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황혼,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

1. 이 책,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는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애플바움은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동료들과의 추억을 회고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과 지금은 친구는커녕 얼굴 보기도 민망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는 겁니다. 애플바움은 ‘왜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친구들이 이제 권위주의를 추종하게 되었을까’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 원인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제입니다.

2. 이 책은 독특하게 폴란드의 사례로 시작됩니다. 폴란드의 극우·보수정당인 ‘법과 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이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 정당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당으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자유 구역’(Streffy wolne odiologyii LGBT) 같은 정책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자유 구역이란, 노키즈존 같이 성소수자가 없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이런 정당이 득세하게 된 원인을 고민해보는 겁니다.

3. 저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등으로 수면에 오른 포퓰리즘의 준동, 영미 정치의 위기를 다루는 일련의 서적이겠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폴란드, 헝가리 등의 동유럽 사례나, 유럽의 사례가 나왔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이 책도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등의 문제를 영미와 함께 유럽 전체로 확장해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서구의 충격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크 릴라, 그리고 마이클 샌델 같은 굴지의 정치철학자도 이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4. 앤 애플바움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애플바움은 이 문제를 공화주의, 자유주의의 정치철학적 논의와 같이 거창하고 거대한 문제로 다루지 않고, 권위주의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 기제를 다루며 보다 실제적이고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노지탤지어의 부활, 능력주의에 대한 실망, 음모론의 부상과 더불어 현대적인 담론 자체의 논쟁적이고 호전적인 성격도 현재 위기의 한 원인이다.”라고 분석합니다.

5. 그렇게 이 책은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와 같은 문제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경한 유럽에서의 포퓰리즘의 준동과 극우에 가까운 보주 정당의 부상을 보다 미시적이고 친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교양으로서 새로운 정보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외에는 ‘서구’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인데, 유럽 각국 정치 상황에 대한 여러 내용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6. 애플바움은 자유주의자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우파 자유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실 때 고려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에 내용이 많은 편인데, 감상과 맥락 위주로 책에 관해 적어봤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이 생소한 유럽 정치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각주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해줬으면 독서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물론 번역이 좋았고요, 기본적인 어휘를 설명하는 각주가 도움이 됐습니다.

7. 곁가지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에는 이런 권위주의 정당이 득세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의 기본적인 상황 자체가 이미 그런 기반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분리주의(인종주의 기반), 국가주의, 성소수자 인권 옹호, 페미니즘 같은 주제는 한국 주류 정당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죠. 적극적이지도 않고요. 한국은 집권당 당 대표가 흑인 보고 얼굴이 연탄 같다고 농담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의 평균을 따지면 책에서 나오는 보수·극우 정당과 비슷할 겁니다. 다만 한국은 이민 국가도 아니고 국경도 폐쇄되어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뿐입니다. 자유주의를 제대로만 지지해도 한국에서는 진보주의자가 될 겁니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하는 한국 정치인 중에 탈권위주의 입장에서 모병제를 국가에 의한 강제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

한국 정치에 돌풍이 불었다. 한국 최고의 보수 정당에서 최연소 당 대표가 선출되었다. 대선 정국으로 열기는 감소했지만 이준석 씨의 당 대표 선출은 분명한 ‘사건’이다. 최근 관심 있는 주제와 연결되기도 하고, 주변의 권유도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대담집이라 내용이 많지는 않고 앉은 자리에서 2~3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강희진 작가와 이준석의 대담집으로 강희진 작가는 질문하면서 논의를 이끌고, 이준석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젠더’, ‘청년정치’, ‘북한’, ‘경제’, ‘교육’, ‘보수의 미래’ 총 5개의 주제로 주제에 관한 이준석의 현실 분석과 비전으로 구성된다. 2년 전 책이라 지금 이준석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입장은 공유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준석은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 ‘자유주의적 보수’라고 말하는 바에 적합한 정도로 일관적인 편이라고 느낀다. 이준석은 책에서 박정희의 경제 정책을 “사회주의적 전체주의”라고 규정한다(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은 정확히는 발전국가 모델에 가깝다. 이준석이 알고하는 소린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이전 한국의 보수 정당은 자유주의라기보다는 보수주의라고 보는 것이 맞고, 한국의 경우에는 독재와 국가주의 정책에 있어 친화성을 보이면서 자유주의와는 일면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준석은 이에 일관성 있다. 하지만 이준석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밝히지만 한국 실정에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가 있나 싶다. 자유주의에 결이야 다양하지만 이준석은 징병제를 국가에 대한 강제의 입장에서 분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준석의 사회 인식에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이다. 우선 이준석은 사회의 진보보다 과학의 진보가 여성의 권익을 상승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왜 문제냐면, 이런 논리는 기술 발전 이전의 불평등은 물론이고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과학의 발전이 여성의 권익을 상승시킨 것은 맞지만,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세탁기 발명 이전의 가사노동과 피임 기구 발명 이전의 양육 및 출산의 불평등한 관계, 그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못한다(여담으로 세탁기를 포함한 가전제품이 여성 해방에 도움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세탁기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다). 이런 논리가 묵인하는 것은 과학의 진보 이전의 불평등은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다. 사회과학은 이런 부분을 지적할 수도 있고, 당연히사회사상은 물론이고 사회통계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과학적인 것, 혹은 공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엇이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건 교양의 차이다.

더불어 이준석은 서울 목동에서의 중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여기에서의 성적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한다. 이준석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존 롤스 이후 현대 자유주의라기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내 개인적으로 이준석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을 예로 들면, 그는 자신이 노원구 상계동 출신의 서민 주거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음을 강조한다. 그 뒤 그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1년씩 외국 생활을 했고, 이후 목동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하버드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벤처기업, 봉사단체 활동을 하다 박근혜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진출해 여기까지 이르게 됐다.

이준석은 상계동 서민 출신임을 강조했지만, 그의 아버지 이수월 씨는 유승민 의원의 경북고 – 서울대학교 동문이며, 친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버지의 해외 파견 시절 미국인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더불어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고, 박근혜와 연결되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인맥과 연관된다는 논란도 존재한다. 이준석이 간과하는 것은 (혹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은) 서울대 출신 아버지, 해외 경험으로 쌓을 수 있는 문화자본, 목동의 교육열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아버지의 인맥으로 연결된 정치권과의 사회(관계)자본 같은 유무형의 자본이다. 사회에는 이런 다양한 자본이 얽혀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준석은 이런 사회적 자원을 활용했음에도 이를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만 파악하며, 이를 사회에 확장한다면 문제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줄일 생각이다. 이준석을 비판했지만, 가치관 차이의 수준이다. 그래도 이준석은 사회적 지원과 함께 정치에 입문하고 10년 동안 꾸준한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게 됐다. 종편의 탄생도 이준석이 받은 사회적 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되었든 이준석은 분명 저력을 보였다. 이준석에 의해 보수당이 재편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석은 자유주의에 일관성을 보이고 있고, 보수당에서 낼 수 있는 카드 중에 강력한 카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준석의 비전이 사회적 배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이준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이준석 자체가 부디 한국 정치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격동의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토크빌이 평등과 민주주의를 미국사회를 확인하는 열쇠로 삼았던 것처럼, 헨더슨은 동질성과 중앙집중화를 한국사회를 해석하는 열쇠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은 일종의 원자화한 사회가 되어 그 안에서 개인도 가족도 당파도 관료주의적 ‘기류의 상승작용’에 열광적으로 휩쓸려 빙빙 돌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추천사 중, 사무엘 헌팅턴

1. 나는 학부에서 사회학과 함께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지만,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에는 한국 정치가 전공이신 교수님이 없어서 한국 정치를 깊게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국 정치를 배울 때 중요하게 언급되던 텍스트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다.

2. 그레고리 헨더슨: 책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1948년 7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부임한 이후, 1963년까지 한국에 외교관으로 근무한다. 헨더슨이 한국에 있었던 기간은 말 그대로 한국 정치의 격변기였다. 그는 한국에서 대한민국 건국, 한국 전쟁, 1공화국의 4·19혁명으로 인한 몰락, 2공화국의 수립과 5·16군사 쿠데타로 인한 전복, 군부독재 정권의 수립까지의 현대사를 목도한 사람이다. 동시에 헨더슨은 ‘한대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질 정도로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순히 한국 정치를 관찰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국회 프락치 사건, 유신 정권의 수립 등 여러 국면에서 독재에 반대하고 한국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던 활동가이기도 했다.

3.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헨더슨이 정의한 한국 정치는 ‘소용돌이’로 특징지어진다. 그가 관찰했던 한국의 정치는 소용돌이, 즉 “중앙권력을 향해 모든 활동적 요소를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와 같다. 그가 본 한국은 지극히 동질적인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도의 중앙집권제를 강조했기에 결국 이로 인해 문화 전체를 통해 활발히 움직이는 강력한 상승기류(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이런 소용돌이 현상이 정치에서 발생하면, 이 강력한 상승기류는 원자화된 정치 주체를 흡입해, 이성적인 성찰도, 의회주의도, 민주적 절차도, 정책을 위한 합리적 토론도 모두 마비시켜 버린다. 이것이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해석하는 핵심으로 제시한 소용돌이다.

