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적 역사 연구의 진일보 <임진왜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제가 즐겨쓰진 않는 걸 아실 겁니다. 화제의 책, 김영진 선생님의 『임진왜란 – 2년 전쟁 12년 논쟁』입니다. 한국인에게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적인 침략, 선조의 무능, 이순신을 포함한 국군의 선전, 의병의 봉기 정도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순신”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7년 전쟁에서 직접적 교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2년여의 기간이었으며 이 시기에 있었던 한·중·일의 군사적 대결을 넘어 외교와 정책 등의 비군사적 대치는 12년 정도였기에 이를 고려해 임진왜란을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재해석합니다.

이 책이 흥미롭고, 또 제가 “압도적”이라고 한 이유는 저자가 ‘정치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정치학과에서 방법론 수업을 들을 때 학위 논문 이야기를 하시면서 교수님은 이순신을 외교적으로 분석하려던 지도학생이 있었는데, 이순신으로 논문으로 쓰려면 당장 당시 조선의 1차 자료뿐 아니라 일본의 이순신 자료까지 읽어야 해서 그 주제로는 논문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게다가 16~17세기 자료는 근대 이후의 언어와는 차이가 있기도 하죠.

아무튼 사학자가 이 주제를 다룬다면 사료 분석 능력은 탁월하겠지만 사회과학만큼의 이론적 틀이나 해석이 범위는 비교적으로 제한될 것이고, 반대로 사회과학자가 다룬다면 이론적 틀, 해석의 범위는 비교적 풍부하겠지만 사료 분석 능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텐데, 김영진 선생님은 그 어려운 걸 해내신 겁니다. 그것도 참고문헌까지 1,000쪽 분량으로 묵직하고 성실하게요. 임진왜란은 한중일이 전면전을 벌인 유일한 사례이지만 한국, 중국, 일본의 원사료를 사용한 통사가 출판된 건 세계적으로 최초라고 합니다.

현재는 언제나 뜨거운 무엇입니다. 앞서 지적했듯, 기존까지의 임진왜란 연구는 각 나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중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한국도 마찬가지였죠. 한편으로 타국의 연구는 패권주의인 시각에 긴박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진 선생님께서는 자국 중심주의, 패권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 국수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닌 입장에서 균형 잡힌 임진왜란 12년의 통사를 재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임진왜란을 한국의 측면에서, 군사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전쟁의 신, 이순신이 남겠지만, 시각을 넓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비군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순신은 상대화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아닌, 조선이라는 전장에서의 명과 일본의 전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교적 측면에서 조선의 왕은 명의 차관급인 송응창같은 지위였고, 당연히 왕 이하의 모든 신하는 송응창의 부하였지, 대등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외교적 선택에 있어 명나라에 모든 걸 위임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선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한층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군사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이순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명 조정 역시 이순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순신의 승리가 국제관계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승리로 인해 명나라는 자국의 해상 방어가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이를 통해 조선에 원활한 원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책은 군사적 요소 역시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해석합니다.

저는 국제관계사 측면에서 역사를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순신으로 표상되던 임진왜란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해줍니다. 이런 사고의 전환 속에서 인식의 운신이 넓어지고, 사유의 폭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 알았던 것을 극복하는 건 어떨 때는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6세기 역사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대국의 세력 균형 사이에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관심 있는 분께 정말 추천하는 책입니다.

내일이면 5·18 광주 민주항쟁 기념일입니다. <5월 18일, 광주>의 저자 김영택 선생님은 5·18 광주 민중항쟁을 “신군부라는 마피아적 정치군인집단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광주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벌인 살인극에서 빚어진 것이고, 이에 가만히 앉아서만 당할 수 없는 광주시민들이 생과 사를 초월해 저항한 투쟁”으로 정의합니다. 저는 5·18 광주 민주항쟁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천안문 6·4 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열기가 이어지지 못했던 중국과 다르게 한국은 이 사건을 끊임없이 재전유함으로써 민주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이제 5·18 광주 민주항쟁은 다행히도 민주화 역사의 ‘정통’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겠죠. 5·18 광주 민주항쟁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

1. <5월 18일, 광주>, 김영택, 역사공간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항쟁을 주제로 최초의 박사 학위를 받은 김영택 선생님이 쓰신 책입니다. 5월 광주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이 담긴 책으로, 저자는 광주항쟁 당시 기자로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책은 당시에 있었던 일을 분 단위까지 기록하며 세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광주항쟁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고 봅니다.

