 책이면서도 내용이 좋은 책이니 한 번쯤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새로운 노동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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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또 다른 한편으로 기업가의 화폐취득도 ‘소명’으로 해석함으로써 이와 같이 특별한 노동 의욕을 가진 자들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했다.” -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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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윤리는 극빈층의 수를 ‘확실하게 줄’이려는 움직임에 물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게 이바지했다. 그 윤리는 결국 특정 형태의 삶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비참하다고 해도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 지탱되는 삶이라면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막스 베버는 유명한 종교사회학 논총 서문에서 자신은 신학이 아니라 신학이 만들어내는 인간들의 사회적 행위를 인식하고 연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처럼 저 역시도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종교의 노동윤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독특한 책이 하나 나와서 살펴봤습니다. 이 책, 미로슬라브 볼프의 『일과 성령』은 일(work)의 신학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1. 핵심: 루터부터 시작된 기존 일의 신학의 한계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이라는 문제 속에서 볼프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서 착안한 종말론과 자신의 성령론 이해를 통해 새로운 일의 신학을 구성하며 신학적 갱신을 하는 책입니다.

2. 저자: 20세기 신학의 거장이자 ‘희망의 신학’을 창안한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 볼프는 ‘노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예일대의 교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학자입니다.

3. 문제의식: 종교개혁자 루터로부터 시작된 소명, 즉 일과 노동에 관학 신학이 앞선 사회학자들의 관찰처럼 불평등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한계를 가지고, 또한 16세기에 형성된 사상이기에 현대사회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신학적 문제의식과, 불평등·착취·자연파괴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사회의 현실성 사이에서 새로운 일의 신학을 모색합니다.

4. 구성: 이런 문제의식과 함께 1부에서 볼프는 일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아담 스미스·칼 맑스를 통해 일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도 볼프는 맑스가 제기한 소외(Entfremdung)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여기서 소외란 (저는 소외개념만 반학기 배웠지만..) 간략하게 노동을 주체로 해야하는 인간이 되려 노동에 의해 억압되어 인간의 창조성과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현실을 기반으로 2부에서 본격적으로 일의 신학이 구성됩니다. 볼프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서의 종말론으로서 ‘새 창조’를 이어받아 물질성을 긍정하고 바로 이 물질세계를 종말의 완성인 새 창조의 장소로 규정하며 지금 사는 이 세계 자체를 보존·변혁하기 위해 신과 협력하는 것이 곧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뒤이어 볼프는 성령론을 통해 기존 루터의 소명론이 가진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성령이 주는 선물인 다양한 카리스마(은사)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노동신학을 인간론·여가·환경 등의 구체적 장소에서 논합니다. 끝으로 볼프는 앞서 제기했던 소외의 문제를 마지막으로 다루는데, 여기에서 볼프는 성서가 소외의 문제를 비판하며, 노동의 개인적·구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 역시 긍정합니다.

5. 느낀점: 내용이 많은 책을 축약하다보니 중언부언이 심했네요. 관찰자로서 제가 보기에 이 책은 20년 전 책이지만 일에 관한 균형잡힌 시각을 원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저는 일부러 (동의와 상관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종교담론들을 분석하는데 이 책은 비슷한 주제의 책 중에 가장 준수한 것 같습니다. 기존의 기독교의 소명이해는 너무 보수적이었고, 폭력적이기도 했죠.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잘 돌파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 맑스가 호명되지만 볼프는 복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정도의 온건한(?) 스탠스라 지향에 상관없이 널리 읽혀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개신교 내부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개신교인들의 새로운 종교행위를 추동할 수 있는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곁가지로 덧붙이자면, 박득훈 목사가 쓴 해설은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볼프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자신이 그랬으면 하는 바를 볼프에게 강제하는 식이다. 형편없는 이해에서 나온 것. 저분이 이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여러 번 읽어도 감상은 같았다.

“남편의 외도는 꾸미지 않은 아내 때문이다.”,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 “성경인물 중에 여자문제 없는 인물 없다.” 이런 말은 도대체 누가, 언제 한 이야기일까요? 조선시대 이야기일까요? 얼마 안 된 한국 개신교의 대표 목회자·장로들이 한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처벌을 받았느냐? 다들 잘 살고 있습니다. 개신교단체인 한국복음화협회의 자료를 보았을 때, 개신교인들은 비개신교인 평균보다 더 보수적이고 성(性)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의 말들이 어느 정도 정제된 상태로 인식 속에 공유되어 있을 겁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온 책이 이 책 <비혼주의자 마리아>입니다.

1. 총평: 이 책은 전체적으로 두 갈래로 진행되는데요, 하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그루밍 성범죄를 다루는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안에 만연한 성차별적 인식과 교육에 관한 반박입니다. 물론 후자가 전자 속에 녹아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갈래로 이 책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 출판사: 이 책은 기독교 출판사 Ivp에서 나왔습니다. Ivp 출판사는 아마도 개신교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출판사일 텐데요, 복음주의 전통의 Ivp는 신앙적이면서도 내실있고 상식적인 내용의 출판물들이 나옵니다. 복음주의권의 대표 출판사이면서 모던 클래식스 같이 학술적으로나 현대 기독교 역사에서 가치 있는 출판물을 출간하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만듦새가 좋은 편이죠. 개인적으로 신앙인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출판사입니다.

3. 저자: 이 책은 안정혜 작가님이 쓰시고 그리셨습니다. 안정혜 작가는 기독교 컨텐츠를 보다 쉽게 만화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신 분이시고, 한국교회에서 성적으로 왜곡된 시선들을 너무나도 모범적으로 배우고 체화하셨던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겪었던 분노의 경험들을 꺼내 마주보면서 교회에서 있었던 많은 성차별과 성범죄를 통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한국교회를 너무 잘 아는 내부자이고 이 책은 하나의 만화이지만 현실을 담고 것입니다.

4. 내용구성: 이 책은 언니 권마리아의 비혼 문제로 자신의 결혼에 차질이 생긴 권한나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동생 권한나는 자신의 결혼을 위해 언니를 만나고 그 과정에서 언니가 겪었던 교회에서의 성범죄 문제를 알게 되고, 또 언니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기 위해 독서모임에 언니를 초대하게 됩니다. 그 독서모임의 주제는 ‘바울과 여성’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여성혐오의 종교인지를 토론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신학적인 내용이 나오고, 교회 내의 문제적 인식들이 반박됩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과정 속에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알렌 크라이더의 <회심의 변질>입니다. 종교개혁자에게 박해를 받은 종교개혁자들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급진 종교개혁파, 종교개혁 좌파, 아나뱁티스트들입니다. 이들에게 주류 종교개혁은 또 다른 타협이었고 이들은 국가를 포함한 모든 외적 권력과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성인신자의 세례를 옹호하고, 재산을 공동소유하고, 징병에 반대하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루터, 칼뱅 역시 이들을 공격하고 신교는 이들을 죽이기까지 하죠. 이런 전통에서 초기 기독교를 재구성한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대장간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대장간 출판사는 위에 설명드린 것 같이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계열의 기독교 출판사로서 독특하면서도 의미있는 책을 출간하는 기독교 출판사입니다. 저는 자끄 엘륄 총서를 관심갖고 보고 있습니다. 편집이나 디자인의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기독교 내부에서 대체불가능한 영역을 개척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알렌 크라이더는 고셴대, 프린스턴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초기 교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 뒤로는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서 대학(AMBS)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습니다. 저자는 초기 교회사 분야의 권위있는 학자이며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초기, 중세 기독교 자료사용이 매우 전문적입니다. 이 책은 공역된 책으로 평화주의 모임 소속의 목사 네 분이 번역을 하셨습니다. 여러 명이 번역을 하다보니 가독성이나 개념어의 선택이 균질하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읽기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hange of Conversion and the Origin of Christendom>입니다. '회심의 변질과 크리스텐덤의 기원'정도가 되겠는데요, 여기서 크리스텐덤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크리스텐덤은 Christ와 Kingdom의 합성어로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가나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고, 저자는 이것을 인간 경험의 모든 영역을 신의 주재권 아래 굴복시키려는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책은 성경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회심부터 초기 기독교 '회심의 본질'을 1-3장에 걸쳐다룹니다. 이들의 회심에는 이른바 3B, Belief(신념) Behavior(행동) Belonging(소속)의 완전한 변화가 있었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승인을 받기 전까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잠재적 사형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세례를 받기까지 3-5년의 훈련을 받았으며 이것은 재사회화였고, 삶의 총체적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는데요, 4-7장은 로마제국의 승인 하에 시작된 '회심의 변질'을 다룹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고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크리스텐덤 체제가 시작됩니다. 이제 기독교는 주류가 되고 강제적 개종이 시작됩니다. 태어나는 순간 국가와 교회에 소속되게 되죠. 삶의 총체적 변화는 없어지고 3-5년이 걸리던 세례교육은 2개월도 안 되게 줄어들게 됩니다. 기독교의 종교지도자들은 세속의 지배층과 결탁하여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국가가 종교적 삶을 규제하고, 또 폭력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크리스텐덤 체제와 함께 기독교는 변질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 8장에서 저자는 크리스텐덤과 기독교의 미래에 관한 결론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서구를 1000년간 지배했던 크리스텐덤 체제의 특성을 정리합니다. 크리스센덤의 3B는 이렇습니다. <1신념: 정통 기독교의 옹호, 이단의 적대시, 타종교 배척, 종교 교육의 초보화, 사회 전반의 기독교화, 2행동: 기독교적 행동규범의 강요, 기독교 도덕법의 선택적 강요, 십일조의 강조 및 세속영역에서의 종교의 강제, 3소속: 유아세례의 강조, 비대해진 교회조직, 국가와의 공생, 교회의 강제력, 성직자의 성서해석 독점(성직주의)> 저자는 마지막으로 현대사회가 초기 기독교의 상황과 비슷하다면서 책을 마치고 있고, 초대 교회의 교훈을 배우자고 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기독교와 관련된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텐덤 체제는 한국에서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근본주의 개신교와 기독자유당 같은 종교극우정당의 사고의 핵심에는 크리스텐덤 체제가 있기 때문이고 한국 개신교는 여러 지점에서 크리스텐덤적 정서를 공유합니다. 이 책은 여러 성찰의 지점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요사이 이른바 기독교 빌런 독서를 좀 했다. 그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복있는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낸시 피어시의 『네 몸을 사랑하라』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대강 사회변화, 그것도 성(性)문화 변화에 따른 보수 기독교의 대응이다. 저자 낸시 피어시는 한국에서 잠시 유행했던 기독교 세계관 맥락의 있는 사람으로 성서학을 전공했다고. 대체로 스스로를 꽤 상식적인, 수준 높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수준 높게 소개한다고 자위할 때 좋아하는 작가. 교회 밖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고, 그런.