4. 내용들: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해석하는 핵심은 소용돌이 현상에 있다. 더불어 헨더슨은 한국정치에 관한 다양한 개념과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헨더슨은 말 그대로 식민지 상태의 조선에서 근대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의 한국정치를 말 그대로 목격한 사람이다. 이제 막 공화국으로 탄생한 한국은 촌락과 왕권 사이에 중간 기구가 없는 사회였고, 이는 당연히 정치적 결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헨더슨은 한국의 중앙집권적 정치 습속이 조선왕조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유교를 국시로 삼아 중앙집권 관료국가였던 조선의 정치문화가 한국 정치의 근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5. 느낀 것: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분석한 대표적 키워드로는 ‘높은 동질성’, ‘중앙집권의 전통’, ‘중간집단의 부족’, ‘소용돌이 현상’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헨더슨이 개념화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아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이미 단어를 읽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머릿속에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들이다. 그만큼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적실하다. 물론 헨더슨의 분석은 현대에 와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이 책은 한국 정치를 비교정치의 관점에서 분석한 최초의 책이며, 고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끄럽게도 헨더슨의 책을 이제야 읽었지만, 이 책의 구판이 67년에, 신판이 88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읽었을 때도 여전히 이 책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관한 정치적 비평

1. 들어가며: 시작하기에 앞서 확실히 할 것은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일종의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마도 자기계발서로서의 가치를 보는 게 중요할 것이고, 조던 피터슨은 자신의 세계관에 기반해 나름 진지하게 조언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의 조언을 통해 전해지는 정치적 의견을 비평해보려 한다.

2. 셀럽 지식인: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건, 조던 피터슨이 셀럽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그에게는 학자, 교수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는 명문 맥길 출신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하버드의 강단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심리학자로서 학술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은 게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 참여하면서 유명해졌다. 피케티의 경우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을 통해 명성을 얻은 반면 피터슨은 심리학에서의 새로운 학술 작업을 통해 유명해진 게 아니다. 자신의 전공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정치 참여로 명성을 얻었기에 그는 논객 혹은 대중 지식인이 맞다. 한국으로 치면 서민이나 진중권 같은 위치로 볼 수 있다.

3. 피터슨과 실증?: 피터슨은 책을 통해 이른바 진보, 좌파의 사상을 겨냥하면서 그것이 실증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실증적인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학 저작 <의미의 지도(Maps of Meaning)>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그는 경험적 데이터, 통계를 가지고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칼 융, 엘리아데, 니체 등을 통해 신화해석을 하는 심리학자다. 그가 말하는 ‘임상’은 데이터 과학이 아니라 ‘상담’인데, 이는 그가 자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피터슨은 전혀 실증주의 전통에 있는 학자가 아니다.

4. 피터슨의 ‘사회’: 피터슨은 ‘고전적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한다. 나는 그의 사상이 많은 부분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고, 스펜서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자의 한 사람이다. 문제는 피터슨은 사회계약론의 가설을 인용하고, 사회진화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실증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원초적 상태를 상정한다고 해보자, 이로 인한 최초의 계약을 실증할 수 있는가? 또 사회진화론은 유사 사회과학이다. 아직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통해 만들어진 게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이다. 조던 피터슨은 실증적이지 못하다.

5.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나는 그가 다분히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게 그게 셀럽 지식인의 운명이다. 이미 학자보다 논객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설득하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지적으로 정직한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는 불평등을 설명하면서 바닷가재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건 자연주의적 오류다. 가재와 인간은 다르다. 그리고 수평적 생활을 하는 다른 생물 집단이 있다. 보노보 같은. 그렇다면 왜 인간을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보노보가 아닌 바닷가재로 설명하는가? 그냥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지 못하게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속해서 비판하는 마르크시즘이나 페미니즘 조류는 적어도 실증과 맞물려 있다. 마르크시즘 전통에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는 에릭 올린 라이트는 물론이고, 인류학적 전통의 페미니즘은 굉장히 실증적이다. 하지만 피터슨은 성별 차이를 도교의 음양으로 설명한다.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르크시즘을 비판하지만 정작 마르크스를 모르는 게 들통난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6. 한국과 피터슨: 피터슨은 사실 요청된 저자다. 그러니까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에 반발하는 사람이 어디 기댈 곳을 찾다가 나온 사람, 그 정도.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만한 백인, 남성, 명문대 지식인이다. 피터슨은 한국으로 치면 100분 토론에 나오는 논객이다. 나는 정치적 의견을 갖기 위해 피터슨을 보려면 차라리 제대로 된 정치철학서를 보는 게 도움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유주의 담론이 이렇게 유치한 형식이 아니라 정교화 되고, 전문화되는 게 한국사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많이 발전했다.

다시,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그가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서평: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1. 통치의 근거로서 ‘정당성’

 

막스 베버(Max Weber)는 기념비적인 종교사회학 논문 <세계종교와 경제윤리>를 통해 신정론(theodicy)이 가진 사회적 기능에 관해 설명한다. 불평등한 복(재산)의 분배는 그 자체로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의미를 추구하기 위한 뿌리뽑힐 수 없는 욕망을 가진 문화인간으로서 인간은 자신의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행운이 정당한 것임을 정당화해야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비참한 삶의 이유를 해명하며 자신의 삶과 화해해야 했다. 정의롭고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 속에서 문화인간으로서 인간들은 각자 삶의 비참과 행운을 이해해야 했다. 나의 가난은 신분제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정론, 즉 전능하고 정의로운 신의 통치 아래 이유 없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신학의 주제는 사회의 비참을 정당화하는 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베버의 카리스마는 통치를 위한 정당성에 관한 문제가 되고,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발전시키는 상징자본은 베버의 카리스마와 같다. 상징자본이란 피지배자의 인정(부르디외에 의하면, 오인)을 얻게 된 정당한 권위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기에 능력주의(meritocracy)의 문제를 이해할 때도 지배 질서의 정당화에 관한 감각이 필요하다. 능력주의는 단순히 능력을 통해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을 통한 지배 질서가 정당성을 얻는 통치의 개념이라는 것을. 능력주의라는 말을 처음 창안한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능력주의(The Rise of The Meritocracy)>를 보면, 능력 있는 자, 정확히는 능력 있다고 여겨지는 자의 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이 서술되며, 능력이 없는 자 즉 피지배계층의 부모는 윤리적 수준에서 자식에게 능력주의의 정당성을 내면화시키기도 한다. 즉, “능력 없는 자가 지배계층이 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2. 마이클 샌델의 문제의식

 

마이클 샌델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은 능력주의에 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미국의 상황에 의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능력주의의 문제를 전면화한 것은 이른바,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로 인한 트럼프의 당선, 브렉시트 등의 상황과 연결된다. 한국의 상황과는 다른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포퓰리즘의 준동은 아마도 미국 지식인에게 큰 충격을 남겼던 것 같다. 포퓰리즘,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라는 “위기 상황”에 미국 리버럴이 응답한 것이 (지형을 명확히 그릴 수는 없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Identity: 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 마크 릴라(Mark Lilla)의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The Once and Future Liberal)> 등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공정하다는 착각>은 미국 정치의 위기에 상황에 관한 공화주의/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의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 이뤄지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즉, 포퓰리즘의 준동, 트럼프의 당선과 같은 정치적 위기 상황의 근원에는 능력주의의 전제정치(The Tyranny of Merit)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이 위기 상황의 원인으로 ‘정체성 정치’를 지목하는 것과 다르게 샌델은 능력주의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하지만 샌델과 그들이 동일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감정과 존엄성”에 관한 것이다. 샌델은 능력주의에 의한 전제정치, 즉 전문인/엘리트의 독재정치가 비엘리트 시민에게 굴욕의 감정을 선사했다고 한다. 마이클 영의 문제의식과 동일하게 이들은 윤리적 층위에서도 비윤리적 모욕을 받게 된다. 이런 굴욕이 포퓰리즘으로 발현되었고,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샌델은 공화주의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3. cracy‘들’과 통치에 관한 감각과 제목 The Tyranny of Merit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가 한국에 200만 부 정도 팔렸다고 한다. 샌델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정치철학자이다. 그렇기에 샌델의 인식적 관심은 언제나 희소가치 분배의 문제, 통치에 관한 것이다. 책에는 여러 가지의 ‘cracy’가 나온다. aristocracy(귀족정), meritocracy(능력주의), technocracy(기술관료적 정치), 그리고 cracy라는 접미사는 없지만, tyranny(전제정치)까지 포함해야 한다. 지배를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 cracy는 그리스어 kratia에서 유래되었다. 우리가 민주주의(democracy)를 이해할 때, 이는 그리스어 demos(인민)+kratia(지배)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통치체제이다.

 

그러니, 책에 나오는 수많은 ‘cracy들’에서는 통치에 관한 감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철학의 전통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6가지의 정체(政體, 통치 형태)를 제시하는데, 여기에는 귀족정(aristocracy)과 전제정(tyranny)이 이미 제시되어있다. 귀족정은 단순히 귀족에 의한 통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이라는 신분·혈통을 통한 정당성이 인정되는 통치체제라는 감각이 필요하다. 다시 능력주의로 돌아가면, 능력주의란 귀족정이라는 하나의 통치체제를 근대적으로 변환시킨 하나의 통치체제가 된다. 그러니까 신분·혈통을 통해 정당화되던 지배 질서가 근대의 계몽주의·합리주의의 영향을 통해 능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통치 형태로 변환되었다는 것이다.