2.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창비

광주항쟁의 기록인 이 책은 원래 금서였습니다. 이른바 <넘어 넘어>라고 불리던 이 책이 2017년 수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기록을 검증하고,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이 책은 광주항쟁 당사자들의 기록입니다. 광주항쟁에 관해 단 한 권의 책만 추천한다면 저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2권이 광주항쟁의 사실을 중심으로 쓰였다면, 나머지 책은 광주항쟁을 해석한 책이다.

3. <5·18 광주 커뮤니타스>, 강인철, 사람의무늬

이 책은 종교사회학자 강인철 선생님이 커뮤니타스, 리미널리티, 사회극이라는 개념으로 광주항쟁을 재해석하는 책입니다. <시민종교의 탄생>, <경합하는 시민종교> 등에서부터 이어지는 강인철 선생님의 시민종교 시리즈에 있는 책입니다. 광주항쟁 연구의 성과를 종합하면서도 또 커뮤니타스, 리미널리티, 사회극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광주항쟁을 인류학으로 또 감정사회학으로 재해석하는 수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광주항쟁의 해석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4,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오월의봄

이 책은 광주항쟁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입니다. 광주항쟁의 고전인 책이죠. 사실 별다른 수사가 필요 없는 광주항쟁에 관한 고전입니다. 광주를 사회과학적으로 재해석한 시초가 되는 책입니다. 더불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5. <철학의 헌정>, 김상봉, 도서출판 길

광주항쟁을 철학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김상봉 선생님 특유의 개념인 서로주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광주항쟁을 공동체로 재해석하는데, 이 역시 수작입니다.

 

한 권 덧붙이자면, <김군을 찾아서> 역시 중요한 저작이다.

북큐레이션 – 제주 4·3에 관한 책들

4월 3일은 제주에 역사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부터 시작됐고, 이승만 정권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에 걸쳐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살은 물론이고 살인, 강도, 강간 등 숱한 비극이 펼쳐집니다. 이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큰 학살 사건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사건이 주변화되어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사건이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제주 4·3 사건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저는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한 국가폭력으로 이 사건을 보고 해석합니다. 제주 4·3에 관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1.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이 책은 제주 4·3 입문서로 제가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허영선 선생님은 제주 4·3사건을 꾸준히 다루어 오신 분입니다. 구어체로 된 이 책은 제주 4·3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서 접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먼저 책은 제주 4·3의 전체적인 맥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것을 서술하고 있기에 제주 4·3 입문서로 가장 적합합니다.

2. 지슬, 오멸 원작, 김금숙 그림, 서해문집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가리킵니다. 이 지슬은 오멸 감독의 영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이 책은 4·3을 겪은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 4·3을 겪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 사건을 실화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고, 실제 우리는 ‘관광지’로 인식하는 장소가 학살의 장소였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마을 사람 120여 명이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해 바다에 버려지기도 하죠. 오멸 감독이 말하듯, 우리에게 낭만으로 다가오는 제주도의 한편에는 그런 그늘이 존재했던 겁니다.

3. 4·3과 제주역사, 박찬식, 각

이 책은 제가 구비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도서관 책으로 사진을 올립니다. 사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2008년 판이고,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201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도 고가라서 구비하지는 못했고, 살펴본 적만 있는데요 이 책은 제주 4·3에 관한 책 중 가장 학술적이고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제주 4·3을 잘 모르기에 제한된 경험 안에서 드리는 의견이란 걸 말씀드립니다. 제주 4·3에 관한 정치한 학술서를 보고 싶은 분께서는 이 책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4.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제주4·3연구소, 각

이 책은 제주4·3연구소에서 기록한 제주 4·3과 여성의 일상을 다룬 구술 채록집입니다. 구술사 연구로 구술을 통해 새로운 사회과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책은 아니고요, 단순히 그 시간을 겪었던 1920~30년대생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4·3 이전과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도 그랬듯, 제주 4·3을 단순히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기에는 그 안에는 수많은 개인의 일상이 존재합니다. 국가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비극적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기에 좋습니다. 이 시리즈로 올해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은 신간 소개 때 다루겠습니다.