그래서 이 책은 포르노그래피, 동거, 이혼, 동성애와 성전환, 낙태 등의 문제를 기독교 특유의 시각에서 보수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몸과 영혼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문제라 이런 안 좋은 사회현상(위에 열거한 프로노, 동거, 이혼 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원론적 세계관을 타파하기 위해 무려 끌고 오는 게 기독교 세계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고, 저자의 스승이기도 한 “프란시스 쉐퍼”.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을 포함해도 태반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 어쨌든 저자는 지속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주저리주저리 그럴싸한 척, 굉장히 뭔가 있고 고상한 척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책을 나중에 조용기 책처럼 한 번 제대로 읽고 ‘보수 기독교의 성 담론’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가볍게 말하자면 “저런 식으로 하니까 망하지” 정도로 정리된다. 저자 주장의 타당함은 그만 알아보기로 하자..

이런 말만 할 거면 도대체 글은 왜 쓰는 거냐. 단순하다. 그냥 기독교계가 구려서 써본다. 나야 기독교를 탈출한 지 꽤 됐지만, 그 바닥 돌아가는 생리는 대충 안다. 내가 흥미로운 건 이 책이 그래도 복음주의 계열에서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책이나, 진보적인(?) 책을 출간하는 <복있는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 책의 추천사를 보니 이찬수를 필두로 한 보수 기독교의 지원이 있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이찬수 목사 교회에서 이 책으로 행사도 했다.

복음주의 기독교계, 그중에서도 진보적 복음주의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동성애에 보수적인 사람을 비판하는 게 일상이다. 아마 이번에 대형교회 목사들이 차별금지법에 관해 개소리하는 기사 링크도 하나씩 공유해가며 페이스북으로 욕했을 텐데, 이 책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듯. 왜 그럴까? 공공연하게 서로들 아는 사이니까 그럴 거다.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빨아주다가 막상 이런 책 나오면 함구하는 그런 거. 그러니까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이 나와도 “너나들이하는 사이”니까, 서로는 비판을 안 한다. 아마 이런 책이 조금만 자기들 기준에 수준 낮다고 여겨지거나, 지들이랑 안 친하거나, 보수적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까고 조롱하느라 정신없었을 거다. 참 판 자체가 더러운 판이다. 이 책의 운명이나 그들의 운명이나 비슷할 것.

이 정도로 중립을 유지하지 못한 글이 거의 없었는데, 글이 질 나빠서 이 글을 읽으신, 내용에서 비판하는 책 또는 일군의 무리와는 아무 상관 없으실 일반 독자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기독교판이 너무 구려서, 주체를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Tolle lege!

 

신알못이 추천하는 입문자를 위한 기독교 서적 112권

 

들어가면서,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저의 제한적인 경험에서 나온 한계적인 이야기이니, 너무 큰 의미는 두지 마시고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졌고, 이런 책을 봤구나’하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본인께서 생각하시고, 본인께서 보고 싶고, 본인께서 끌리시는 그런 걸 주체적으로 찾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신학생도 아닌, 다른 공부를 하면서 신앙에 또는 신학에 관해 나름 고민했던 흔적이고 제가 만든 한 지도라고 생각하시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고민과 흔적, 그리고 당신만의 지도를 만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부터 하려고 합니다. 먼저 지식과 실천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저는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엄청난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신이시고, 당연히 모든 사람의 신이시라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를 주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복음이어야 하는 것이지, 엄청나게 정교한 지식을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뇌가 있고, 사고가 있고,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지식 또한 중요하고 그래서 기독교에 공부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신앙/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종종 지식만이 전부라고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오만함이 있었던 것 같고요. 누구나 아는 당연한 소리를 해서 죄송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독서와 지식을 추구하지 않아서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를 하고 지식을 쌓게 된다면 오만해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신학책을 이해하는 것보다 남들이 기피하는 자리에서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이 저는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신학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건 참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콜라 철학자 안셀무스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신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다, 고전적으로 이렇게 정의하기는 하지만 저는 현대사회에서 신앙과 신학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학은 말 그대로 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당장 바울의 생각한 구원은 무엇이었는지, 그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고대의 자료부터 최신 경향까지 섭렵하면서 바울의 서신을 어떻게 해석할지 학회에게 경쟁하는 게 신학의 일이라면, 신앙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신앙인들의 실천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인들은 굳이 바울의 서신이 무슨 의미인지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고 고고학의 성과, 현대의 바울신학의 경향까지 살펴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서의 가르침대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 문제입니다. 물론 신학에서 새로운 바울에 관한 해석이 나와서 기독교의 구원에 관한 교리의 내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리는 고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동되어 왔으니까요.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라 신학이 바뀌고 교리의 내용이 바뀌면 신앙생활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겠죠. 여기서 길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대강 신앙이랑 신학은 좀 다르구나, 하는 느낌만 가져가셔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제 나름대로 읽어온 책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소개하는 책은 난이도에 따라서, ‘입문’, ‘기본’, ‘심화’로 분류하겠습니다.

 

1. 신앙 서적

 

방금 말했듯이 신앙과 신학은 다릅니다. 신앙은 기독교인의 구체적인 실천,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 신앙서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입문)

(2)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입문)

 

이 두 책이 짧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인의 모범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볍게 읽으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책인 것 같고요,

그다음으로는 저자를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생활에 밀접한 주제들을 가지고 신앙을 풀어나가는 기독교 작가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이 쓴 책은 많이 있어서 검색해보시고, 관심이 가시는 주제/제목이 있으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스탠리 하우워어스, 『한나의 아이』(기본)

 

신앙에 관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 책, 『한나의 아이』입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워어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록이자 회고록인데요, 따뜻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지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로완 윌리엄스’의 신앙의 기초 3부작,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 『인간이 된다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로완 윌리엄스도 꼭 기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쉽게도 신앙 서적에서 한국 저자의 책을 추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그리고 당장은 생각나는 책이 없는데 추후에 책을 읽게 되거나 생각이 나면 추가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신앙보다는 신학에 가까운 책들을 추천 드릴 텐데요, 이 둘이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거나 신앙에 가까운 책들도 있을 겁니다. 최대한 주제별로 쉬운 책부터 조금은 어려운 책들까지 추천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크게 성경을 다루는 성서신학, 교리를 다루는 조직신학, 기독교와 관련된 역사를 다루는 역사신학, 기독교인들의 실제적인 실천의 문제들을 다루는 실천신학 정도로 분류됩니다. 이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건강한 앎,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 고민에 관해서도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신학이기도 해서, 이제부터는 신학책을 추천드립니다.

 

2. 성서신학

 

먼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성서신학입니다.

 

(4) 케빈 벤후저 외, 『성경 무오성 논쟁』(기본)

 

성서신학을 독서하기에 앞서서 접해야 할 부분은 기독교인이 사랑하고 믿는 성경에는 오류가 없는지, 성경은 문자 그대로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성경도 어느 정도 필터링을 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책이 『성경 무오성 논쟁』입니다. 이 주제는 사실 조직신학 서론에서 다루고는 하는데, 저는 여기서 다루는 게 적절한 것 같아서 이렇게 미리 적어봅니다. 성경은 어떤 책인지, 과연 나는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이 있는 분께서는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성서신학은 보통 구약학, 신약학으로 구성되어있고, 성서(경)해석학도 여기서 다루면 좋을 것 같네요. 결국 성경을 읽는 것도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성서해석학은 성경을 보는 ‘눈’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성서해석학

 

(5) 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 읽기』(입문)

 

성경해석에 관해서 제가 가장 먼저 추천 드리고 싶은 책은 김근주 교수님의 이 책입니다. 매주 저렴하고 얇은 미덕을 가진 이 책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쉽고 친절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어진대로만 읽었던 성경을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 있게 되는 책입니다.

 

(6) 앤서니 티슬턴,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기본)

 

이 책은 진짜 성경해석학에 관한 신학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말 그대로 기독교 성서해석학의 교과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가장 정론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아마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성경해석학 개론서 중에는 가장 좋을 책일 것 같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추가적으로 ‘성경의 권위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신 분은 (7) 케빈 벤후저,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심화), (8) 제임스 K. A. 스미스, 『해석의 타락』 (심화)을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신·구약성경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성서학 개론

 

(9) 더글라스 스튜어트·고든 D. 피,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입문)

(10) 더글라스 스튜어트·고든 D. 피,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입문)

 

이 두 책은 성경 전체를 처음 공부할 때 좋은 책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성경이 가진 장르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장르로서 성경은 어떻게 읽을 때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앞선 책의 후속작으로 앞선 책에서 장르별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가지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해 해석할 것인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11) 트렘퍼 롱맨 3세, 『손에 잡히는 구약 개론』(입문)

(12) D. A. 카슨·더글라스 무·앤드류 나셀리, 『손에 잡히는 신약 개론』(입문)

 

다음으로 추천할 책은 앞선 두 책보다는 조금 더 학술적인 신·구약 개론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손에 잡히는’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렴하고 얇은 책입니다. 이 책들은 성경 각 권에 관한 정보들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신학적인, 학술적인 논의들도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구약은 (13) 트렘퍼 롱맨 3세·레이몬드 딜러드, 『최신구약개론』(기본)을 신약은 (14) D. A. 카슨·더글라스 무, 『신약개론』(기본)이라는 기존의 두꺼운 개론서를 축약해서 쓴 책입니다. 앞의 책은 가볍고요, 원본들은 두껍고 그만큼 많고 깊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근주 교수님께,

 

(15) 버나드 W. 앤더슨, 『구약성서 이해』(기본)

(16) 발터 아이히로트, 『구약성서 신학1·2』(심화)

 

이 두 권을 구약 개론 입문서로 추천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약 개론서로는

 

(17) 레이몬드 E. 브라운, 『신약개론』(기본)

(18) 한스 콘첼만, 『신약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심화)

 

이 두 권을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외에도 한국 신학자들이 함께 쓴 다음의 책도 좋고요,

 

(19) 김영진 외, 『구약성서개론』(기본)

(20) 김경희 외, 『신약성서개론』(기본)

 

가톨릭 신학자들이 쓴

 

(21) 에리히 쳉어, 『구약성경 개론』(심화)

(22) 마르틴 에브너·슈테판 슈라이버, 『신약성경 개론』(심화)

 

이 두 권도 매우 좋습니다. 일단 가톨릭 입장에서 쓴 성서신학책이기도 하고, 앞서 추천한 책들은 대개 영미 복음주의 학자들의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쪽은 독일 신학자들의 책이라 앞선 책과는 다른 장점들이 있고, 특히 구약 개론은 외경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구약학자 중에는폰 라트’라는 학자의 책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번역된 구약성서 신학 3권은 국한문 혼용이라 비추드리고요,차준희’ 교수님께서 독일권의 구약책을 많이 번역하십니다.