 

샌델은 지금의 위기 상황의 원인을 미국 리버럴의 능력주의 통치에서 찾는다. 특별히 그가 정치 현실에서 겨냥하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책의 번역에 따르면 기술관료적 정치이다. 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 의하면, 테크노크라시란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의 소유로 사회나 조직의 사상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형태를 가리킨다. 테크노크라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 기술관료)”라고 한다. 샌델은 미국의 능력주의가 약 반세기 동안 사회의 근본원리로 작용했으며, 이른바 오바마 정부의 ‘진보 엘리트’를 통해 테크노크라시, 기술관료적 정치로 구현되었다고 본다. 미국 자유주의자의 능력에 대한 강박과 그를 통한 능력의 신성화는 비엘리트의 소외로 이어졌다. 능력을 공인받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는 자신의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성과라는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했고, 이런 논리로 사회를 옭아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논리는 능력을 공인받지 못한 자의 삶을 부도덕한, 비윤리적인 층위로까지 끌어내렸고 이 굴욕의 감정은 위기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을 통해 민주적 절차를 옹호하기보다는 전문성과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정치에 배제함으로써 민주적, 공화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며, 전제정치를 실행한다. 이것이야말로 마이클 샌델이 제목, “The Tyranny of Merit”를 통해 겨냥한 “능력에 의한 전제정치”, “능력주의의 독재정치”이다. 책의 제목을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옮긴 것이 판매를 위한 전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 샌델이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당신의 능력이 ‘공정하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정당성을 얻는 통치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 책의 흐름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해 약 9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서론은 미국의 입시비리로 시작한다.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어지는 1장은 샌델의 문제의식이 더욱 구체적을 제시된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능력주의 도덕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는데, 성서, 막스 베버, 근대의 정치철학을 통해 능력주의의 기원을 살핀다. 이 부분은 흥미롭고, 능력주의에 익숙하지 않을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어지는 3·4장은 미국에서 통용되는 능력주의의 형태를 설명한다. 사회적 상승, 높은 지위를 성취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성공을 능력을 통해 정당화하는지, 즉 자신의 능력에 어떻게 능력주의의 광채를 덧입히는지를 분석한다. 이런 능력주의는 학력주의(credentialism)과 연동되는데, 미국에서의 학력주의가 정치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편이다.

 

5장은 정치철학자로서 샌델을 생각할 때 7장과 함께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샌델은 능력주의와 함께 연동되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비판한다. 샌델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자유주의는 두 갈래인데, 하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로 대변되는 자유시장 자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존 롤스(John Rawls)로 대변되는 복지국가 자유주의(혹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일견 능력주의적 질서를 옹호할 것 같지만, 샌델은 오히려 이 두 자유주의 전통이 본질적으로는 능력주의를 부정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샌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시장 자유주의와 복지국가 자유주의는 명시적으로 능력주의를 부정하나 현실 속에서는 이 사상의 특정 측면이 능력주의적 성공관을 사회에 되살아나게끔 한다고 분석한다. 샌델이 20세기를 지배했으며,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비판하는 부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어지는 6장은 미국 대학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신분제적 질서를 대항해 만들어진 대학이 왜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이어지는 7장은 결론과 함께 마이클 샌델의 대안과 공화주의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문제 상황에 관한 해답을 제안한다. 샌델은 “일의 존엄성”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른바 비엘리트 시민계층, 노동자에게 다시금 정당성을 부여해야 미국 정치가 다시 위기상황에 봉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공동선과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사실 7장에서 아쉬운 건, 샌델이 전면에 내세우는 해결책이자 7장의 제목 “recognizing work”가 단순히 “일의 존엄성”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샌델은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를 원용하며 인정(Anerkennung, recognition)이라는 개념어는 사용하는데, 번역은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 한국적 맥락

 

가장 먼저 베버를 언급하면서 봤듯, 나는 정당성의 근거에 다분히 종교적이며 믿음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능력주의의 한국적 맥락을 고려했을 때, 샌델의 책은 다분히 미국적 문제의식이라 그렇게 효과가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공정성’은 대개 20~30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들은 학력주의에 함몰되었다기보다는 시험위계주의에 긴박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학벌주의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학교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기보다는 시험을 통해 끊임없이 위계를 세분화한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보듯, 서강대생이 서강대생끼리 파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서강대 경영학과와 서강대 철학과가 구별되고, 정시와 수시가 구별되고, 수시 안에서는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이 구별된다.

 

한편으로 이런 질서는 시험신분제로 보이기도 한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 의견을 낸 사람의 담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구약성서 욥기에서 욥은 자신이 신의 명령을 다 지켰음에도 오는 이유 없는 고난을 문제 제기한다. 그러니까 욥은 그 고난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행복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데 이것이 고난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도 동일하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안 된다는 의견 속에는 시험 성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거나, 시험 성적이 나보다 낮은데도 나보다 좋은 지위를 성취해서는 안 된다는 모순에서 기인한 인식이 작용한다. 나는 그러한 인식 속에서 “상놈(시험체제에서 승리하지 못한 자)이 양반(시험체제에서 승리한 자)보다 잘 살아서 되는 것이냐”는 생각이 읽힌다.

 

나는 시험의 의미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생애주기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끊이지 않는 테스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 입시에 사회의 관심이 집약되고, 일상이 통제되기도 하고, 교육·선발체계의 변화에 사회 전체가 동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선별되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사회적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고, 삶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매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의례가 바로 ‘시험’에 있다. 이런 선발체제에서의 승리는 일종의 간증 서사로 작용하고, 이를 통과한 사람에 대한 일종의 숭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자본·자원을 가장 극적으로 사용해서 자신의 생존을 집약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청년 세대에게 시험은 일종의 신앙이며, 한국 사회는 테스트-토템(test-totem) 사회다. 그렇기에 나는 능력주의에 관한 강박은 한국 사회가 더 강하지 않을까 그렇게 지레짐작한다.

 

한국은 전근대에서부터 독특하게 과거제라는 능력주의적 선발체계를 사용한 전통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편 모든 삶이 시험으로 연결되는데 표준화된 시험에 관한 신앙 역시 능력주의를 타파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의 한국 수용에 관해선 비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샌델을 통해 능력주의 문제가 적어도 부상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갖는다.

 

6. 책에 관한 불만

 

책은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너무 대중을 염두에 두고 대중서로 책을 만들다 보니 역주를 보기 불편하거나, 이미 한국에 번역된 책을 참고문헌이 기록하지 않는 등 만듦새가 부족한 부분이 꽤 있다. 그리고 번역어 선택에도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technocracy를 어디에서는 테크노크라시로, 어디에서는 기술관료적 정치로 사용하고, tyranny of merit 역시 어디에서는 능력의 폭정으로, 능력주의의 폭정으로 사용하는데 원어를 병기하거나 번역어를 일관되게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서 호네트의 ‘인정’을 지적했듯 개념어를 못 살린 번역도 지적하고 싶고, 몇몇 부분에는 실수에 가까운 오기(誤記)도 있는 것 같다. 덧붙여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쓸데없는 유명 인사들의 추천사며, 머리말이며 하는 것들. 책 이해에 도움도 안 되고,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것 같다. 샌델이 너무나 대중에게 사랑 받는 작가이니, 이런 편집이 이해는 되지만, 독자를 너무 가볍게 본 처사는 아닌가 싶다.

 

부족하지만, 지금까지의 공부를 통해 정치 / 정치학 입문에 관한 책을 몇 권 추천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2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제 부족한 경험과 공부의 한계 안에서 작성된 목록이니 너무 크게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번에 말씀은 못 드렸지만, <오름> 출판사도 정치 / 정치학에서 좋은 책을 많이 출간합니다. 다만 입문보다는 정치한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판되니, 그점은 참고하시기 바랄게요.

 

5. 현대 정치사상 / 현대 정치철학 / 정치 이데올로기

 

현대 정치사상 / 현대 정치철학 / 정치 이데올로기는 제가 이전에 정치철학 / 정치사상으로 다룬 영역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정치철학 / 정치사상에서는 철학사처럼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는데, 현대 정치사상은 인물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보수주의, 무정부주의, 페미니즘 등의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한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 책이 정치를 보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분야에 있어서 제가 가장 전반적으로 추천할만한 책은

 

1) 사회사상과 정치 이데올로기, 앤드류 헤이우드, 오름

2)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폴 슈메이커, 후마니타스

 

이렇게 두 권입니다.

 

먼저 <사회사상과 정치 이데올로기>는 원제가 ‘Political Ideologies An Introduction’입니다. 정치 이데올로기 개론서, 입문서로 보시면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책 중에 가장 쉬운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파시즘, 페미니즘, 생태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다문화주의 등 10개의 사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술 자체가 정치학 교과서를 저술하는 앤드류 헤이우드답게 명료하면서도 평이한 게 특징입니다.

다음으로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은 다원적 공공 정치를 위한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전통적 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파시즘과 나치즘, 현대 자유주의, 현대 보수주의, 급진적 우파, 극단적 우파, 급진적 좌파, 극단적 좌파까지 12가지의 이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정치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가장 자세하게 서술한 책일 것입니다. 이 책은 12가지의 이념의 철학적 기반부터 정치적 원리까지 약 11가지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때문에, 각 이념이 가진 심층과 본질까지 익힐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고, 한 편으로 이 책은 다원적 공공철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시도도 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읽고 생각할 여지가 많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 편으로 앞선 책보다는 좁은 측면에서 현대 정치사상을 다루는 책도 있습니다. 앞선 책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같은 군소 사상까지 다루었지만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같은 사상은 실효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한국은 특히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대결보다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결이 중심이 됩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결을 다루는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3)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4) 정치의 생각, 애덤 스위프트, 개마고원

5)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스테판 뮬홀·애덤 스위프트, 한울아카데미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 단순하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책이 아니라, 공리주의 -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로 이어지는 논쟁의 맥락 속에서 진행되는 책입니다. 존 롤즈의 <정의론>의 토대가 되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일종의 사회계약적 상황에 무연고적 자아의 불가능성을 이유로 비판하며 나온 것이 바로 마이클 샌델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실 미국 정치사상 논쟁의 주류가 되는 공리주의 -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로버트 노직, 존 롤즈, 하이에크, 이사야 벌린, 드워킨, 마이클 왈저, 메킨타이어 등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이론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사회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민주주의의 5가지 주제를 다각도로 살피는 책으로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이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독서입니다. 그런데 내용 자체가 평이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맥락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6. 민주주의

 

1) 민주주의, 로버트 달·이안 사피로, 동명사

2) 민주주의 강의 1~4(역사, 사상, 제도, 현대적 흐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오름

3) 민주주의의 모델들, 데이비드 헬드, 후마니타스

 

우리는 일상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죠. 민주적이라는 말도 자주 하고.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민주적이다 / 민주적이지 않다라고 판단할 때, 그 근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판단의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과 판단 기준을 제시한 학자입니다. 그의 책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원, 현실, 이상, 미래 등의 주제를 명료하게 다루는 책으로 전공서에 가깝지만 어렵지 않은 책입니다.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꼭 거쳐야 하는 학자이지요. 이 책은 민주주의에 관한 기본서입니다. 이외에도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미국의 헌법과 민주주의> 같은 그의 저작이 번역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 바랍니다.