1. 핵심: 이 책, <한국 근현대사 강의>는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한국 근현대사 강의의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집필된 책으로, 19세기 조선부터 21세기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망라하여 다루는 책이며,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2. 저자: 이 책은 한국근현대사학회의 공저로 집필되었다. 한국근현대사학회는 93년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창립한 단체로 이 책에는 총 26명의 저자가 참여했다. 이 저자의 약력을 모두 따질 수 없겠지만, 이들은 이제 학계 중진에 있는 학자들인 듯하다. 학계 차원에서 각자가 각자의 영역을 맡아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근현대사를 서술했기에,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근현대사학회는 이 책과 <새로 쓴 독립운동사 강의>를 같은 한울아카데미에서 출판한 바가 있다.

3. 특징: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 근현대사 통사를 다루고 있는, 교과서로서 일정한 서사를 가진 책으로 보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책의 차별점을 밝히는 게 책을 소개하는데 효과적일 것 같다.

1) 통사: 이 책의 첫 특징은 한국 근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데에 있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 약 100년간의 역사 속에서는 무한한 이야기와 저서가 생산될 수 있다. 박정희 시기만 해도 그와 관련한 무수한 해석과 역사책이 나올 수 있다. 그만큼 ‘한국 근현대사’라는 주제는 광범한 것인데,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통사를 다룸으로써, 이 주제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대상 독자: 책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대학교재로 집필된 것이다. 그래서 책의 대상 독자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을 상정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고, 또 여러 검증을 받았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은 일반인 독자도 대상 독자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이 읽기에도 적합한 책이고, 개론서로서 큰 진입장벽이 없는 책이다.

3) 더 읽을거리: 각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책에서는 이 주제에 관해 더 읽을 만한 자료나 도서를 추천해주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각 부분에서 다루는 내용 자체도 괜찮은 편인데 각 분야의 저자가 이렇게 더 읽을 자료까지 제시하기 때문에 관심사를 확장하기 용이하고, 책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맥락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민족 중심 서술: 이 책은 ‘민족’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의 단독 저술을 살펴보면 특히 독립운동사를 연구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런 영향이 미쳤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한국 근현대사 중에서도 민족이 중심이 되어 발생한 사건에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편향적인 서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책은 민족 중심으로 서술되었되, 다른 관점을 언급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또 더 읽을거리에는 집필자와 관점이 다른 책도 소개되고 있다.

5) 아쉬움: 이 책은 초판이 97년에 나왔고, 이후 개정을 거듭하여 현재 내가 보고 있는 2013년 판에 이르렀다. 이런 까닭에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는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연구가 반영되어있다. 물론 201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 이 책의 목적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을 느끼긴 했다.

4. 감상: 계정을 운영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책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를 통사로 다룬 몇몇 책이 있지만, 그런 책은 보통 학계 원로에 의해 작성되어서 물론 훌륭하지만 몇몇 아쉬움이 존재해서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소개하는 책을 추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는데, 앞으로는 이 책을 소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이 책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전모를 일정 수준 파악하는 데에는 굉장히 유용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1. 이 책,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은 당시 제주도 사람의 삶을 뒤흔든 4‧3사건을 중심으로, 그때 당시의 경험과 그 이전과 이후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또 그 이후의 삶의 궤적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책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은 4‧3, 그리고 여성인데요, 이 책은 사회의 격변기에 경험된 여성의 삶,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4‧3, 그리고 이후를 겪은 여성의 삶이 제주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관통하기에 이를 대상으로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4‧3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일상’입니다.

2. 인터뷰어: 이 책은 제주4‧3연구소가 편집을 했습니다. 8명의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6명의 인터뷰어가 구술채록‧정리했고, 이들은 허영선(제주4‧3연구소장), 양성자(제주4‧3연구소 이사), 이규배(제주4‧3연구소 이사장), 김창후(전 제주4‧3연구소장), 허호준(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 연구원)이고, 이들은 보통 인문사회영역을 전공하고, 이런 인터뷰작업의 훈련을 이미 받을 분들입니다.