 

이외에 성경 전체가 아닌 단 권들이 궁금하시면, ‘창세기’, ‘이사야’, ‘마태복음’ 이런 식으로 검색하셔서 관심 가는 책을 보시면 되고, 주석서가 보고 싶으시면 성경 전체를 다룬 주석서로는 (23) 독일 성서공회 주석성경(기본)을 보시면 좋고, 단 권 주석들은 솔로몬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이 좋고, WBC 주석 시리즈,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온 국제성서주석 시리즈, 그리고 번역이 되고 있는 앵커바이블 시리즈를 추천드립니다.

 

3)역사적 예수/바울

 

다음으로 다룰 것은 역사적 예수와 바울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역사적 예수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던 ‘인간 예수’에 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으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던 예수는 누구였는지를 밝히려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예수가 살았던 당시 시대의 사회·문화·정치적 배경을 탐구하면서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죠.

 

(24) 톰 라이트, 『예수의 도전』(입문)

 

톰 라이트의 『예수의 도전』은 역사적 예수에 입문할 때 추천드릴 수 있는 책입니다. 톰 라이트는 명성 있는 신학자답게 이 주제에 관해 신학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으면서도, 책이 얇고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25) 게르트 타이센, 『역사적 예수』(기본)

 

다음으로는 가장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르트 타이센의 『역사적 예수』인데, 이 책이 해당 주제를 가장 포괄적으로 개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예수에 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으신 분께 추천 드리고 싶고요, 이 책은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책이라 최신 논의들은 담고 있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26) 로버트 M. 프라이스 외, 『역사적 예수 논쟁』(기본)

 

그리고 함께 추천할 책은 『역사적 예수 논쟁』이라는 책인데요, 기존의 보수적인 관점부터 진보적인 관점까지 역사적 예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5명의 학자가 각기 펼치는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다양한 관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익학 책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바울신학에 관해 이야기할 건데요, 최근 고고학의 발견 덕분에 바울에 관한 이해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1세기 유대주의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을 ‘바울에 관한 새관점’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정통적인 구원론이 바뀐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주제에 관해서 저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얻은 믿을만한 정보와 함께 설명을 드릴게요.

 

먼저 이 논의를 정리한, 책은 아니고 논문이 한 편 있는데요, 김선용, 『바울을 바라보는 새 관점 - 기원, 발전, 분화, 그리고 그 이후』(http://moksin.duranno.com/moksin/view/article.asp?Keyword=%B1%E8%BC%B1%BF%EB&articleNO=37257)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바울에 관한 새관점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논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울에 관한 새관점은 ‘E. P. 샌더스 - 제임스 D. G. 던 - 톰 라이트’이라는 이른바 3대장의 계보로 이어지고 최근에 나온 존 M. G. 바클레이는 바울에 관한 새관점 이후의 바울 연구자로 각광받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7) 존 M. G. 바클레이, 『단숨에 읽는 바울』(입문)

(28) 스캇 맥나이트·조지프 모디카,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기본)

 

이 두 책은 저도 추천받은 책으로 바울에 관한 짧은 개론서와 바울에 관한 새관점을 명료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같은 경우는 바울의 새관점 이후 기독교인이 지녀야 하는 윤리적 함의를 다룬 책으로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29) E. P. 샌더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심화)

(30) 제임스 D. G. 던, 『바울에 관한 새 관점』, 감은사(심화)

(31) 톰 라이트, 『톰 라이트의 바울』(기본)

(32) 톰 라이트,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기본)

(34) 존 M. G. 바클레이, 『바울과 선물』(심화)

 

여기서 제시한 5권은 보통 학술서입니다. 말 그대로 신학생이나, 신학 덕후가 읽을 책들이고 바울에 관한 새관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니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이 부분까지 소화가 안 됐고, 단순히 이런 책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 뿐입니다. 중간에 톰 라이트의 『톰 라이트의 바울』은 톰 라이트가 바울의 신학을 정리한 책이고요,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는 톰 라이트가 말하는 바울의 구원에 관해 명료하게 잘 설명하는 책이라 입문하시는 분은 여기서부터 보셔도 좋겠네요. 이와 관련된 톰 라이트의 학술서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바클레이의 책은 설명드렸듯 새관점 이후에 포스트 새관점 학자가 쓴 책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전통적인 바울 개론서로는, 브루스 W. 롱네커·토드 D. 스틸, 『바울』이 있습니다.

 

3. 조직신학

 

다음으로는 조직신학에 관해 다룰 텐데요, 조직신학은 기독교의 교리와 연관이 있습니다. 신앙에서는 교리이고, 신학에서는 조직신학인 것이죠. 교회에서는 교리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는 기회는 적습니다. 교리 역시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니 관심 가지고 공부하시기 바라겠습니다.

 

(34) 알리스터 맥그래스, 『신학이란 무엇인가』(기본)

 

먼저 소개할 책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인데 이 책은 기독교 신학을 전체적으로 잘 설명해준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조직신학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그리고 조직신학 주제별로는 신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책인데 단점은 1,000페이지가 넘는다는 것이고, 또 그래서 가격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일단 관심이 있으시면 입문서로 추천하는 책입니다.

 

1)기본교리

 

(35) 브루스 밀른, 『기독교 교리 핸드북』(입문)

 

기독교의 교리에 관한 입문서를 한 권 추천하자면 브루스 밀른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고전적인 입장에서 기독교 교리를 평이하고 포괄적으로 서술하는 책이에요. 기독교 교리를 입문하시는 분께서 처음 시작하시기 좋은 책입니다. 조직신학, 교리의 경우에는 일단 뼈대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염두에 두고 공부하세요.

 

(36) 김진혁, 『질문하는 신학』(입문)

 

그리고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신뢰하는 지인께서 추천해주셔서 목록에 넣습니다. 이 책 역시 전통적인 조직신학, 교리의 주제들을 다루는 책인데, 저자가 한국인이고 또 최근에 나온 책인 만큼 꽤 따뜻하면서도 쉽게 이 주제들을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37) 윤철호, 『기독교 신학 개론』(기본)

 

그다음으로 추천할 책은 윤철호 교수의 책인데요, 이 책은 짧으면서도 기독교 조직신학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입문서로 기본을 잡으신 분들께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38) 다니엘 L. 밀리오리,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새물결플러스(심화)

(39) H. G. 푈만, 『교의학』(심화)

 

위에 두 권은 기본적인 조직신학, 교리의 틀이 잡히신 분들이 읽으시면 풍성하게 공부하실 수 있는 책입니다. 두 책 모두 제가 좋아하는 편인데요, 교리를 공부하시고 이 책을 통해 더 깊고 심화된 내용들도 고민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2)주제별

 

다음으로는 조직신학·교리의 주제들에 따라 책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보통 조직신학의 주제는 전통적으로 6개 정도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다루는 신론,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을 다루는 인간론(또는 인죄론), 그 인간들이 죄를 짓자 예수님을 보내시죠. 예수님을 다루는 기독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시죠. 성령님을 다루는 성령론, 그에 의해 구원받게 된 것을 다루는 구원론,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교회를 다루는 교회론, 그리고 세상의 끝에 관해 다루는 종말론까지.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이 그 주제들입니다. 성령론과 구원론은 함께 다루어지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합니다.

 

(40) 신론: 김용규, 『신』, Ivp(입문·기본)

 

신론에 있어서는 김용규 선생님의 『신』을 추천합니다. 인문학적으로 하나님에 관해 탐구하는 책인데 딱 전통적인 조직신학 서적은 아니지만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신론을 다루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해서는 윤철호,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계』를 참고하세요.

 

 

(41) 인간론: 윤철호, 『인간』(심화)

 

인간론은 조직신학에서 비교적 비인기 주제입니다. 그래서 책이 많이 않은데 그중에서도 윤철호 교수님의 이 책은 단연 독보적인 책입니다.

 

(42) 기독론: 윤철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심화)

 

기독론에 관해서도 윤철호 교수님의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1,200페이지의 분량과 5만 원이 넘는 가격의 압박이 있긴 하지만 기독론 전반을 정말로 잘 개관하고 있는 좋은 책이라 추천드립니다. 이 한 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많습니다.

 

(43) 성령론: 한국조직신학회, 『성령론』(심화)

(44) 구원론: 한국조직신학회, 『구원론』(심화)

 

성령·구원론에 관해서는 한국조직신학회에서 나온 이 책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들 역시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이라 쉽지는 않지만, 기독교 역사 속에서의 성령·구원론을 광범하게 잘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역시 한 권을 읽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책들입니다.

 

(45) 교회론: 한스 큉, 『교회』(심화)

(46) 교회론: 에버리 델레스, 『교회의 모델』(기본)

(47) 교회론: E. G. 제이, 『교회론의 변천사』(기본)

 

교회론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라 추천도서가 많은데요, 일단 한스 큉의 『교회』는 이 분야의 고전이고 좋은 책이니 꼭 읽어보시고, 분량이나 가격이 부담스러우시면 동일한 저자의 축약본인 『교회란 무엇인가』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에버리 델레스의 책은 교회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양서인데요, 균형 잡힌 서술이 있는 좋은 책이고, E. G. 제이는 교회론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3)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천국) 신학

 

종말론은 따로 빼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가장 포괄적으로 종말론을 설명하는 책은 (48) 종말론: 한국조직신학회, 『종말론』(심화)이겠습니다만, 비교적 최근에 와서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단순한 종말론이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대체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은 제게 정말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49) G.R. 비슬리 머레이, 『예수와 하나님 나라』(심화)

(50) 김세윤 외, 『하나님 나라 복음』, 새물결플러스(기본)

(51)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기본)

 

비슬리 머레이의 책은 하나님 나라 신학에 관한 가장 신학적인 책입니다. 가장 내용이 많은 개론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추천하는 책이고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 역시 좋은 책입니다. 저자별로 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 신학에 입문하는 데에 좋은 책이니 꼭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역시 하나님 나라 신학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4)현대신학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의 조직신학이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래서 현대신학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현대신학도 사실 고난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본기를 쌓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52) 스탠리 그렌츠·로저 올슨, 『20세기 신학』(기본)

(53) 케빈 벤후저 외, 『현대신학 지형도』(심화)

(54) 데이비드 F. 포드 외, 『현대 신학과 신학자들』(심화)

 

현대신학에 관해 가장 평이한 입문서는 스탠리 그렌츠·로저 올슨, 『20세기 신학』인 것 같습니다. 현대신학을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께서 보시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되고요, 『현대신학 지형도』의 경우에는 조직신학의 주제별로 현대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밝히는 책입니다. 영미 학자들이 중심인 책이라 아쉬움도 있지만 이런 책이 없기 때문에 추천하고요, 『현대 신학과 신학자들』은 비교적 최근 학자인 바르트부터 시작하지만 정교회나 가톨릭도 다루는 포괄적인 책으로 현대신학을 이해하는 데 이 역시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제가 나름 각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신학자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단 한 사람으로 칼 바르트를 꼽습니다.