<민주주의 강의 1 : 역사>부터 <민주주의 강의 4 : 현대적 흐름>까지 이르는 민주주의 강의는 한국 저자에 의해 쓰인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부터 다양한 측면에서 편하게 접근하기 좋은 책이니 참고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더불어 복수의 저자가 참여했기 때문에 내용의 전문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은 민주주의를 기조로 한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 모델을 비교·분석하는 책으로, 보는 것만으로 큰 공부가 되는 책입니다.

 

7. 한국 정치

 

1)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강원택, 21세기북스

2)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후마니타스

3) 좌우파 사전, 공저, 위즈덤 하우스

4) 현대한국정치사상의 흐름, 공저, 아카넷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은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 4개의 주제로 한국 정치사 일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데 좋은 책입니다. 제가 알기로 강원택 선생님은 유럽정치와 정당론/선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셨던 분이신데, 최근 한국 정치쪽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현대 한국의 정치>, 지병문 외 4명 공저, 피앤씨미디어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한국정치사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어보지는 못해서 이 책이 제일 적합하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입문에 있어서는 저 책이 좋아보입니다.

최장집 선생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한국 정치의 보수적 기원을 다루는 한국 정치의 고전이 된 책이죠. 이 책을 비판하든, 수용하든 꽤 중요한 기준이 되는 책이기 때문에 관심있는 분께서는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좌우파 사전>은 한국사회에 쟁점이 되고 있는 명제 22개를 다루는데, 이것을 논쟁적으로 다루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약간은 진보적 성향의 필자가 참여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저는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유효한 주제가 많지만 책이 나오고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최근 주제를 다룬 비슷한 책을 원하는 분은 <한국사회논쟁>, 공저, 명인문화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좌우파 사전>과는 달리 한 쟁점에 관해 양측의 필자가 다 의견을 내는 책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현대한국정치사상의 흐름>은 인물과 시기별로 한국 정치사상의 변화를 분석하는 책으로 한국 정치사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상을 중심으로 보고 싶은 분은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공저, 후마니타스를 참고하셔고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https://pixy.org/4762990/

 

 

부족하지만, 지금까지의 공부를 통해 정치 / 정치학 입문에 관한 책을 몇 권 추천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제 부족한 경험과 공부의 한계 안에서 작성된 목록이니 너무 크게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정치 / 정치학에 있어 좋은 책을 많이 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관심 가시는 책을 보시는 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책은 입문부터 약간은 난도가 있는 책까지 다양하게 출간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명인문화사>의 경우에는 정치학 전공 교재를 주로 출판하는 곳인데, 이쪽은 묵직하면서도 교과서적인 책이 많이 나오는 곳이니 이 역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 정치 / 정치학 일반 및 개론

 

정치 / 정치학 일반 및 개론에서는 정치 현상의 일반 또는 정치학의 개론을 다루는 책을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다룰 책은 대개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 현상을 무엇인지, 정치학에서는 무엇을 다루는지, 정치에서 중요한 개념(국가, 이데올로기, 정당 등)은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분야에서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관련된 책이 다 두꺼운 책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국가면 국가, 정당이면 정당 같이 해당 주제, 각론에 해당하는 책을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1) 정치학 개론, 필립 쉬블리, 명인문화사: 이 정치학 개론은 제가 대학에서 <정치학 원론>을 수강할 때 썼던 교재인데, 가장 교과서적인 특징을 가진 책 같습니다. 서술 자체는 약간 지루한 편이긴 하지만, 교과서로서 훌륭한 정석적인 책입니다.

 

2) 정치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전공 교수진, 박영사: 이 책의 경우에는 한국 저자들에 의해 쓰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서들보다 문장이나 여러 측면에서 책을 이해하는 게 편한 편입니다. 그리고 각 주제를 주제의 전문가가 작성했고 한국적 맥락에 쓰여있으니 그 역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정치학, 앤드류 헤이우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이 책 역시 매우 교과서적인 책이고, 여러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일 겁니다. 쉬블리의 정치학 개론 같이 여러 주제를 망라하면서도 서술 자체는 더 쉽고 간결한 편이라 이 책 역시 좋은 책입니다.

 

2. 비교정치, 비교정치학

 

저는 비교정치학이 사실 정치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비교정치는 ‘정치형태’를 다루는 영역입니다. 예를 들면, 정부형태(권력구조)로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있는데 이것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제는 무엇이고 각 나라들은 대통령제를 어떻게 시행하는가?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각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는가? 이런 주제를 다루는 정치학의 한 분과이지요. 그러니까 비교정치를 통해서 정치체제에 대해 이해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비교정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모르면 사실 정치를 모르는 거나 다름없어서 그렇습니다. 비교정치는 정부체제와 정치체계랑 관련 있어서 헌법이랑도 관련이 있고요. 아마 정치를 보시는데 도움을 많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정치 영역에서는 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1) 비교정치와 정치, 로드 헤이그 외 2명 공저, 명인문화사

2) 비교정치, 신명순·진영재, 박영사

 

이렇게 두 권의 책이 가장 교과서적입니다. 두 책이 다루는 주제가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권도 역시 꽤 묵직한 책들입니다.

 

3. 국제정치

 

보통 대학에는 정치외교학과가 개설되는데, 정치학과 외교학(국제관계, 국제정치)은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정치학에서는 정치현상 일반을 다루고, 외교학은 보통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에 성립한 근대적 민족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대해 다룹니다.

 

1) 세계정치론, 존 베일리스 외 2명 공저, 을유문화사: 이 세계정치론의 경우 아마 외교/국제정치/국제관계 쪽에서 가장 많이 교과서로 쓰일 책입니다. 그만큼 국제정치 영역에서 단단한 교과서이며, 다양한 국제정치 주제를 포괄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2) 현대외교정책론, 김명섭 외 16명 공저, 명인문화사: 이 책은 외교정책 교과서로, 한국의 외교전문가가 공저한 책입니다. 외교의 기본부터 각 나라 외교 현황까지 다루고 있는 책으로 저도 굉장히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3) 세계외교사, 김용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이 책은 세계 외교사를 전체적으로 다루는데, 가능하시면 이 책보다는 관심있으신 각 나라의 외교사, 예를 들면 미국외교사, 한국외교사 같은 책을 찾아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이 책들 역시 다 묵직한 책들이네요.

 

4. 정치철학 / 정치사상

 

정치철학 / 정치사상은 정치에 관한 사유와 철학의 고전을 다루는 분야죠. 제가 정치철학 / 정치사상이라고 분류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쪽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정치철학자 / 사상가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예를 들면, 철학사처럼 플라톤에서 시작해 마르크스에 이르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여기서 동양 정치철학 / 정치사상은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1) 정치철학 1·2 곽준혁, 민음사

2) 서양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공저, 책세상

 

정치철학 / 정치사상에는 정말 많은 책이 나와있습니다. 앨런 라이언의 <정치사상사>, 조지 세이빈의 <정치사사상 1·2>, 셸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 1·2·3>, 한스 마이어의 <정치사상의 거장들 1·2>, 레오 스트라우스·조셉 크랍시의 <서양 정치철학사 1·2·3등. 다양한 책이 있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데, 저 두 권을 추천해드린 까닭은 입문에 있어서는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이 읽으시기에 좋을 것 같아서 입니다. 곽준혁 선생님의 책이 보다 친절하고 평이한 편이고, <서양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같은 경우는 곽준혁 선생님 책보다는 자세하고 묵직한 편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책들도 책마다 다루는 사상가가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목차를 확인하시고, 관심에 따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각각에 대한 비교는 나중에 글로 써보겠습니다.

 

오늘 글을 한 편에 다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서, 2편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5. 현대 정치사상 / 현대 정치철학 / 정치 이데올로기 6. 민주주의 7. 한국 정치 세 개의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한 분께서 정치에 관한 지식이나 역사를 알고 뉴스나 사회현상을 판단하고 싶어 책으로 공부하고 싶다시면서 입문서를 추천해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한참은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정치교양에 관한 입문서 문제요. 시중에 있는 몇몇 입문서들은 너무 엉터리라서, 정치에 관한 오해만 쌓일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고심 끝에 입문서라고 하긴 어려운 책을 좀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1. 핵심: <좌우파 사전>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사회의 문제를 두고 좌파와 우파의 시각과 논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책으로, 이 책을 통해서 한국의 전체적인 정치지형과 갈등, 그리고 사회 문제의 역사에 관해 공부할 수 있게 됩니다.