3. 인터뷰이와 내용: 이 구술채록집에는 8명의 구술이 담겨있습니다. 이분들은 1922-1938년 생으로 4‧3이 발생한 1948년을 기준으로 11-27세였습니다. 책은 이들의 ‘일상’과 ‘삶의 궤적’을 중심으로 다루지만, 이들은 모두 4‧3의 유족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분들입니다. 책에서도 말하듯, 당시 여성의 삶은 신산했습니다. 이들은 비참한 기억을 가지고도, 생존자로서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경제활동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앞서 소개한 허영선 선생님의 <제주4‧3을 묻는 너에게>가 큰 틀에서 사건을 조망한다면, 이 책은 그 사회의 비극 속에 있던 개인은 어떤 삶을 겪었고 또 “살아졌는지”를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4. 감상: 거대한 사건은 한두 마디로 규정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런 거대한 문제 속에 지워지는 개인의 삶을 보존하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인터뷰를 읽으며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일상의 모습을 알 수도 있었습니다. 과거의 오늘이었습니다. 이런 기록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기억되어 여전히 진행 중인 4‧3의 진실에 다가가는 데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할 말이 많지 않아, 찍어둔 본문을 공유해봅니다.

덧붙여, 4‧3에 관한 이전의 다른 구술자료는 도서출판 선인, 한울아카데미를 통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또 이 도서가 나온 <각> 출판사는 제주도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주제로 대체불가한 출판 작업을 하고 있는데 꾸준히 눈여겨 볼 출판사 같습니다.

올해, 제주 4‧3에 관한 책소개는 마치겠습니다. 이 책들 외에도 좋은 자료가 많고, 청소년이나 쉬운 입문서로는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는 고진숙, 이해정(그림)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 그리고 제가 소개한 것보다는 더 학술적인 박찬식 선생님의 <4‧3과 제주역사>, 양정심 선생님의 <제주 4‧3항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꼭 보고 싶었지만, 여건상 구매하거나 읽지 못했고, 가능하면 다음에 소개해보겠습니다.

 

제주43사건 제주43 43사건

1. 핵심: 이 책, <지슬>은 동명의 원작 영화 <지슬>을 수묵화로 그려낸 그래픽노블입니다. 책은 제주 북서부 중간산에 위치한 ‘큰 넓궤’라는 동굴에 학살을 피해 대피한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쳐내며, 그 과정에서 파생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방언으로, 이는 학살을 피해 은둔한 사람들의 식량이기도 했습니다.

2. 저자: 책은 영화를 만화화했고, 원작은 오멸 감독입니다. 오멸 감독은 제주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여러 독립영화를 연출했고, 다양한 수상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이십니다. 그리고 이를 만화화한 김금숙 작가님은 역사 만화를 주로 그려 오신 분으로 한국 근대사의 다양한 모습을 만화로 그려내고 이를 영어‧프랑스어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3. 내용: 앞서 말씀드렸듯, 이 책은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동굴에 숨어든 마을 사람과 토벌대를 중심으로 서사를 진행합니다. 이 책이 가진 특징은 다양한 인물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독하게 악독한 토벌대 상사나 무고한 피해자 같은 캐릭터가 나오지만, 책은 수평적이고 단순한 인물보다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했던 마을 사람, 그리고 토벌대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군인, 도피처를 밀고하는 마을사람 등 제주 4‧3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 있는 개인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게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4. 감상: 실제로 이 마을 사람들, 120여 명은 학살을 피해 도망치다가 토벌대에 잡혀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한 뒤 바다에 버려집니다. 원작자인 오멸 감독은 평온한 듯 느껴졌던 한라산에서 매서움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제는 관광과 낭만의 장소가 된 제주는 불과 70년 전에는 전혀 다른 장소였을 겁니다.