 

(55) 에버하르트 부쉬, 『위대한 열정』(심화)

(56) 칼 바르트, 『로마서』(심화)

 

『위대한 열정』은 칼 바르트 신학을 개관하는 책중에 가장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르트의 『로마서』는 현대신학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버린 책이니, 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볼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칼 바르트만큼 중요한 다른 개신교 신학자로는 폴 틸리히가 있는데요,

 

(57) 박만, 『폴 틸리히』(기본)

(58) 폴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새로운 존재·영원한 지금』(심화)

 

폴 틸리히는 입문으로는 박만 교수님의 책을, 그리고 신학책보다는 틸리히의 설교집 세 권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독일 현대신학의 3대장을 판넨베르크, 몰트만, 에버하르트 융엘(또는 윙엘)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융엘은 모르니 패스하겠습니다.

 

(59) 최성수,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신학 연구』(심화)

(60)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1·2·3』(심화)

(61) 신옥수, 『몰트만 신학 새롭게 읽기』(심화)

(62) 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심화)

(63) 위르겐 몰트만, 『희망의 신학』(심화)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개관하는 책으로는 최성수 선생님의 책을 추천하고, 판넨베르크 신학의 정수는 그의 『조직신학 1·2·3』에 있는데요, 3권은 아직 번역이 안 되었으나 1·2년 내로 번역될 듯합니다. 그리고 몰트만 신학을 조망하는 책으로는 신옥수 교수님의 책을 추천하고, 몰트만의 저작으로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희망의 신학』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본회퍼라는 신학자가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64) 존 D. 갓시,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심화)

(65)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심화)

(66) 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성서의 기도서』(심화)

(67) 디트리히 본회퍼, 『저항과 복종 - 옥중서간』(심화)

 

본회퍼에 관한 입문서로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을, 그리고 본회퍼의 대표작으로 나머지 세 권을 추천합니다. 본회퍼는 신학의 천재이기도 했지만,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행동하는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본회퍼도 정말 좋습니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니,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4. 역사신학

 

역사신학의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68) 배덕만, 『교회사의 숲』(입문)

 

교회사에 관한 입문으로는 배덕만 교수님의 이 책을 추천합니다. 교회사를 주제별로 다룬 책으로 기독교의 역사에서부터 한국교회의 경우까지 다루고 있는 책으로 교회사 입문으로 친절하면서도 정말 좋은 책입니다.

 

1) 세계 교회사

 

세계 교회사에 관해서는 다음의 책들을 추천하고요, 이 추천도서는 교회사학자이신 배덕만 교수님의 추천목록이기도 하니 더 신빙성이 있겠습니다. 이 책들은 기독교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양서들입니다. 저자들의 다른 책들도 참고하실만할 것 같습니다.

 

(69) 후스토 L. 곤잘레스, 『초대교회사·중세교회사·종교개혁사·현대교회사 4권』(입문)

(70)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고대1·중세2·현대3』(기본)

(71) 디아메이드 맥클로흐, 『3천년 기독교 역사 1·2·3』(기본)

 

2) 한국교회사

 

한국교회사에 관해서 배덕만 교수님은 이덕주 교수님을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이덕주’를 검색하셔서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72) 이덕주,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입문)

 

이 책이 한국교회사 입문으로는 좋을 것 같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의 책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73) 류대영, 『한 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입문)

(74)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기본)

 

5. 실천신학

 

실천신학은 앞서 이야기했듯 기독교인들의 구체적인 실천의 문제, 목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영역인데요, 설교나 예배 같은 주제보다는 저는 비신학생이기 때문에 기독교 윤리와 선교 쪽만 다루어보겠습니다.

 

1)기독교 윤리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의 실제적인 생활지침, 그리고 행위를 정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영역 같습니다.

 

(75) 스탠리 J. 그렌츠, 『기독교 윤리학의 토대와 흐름』(기본)

(76) 김동춘, 『전환기의 한국교회』(기본)

 

스탠리 그렌츠의 책은 기독교 윤리의 개론과 같은 책으로 기독교 윤리학을 전체적으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책이고요, 김동춘 교수님의 책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윤리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책으로 다양한 기독교 윤리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유익하게 봤던 책이죠. 다음으로는 기독교 윤리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들인 기독교 세계관 운동, 아나뱁티스트, 해방·민중신학, 무교회주의에 관한 책들을 추천하겠습니다. 김동춘 교수님의 책에서 ‘총체적 복음주의’, ‘기독교 세계관’, ‘해방신학’, ‘아나뱁티스트’, ‘톨레랑스 기독교’ 등의 다양한 패러다임이 나오니 책을 보시고 관심이 가는 사상을 공부하셔도 좋겠습니다.

 

추가적으로 아나뱁티스트, 그리고 한국이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결과인 ‘무교회주의’에 관한 책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77) 알렌 크라이더, 『회심의 변질』(기본)

(78) 알렌 크라이더,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전도 - 선교의 변질』(기본)

(79) 존 하워드 요더, 『예수의 정치학』(심화)

 

아나뱁티스트는 비교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 교파인데요, 이들은 급진 종교개혁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이고,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유아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313년, 로마의 기독교 공인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회심도 선교도 '변질'됐다는 것입니다. 이를 다룬 것이 알렌 크라이더의 책 두 권이고요, 또 문제의 인물이지만 아나뱁티스트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가 쓴 『예수의 정치학』 역시 추천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나뱁티스트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데, 크라이더의 책 두 권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무교회주의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일본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를 통해 시작됐고, 한국에는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인 ‘김교신’, 그리고 김교신의 제자인 ‘노평구’, 그리고 노평구의 제자인 ‘박상익’ 교수님으로 계보가 이어집니다. 저는 무교회주의가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표본이자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무교회주의라는 말만 듣고 이 사상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80) 야나이하라 다다오, 『개혁자들』(입문)

(81) 양현혜,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기본)

(82) 우치무라 간조, 『內村鑑三 全集(우치무라 간조 전집) 10권』(기본)

(83) 양현혜, 『김교신의 철학 : 사랑과 여흥』(기본)

(84) 김교신, 『김교신 전집 8권』(기본)

(85) 박상익, 『성서를 읽다』(입문)

 

먼저 무교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로는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개혁자들』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무교회주의의 입장에서 본 인물 평전으로 무교회주의의 가치가 들어가 있는 책이고 또 책에 부록으로 수록된 ‘무교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문도 유익합니다. 무교회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무교회주의의 창시자인 우치무라 간조에 관한 책인데요, 양현혜 교수님이 쓰신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라는 책이 간조를 개괄하는 데 가장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우치무라 간조 전집이 10권 번역되어 있는데, 사실은 선집입니다. 어쨌든 간조의 중요한 글들이 있으니 관심에 따라 읽어보세요. 그리고 김교신에 관해서도 양현혜 선생님이 쓰신 『김교신의 철학 : 사랑과 여흥』이라는 책이 기본서로 매우 좋습니다. 참고하시고, 김교신 전집이 현재 8권 출간되었는데 현재 김교신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전집을 추가적으로 발행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박상익 교수님의 『성서를 읽다』를 추천드립니다. 박상익 교수님은 김교신 선생의 제자인 노평구 선생님의 제자이자, 한국 무교회주의의 맥을 잇는 분이신데요 『성서를 읽다』는 무교회주의의 입장에서 구약 성서 예언서를 해석한 책으로, 교수님께서 청년시절에 쓰신 책이라고 합니다. 참고하실 바라겠습니다.

 

2)선교론

 

현대에 와서는 선교·전도에 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고 한국교회는 특히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근본주의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선교·전도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여기에 크리스토퍼 라이트를 중심으로 편협하고 협소한 선교 개념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선교란 세상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기독교인의 선교는 이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단순히 “예수 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며 예배하는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책이 중요합니다.

 

(86) 크리스토퍼 라이트, 『하나님의 선교』(기본)

(87) 크리스토퍼 라이트, 『하나님 백성의 선교』(기본)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선교적 교회론’의 영역인데요, 이 분야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신학자는 ‘레슬리 뉴비긴’입니다. 더 깊은 관심이 있으신 분께서는 뉴비긴의 책을 참조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현대사회 속에서 제국주의적으로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선교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신학으로서, 교회가 자기 자신의 이익, 단순한 개인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철저하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신학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중요합니다.

 

(88) 요하네스 블라우, 『교회의 선교적 본질』(기본)

(89) 대럴 L. 구더, 『증인으로의 부르심』(기본)

 

6. 신학 고전

 

다음으로는 신학의 고전들, 교부·중세신학·종교개혁자들에 관한 책을 추천할 텐데요, 이 부분은 저도 사실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가볍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고전 쪽은 거의 고난도 문서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신 후에 또 맥락을 잡으신 후에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교부학에 관해서는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교부문헌총서’를 추천드리고, 교부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꼭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염 선생님이 번역하신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추천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외에도 이집트 주변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 그리고 카파도키아의 교부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세 신학에서는 아무래도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장 중요하고요, ‘카톨릭출판사’, ‘분도출판사’, ‘누멘’ 등에서 좋은 책이 나옵니다. 아퀴나스 이외에도 안셀무스, 둔스 스코투스도 중세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에 있어서는,

 

(90)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심화)

(91) 마르틴 루터,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황정욱 옮김, 도서출판 길(심화)

(92)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상·중·하』, 생명의말씀사(심화)

(93) 송용원, 『칼뱅과 공동선』(심화)

 

종교개혁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루터 사상의 진수이자, 신학적 전환을 가져왔던,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3대 논문으로 불리는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역시 중요하고, 다른 종교개혁자로서 칼뱅의 『기독교 강요』 역시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책 같습니다. 그리고 『칼뱅과 공동선』의 경우는 제가 가장 유익하게 읽는 칼뱅 신학에 관한 책이라서 추천을 드립니다.

 

7. 한국사회와 기독교

 

마지막으로는 오늘날 한국사회와 기독교를 다루는 책들을 주제별로 추천하려고 합니다.

 

1)여성과 기독교

 

아마 현재 가장 뜨거운 주제일 텐데요, 여성에 관한 기독교 신학의 다양한 해답들이 존재합니다. 다음 책을 참고하시기 바라고요, 개인적으로 ‘양혜원’ 선생님의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방법론적으로나 근거나, 주장이나 모두 심각하게 부족해 보여서 그렇습니다.