2. 저자: 이 책은 약 14명의 학자가 공동집필한 책으로 14명의 학자 분들은 각 주제의 전문가들이십니다. 이렇게 광범한 주제를 가지고,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책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쉬움이 있다면 한 주제를 두고 복수의 전문가가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기 때문에 극명한 갈등구조를 보기는 어려운 점 정도인 것 같습니다.

3. 구성: 이 책 자체는 600쪽이 넘고, 약 23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방대함이라는 장점이자,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좌파와 우파”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세계적인 기준과 한국 현실에서의 기준에 대해 다룹니다. 사실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 자체가 설명하기 매우 머리 아픈 문제인데요, 이 책은 좌우파의 개념과 현실에 대해 준수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크게 정치, 국가, 국제관계, 경제, 노동, 불평등, 사회, 빈곤, 민주주의, 생태, 범죄, 인권, 역사, 교육 등의 문제들을 약 22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구체적 목록은 검색하신 뒤 목차를 참고하세요). 각 주제들은 <1. 문제제기 - 2. 한국 현실에서의 좌우파의 견해 차이 - 3. 저자의 소결론> 이런 식으로 나누어지고, 22개의 주제마다 주제에 관해 우파적 시각과 좌파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심화자료(책) 목록과 개념 및 문제의 사전적 정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소득분배와 경제성장를 다루는 장에서는 1. 이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제시하고, 2. 한국의 상황(양극화 심화), 우파의 시각(분배보다 성장, 재분배는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 좌파의 시각(소득분배의 불평등은 경제성장의 저해요소이다)을 다루며 각 입장의 논리와 한국의 현실적 맥락을 소개하고, 3. 평등한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 나름의 결론을 내립니다. 그 뒤에는 한국경제의 성장·분배·양극화 문제를 다루는 책이나 가끔 논문들을 추가로 알려주고, ‘사전적 정의’로 이 문제에 관한 중요한 개념들을 설명해줍니다. 각 장이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4. 시사점: 이 책은 쉬운 입문서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책인 동시에 고난도는 아닙니다. 이 책도 함께 토론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고요, 가격과 분량에 약간 부담이 있지만 이 책은 구체적인 한국 현실에서의 정치 문제를 신뢰할만한 필진들이 작성했다는 데에 장점이 있습니다. 한계가 있다면, 2010년에 출간된 책이라 현실정치에 변화들이 있었죠. 저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박정희 체제의 몰락과 페미니즘의 부상 같은데, 그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루진 못했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의 책들이 몇 권정도 더 있는데, 제가 시간·공간·재정의 한계 때문에 바로 소개해드리긴 어려울 것 같고요, 천천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숨은 맥락

이 책을 다루겠다고 이야기하니 답이 없는 책이 아니냐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정답이 없는 게 1강에 나온 저자가 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 생각하지만 저는 이 책의 숨은 맥락을 소개해드리려 해요. 제 글을 안 보셔도 책을 보는데 지장 없으시니, 굳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샌델은 행복(공리주의), 자유(주의), 미덕(공동체주의)을 통해 정의는 무엇인가 탐구하겠다고 하죠. 2-4강에서 공리주의의 특성과 한계를, 5-7강에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의 특성과 한계를, 8-10강에서는 앞선 두 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공동체주의를 제안합니다. 샌델은 자기 입장(공동체주의)을 강력히 주장하지는 않지만 논의의 마무리로 사용하고 이를 지지를 밝힙니다.

공리주의의 핵심명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고, 샌델은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를 연결하죠. 벤담이 가정하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인간은 합리적·이기적이고 따라서 최상의 이해관계를 구성한다고 보았고 자유지상주의에 영향을 미칩니다. 샌델은 이 맥락을 소개하고 4강에서는 공리/자유방임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이 맥락을 마무리합니다. 샌델이 보는 한 덩어리는 공리주의-자유지상주의입니다.

그 다음 샌델은 칸트를 소환합니다. 여기서 칸트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창시자로서의 칸트죠. 칸트는 인격의 절대성, 개인, 근대적 이성을 가지고 공리주의를 비판하며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한 편으로는 관념적 상황, 그러니까 경험(현실)적 자아가 아닌 선험(보편)적 자아를 통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정치적 이상을 구성하려 합니다. 롤즈는 이를 계승해 경험적인 행복의 문제는 합의가 어렵기에, 선험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정의’의 문제를 가지고 사회구성의 기본원리를 제안합니다. 그것이 ‘정의론’이죠. 롤즈는 보편성을 위해 추상화를 추구하고 사회계약을 가정해서 무지의 베일 속 개인들의 합의를 이론으로 내놓는데, 샌델은 7강에서 이 정치적 자유주의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면서 8강으로 넘어갑니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샌델이 소환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주의자 매킨타이어가 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복권시킨 철학자이죠. 샌델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지속적으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롤즈가 가정한 무지의 베일 속 개인들, 즉 무연고적 자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토대를 무너뜨립니다. 동시에 샌델은 개인(자유)주의와 구별되는 공동체주의의 핵심가치인 공동선, 미덕, 연대, 도덕, 목적 등을 꾸준히 강조하고, 문제들을 다루며 책을 마칩니다.

이 책은 답이 없는 책인 것 같으면서 은밀히 답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샌델의 핵심저서 <정의의 한계(원제: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는 현대의 가장 지배적인 두 사상,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겨냥하고 극복하기 위해 집필되었습니다. 그러니 <정의란 무엇인가>가 앞의 책에서 겨냥하는 두 사상을 다루고 공동체주의로 수렴되는 것이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끝난 세계에서 유일한 대결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있죠. 현실적으로 사회변동을 위한 이론,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싸움은 자유와 공동체의 투쟁에 있을 겁니다. 이 책은 현실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사상의 논쟁을 다루는데 장점이 있고 동시에 이 때문에 다른 정치사상의 맥락(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나키즘 등)을 삭제한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윤리 수준의 기초지식이 있으면 보다 읽기 편할 책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함께 읽으며 토론하면 더 좋을 책입니다. 저는 교양을 위해 읽기 매우 좋고, 이런 사고훈련 자체가 민주사회에서 값지다 봅니다. 강연자로서 샌델도 매우 천재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책,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포퓰리즘,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적 위기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으로, 책 표지에 쓰인 원제 “정체성: 존엄에 대한 요구와 분노의 정치에 대하여”에 걸맞게 21세기 대두된 ‘정체성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1. 맥락: 이 책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안에 위치시킬 때 더 선명한 책이다. 후쿠야마는 89년 <역사의 종말? (The End of History?)>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서 후쿠야마는 인류 역사가 종국에 자유주의 국가에 도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후쿠야마는 ?를 중요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주장에서 후쿠야마는 존엄을 인정받으려는 열망이 자유민주주의의 해결과제이자 걸림돌임을 지적했고, 현재 그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이 책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위기의 근원인 투모스(이후 설명), 인정, 존엄, 정체성, 이민, 민족주의, 종교, 문화, 난민 등의 문제를 다룬다.

2. 문제의식: 이 책은 트럼프의 당선,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사건 (민족주의의 표면화) 속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우리 시대 정치의 위기상황을 진단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후쿠야마는 이런 위기의 근원에 존엄에 대한 요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중심으로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3. 내용: 이 책은 크게 1) 정체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접근, 2) 근대화 이후의 정체성 문제, 그리고 3)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선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존엄에 대한 정치철학을 개관한다. 먼저 투모스란, 플라톤의 『국가』에서 인간 혼의 한 부분으로 규정된 것으로 격정, 기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존엄에 대한 열망의 근원이며 인간은 투모스적 주체이다. 인정, 존엄에 대한 요구는 루터, 칸트, 루소, 헤겔 등의 저작에서 이미 언급되어있으며 이것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행위 심층에 있는 인정에 대한 열망을 끌어낸다. 이후에 책은 이러한 근원적인 욕망이 근대화(사회의 급변)를 거치며 어떻게 문제로 발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전통에서 근대로의 사회적 변화와 근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개인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고, 개인의 정체성은 민족이나 종교에 기탁되는 식으로 발현되었다.

4. 핵심: 20세기 후반, 21세기 들어 우파에서는 민족주의, 종교가 중심이 되고,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혁을 바랄 수 없게 된 좌파에서는 계급정치가 쇠락하고 소수집단의 정치화가 중심 과제/전략이 되었다. 이른바 정체성 정치, 즉 젠더·종교·인종 등의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정치 운동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이자, 정치/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후쿠야마는 이질적인 집단과 정체성을 동화시킬 수 있는 ‘국민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정체성을 통합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체성’은 분열의 도구인 동시에 통합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5. 나가며: 일단 이 책은 ‘인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층위는 다르겠지만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과 비교하거나,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필로소픽에서 꾸준히 출간 중인)의 책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체성 정치의 문제는 한국에서도 언젠가 쟁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출생률 저하로 노동력 수입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인데, 현재의 조선족·중국인·동남아인 등에 대한 인식을 보면 이것이 쟁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후쿠야마를 잘 모르기에 조심스럽지만, 이 책은 아마도 미국의 정치 위기 속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리버럴(자유주의자)의 한 응답일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이 진보에서 보면 보수적일 것이고, 보수에서 보면 그 반대일 것인데, 해결책을 제외하더라도 21세기의 정치적 변동을 다룬 분석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다. 나는 아직 어떤 입장을 가질 만큼의 공부는 안 된 상태이다.