제주 4.3사건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는 단선적이지 않은 굉장히 복잡한 사건들과 해석들이 얽혀있습니다. 저는 이 속에서 존재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읽는 것도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에 관한 고민 속에서 인류사의 한 비극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43사건 제주43 43사건

1. 들어가며: 4월입니다. 4월 3일은 제주에 역사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부터 시작됐고, 이승만 정권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에 걸쳐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살인, 강도, 강간 등 숱한 비극이 펼쳐집니다. 이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큰 학살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주변화되어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2. 핵심: 이 책,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는 이런 제주 4‧3사건의 전체적인 윤곽과 내용을 다룬 입문서로, 구어체로 평이하게 쓰였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하고, 역사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절하게 사건과 연관된 역사의 배경을 보충 설명해줌으로써 입문자가 읽기에 굉장히 적합한 책인 것 같습니다.

3. 저자: 책의 저자 허영선 선생님은 시인이시고, 제주 출생으로,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제주4‧3평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셨고 현재는 제주4‧3연구소 소장으로 계십니다. 또 4‧3사건 당시의 아동학살 문제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으시기도 하셨어요. 여러 방면에서 제주 4‧3이라는 외면된 역사를 시와 연구물로써, 한편으로는 참여로써 현재화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4. 내용: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4월의 제주를 묻는 ‘너’를 청자로 호명하며 평이하면서도 군데군데 객관적인 화자라기보다는, 사건과 분리되지 않는 화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책은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9개의 장은 시간 순으로 서술되어있는데, 이 시간의 배열이 꼭 소설을 보는 것처럼 발단부터 결말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해방 후 제주에서 일어난 자치에 대한 열망부터, 4‧3이 남긴 비극과 그 후유증까지를 다루고 적재적소에 큰 틀에서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 놓였는지를 설명합니다. 또 구술증언으로 사건을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따로 분리해서 서술한 아동과 여성에 관한 서술입니다. 4‧3의 피해자의 1/10이 아동이었으며, 동시에 여성이 겪은 참상에 관해 다룰 때는 이런 사회적 비극이 약자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5. 감상: 부르디외가 이야기하듯, ‘현재’는 평온한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뜨겁고 논쟁적인 무엇’일 겁니다. 제주 4‧3은 오월의 광주가 무언가로 규정되고 호명되는 것과 달리 여전히 “제주 4‧3”으로 명명되는데 이는 그만큼 이를 규정하는 데에 아직은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방증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대추정치로 제주도 사람의 1/8이 목숨을 잃은, 이 비극 속에 누군가는 무언가를 열망했고, 누군가는 무고한 희생자였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역사의 비극은 가해자가 아닌 남겨진 자의 몫으로 남곤 합니다, 저자의 서술에서 은연 중에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대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입증의 책임은 언제나 피해자에게 전가되고, 피해자는 슬픔과 동시에 ‘빨갱이’와 함께 분류된 의미론의 공간에서 무죄함을 위해 분투해야합니다. 이런 것이 더 비극이고, 남겨진 자들의 끔찍한 지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비극을 견디고 “사난 살앗주(사니까 살았다)”하고 살았던 삶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논문에서 근대 사회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재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근대 한국의 파국적인 역사 속에서 관찰자는 엄밀하고 대상과 분리된 존재라기보다는 사회를 겪고 앓는 자(patient)라고 지적하면서. 저자이신, 또 이를 포함해 4‧3을 주제로 다루는 대부분의 관찰자들 역시 겪는 자인 듯합니다. 저자 허영선 선생님은 이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대상과 거리를 두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또 그럴 수밖에 책입니다.

감상이 조금 길었네요. 4‧3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추천해 드리는 책입니다.

 

제주43사건 제주43 43사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는 소실된 키케로의 해적의 우화가 나오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 잡혀 해적질에 대한 문책을 받은 해적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것은 폐하께서 전세계를 괴롭히시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단지 저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해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고 불리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1. 핵심: 원서의 제목, <제국을 숨기는 법>이 보여주는 것처럼 제국주의 미국의 위선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 정의와 자유의 상징,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자 세계의 경찰국가인 미국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모습을 감추며 은밀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동시에 식민지를 착취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는지를 ‘영토와 통치방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적으로 구성해나가는 책입니다.