 

(94) 안정혜, 『비혼주의자 마리아』(입문)

(95) 백소영,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입문)

(96) 강남순, 『젠더와 종교·페미니즘과 기독교·21세기 페미니스트신학』(기본·심화)

 

먼저 추천할 책은 만화입니다. 안정혜 선생님의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적인 문제들과 교회에서 겪는 여성의 문제들을 구체적인 현실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또 이에 관한 건강한 해답도 제시하는 좋은 책입니다. 입문으로 강추드리고요. 다음으로는 백소영 교수님의 책인데요, 이 책은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입문하시는 분들께서 가장 먼저 보시면 좋을 책입니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에 관해 입문의 수준에서 잘 정리하고 있는 책입니다. 다음으로는 강남순 교수님의 여성과 기독교 3부작인데, 이 책들은 앞선 책보다는 더 학술적인 책으로 해당 분야에 관해 개론적으로 전체를 설명하면서도 심화적인 내용도 다루고 있으니, 더 관심이 가시면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2)동성애와 기독교

 

(97) 윌라드 M. 스와틀리, 『동성애 - 성서적 해석과 윤리적 통찰』(기본)

(98) 잭 로저스, 『예수, 성경, 동성애』(기본)

 

교회나 사회에서 아직도 동성애는 논쟁적 주제입니다. 기독교와 동성애에 관한 두 권을 책을 추천하는데요, 먼저 스와틀리의 책은 메노나이트 신학자가 쓴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동성애 문제가 단번에 답이 나올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책으로 이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다양하게 구별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잭 로저스의 책은 주목할 만한 책으로서, 미국 장로교 총회장은 지냈던 목회자 잭 로저스가 동성애 반대 입장에서 옹호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로저스의 경우에는 동성애에 관해 성서 주석적인 주장을 하기보다는, 기독론적 해석을 통해서 생각의 전환을 해냅니다. 관련 주제에 관해서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3)정치와 기독교

 

(99) 클락 E. 코크란 외, 『교회, 국가, 공적 정의 논쟁』(심화)

(100) 김근주 외,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 (기본)

 

다음으로 추천할 책은 정치와 기독교에 관한 책들인데, 기독교인의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 그런 문제를 다룬 책들입니다. 우선 『교회, 국가, 공적 정의 논쟁』은 교회와 국가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해 ‘가톨릭’, ‘고전적 분리주의’, ‘원리적 다원주의’, ‘재세례파’, ‘사회정의’의 다섯 입장에서 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논쟁하는 책으로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는 책이고,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은 한국사회와 교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한국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작성한 정치에 관한 시각을 담은 책으로 제게 많은 영향을 주셨던 분들이 참여한 책입니다.

 

4)창조과학

 

(101) 김민석, 『창조론 연대기』 (입문)

(102)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입문)

(103) 신재식, 『예수와 다윈의 동행』 (기본)

 

한국교회는 문자적 성경 해석에 기반을 둔 창조과학을 신봉했습니다. 저도 한 때, 그런 입장이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창조과학에 관한 진실들이 밝혀지고 신학적으로도 이것을 극복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로널드 L. 넘버스의『창조론자들』을 보면 창조과학이 시작된 지 100년도 안 된, 그리고 심지어 제7안식교에서 증거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민석 선생님의 책은 웹툰으로 창조과학을 신봉하던 한 사람이 창조과학을 극복하고 올바른 창조론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렸고, 우종학 교수님의 책은 창조론 연대기보다 조금 더 자세히 창조과학을 비판하면서 현대 과학과 함께 신앙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신재식 교수님의 책의 경우에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룬 책 중에 가장 훌륭한 책이라는 제가 신뢰하는 지인의 말씀이 있어서 추천목록에 넣었습니다.

 

5)희년

 

(104) 양희송, 『이매진 주빌리』 (입문)

(105) 김근주 외, 『희년』 (기본)

 

희년은 7년마다 휴경을 하는 안식년이 7번째 돌아오면, 그러니까 약 50년이 지나면 사회가 한번 리셋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온 희년은 크게 ‘부채탕감(빚 청산)’, ‘노예해방’, ‘토지 반환’ 세 가지를 실행하는 제도입니다. 희년 제도는 기독교의 독특한 사회사상인데요, 『이매진 주빌리』는 희년에 관해 쉽게 설명하면서도 또 현대 한국에 적용하는 책인 양희송 대표님의 책이고, 김근주 교수님 외 여러분이 쓰신 『희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께서 희년 사상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6)일과 신학

 

(106) 팀 켈러, 『일과 영성』 (기본)

(107) 김근주 외, 『노동하는 그리스도인』 (기본)

 

현대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든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인기 작가인 팀 켈러 목사의 『일과 영성』은 기독교인들은 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고, 반면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집필한 『노동하는 그리스도인』은 노동에 관한 신학적인 입장들을 여러 명의 저자가 다채롭게 설명하고 또 자칫하면 소명을 통해 오해될 수 있는 노동에 관한 담론들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7)신정론

 

(108) 박영식,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 (기본)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신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악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이유 없는 고통을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신학의 한 분야를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박영식 교수님의 이 책은 신정론에 관해 개관하는 훌륭한 책입니다. 더불어서 데이빗 R. 그리핀, 『과정신정론』 , 존 힉,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 철학적 이해』라는 책들도 신정론의 계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좋은 책이기 참고하시기 바라겠습니다.

 

8)한국교회

 

(109) 배덕만,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기본)

(110) 강성호, 『한국 기독교 흑역사』 (기본)

(111) 강영안 외,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 (심화)

(112)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 (기본)

 

다음으로는 한국교회, 한국기독교를 다룬 책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배덕만 교수님의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한국교회의 근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특징을 무엇인지를 밝히는 책으로 굉장히 중요한 책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신학·신앙은 근본주의입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성호 선생님의 『한국 기독교 흑역사』 역시 필독서라고 생각하는데요, 10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기독교는 눈부신 성장을 통해 교회의 세력면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교회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흑역사를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강성호 선생님의 책은 그런 한국 기독교의 흑역사를 다루는 책입니다. 성찰하는 기독교인의 필독서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 역시 제가 추천하는 책으로 다방면의 기독교 전문가들, 신학자를 비롯해 철학자·국문학자·사회학자·사회운동가들이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해답을 모색하는 책으로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문제점과 그에 관한 해답을 살펴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양희송 대표님의 『다시 프로테스탄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책은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로 변화하게 된 2007년을 기점으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나, 그런 문제에 한 해답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다시 프로테스탄트(종교개혁)로 전환을 촉구하는 데, 저는 이 책을 매우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모쪼록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신학을 알지 못하는 신.알.못.입니다. 추후에 공부가 된다면 더 좋은 목록 추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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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세례파 신자가 사형을 피해 도망가다가, 자신의 사형을 집행하던 교도관이 얼음물에 빠지자 그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장면이다. 결국 그 신자는 사형을 당했다. 강 밖에 선 것은 같은 교도관의 죽음을 방관하는 교도관들이다.


급진 종교개혁 : 재세례파


가. 아나뱁티즘의 역사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과 펠릭스 만츠(Felix Mantz)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성서적이지 못하며 세속 당국과 동조했다며 그를 거짓 예언자로 단정 지었다. 구체적으로 츠빙글리는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를 외쳤지만 유아세례, 교회와 세속정부의 결탁, 기독교인의 전쟁 참가 등 성경이 허용하거나 명령하지 않는 관례를 존속시켰는데 재세례파는 여기에 불만을 가지고 시작됐다. 이들은 1523년 10월 2차 대토론 기간에 성상과 미사의 즉각 폐지를 요구하는 과격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결국 스스로는 “참 신자(genuine believers)”“회중교회(gathered church)”라는 독립공동체를 형성했다. 대적자들은 그들을 “재세례파”라고 별명 지었고 이 명칭은 부정확하고 선입견에 의한 것이다. 츠빙글리는 초반에 이들과 격렬하게 싸웠지만 이들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국가교회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모임에만 참가했다. 그들의 박해도 주로 이러한 불일치주의 때문이었다. 그들은 산상수훈에 근거하여 맹세와 군대 복무를 거절했다. 그들을 자신들이 츠빙글리의 성서주의를 논리적 결론으로 끌고 간 것이며 원시 기독교를 회복한 것이었다. 재세례파 운동은 초대 기독교의 복원 프로그램을 가장 철저하게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결과이다. 그들은 동시대 종교개혁자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성서를 연구해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재발견하려고 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초대교회는 오직 진실한 신자들로 이루어지고 국가로부터 박해당하고 거부된 순교자들로 가득한 교회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교회란 항상 비방당하고 거부되고 짓밟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으로는 외적 권위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 성인신자의 세례를 옹호, 유아세례를 거부, 재산의 공동소유, 평화주의와 무저항 등이 있다. 제도권 개혁자들의 모든 후기 저서는 - 루터의 1535년 판 갈라디아서 주석, 칼뱅의 기독교 강요 등 - 로마 카톨릭에 대적하면서 동시에 재세례파와 대조하며 신앙을 설명했다.


“좋아, 내가 그리스도와 거불어 고난을 당할 필요는 없어. 그는 나를 위해 죽으셨고 자기 행위를 통해 나를 이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셨다. ··· (중략) ··· 오 내 형제여 이는 그리 좋은 말이 아닐세. 이 말을 그대의 귀에 들려준 것은 악마라네.” 재세례파 찬송 중


재세례파의 견해는 세상에 관한 비관주의와 교회에 대한 낙관주의에 기초한다. 세상을 언제든지 육체와 마귀와 짝하게 마련이지만 교회는 그와는 다른 길을 걷고 교제 가운데 주 예수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재세례파는 수도원 운동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자신의 선행으로 천국을 얻고자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재세례파(Anabaptist)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시 세례를 주는 자”이다.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사람만이 세례를 받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을 재세례파(re-baptizers)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유아세례는 세례가 아니며 “로마 교회의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세례파(Baptist; 침례파)라고 부른다. 재세례파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한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좌파(롤란드 베인턴), 급진 종교개혁(조지 헌스턴 윌리엄스)으로 불리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을 제도권 종교개혁으로 평가하며 대비시키기도 한다.


재세례파의 세계관은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이다. 메노 시몬스 같은 재세례파 사상가들은 시골에다 대안적 기독교 공동체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들은 세속의 권력이나 권위와는 어떤 관계도 맺기를 거부했고 특히 폭력 사용을 부정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로 인해 주류 종교개혁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이들은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사회가 기독교화될 수 없다는 것을 동의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친 악행을 억제하기 위해 관리로서 직분을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재세례파는 국가는 죄인들이 다스리도록 놓아두어야 한다고 대구했다. 그들은 정치생활을 멀리하고 산상수훈의 윤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모두가 수도사처럼 되고 말았다. 그들은 전쟁과 사형을 거부했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폭력도 법에 호소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과 일반적인 생활방식은 지극히 경건하고 거룩하며 흠잡을 데가 없다. 그들은 값비싼 의복을 입는 것을 피했고 비싼 음식과 음료를 멸시했으며 거친 천으로 만든 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팽이 넓은 펠트모자를 착용했다. 그들의 걸음걸이와 행동거지는 지극히 겸손했다. ······ 그들은 끝이 뭉툭한 빵 써는 칼 외에는 칼이든 단검이든 일절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무기를 양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늑대의 의복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결코 맹세하려 들지 않았는데 심지어 정부가 요구할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리고 만일 이를 위반하는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축출되었다.”