서론


1.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 ~ 430)는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해당하는 알제리 지역에서 태어난 로마의 변방 사람이었다. 이때의 로마는 강성한 제국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국방에 대한 대비가 철저했다. 그리고 로만 카톨릭 교회도 로마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는 구체적 교세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집안은 가난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로마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파트리키우스(Patricius)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버지는 교육에 가난을 타파할 가능성으로 교육에 힘을 썼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대학에 보내기까지 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도 재능을 인정받아 북아프리카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본토에서도 수사학을 가르칠 만큼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Monica)는 그의 생애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인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신실한 신앙 안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한 이후에 절실한 어머니의 기도가 자기가 변화하게 된 가장 강력한 원동력으로 회고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나이에 철학에 심취하게 되고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신앙과 멀어졌다. 18살에는 어떤 여자와 동거하여 ‘아데오다투스’라는 사생아를 낳기까지 한다. 그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이 바뀐 것은 성 암르보시오 주교를 만난 일 때문이었다.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도원의 절제된 삶에 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자택정원을 거닐며 고민하고 있던 순간, 어디선가 “집어서 읽어라”라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고 집에 들어와 읽은 책이 신약성서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고 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개역개정판)” 이 성서구절에 방탕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회개하며 결국 개종을 결심한다. 암브로시오 주교 밑에서 교리를 배우고 세계를 받았다고 한다.


본론


2. 아우구스티누스 정치사상 요약


아우구스티누스는 18세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진리에 대한 열정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키케로의 사상이 그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니교에 심취했다. 마니교는 여러 종교가 섞인 복합적 종교 성격을 지닌 종교였다. 이런 성격에 따라 당연히 그 당시에는 이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마니교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종 이후에는 철저한 배척의 대상이 된다. 또한 당시 로마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젖은 회의주의가 대세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지적 상황속에서 플라톤주의로 상황을 타파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저서 신국론에는 곳곳에 플라톤 철학이 모든 철학자들의 관점보다 우위에 있음을 피력한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 철학에 대한 애정은 철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윤리학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철학을 지적도구로 삼아 자신의 신학을 전개시켜 나간다. 회의주의자들 틈바구니에서 절대적인 진리인 신을 설파해야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이데아는 절대 불변한 고정적 가치의 것이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효과적인 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의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인식론을 전파했다. 당시 외부의 경험세계에서 인식을 시작하던 회의주의자들과는 달리 그는 내면의 영혼에서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이성을 통해 확증했다. 또한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육체와 영혼의 이원적 관계에서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플라톤을 지적도구로 삼은 그였지만 그래도 신학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주의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플라톤은 왜 절대적인 신을 인식했음에도 그를 경배하지 않았는가?’, ‘플라톤은 신과의 매개로 정령을 채택하고 정령제사를 주장했지만,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라고 말하며 플라톤과의 차별성을 언급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과 사람의 왕국을 제시하며 이원적인 분석틀로 정치철학을 전개해나간다. 그에게 있어 신의 나라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따라는 나라이다. 이에 반해 지상의 사람의 왕국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얼룩져 있는 나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적 권위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악한본성을 지녔고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를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서술한다. 신을 믿는 선한 사람에게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의외로 현실주의적 정치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 그리스도교의 가치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그가 말하는 신의 도성에 속한 사람들은 인간의 도성의 사람들도 돌볼 의무가 있으며 사랑의 의무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국가 구성원의 기본소양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답게 그는 역사는 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는 신의 구속사(救贖史)이다. 또한 역사는 신의 주권이 미친 신의 가공물이라고 표현한다. 신은 역사를 통해 신의 나라의 도래를 경고하고, 그 영광과 권위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최후목표가 신의 나라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3.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및 의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카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하고 존경을 받는 신학자이다. 그는 신학을 정립하여 그리스도교 기본 신앙에 기틀을 세웠다. 당시 로만 카톨릭은 교리 확립에 대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 확립에 기여함으로써 수많은 이단들이 판별되고 일정한 통일성을 갖춘 종교로 거듭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적 기반이 된다. 특히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마르틴 루터의 경우 독일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의 수사 신부였다. 또한 개신교 신앙의 많은 기초를 제공한 장 칼뱅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 칼뱅은 성속의 구분을 없애고 일원론적 신학을 전개해 나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면의 정신에서 진리를 찾는 새로운 인식론을 제시했다. 이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으로 표현되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에서 계승된다.


결론


4.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현대적 의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혼돈의 시대에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고 기존 정치철학자들은 제시하지 않았던 ‘사랑’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현대를 사상적 기조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로 본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던 근대적 낙관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인류에 유토피아를 선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그런 근대적 낙관주의는 세계대전의 결과로 몰아갔다. 이런 모더니즘에 반하여 생겨난 것이 이성이 아닌 감성의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진리는 물론이고 절대적인 기준과 같은 객관성도 지양하는 사조이다. 이런 사상의 흐름 때문에 현대의 사회는 통일성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고 어느 정도 혼란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대입해 볼 때, 현대사회는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타당한 가치규범을 제시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또한 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이다. 따라서 각 개인들은 서로에 더욱 협력적으로 생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보통 현대사회 문제들은 원자화된 개인들의 문제에서 점철된다. 종래의 공동체적 가치들이 극단적 개인주의로 치닫는 현실들을 신문이나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랑’으로 시민의 윤리적 의무를 제시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유의미하게 다가올 수 있고 현실을 극복하고 더욱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성 아우구스티누스 저/ 김기찬 역, 2000, “고백록”,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아우구스티누스 저/성염 역, 2004, “신국론”, 분도출판사


2015.여름


서론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BC 322)는 그리스 북쪽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뮌타스 2세의 친구이자 주치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도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17세의 나이로 아테네에 가서 플라톤이 운영하던 유명한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다. 그는 아카데메이아에서 학생 겸 교수로서 20년 동안 머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유명을 달리하자 아카데메이아를 떠난다. 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임 원장으로 선출되지 않은 것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카데메이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아시아로 건너가 토로아스 지방 앗소스에 정착한다. 그 후 자연과학을 연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필립포스 2세의 아들의 스승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레산드로스가 동방세계를 정복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우던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스에 체류할 때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지리적 여건을 잘 이용하여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323년 원정에서 귀국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리스의 혼란기가 시작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 팽배해진 반(反)마케도니아 기운을 알아차린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방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아닌 에우보이아 섬의 칼키스로 떠나가 62세로 삶을 마친다.


본론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사상 요약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 플라톤의 정치사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철학적 지혜’와 다른 실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톤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주의주의(voluntarism)적 철학을 덧붙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함께 이상을 실현할 실천적 요소를 함께 고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와는 다르게 이론만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체제에의 여러 종류와 그 변형과 발생 과정과 전개 붕괴와 원인이나 보존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한 이해를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톤 철학이 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한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설득의 3가지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이성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핵심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감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구성되는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며 정치학의 개연성에 대해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지 않거나 전문성성이 없어도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정치학을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우연의 학문으로 간주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관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시대에 앞선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으로의 개인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좋은 개인이 곧 좋은 시민, 좋은 통치자라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란 실천적 지혜인 ‘중용의 덕’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적 성품이 좋은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통치자의 탁월함도, 개인의 탁월함도 모두 중용이라는 도덕적 성품에서 나오고 통치자는 과부족의 양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으로서 올바른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켰던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가들의 생각들과는 상이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3가지의 정체인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politeia)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들이 왜곡된 왕정의 왜곡된 참주정, 귀족정이 왜곡된 과두정, 혼합정체가 왜곡된 민주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최선의 정체를 찾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세 가지 올바른 정체 가운데 신적 권위를 가진 정체가 왜곡된 것이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왕정이 왕의 탁월함에 근거하여 통치되지 않는다면 참주제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정체가 좋은 정체일 때 최악인 것은 민주정체이고 모든 정체가 나쁜 정체일 때 최선인 것은 민주정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계승한 것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다.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중산계급(middleclass)에 결정권이 있는 정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간계급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층이 강하면 극단적 민주정체나 극단적 과두정체가 참주정제로 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 고리대금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서술이 있다. 고리대금업은 노동이나 생산이 아닌 불로소득에 해당한다고 파악한 것 같다.


monarchy, aristocracy, polity, tyranny, oligarchy, and democracy


3.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및 의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술한 내용들은 후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여러 방면에 두루 두각을 나타내며 제네럴리스트(generalist)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치학이나 윤리학, 시학, 수사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 인문·철학적인 학문체계를 성립함과 동시에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등 자연과학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저술들은 기원후 800년경부터 처음에 중동지역에서 그 다음으로는 스페인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로 유입되었다. 당시 유럽 사상의 전반은 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사상 중에 주목할 것은 스콜라 철학이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신학과 혼합되어 스콜라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 사상에 새로운 영향을 미칠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유럽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3세기 말에는 그리스어가 직적 번역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류사상으로 진입한다.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도 그의 서적 수사학, 시학,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논리학 등의 저술들은 흔히‘고전(古典)’이라 일컬어지며 지금도 가치 있게 읽히고 있다. 이에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정치철학에서 간접적인 영향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이상적 사회를 탐구했던 헤겔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덧붙여 칼 마르크스에게도 사회는 개인에 우선하는 하나의 실체라는 확신을 품게 해주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결론