2. 저자: 대니얼 임머바르는 노스웨스턴대의 역사학과 교수로 20세기 미국의 국제관계사가 주된 연구주제라고 합니다. 그는 미국역사학회,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는 뛰어난 학자이고, 이 책은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내용: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가진 이 책은 서론, 1·2부, 결론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서론과 결론은 분량은 미미하지만 책의 전체적 윤곽과 핵심을 파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니 이 부분을 잘 읽으시는 게 이 기나긴 책을 읽어나가는 좋은 방법일 겁니다. 우선 책의 1부 ‘식민지 제국’은 미국 건국 초기와 2차 세계대전까지의 미국의 식민정책을 보여줍니다. 인구증가로 인디언의 영역을 좁은 지역에 몰아넣고, 전쟁을 치르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다를 것 없이 공격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는 미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아마도 책의 핵심이자 백미는 2부 ‘점묘주의 제국’일 것입니다. 저자도 이야기하듯, 미국인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미국을 ‘제국’이 아니라 인식하는 이유를 이 부분에서 설명합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식민지를 거의 해방시키며 다른 제국주의와는 다른 모습은 보이지만, 이 이면에는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통치방식의 변화가 뒷받침되고 있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미국은 식민지 제국 시절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은밀하게 제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직접적으로 식민제국을 통치하기보다는, 영구 임대 형태로 전략기지를 구축하거나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적 표준들(단위, 기축통화, 영어 등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는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은 지구상에 약 800여개의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으며(미국을 제외한 국가의 국외 군사기지는 총합이 30여개) 여전히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닌 ‘미국령’ 영토를 가진 ‘점묘주의 제국’이 된 겁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미국이 제국을 은밀하게 숨길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4. 느낀 점: 미국을 생각하며 저는 종종 앞선 키케로의 우화를 떠올립니다. 마블의 히어로무비를 보면 은연중에 그들은 동유럽, 독일, 러시아 같은 나라를 부도덕하고 부정의하게 그리는 반면 미국은 세계의 파수꾼이자 자유와 정의의 상징으로 그려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미국의 민낯은 성범죄, 학살, 고문, 강제추방, 생체실험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저자는 결국 미국이 제국인지 모르는 제국이며, 그들의 본질은 서부를 개척하며 원주민을 쫓아냈던 초기의 역사와 같이 여전히 ‘제국’이라고 말합니다.

5·18 광주의 민중항쟁은 “신군부라는 마피아적 정치군인집단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광주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벌인 살인극에서 빚어진 것이고, 이에 가만히 앉아서만 당할 수 없는 광주시민들이 생과 사를 초월해 저항한 투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685쪽.

이 책의 저자, 김영택 선생님은 1980년 5월 18일, 취재기자로 광주에 가게 된 이후 끊임없이 5월의 광주 문제에 천착했다. 중요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자리에도 참여한 목격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순이 넘어 광주 5·18을 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석사·박사 과정에 진학해 연구했고, 이 책은 그 결실인 박사논문을 단행본에 맞게 출판한 책이다. 그리고 이 논문은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조동걸, 서중석 선생님, 한국정치 전문가인 정해구 선생님의 지도를 통해 탄생한 최초의 5·18 박사논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5·18 광주의 살육과 항쟁의 원인과 전개, 그리고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기 위한 것이며, 5·18의 학살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신군부(전두환 정권)가 정권을 확립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한 사건임을 논증한다. 이 책은 서론·결론과 함께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서론에서 저자는 책의 대략을 개괄하고, 기존의 성과를 종합하며 이 책에서 다룰 문제를 구체화한다. 이어지는 1장에서는 5·18이 발생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을 박정희부터 시작된 지역차별주의와 이승만부터 시작된 국가폭력의 맥락에서 조망한다. 이런 지역차별주의와 국가폭력의 정점에서 발생한 사건이 바로 5·19광주민중항쟁이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사건의 발발과 이에 대응한 광주시민의 ‘민중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민중화란 ‘선량한 시민’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불의에 항거하는 주체로의 변화를 가리킨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계엄군이 1차적으로 철수했던 시기부터, 다시 주둔하게 된 27일까지의 사건들을 기술하는데, 이중에서 “복면부대와 광주교도소 습격사건의 진실”을 다루는 장은 기존의 극우주의자의 왜곡을 반박하고 있다. 다음 4장은 ‘5·18 이후’를 다룬다. 여기에서는 사건 이후에 있었던 광주에 대한 의미규정과 과거사 청산 문제를 다루고 결론에서는 ‘5·18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말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일단 이 책은 5·18에 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일 것이다. 저자는 사건의 구체적인 시간, 분 단위까지 기록하며 진정성 있게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사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명은 정치권에서 합의한 이름인데, 김영택 선생님이 규정하듯, 나 역시 이 사건을 ‘민중항쟁’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시민항쟁’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5월 18일부터 약 10일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민주화운동’이라고만 칭하기 어려운 다양한 측면의 근대적 개인의 기본권(일례로 생명권)을 가지고 싸운 투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5·18에 관한 극우주의적 왜곡 및 음모론의 근원에는 ‘김대령’이라는 사람이 있다. 변희재는 “5·18은 폭동이라는 건 미국 박사가 주장한 겁니다”라고 하곤 하는데 그 미국 박사가 김대령이고, 김대령은 미국의 한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역사학의 전문적 훈련은 전무한 사람이며, 그가 인용한 사료 역시 현실성 없고 엉터리라 제대로 된 공론장에서는 진지하게 언급되지도 못할 수준이다.