그들은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무수한 박해를 경험했다. 그들 또한 베스트팔렌(1534) 체제 이후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가끔은 몇몇 광신도들 때문에 전체가 매도당하기도 했으며 근대 이후에는 부르주아 문명, 산업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거리를 두고 자신들을 보전했다.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 같은 경우 단추 없는 외투, 챙 넓은 모자, 휘날리는 구레나룻 등으로 사회와 그들은 구분시켰다. 그들은 철도, 전화, 자동차, 영화, 신문, 연재만화 까지도 거부했다.


재세례파의 교회론


제바스티안 프랑크(1499-1543)메노 시몬스(1496-1551) 같은 급진 종교개혁의 신학자들이 보기에 사도적 교회는 국가 권력과 결속하여 완전히 더럽혀졌다. 이 결속의 시작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A.D. 313)과 큰 연관성을 가진다.


"내가 보기에, 사도들이 죽은 직후에 적그리스도의 침입과 그에 따른 황폐화로 인하여 외형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모든 은사와 성례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성령과 진리 속에 숨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1,400년 동안, 모인교회나 그 어떤 성례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 제바스티안 프랑크


이에 따르면 참된 교회는 하늘에 있고 이 땅 위에는 그것을 모방한 어설픈 제도들만 존재한다. 급진적 종교개혁에서는 교회를 16세기 유럽의 주류 문화 속에 있는 ‘대조사회, 대안사회’로 이해했다. 그들은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 안에 존재했지만 제국의 규범을 거부한 것처럼 자신들이 16세기에 존재하지만 그 안에 속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메노 시몬스에게 교회는 “의로운 자들의 모임”이며 “섞인 몸”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이름을 그저 떠벌리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회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회중은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이요,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 거듭난 마음을 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 메노 시몬스


이것은 도나투스주의 교회관과 상당히 유사하다. 도나투스주의에서는 교회는 어떤 수단이나 징계를 통해서라도 교회를 타락시키려는 영향에서 멀어져 교회의 순결과 거룩함을 지켜야한다는 입장이다. 재세례파는 “폭력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잘 알듯이 우리에게는 창이나 총 같은 물리적 무기가 없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 한스 뎅크


분리주의 : 재세례파는 ‘출교’를 통해 공동체 내부의 규율을 유지하고 이것이 참된 교회를 세우는데 필수적이라고 본다. 앞서 언급한 아미쉬 공동체과 같은 교회들은 철저한 분리주의를 고수한다. 출교는 억제와 교정효과가 있다.


출교의 이유(폴란드 라코우 교리문답)


1. 타락한 교인들을 치유해 다시 교회에 속하게 하기 위해

2.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3. 교회에서 혼돈과 무질서를 제거하기 위해

4. 교회 밖에서 주의 말씀이 조롱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 주의 영광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출교의 한계 : 출교는 목회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혹하게 해석되어 결과적으로 교인들이 출교당한 사람이나 그 가족과 완전히 사회적 접촉을 끊어 버리는(일종의 따돌림)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메노나이트(Monnonites) : 이 그룹의 기원은 여러 재세례파 집단 가운데 특히 스위스 형제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세례파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며, 그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참된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은 국가 행정관이 아니라 성서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직접 인도하신다고 주장했다. 1536년 네덜란드 사제 메노 시몬스가 북유럽에 흩어진 재세례파들을 모아 교회를 구성했고 그래서 메노나이트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신자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여 성전이나 성소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도 하지 않으며, 모든 신자를 성직자로 이해한다. 목회자의 선택을 회중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재세례파의 순교 : 재세례파는 츠빙글리의 영향을 받은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과 펠릭스 만츠(Felix Mantz) 같은 신학자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유아세례에 반대하고 정교분리, 평화주의, 제자도, 그림과 성상의 제거 등을 주장했고 이것은 카톨릭과 개신교 주류 모두에게 이단으로 규정되어 심한 박해를 받았다. 만츠는 몸이 묶여 언 강에 던져졌다. 만츠는 개신교인들에 의해 순교당한 최초의 비카톨릭 신자이다. 1529년 슈파이어 제국회의는 재세례를 주거나 받는 사람 모두는 절차없이 사형할 수 있다는 칙령을 승인하고 수년 사이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교했다.


가. 아나뱁티즘의 윤리관

*이 부분은 전환기의 한국교회의 내용을 요약한 것.


아나뱁티스트적 대안주의 기독교 : 철저 제자도와 대조사회


“두왕국적 적응주의처럼 교회가 세상질서와 구조에 적응하여 동화되거나, 변혁을 강조하는 기독교 세계관처럼 악마적 세상 전체를 변혁할 수 있다는 승리주의 사고나, 톨레랑스 기독교처럼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백기투항하지 말고, 세상질서와 구조와 전적으로 다른 대조사회로서 교회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복음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창조세계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승리의 확신이 아니라 죄로 왜곡된 악마적 창조질서에 대항하는 대조와 대항공동체의 수립이 중요하다.”


아나뱁티즘은 소박하지만 진정한 공동체, 행복종교가 아닌 급진 제자도를 대안으로 삼는다. 아나뱁티즘은 복음하의 사명을 입술의 복음전파에서 찾지 않고(복음전도 우선주의), 세상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구현하는 데서 찾지 않고(기독교 세계관), 사회변혁의 실천에서 찾지 않고(해방신학), 교회가 교회됨, 본래성을 회복하는 데서 해답을 찾는다. 그들은 예수 윤리, 희년, 십자가, 급진 제자도, 대안공동체 등을 키워드로 한다.


아나뱁티즘은 복음의 사회적 실천과 교회의 전적으로 구별된 존재방식에서 대안을 찾는 존 하워드 요더외에 총체적 복음주의 로널드 사이더의 경제윤리, 서저너스 공동체 창설자 짐 월리스, 대조사회적 교회개념을 제시한 게르하르트 로핑크, 희년을 비롯한 구약의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하나님 세계형성의 프로젝트로 규정한 노베르트 로핑크, 교회를 대항구조·대항권력으로 제시하는 인도의 복음주의 사회행동가 비샬 망갈와디를 포함하는 큰 맥락의 대안이다.


1. 실패한 두 가지 기독교 패러다임


1) 교회주의적 기독교 : 교회주의적 기독교는 복음이 실현될 자리를 세상이 아니라 교회당 안에 가두어 버린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세상을 향한 부르심, 세속적 소명을 담지 못한다.


2) 세계관적 기독교 : 교회주의 기독교를 넘어서게 한 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다. 이것은 성속이원론을 허물고 세상 속에서 일상의 삶이 갖는 신앙의 의미를 갖게 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원론에 갇힌 기독교인을 세상으로 내밀기는 했지만, 세상구조와 질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를 강조하며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계라고 이야기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일반은총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과도해져서 창조신학이 구속신학보다 높아지면 자연신학이 된다. 자연상태가 구속되어야 할 긴박성이 약화되고, 현존하는 질서가 모두 정당화될 가능성이 있다.


2. 교회론적 대안모델 : 교회가 대안이다.


1) 교회가 사회의 대안이다 : 아나뱁티스트는 사회 속의 교회의 대응방식을 세상이 아니라 교회에서 찾는다. 기독교 세계관이 문제를 관점에서 찾으려 했고 해방신학은 실천에서 찾으려 했다면 아나뱁티즘은 교회에서 해답을 찾는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교회됨’을 나타내야하고, 세상과 다른 이질성과 독특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들은 사회 전체를 교회화하는 크리스텐돔(Christendom)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구별된 교회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1.1) 이스라엘과 예수 공동체 하나님의 세계형성의 대안 : 교회는 세상이라는 옛 질서로부터 구별된 새로운 하나님의 사회이다. 따라서 교회는 현존하는 질서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살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보여준 행위방식을 순종하는 철저한 제자도, 급진적 제자도의 원리에 따라 세상에 가시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최상의 대안이다.


2) 대조사회(contrast society, kontrastgesellschaft)로서 교회 : 교회는 곧 사회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로 성경적 가치에 따라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육신의 연장이며, 그리스도적 구조가 현실화되는 곳이다.


2.1) 대조와 대비의 교회로서의 대조사회 : 지배구조 폐기와 폭력포기로서 대조사회 로핑크의 대조사회론은 세상과는 구별되고 대비된 삶의 방식의 의미이다. 예수 제자공동체에서는 먼저 지배구조가 폐기되어야 한다. 산 위의 도시, 세상의 빛과 소금 교회는 세상질서와의 대조성, 이질성을 말이 아닌 존재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로핑크의 대조사회론 교회는 대조사회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대항사회(gegengesellschaft)로서 교회 교회는 독특한 존재만으로도 현존하는 사회구조의 비판인 동시에 공격이다. 로핑크의 대조사회가 구별됨과 대비만 강조한다면 대항사회는 교회의 대조성이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립하고 대척점을 함축하는 개념이다. 대안적 대조사회 교회는 경제적 관계에서 희년과 같이 대도적인 경제적 코이노니아를 보여줘야 한다. 대항문화공동체로서 교회 교회가 현존하는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특징을 표현한 개념이다. 


대안사회의 전략 : 대립 대조 대항


3. 대안주의의 사회윤리


1) 기독교 현실주의가 아닌 성경적 현실주의 : 기독교 현실주의는 일차적으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위한 원리만을 제시하는 것이지, 실제적인 지침까지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 현실주의는 죄악된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에 현실 역사속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성경적 현실주의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위한 근본적인 원리이자 실제적인 지침이 된다는 입장이다. 말씀대로 철저하게 살아가면 세상 속에서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아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2) 콘스탄틴주의와의 결별 교회와 국가의 분리 : 창조-타락-구속을 기본으로 하는 기독교세계관은 타락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창조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이원론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타락이나 구속에 대한 강조가 빈약하다. 근본주의, 금욕주의, 초대교회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세상을 죄악시하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콘스탄틴 이후 교회와 국가는 종합되었으며 중세카톨릭 이후 루터는 두왕국론을 통해 교회와 국가는 서로 역설적이며 공존한다는 틀을 제시했고, 칼빈과 개혁파는 그리스도 왕적 통치론에 근거하여 교회와 세상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 보편통치를 주장했다. 이에 반해 아나뱁티즘은 교회와 세상의 종합이나 역설적 공존, 포괄적 통치가 아니라 세상과 교회의 철저한 반정립 틀을 제시한다. 세상은 교회와 공존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세상 전체에서 왕적 통치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현실은 이미 세상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승리 된 현실이 아니라 오직 구속받은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드러날 뿐이며, 세상은 교회와 전혀 다른 존재이다.