4.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현대적 의의


2015년 파리경제대 교수인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 경제라는 상황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노동이 자본을 얻는 것보다 자본이 자본을 얻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글로벌 부유세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벨경제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도 2013년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을 쓰며 사회적 불평등의 현상은 사회에 균열구조를 심화하고 파괴적 심리를 낳아 사회에 결국 악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다. 이렇듯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불평등과 양극화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노동자 중 절반 이상을 상회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 대비 50%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다. 절대빈곤층이 5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5100만 명이라고 생각할 때 국민의 약 10%의 절대빈곤층이라는 것은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통계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사회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계층이 없는 것은 극단적 정치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중산층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물론 65%정도의 수치로 안정된 편이다. 하지만 감소추세에 있다. 이런 사항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분석으로 생각해서 경제·사회적 안전망 구축이나 중산층 재건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천병희, 2009, “정치학 - 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숲

아리스토텔레스 저/이창우·김재홍·강상진 공역, 2006,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북스


2015.여름


서론


1. 키케로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키케로(BC 106 ~ BC43)는 로마 남부 아르피눔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동명의 아버지 키케로 기사 계급과 평민 계급 사이에 해당하는 사업가였고 어머니 헬비아는 귀족출신이었다고 한다. 키케로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 덕분에 키케로는 좋은 교육을 받으며 그의 재능을 일궈나갔다. 그러던 중 키케로는 내란을 피해온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인 필론을 만나고 거기에서 비판적인 사유를 배우고 평생에 걸쳐 적용시켜나갔다고 한다. 키케로는 당시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키케로는 로마 역사의 전환점에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 로마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공포정치로 인해 공화정 체제에 도전을 받았다.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반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두각을 나타내며 집정관에 채택되고 후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장악하고 제정을 수립한다. 당시의 이런 변동성이 높은 정치상황이 키케로가 공화정의 이상을 표명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키케로는 무명 변호사로 시작하여 그리스에서의 배운 지식을 통해 유명한 변호사로 자리매김한다. 이후에는 공직이 진출하고 현실정치에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키케로는 결국 집정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것은 평민 출신인 키케로의 상황을 볼 때 굉장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론


2. 키케로 정치사상 요약


키케로의 사상의 백미(白眉)는 아마도 자연법 사상일 것이다. 당시 범신론적 세계관에서 신의 섭리를 주장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영향을 받는다. 스토아 학파는 보편적 이성이 자연(自然)이라고 하며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말했다. 키케로는 자연법에 대해 법은 정의와 부정의의 구별이며 만물의 원초적 상태, 자연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기준에 따라 악에는 벌을 주고 선을 지키는 인정법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키케로는 자연법을 철학적인 사유가 아닌 제도적으로 발현시킨 최초의 정치사상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법은 이성적 인간에 보편타당한 법률이다. 올바른 이성을 가진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에 반해 자연법을 기반으로 여러 사회에 적용시킨 인정법은 시대와 지역의 제약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연법은 세계국가의 법의 가능성을 지니고 세계시민으로 살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사해동포주의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읽을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 국가에서의 정치조직에 초점을 맞춘 데에 비해 키케로는 정치학의 외연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지위를 높였다. 키케로는 정치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정치가는 가장 높은 칭찬을 받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가들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인 관습이나 법을 제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도덕률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델을 제시한다. 키케로에 있어서 이상적인 정치가는 윤리적인 판단 능력은 물론이고 정직과 효용의 일치 그리고 신중함까지 갖추어진 지도자를 말한다. 이것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둘 간의 조화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자연법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지지했다. 일단 키케로는 ‘공화’의 개념을 공공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자연법 사상에서 당연하게 파생되는 개념이다. 키케로는 공화주의의 본질은 상호성에 있다고 봤다. 이런 까닭에 합의와 공유된 이익에 의해 협력되는 것이 공화정의 특징적 성격이다. 그리고 공화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지탱된다. 키케로는 시민의 자유가 어느 누구의 지배에도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의적인 지배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연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개인적인 욕망을 용인하면서 공공선에 대한 추구 또한 강조한다. 이것은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의미한다.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어떤 형태의 국가가 최선의 상태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키케로는 순수한 형태인 왕정, 귀족정, 민주정 제시하면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이런 정치형태를 말하면서 정치의 우연성을 부각시킨다. 시작은 왕정이다. 왕정 국가는 참주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런 참주정은 귀족이나 인민에 의해 타도된다. 따라서 이후의 정치 체제는 귀족정이나 민주정이 된다. 이렇게 정립된 민주정은 폭민정치나 우민정치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는데 반해 키케로는 우민정치가 왕정이나 귀족정에서 직접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폴리비오스의 순환론을 수정한 것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에 있어서 논리로만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정치학의 내재적 불안성에 주목했다. 키케로는 민주정을 가장 불안한 형태의 정치체제로 간주했다. 민주정의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는 동등해진다. 그러므로 권위에 의한 복종이 어렵다고 보았다. 이런 상태는 쉽게 폭민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귀족정에서는 인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과두적인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왕정은 이성이 정신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듯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관대한 군주라도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면 인민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단점도 제시한다.


결론


4. 키케로 사상과 현대적 의의


키케로의 대표적인 사상은 자연법 사상과 공화주의 사상이다. 일단 자연법 사상은 중세의 기독교 사상과 더불어 인권개념에 대한 진보의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민법 성격의 자연법을 제시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공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연법 사상은 세계 시민주의를 표방했다. 이것은 세계화가 거부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megatrends)인 현 시대에 다시 재고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다문화에 대한 톨레랑스(tolerance)가 부족한 문제들이 자주 지적되고는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케로가 제시하는 자연법 사상은 현대에도 유의미하며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으로 더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공화주의 사상은 현대사회에도 모범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추구는 자칫 님비(NIMBY)나 핌피(PIMPY)로 점철되는 집단 이기주의 또는 이기적 개인들로 인해 악덕으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키케로는 공공의 안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갈등조정이나 사회적 합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김창성, 2007, “국가론”, 한길사

곽준혁, 2007, “키케로의 공화주의” 『정치사상연구』, 한국정치사상학회


2015.여름


서론


1. 플라톤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고대 그리스 여러 작은 도시국가, 폴리스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페르시아 전쟁(BC 492~BC 448)에서 주도권을 쟁취한 것은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였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이었고 이 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함으로써 아테네는 그리스 전역의 맹주로 발돋움되었다. 아테네는 국가적 지위가 올라간 만큼 국민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때에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8~429)라는 지도자가 나타났다. 페리클레스는 종래의 귀족정치를 대신하여서 민주정치를 시작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왕성해졌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권력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런 까닭으로 당시 아테네는 웅변과 수사학이 유행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언변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주요한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소피스트(Sophist)들이다. 이들은 정치지도자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웅변과 수사(Rhetoric)를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리성이 내포된 주장에 초점을 두었기보다는 당장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 것으로 파악되곤 한다. 이런 소피스트들은 민주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들은 철학의 대상을 인간중심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에 의의를 가진다. 또한 이들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명제로 대표되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아테네의 번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바로 펠레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 때문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그리스가 동맹 시(市)들을 이끌고 치른 전쟁이다. 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고 이것은 그리스 쇠퇴의 원인이 된다. 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시대적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플라톤(BC 428~347)이다. 플라톤은 민주주의 체제의 아테네의 전성기가 아닌 쇠락기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민주정치의 혼란기를 경험한 사람이다. 또한 특히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했던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게 한 민주주의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은 역사적인 상황 가운데 이러한 기존정치의 혼란과 실패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20살 때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큰 영향을 받는다. 플라톤은 본래 정치가를 희망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제에 대한 회의로 포기하게 된다. 결국 철학자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 BC 387에는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설립한다. 그 이후 시칠리아에서 현실정치에 도전하는 듯 했지만 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종료된다. 그 후 플라톤은 사망할 때까지 아카데메이아에서 강의와 저술에 전념하며 살았다.


본론


2. 플라톤 정치사상 요약


플라톤 정치사상에 들어가기 앞서 그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겠다. 우선 플라톤의 인간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플라톤에 철학에 있어 덕은 탁월성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존재가 다른 존재에 비해 탁월한 점이 ‘이성’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런 플라톤의 관점은 대화편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육체는 어두운 동굴에 사슬에 묶인 상태에 비유된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동굴 밖 세상이 아닌 동굴 안에 비춰진 그림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동굴 밖에는 생존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러나 사슬에 묶인 육체는 그 존재들이 동굴의 벽에 투영하는 그림자들 밖에 볼 수 없으며 여기서 얻어진 지식은 이러한 이유로 참된 사유로 볼 수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동굴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사람들이 일부 그 사슬을 끊고 자유롭게 되어서 동굴 밖의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태양이 비추는 진정한 세계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밝은 지식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태양이 비추는 동굴 밖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 다시 말해 이데아의 세계이다. 그 이데아 중에서는 가장 높은 이데아는 태양에 비유되는 선의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이성주의, 이상주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전개시켜나간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은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플라톤은 영혼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혼불멸설과 상기설을 주장한다. 인간은 전생에 영혼으로 존재하며 그 영혼은 참된 관념들을 소유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는 순간 참된 지식은 망각된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의 인간은 살아가면서 사물들을 관찰하고 지식을 쌓으며 망각했던 참된 지식을 상기시킨다.