우리가 5·18을 다시금 호명하고 애도해야하는 이유에는 애도와 추모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5·18을 통해 국가와 개인의 기본권, 근대적 시민의 권리를 다시금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5·18은 이후 민주화운동에 근원으로 자리잡는데, 5·18 전후로 한국사회를 분할하는 것도 유의미할만큼 한국의 민주화에 5·18이 미친 영향은 크다. 중국은 텐안먼 이후 중국 민주화 운동을 확대시키지 못했던 것과는 다르게 5·18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촉발·확대시켰고, 이를 통해 한국은 아마도 중국과도, 또 싱가폴과도 다른 실질적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책은 기존 역사서와는 다르게 드라이하지만은 않다. 사실을 빼곡하게 나열하면서도, 군데군데 저자의 파토스가 묻어나는 문장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사건을 목도했던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이 책, 『유령의 역사』는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역사학을 재구성하며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아날학파(Annales school)에 속한 장플로드 슈미트의 책이다. 『유령의 역사』는 중세 가톨릭에서 성행했던 유령의 역사의 이면을 조명하는데, 초기 기독교는 유령의 출현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었지만, 세력을 확장하던 기독교는 외연을 확장해 나갈수록 다른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유령에 대한 의견·경험, 또는 기독교인들이 경험한 ‘유령’에 관한 경험을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세 기독교는 유령에 관한 입장을 전환하게 된다.

그들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미신적이라고 여겨졌던 유령의 출현을 인정하고, 심지어 기독교의 종교지도자까지도 유령의 목격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중세 기독교는 유령을 적극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죽은 자를 위한 종교 의례를 강화하고, 종교단체로의 헌신과 물질적 기부를 촉진시킨다. 사후세계에 대한 서사를 가지게 된 기독교는 이를 통해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게 된다. 사후세계에서의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독교의 사회적 권력은 점점 강해진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유령에 관한 이야기가 중세 말기 교회를 지탱하는 경제구조의 핵심적 장치로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본래 기독교 교리에 없던 연옥 교리, 면죄부, 미사는 하나의 종교 의례로 또 종교적 서사로 조합되어서 중세 유럽인들의 사회적 행위를 추동시키게 된다. 슈미트의 분석에 따르면 중세 기독교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종교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 종교 교리, 유령, 사후세계 등을 전략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리나 세계관과는 다른 중세의 기독교만의 발명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종교의 교리, 유령,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살아있는 자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현실세계, 물리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검증될 수 없기에 오히려 암묵적으로 발화자가 처한 물질적·상징적 이해관계를 나타내기에 유리한 이점이 존재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의 이면과 진의를 밝히는 지식사회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의견, 칼 만하임의 지식의 존재구속적 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발화자의 발화나 그가 생산하는 담론은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한 때 근본주의 개신교의 사후세계 담론을 분석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그런 주술적 이야기의 이면을 살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책에서 지옥을 다녀온 사람은 미국 공화당 깃발이 불타는 것을 보는데, 이는 미국 공화당을 지지해야한다고 종교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치사회적인 지향, 보수주의적 정치담론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는 우리시대의 지옥의 역사이자, 유령의 역사인 것이다.