3) 죄스러움의 실체로서 세상 :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에 반하는 사회적 실상이며, 사회질서 및 제도를 말한다.


4. 비판적 고찰


교회가 새로운 질서로 관심을 끌고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낙관주의이다. 교회가 가진 도덕적 사회적 능력이 세상보다 탁월하기만 할까?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왜 불가능할까? 대조사회가 또 다른 게토화는 아닌가?


참고문헌

김동춘. 2012. 『전환기의 한국교회』. 대장간.

롤런드 베인턴. 홍치모·이훈영 역. 2001. 『종교개혁사』. 크리스천다이제스트.

배덕만. 2015. 『교회사의 숲』. 대장간.

알리스터 맥그래스. 김기철 역. 2014. 『신학이란 무엇인가』. 복있는사람.

윌리스턴 워커. 송인설 역. 2000. 『기독교회사』.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7년 봄


송용원, 『칼뱅과 공동선』, IVP, 2017


‘공동선’의 렌즈로 칼뱅을 풍성하게 이해하기


1. 들어가기


한 시대를, 한 집단을, 한 국가를 주조한 사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저자인 김경일 교수는 그 책에서 한국의 사회적 병폐가 공자에 기인함을 밝히면서 한국의 교조화된 유교적 전통에 날카로운 비판을 더 한다. 하지만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김경일 교수의 저작을 비판하면서 결국 공자라는 유교적 전통의 중요성을 변호하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칼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장로교이며 이들은 칼뱅의 전통을 계승했다. 공자처럼 한국 개신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칼뱅에 대한 평가도 양면적이다. 한 편에서는 칼뱅의 전통에 너무 함몰되어 삼위일체에 칼뱅까지 사위일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전통을 과격하게 전복시키면서 칼뱅의 유산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칼뱅과 공동선』을 보며 드는 질문은 과연 ‘칼뱅이 죽어야 교회가 살까, 칼뱅이 살아야 교회가 살까?’에 대한 것이었다.

‘칼뱅이 죽어야 교회가 살까, 칼뱅이 살아야 교회가 살까?’라는 질문 뒤에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질문을 설정했다. 첫 째, ‘500년 전 사상가, 칼뱅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둘 째, ‘특별은총에 함몰된 한국교회에 칼뱅의 신학은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셋 째, ‘칼뱅주의 5대 교리, 이중예정 정도로만 유통되는 칼뱅의 신학은 어떠한 풍성함을 담고 있을 것인가?’였다. 이 질문을 가지고 『칼뱅과 공동선』을 읽었다.


2. 『칼뱅과 공동선』


이 책은 크게 서론(들어가는 말)과 1부 신학적 근거, 2부 신학적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신학적 근거에서는 칼뱅의 공동선 개념을 구성하는 신학적 토대를 각각 하나님 형상과 공동선, 성화와 공동선, 율법과 공동선으로 추적한다. 이어서 2주 신학적 적용에서는 앞서 밝혔던 신학적 근거를 토대로 공동선 개념을 교회와 인류에 적용시킨다. 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 들어가는 말은 분량은 적지만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이 책은 ‘들어가는 말’에서 일종의 시대진단을 제시한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할수록 공동체의 연대성이 쇠퇴하고 개인의 개별성이 상승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진단 위에서 공동체성은 자리를 잃고 있으며, 상대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로 세상이 분열되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고, 인류가 평화를 영위하기 위해서 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의 개념이 주목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후에 저자는 공동선 개념을 개념정의 한다. 이 공동선 개념은 포괄적이며 누구에게나 선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공동선의 개념이 하나님은 일반은총(common grace)과 관련됨을 지적한다. 공동선은 개개인에 대한 강조가 있기에 전체를 강조하는 공익과는 다른 개념이며, 공동선은 공(公)과 사(私)를 아우르는 조화를 모색하는 개념이다. 이후에 책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정치철학, 사회경제적 차원에 나타난 공동선 개념을 서술하고, 신학적 차원의 공동선 개념에 이른다. 신학적 차원에서는 공공 생활에 최우선의 관심을 갖는 하나님을 상정하기 때문에 공동선의 위치가 강조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펼쳐지는 은혜와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선물을 통해 구현되는 창조의 본래 목적이자 질서, 그것이 바로 신학적 차원에서 보는 공동선이다.” 이어서 저자는 신학의 공동선 개념의 독특성에 대해 제시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사회의 공동선 사상은 평등과 자유가 양립하기 어렵지만 기독교의 공동선은 신적 은혜에 순종할 대 자유와 공평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을 설명하고, 이어서 칼뱅의 공동선 사상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칼뱅이 일평생 공적 이익을 연구하고 권고한 사상가로 평가하고 칼뱅의 사상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답하는 공공신학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편처럼 흩어져있는 칼뱅의 공동선에 대한 유산을 칼뱅의 원전을 분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종교개혁의 공동선의 유산을 복원하고,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종교개혁 사상 안에 담긴 공동선에 대한 신학적·실천적 유산을 환기할 것임을 밝히고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해야 함을 제시한다. 명료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결국 “칼뱅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의 공동선 아이디어에 조직신학적 토대와 적용을 제공하는 것”이며 “도시화되고 지구화된 현대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과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하나의 대안적이고 협력적인 세계관으로 프로테스탄트 공동선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1부 1장에서 저자는 하나님 형상과 공동선에 대해 논한다. 인간론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전제함으로써 인간 공통의 의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칼뱅이 제시한 인간 근본의 존재에 대한 규정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신학적 토대에서 풀어나간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세 부분(관계·실체·공동체)에 초점을 둔다. 칼뱅은 하나님 형상 이해는 타락 이전과 이후, 구원이라는 세 단계에 따라 역동성 있게 변화했다. 칼뱅의 공동선 개념은 도덕·사회·인문주의적 개념인 동시에 영적·종교적·복음적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를 설명한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부여받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선을 이웃과 공유함으로써 인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 형상(善)을 반영하고 확장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관계·실체·공동체 측면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하지만 타락이 하나님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예수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 형성을 회복하는 것이 관계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저자는 현대신학자인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하나님 형상 이해와 칼뱅의 이해를 대조하면서 칼뱅의 이해가 가진 특징을 보여준다. 칼뱅은 하나님 형상의 공동체적 속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을 향한 공동체 윤리 명령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칼뱅은 연대의 근거는 삼위일체적 속성에서 끌어들인다. 칼뱅은 인간이 타락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인간 안에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존엄성이 옹호될 수 있으며, 기독교의 인간론을 보편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칼뱅은 모든 사람이 공동선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공동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칼뱅 사상이 갖는 공공신학적 함의이다. 칼뱅은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리스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으며 이 회복된 형상에서 공동선을 도출해낸다. 회복된 형상으로 새로워진 삶은 공동체적이며 동시에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동체가 아닌 모두를 표용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지속적으로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통 근거를 중심으로 타인과 타종교인들을, 모두를 포용하는 관점을 강조한다. 칼뱅이 본 하나님 형상의 관계·실체·공동체 속성은 기독교 사랑의 존재론적 토대이다.

이어지는 2부 성화와 공동선에서 저자는 칼뱅의 '신자의 자기부정'과 '삼위일체'에 초점을 맞춰서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칼뱅에게 신자의 자기부정은 개인 윤리와 공동체 윤리를 포괄한 개념이다. 개인의 내면적 윤리와 성화에만 집중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중심에는 참여와 접목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자기부정은 칼뱅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자기부정은 자기사랑의 반대개념이다. 칼뱅은 자신의 공동선 신학에서 자기부정을 직접 논하지 않았지만 그는 성화와 공동선 신학을 연결했다. 그에게 자기 자신을 비우고 모든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자원은 가난한 이웃과 교회를 섬기는 이들을 위한 희생으로 쓰여야 한다. 칼뱅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부정의 표본이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 형상은 새로운 인간의 토대가 되고 그리스도의 자기부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 그리스도는 연대의 토대로 작용한다. 그리스도와 인간은 공통된 본성을 공유하는데, 이를 통해 연합이 가능해진다. 칼뱅은 이 연합과 자기부정을 긴밀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사랑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는 자기부정의 전제로 봉헌과 헌신을 이야기했고, 이웃의 유익을 위한 자기부정으로 겸손과 존중을 강조했다. 또 영성으로서 청지기 전신을 통해 한 형태를 제시했다. 내가 핵심적으로 느낀 것은 자기부정이 부정 개념 이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죽게 하는 것’(mortification)만이 아니라 ‘살게 하는 것’(vivification)도 내포한다. 자기부정은 교회의 공동선을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이며, 이웃사랑과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은 자기부정을 실행하는 증거이다.

다음 3장에서는 율법의 다양한 용법과 그 관계에 대한 통합적 재고를 통해 논지가 전개된다. 이 장에서는 율법의 세 가지 단계, 십계명 이해를 공동선의 렌즈로 풀어낸다. 먼저 칼뱅은 율법을 타락 이전 모든 인류의 공동선을 위한 신적 선물을 나누고 공유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타락 이후에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게끔 하는 도구로써 작용하는 데 이를 율법의 제1용법이라고 한다. 이는 공동선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예비적 단계이다. 율법을 통해서 신자들은 사회적 삶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공동선 유지를 위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율법의 제2용법이다. 끝으로 율법의 마지막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에게 율법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칼뱅에게 십계명은 율법의 구체화이면서 율법의 제3용법과도 관련이 있다. 율법의 제3용법은 자기 과신을 통제하는 것과 연관 있다. 칼뱅은 우리의 자기 확신과, 공로를 뽐내지 않으려면 제3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째 돌판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상호관계가 강조되고, 둘 째 돌판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해답이 있다. 십계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계시이다.