플라톤은 영혼 3분설을 주장한다. 이것은 즉 각 개인의 영혼은 이성, 기개, 욕망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이야기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성은 헤아리는 능력이다. 이것은 이성적 분별이나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합리적인 덕목이다. 기개는 갈등하는 능력이고 즉각적으로 반응되며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모두 내포한다. 또한 욕망은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이고 욕구는 충족시키는 것이며 비합리적인 적이다. 플라톤은 지적 수련을 통해 이성, 기개, 욕망을 각각 지혜, 용기, 절제의 덕으로 발현할 것을 주장한다. 이 주장은 국가철학에 적용된다.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또는 장인)의 세 신분이 있다. 플라톤은 이 세 신분이 각자 자기 역할을 하고 다른 신분을 침해하지 않을 때 국가는 가장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기능주의(functionalism) 관점의 효시(嚆矢)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에 있어서 국가의 정의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는 정의의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개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면 국가는 저절로 자기의 기능을 다하는 국가, 정의로운 국가가 됨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서 세상의 정치체제를 5개로 구분한다. 최선자정체(aristokratia), 명예지상정체(timokratia), 과두정체(oligarchia), 민주정체(dēmokratia), 참주정제(tyrannis)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치체제 속에서도 최선자정제(aristocracy)를 최고의 정치체제로 주장한다. 여기에서는 최선자란 귀족을 의미하고 플라톤에게 최선자는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다. 플라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라를 구성하는 계층을 세 개로 분화했다. 통치자 계층은 머리의, 수호자 계층은 가슴의, 생산자 계층은 배의 덕을 잘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3주덕과 연관성이 있고 이 3개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정의라는 덕목이 실현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통치자는 개인의 미덕으로 지혜와 용기, 절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정의의 덕을 지녀야 한다. 국가이성으로는 지혜의 덕을 요구한다. 또한 수호자 계층은 국가의 보호와 질서를 필요로 한다. 용기의 덕을 지녀야한다. 또한 생산자(또한 장인) 계층은 절제의 미덕을 필요로 한다. 이 계층은 보통 대중에 해당되는데 이들에게는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켜 쾌락을 누리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다.

플라톤은 또한 철인(哲人) 정치를 주장했다. 여기서의 철인은 단순이 지혜로운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상을 초월해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자’를 뜻한다. 플라톤은 많은 저작들에서 주지주의적 사상을 표현한다고 한다. 이렇듯 통치자 또한 ‘정치’에 대해 아는 자만이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기 플라톤의 저작에서 철인왕은 보통 일방향적인 통치자이다. 이런 면에서 엘리트주의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기 저작에서는 정치가에서 법률로 넘어가며 피통치자에 대한 소통도 전제하고 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에 대해 논한 것들을 상당히 진보적인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의 평등한 교육권이나 공정한 인재선발 등 당시 시대적 상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플라톤은 또한 국가에서 공직자 윤리에 대한 부분을 지적한다. 플라톤에 있어 통치계급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적 교육도 금지될 뿐 아니라 공동양육은 주장하기도 하고 아내를 공유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배계층을 일종의 공산주의적(communism) 제도로 운영해 사적이익이 공적인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이것은 당시 시대적 정황으로 보았을 때 매우 급진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3. 플라톤의 영향 및 의의

플라톤은 상대적 진리관이 대세이던 시대에 절대적 진리를 제시했던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전해지는 자료들 모두 플라톤의 저서이므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이나 철학에서 유리(遊離)하여 생각할 수 없는 사상가이다. 소크라테스는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했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로 구체화했다. 플라톤이 민주정에 대한 염증을 느낀 것도 자신이 동경했던 스승 소크라테스를 사형으로 몰아넣은 사건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외에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론,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 등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플라톤은 아케데메이아에서 또 하나의 위대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쳤다. 그리고 후에 중세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전개하는 지적도구로서 플라톤 철학은 사용되었다. 또한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직·간접적으로 서구 철학 그중에서도 이성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화이트 헤드라는 철학자는 "전통적 유럽 철학의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정의는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그의 사상을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기능주의에 대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결론


4. 플라톤 사상과 현대적 의의


나는 플라톤 사상이 현대에 주는 의의를 크게 2가지로 생각해본다. 우선 민주주의에 대한 반론이다. 현대의 다수의 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의 가장 많이 채택된 정치체제인 것에 대해서 민주주의 자체에 일종의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사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최대의 실수는 아마도 나치를 선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민주정을 중우정이라고 비판했듯이 당시 다수의 바이마르 국민들은 나치당을 선택했고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의 반인류적인 사건을 일으킨 나치당의 선택에 기반이 되었다. 이렇듯 플라톤의 관점은 다수의 생각이 진리가 아님을 현대적으로 의의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플라톤은 공직자 윤리에 있어 엄격한 조건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사상은 현대의 통치자들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는 전문성과 연관성이 없는 보상식 인사 처리를 생각해보면 지식과 전문성 있는 통치자의 덕을 주장한 플라톤의 사상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공적 결정을 할 때에 사적이익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플라톤 철학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에 나오는 것처럼 사유재산 철폐나 공동양육 등의 아이디어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공적인 목적을 위해 사적이익을 배제하는 덕목은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국민적 환멸의 분위기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적용되어야 할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박동천, 2012,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모티브북

플라톤 저/이환 편역, 2010, “국가론 : 이상국가를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 돋을새김


2015.여름


군주론

- 정치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냉철한 분석


마키아벨리,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 때의 정치철학자로서, 그의 글들은 정치철학을 넘어서 경영학이나 처세술에서도 다루어진다. 그의 저서 중 백미(白尾)는 '군주론'이다. 이는 일찌감치 고전(古典)의 반열에 올랐으며 최고의 정치철학서 중 하나로 불린다. 어느 한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저서가 집필된 당시로부터 약 50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어디서나 읽히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론에서는 정치지도자의 지침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류이다. 내가 읽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동진 편역, 해누리 출판)은 크게 국가권력론과 정치지도자론, 국가 경영론, 국가보위론으로 나뉘어있다. 우선 국가권력론에서는 군주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야 통치가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중세 봉건사상이 지배하던 16세기의 평가로는 꽤나 파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중세는 보통 암흑의 1000년으로 불리는 기간이다. 이때는 거의 모든 정당성을 신(神)적 존재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권력기반은 인민의 지지에 둔다. 이런 사상은 사회계약론을 처음 주장한 토마스 홉스의 사상보다 이른 것으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저서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마키아벨리는 국가권력론에서 군주는 힘, 즉 일정의 실력을 가져야 통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후의 시대에 군주가 왕권을 신에게로 부여받는다는 왕권신수설 사상보다 진보적인 사상이다. 그리고 지역을 점령할 때에는 그 지역을 철저히 파괴해야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흔히 말하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종래의 정치학은 보통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反)도덕, 반(反)종교적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국가 권력은 근간을 법과 군대로 보는 데 이 또한 지도자의 즉각적 판단으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정치사상의 진보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정치지도자론에서는 정치지도자의 능력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특별히 이 장에서는 이상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현실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파멸을 자초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 정치 추구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의견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가혹해도 질서가 잡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법이나 제도 또한 인민에 대한 강력한 통치와 질서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맥락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여우는 함정을 알아채지만 늑대와의 싸움에서 지고 사자는 늑대와의 싸움을 이기지만 함정을 피할 꾀가 없다. 따라서 여우의 꾀와 사자의 힘을 지녀야한다.'를 이야기 한다. 이것은 이상사회와 현실적 노력을 촉구하고 지혜와 실력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의 균형적 시각을 시사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국가 경영론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근대적 주권개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키아벨리는 '가장 튼튼한 요새는 국민들의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국가권력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 권력과 주권의 기반을 국민의 지지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지도자는 실적위주로 사람을 판단하고 유능함으로 인재를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교권과 세속권이 서로 견제하며 권력을 다투었던 당시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중세는 성직자들이 종교의 장을 넘어서 생활 전반에 대해 관여했던 시기이다. 그래서 과학이나 정치 등 여타 다른 사회적 영역에서도 그 영향력이 강력했다. 이런 교권의 비전문적 영역에서의 월권행사를 비판한 것은 비교적 마키아벨리 이후의 일인데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영역과 전문성을 구분하는 데에 근대적 사고방식을 도입했다. 다음으로는 국가보위론이다. 국가보위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한 군사적 토대이다. 마키아벨리는 용병을 쓰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로마사평론에서도 주장하는 바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력이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거듭 주장한다. 그리고 평온할 때 위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가리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오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의 텍스트(Text)가 마키아벨리의 삶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컨텍스트(Context)로 읽히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 리가 살던 당시의 이탈리아는 강대국이었던 로마의 영광은 없이 분열왕국으로 주변나라의 침공을 받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체제도 시시때때로 바뀌고 여러 가지 사회적 정황도 유동적으로 변하던 때에 사회에 절망적으로 외치던 외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마키아벨리는 찬란한 문화를 과시하던 조국인 피렌체가 유린당하는 것을 보았고 많이 정치 지도자들이 몰락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에 반해 16세기 무렵 거의 탈중세의 통일왕국인 프랑스는 유럽에서 절대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조국에 부국강병에 대해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통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나 부도덕한 것쯤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비도덕적인 방법과 질서로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더 큰 안정을 위한 부도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군주론에서도 볼 수 있듯 그저 목적을 이루는 현실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상을 위해 현실에 더욱 집중하고 노력하자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의 본뜻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현재 우리나라에는 마키아벨리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초강대국이며 윤리적인 1등 국가였던 미국이 중국의 약진으로 인해 1등 국가의 지위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범국가이며 우리나라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겨주었던 일본정부는 지위의 혼란을 겪는 미국에 분쟁지역의 자위대 파견권을 얻게 된다. 특히 아베 총리는 미국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상하원 통합 연설을 하기도 하고 천왕이 아님에도 국빈급 대접을 받으며 미국에 입성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강제징용문제나, 강제로 동원된 성노예희생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핵무기, 중국의 위상 상승, 미국의 지위하락과 일본의 군사적 권리 강화 등의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나라의 행정부 각료들과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안정과 강함을 택했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교훈삼아 우리에게 당면(當面)한 국제적 위기를 하나되어 풀어나가야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2015.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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