앞선 1부 ‘신학적 근거’에서 저자는 칼뱅의 신학을 가지고 공동선 개념을 도출시켜 재구성해냈다. 이어지는 2부 ‘신학적 적용’에서 저자는 ‘교회와 공동선’, ‘인류와 공동선’이라는 주제로 논지를 펼쳐나간다. 이 부분은 칼뱅의 신학을 적용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먼저 교회와 공동선에서 칼뱅의 사상에 있어 교회가 갖는 위치에 대해 설정하고 시작한다. 칼뱅은 일반은총을 강조했지만 자연 세계와 구별되는 교회에 주안점을 두었다. 칼뱅에게 신자의 성화는 교회와 연결된 개념으로서 중요하다. 신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교제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칼뱅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점은 이후에도 강조된다. 칼뱅에게 교회는 유기적 교제와 영적 연합 그리고 실질적인 물리적 연대까지 구성하는 신비한 몸이다. 이 교회는 세상에 하나 된 선물을 나누는 공동체로 받아들여진다. 신자들의 은사는 다양하게 맡겨지고 구현된다. 따라서 신자들은 연대, 상호의존해야 한다. 또한 칼뱅은 기도, 세례와 성찬에 대한 견해는 기독론적 공동선의 역할과 교회론적 공동선 역할의 연결고리 파악할 수 있다. 칼뱅에게 기도는 공적이며 타자지향적인 기도이다. 연대성을 가지며 교회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기도문을 강조했던 칼뱅은 기도를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한 영적 소통’, ‘물리적 나눔’의 두 축으로 이해한다. 더불어 칼뱅은 세례를 공적 사건으로 이해했으며, 이를 통해 신자는 영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칼뱅은 성찬을 일방적인 선물 수여 시스템으로 이해하지 않고 상호참여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독특한 점은 칼뱅이 성찬을 교회 안에서의 사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어려움을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으로도 보았다는 점이다. 뒤에는 칼뱅의 미사에 대한 비판과 교회 공동선을 위한 공적 직무와 재산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제 막바지로 인류와 공동선에 대한 칼뱅의 신학이 나온다. 먼저 저자는 칼뱅신학에 있어서 일반은총의 위치를 논한다. 저자는 일반은총을 강조하는 신칼빈주의 전통과 일반은총은 과소평가하고 특별은총을 강조하는 입장을 서술하면서 이 둘은 비판적으로 극복한다. 저자는 칼뱅에 있어서 일반은총은 전자들의 분석처럼 크지도, 후자의 분석처럼 미미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조화의 관점에서 인류와 공동선을 조망한다. 그러면서 정리하기를 칼뱅에게 신의 진리의 및은 모든 세계 속에 찬연히 빛나며, 자연적 은사는 신적 은혜와 대조적이거나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뒤 이어 정치적 공동선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칼뱅은 세네카 연구를 통해 최상의 정치는 공동선과 깊은 연관관계를 갖는다고 보았다. 더불어 공동선의 관점에서 정부의 권력은 선한 행위를 가르치는 동시에 공익을 해치는 행위를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기억 남는 부분은 칼뱅이 종교적 문제에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저항권을 행사할 것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경제적 공동선에서 칼뱅의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칼뱅은 인간의 본성은 탐욕적이기에 경제활동을 왜곡한다고 보았다. 그는 ‘경제적 성화’라는 특유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사업을 통해 미덕이 증가되거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 일부는 희생하는 행동이다. 칼뱅은 노동을 영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며, 공동체적 기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 칼뱅은 임금이 신의 은혜라고 정의했고 이에 따라 고용인도 신의 선물을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일 뿐이었다. 칼뱅은 실제로도 낮은 임금을 개선하는데 분투하는 사회적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어 ‘상업’, ‘이자’, ‘경제 사상 논쟁과 공동선의 부상’, ‘박애적 공동선’, ‘종합구빈원’ 등의 주제를 통해 칼뱅의 사상이 설명된다.


3.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 송용원은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칼뱅 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퍼거슨의 지도 아래 칼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칼뱅 전공자답게 칼뱅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 저자가 밝히 듯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와 달리 칼뱅은 ‘공동선’을 자신의 저자 한 부분에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작업 속에 녹여놓았다. 그래서 이런 작업은 칼뱅의 전체 작업에 능통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칼뱅의 유산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이를 위해 그의 원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논지를 전개시키는 느낌이었다. 레퍼런스 또한 탄탄하다. 이런 장점 때문인지 책이 약 360여 페이지 되는 책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중간 중간 쉬어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쉴 새 없이 밀도 높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지닌 희소성을 언급해야 될 것 같다. 저자 또한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을 다루는 책들은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책을 비교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는데 법철학이나 여타 책들에서도 아퀴나스의 자연법에 관한 논의는 빈번히 찾을 수 있었지만 칼뱅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특히 있더라도 공동선에 대해 논의는 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외의 논의에 대해서 나는 정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지만 이 책에서 저자도 칼뱅의 공동선에 대한 저술이나, 칼뱅과 교회의 공동선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그 점에서 이 저술은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저자 고유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저자는 책에서 칼뱅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맥락을 제시하고 이 둘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관계에 대해, 칼뱅은 귀족주의적 공화주의자 였는가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자 였느냐 등의 상이한 칼뱅주의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서술하기에 읽으면서 이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들도 존재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시대를 진단하는 부분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초반에 있었던 “신자유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아크라 고백처럼 레디컬한 내용이 제시되어서 조금은 급진적인 칼뱅사상을 기대했는데 본문은 건실한 개혁주의자 칼뱅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조망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적용을 현대적으로 끌고 오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데 이것은 책의 주제의 일관성을 고려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아크라 고백까지 할 수 있었던 세계개혁교회연맹의 개교회들은 어떤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사상으로 신앙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학적 토대를 강화하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수평적·유기적 파트너십을 이루어 교회의 교회다움을 이루며 영적 공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세습 등의) 중세 가톨릭적 폐단을 청산하고, 중소형 교회와 대형 교회의 양극화 추세를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의 일반은총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가 미치는 곳에서 재발견하여 시민사회와 더불어 지구화된 자본주의 아래 신음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세루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신교의 공공성 회복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상이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사상을 곱씹으며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과정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가능할지 모른다.” 279-280p.


이 책 서두에서도 언급하듯 결국 지금 칼뱅의 공동선 사상을 조망하는 것은 현재에 이유를 갖기 위함이다. 이 책을 통해 이중예정, 5대 교리로만 소비되던 칼뱅의 신학이 풍성하게 이해되고 칼뱅의 공동선 윤리를 통해 한국교회의 새로운 공동선의 에토스가 발현되길 소망해본다.


2017.겨울


창조론자들


1. 창조론은 만들어진 전통이다.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5명의 역사학자들과 함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에서 역사학자들은 사실 고대나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 같은 전통들이 사실은 근대의 산물이며 조작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창조론자들에서 폭로하는 창조론자들의 면면들이 만들어진 전통과 상응한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교부의 전통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에 있어 문자주의로 해석되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 신학에 큰 획을 그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창세기의 ‘날’을 문자 그대로의 24시간으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이라고 일컬어지는 장 칼뱅조차도 창세기 주석에서 ‘모세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기록했고 천문학이나 과학의 기록도 존중해야한다.’라는 골자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로넘드 L. 넘버스의 『창조론자들』도 이를 지적한다. 책의 1장 ‘다윈 시대의 창조론’에서는 19세기의 창조론자들도 문자적인 창세기 해석과 전지구적 홍수설, 젊은 지구창조론을 지지하는 이는 드물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부의 전통, 종교개혁자의 전통과 달리 문자주의로 창조를 설명하는 창조론 운동이 맹아를 틔운 것은 겨우 20세기 초의 일이었고, 이는 약 3000년 동안 지속된 유대교·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미미한 시점이다. 창조론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기독교적 전통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또한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만들어진 전통은 현재의 제도나 지위를 유지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생성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평가와 창조론자들을 두고 지켜봐야 할 점은 창조론자들의 정체성 혼란과 그로 인한 반작용으로 창조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의 저자는 담담하게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로널드 L. 넘버스가 서술하는 창조론의 이면에는 근대와 실증주의로 인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그에 따른 반발로 시작된 창조론의 민낯이 드러난다.


2. 창조론은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저서 옥중수고를 통해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헤게모니는 일종의 내면화된 지배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의미는 '지배'를 가리킨다. 헤게모니는 강제력이나 물리력을 통한 지배만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합의가 있는 지배이다. 창조론자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들만의 창조론을 종교의 영역이나 신앙의 영역에 한정해서 창조론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든 학회를 만들거나 학교를 세우거나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창조론이 개설되도록 힘쓴다. 이것은 결국 통치의 주체인 국가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일종의 공신력을 얻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반진화론을 포함한 창조론은 전형적인 헤게모니 싸움의 발로이다. 조지 프라이스나 휘트컴이나 모리스를 비롯한 대표적인 창조론자들은 물론이고 그들로부터 시작된 미국과학진흥협회나 미국과학자연맹 등의 학술단체들은 사실 주류 과학자나 주류과학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칼 포퍼의 과학철학까지 적용해서 창조과학을 주류과학의 한 형태로 편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창조론자들은 공립교육에 편입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의 공적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세계관 싸움이자 헤게모니 싸움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세운 나라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개신교 신앙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이고 개신교인의 비율도 높고 정치적 아젠다에서 개신교가 좌지우지하는 영역들이 많다. 따라서 진화를 필두로 진입하는 진화주의자, 무신론자들과의 창조론 논란은 교회와 교회영역을 벗어나 발현된 지배규범의 세계관 싸움이다.


3. 창조론, 그 근본주의적 기원과 한국


사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서 생물학적으로 발견되는 진화라든지 그로 인해 도출되는 진화이론이 아닌 진화에 기반을 둔 무신론, 진화주의 때문에 창조론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책에서 가끔씩 언급되는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도 생물학적으로 발견되는 진화를 사회과학에 맞게 적용한 이론이다. 진화주의, 무신론, 사회진화론 등의 사상들은 사실 자연과학이나 실증의 문제라기보다 지극히 가치지향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창조론자들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실 과학사가인 로널드 L. 넘버스의 창조론의 태동과 발전과정에 대한 서술과 미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의 발흥과 발전이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자유주의, 무신론의 도전에 개신교는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근본주의가 발흥한다. 이런 근본주의 신학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창조론자들이다.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들은 구프린스턴 신학의 영향을 받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성서무오설, 성결운동을 기치로 하는 무디와 무디커넥션의 신학과 창조론자들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창조론은 결국 세계관과 신학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근본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아펜젤러나 언더우드는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이 되었고 한국 개신교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창조론자들에서 로널드 L. 넘버스는 한국의 사례를 특별하다고 평가하는데 아마 이는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적 토양 때문일 것이다.


4. 창조론자들에 대하여


창조론자들은 일종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열렬한 근본주의자였고 또 창조과학을 달달 외워 전파하는 믿음 좋은(?) 청년이었다. 나는 여러 신학적인 통찰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통해 전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향의 결정판은 이 창조론자들이란 책에 있었다. 전지구적 대홍수설, 탄소연대측정 법의 반대, 공룡과 공존한 인간 등, 내가 예전에 성경만큼이나 신뢰하고 지지하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게 되었다. 또 이런 미국의 창조론이 어떻게 한국의 나에게까지 전해져 나의 세계관 속에 들어왔는지를 과학사가인 로널드 L. 넘버스는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저자가 담담한 서술이 아닌 창조론자들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길 바랐지만 성실한 사가는 가끔씩 가치평가가 드러나지만 최대한 있는 사실과 방대한 자료로 창조론자들의 비밀을 밝혀낸다.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새물결플러스 서평공모전 우수상 시상작


2016.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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