5·18 광주민중항쟁과 주목할 책들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이다. 이 사건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일으킨 국가폭력이자, 이에 맞서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민주화를 위해 저항한 민중의 항쟁이다.

사건의 근원에는 이승만-박정희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학살, 국가폭력과 박정희부터 가속화된 지역 차별주의가 있다. 지역주의는 박정희가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으로 영남을 향한 특혜, 호남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고 박정희도 호남발전을 위한 국가기관을 설치할 정도로 이 차별은 강력했다. 실질적으로 작동하진 않았지만.

광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중국의 천안문 항쟁은 이후 연속성 있게 민주화 운동을 추동하지 못했고 결국 중국은 엘리트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현재 시진핑은 헌법을 수정해 장기집권을 시작했다. 한국과 비슷한 발전(개발)국가인 싱가폴은 리콴유의 아들이 권력을 세습했는데, 아마도 한국에 광주민중항쟁과 이를 시원으로 한 연속적 민주항쟁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 역시 요원했을 것이다.

5월의 광주를 다룬 책 중에 가장 추천할 책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다. 1985년 발간된 이 책은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에서 ‘항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저작물이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당시의 증언, 기록을 조사해 출간했고, 광주항쟁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구판은 출간 당시의 사회적 환경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개정판은 분량이 약 2배 늘었고, 사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완성도 있는 작업이 되었다. 광주항쟁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좋은 책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광주항쟁을 볼 수 있는 책으로는 이미 소개한 김영택, 『5월 18일, 광주』가 있다.

『철학의 헌정』은 칸트철학의 권위자이자, 거리의 철학자로 알려진 김상봉의 저작으로, 광주항쟁을 종합적으로 다룬 최초의 철학서일 것이다. 저자는 광주항쟁의 유일성으로 ‘공동체’를 추출하고, 그것을 김상봉 고유의 철학 개념인 ‘서로주체성’과 결합하여 광주항쟁을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이외에도 정치철학, 신학, 예술철학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광주항쟁을 해석함으로써, 광주항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은 여건상 구매하지 못했지만, 장바구니에 담아둔, 구매할 책들이다.

이정우,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에서 발간한 『광주, 여성』은 광주항쟁을 경험한 여성의 경험을 구술채록한 기록물로서, 광주항쟁의 역사 속에서 주변적으로 인식되었던 여성을 주체적으로 다루는 작업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서술된 광주항쟁의 기록이다.

역사학자 노영기가 집필한 『그들의 5.18』은 항쟁의 주체였던 민중의 입장이 아니라, 군(軍)을 중심으로 광주항쟁의 이면을 살피는 책이다. 방대한 군 자료를 바탕으로 군대의 정치적 동원이 국가폭력, 구체적으로는 박정희의 유산임을 지적하고, 광주에서의 잔혹한 학살이 가능케했던 군 내부문건을 통해 이 사건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배태되어 나타난 사건임을 실증하고 있다.

광주의 방송기자, 김철원의 『그들의 광주』는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광주를 끊임없이 환기하며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던, 그리고 역사 속에서 잊힌 10명의 평범한 사람을 다루는 책이다. 그 평범한 사람의 작은 외침이 만들어낸 민주화의 역사를 다루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한국 종교사회학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작업을 하는 강인철 선생님의 책으로 인류학의 개념인 ‘리미널리티(경계/전이/잠재적 상황)·커뮤니타스(사회적 상호관계)·사회극’을 통해 광주항쟁을 재해석함으로써, 5월의 광주가 가진 ‘의의’를 끌어내며 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책이다.

책 이외에도 망월동 묘역을 직접 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라 생각한다.

현재는 언제나 논쟁적인 무엇이다. 광주민중항쟁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미래통합당에서도 광주항쟁은 민주화의 유산임을 밝혔다. 하지만 그 전두환마저도 거부하는 북한군 개입설을 아직 믿는 사람도 있다. 민주화 이후 5·18청문회에서 피해자 여성에게 “경상도 남자와 결혼하라”고 한 유수호라는 정치인이 있는데 그는 유승민의 아빠다. 또 5·18의 외신 자료가 유일하게 상영되지 못한 지역은 대구이다. 여전히 호남에 대한 야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광주항쟁을 생각하며 지역(차별)주의에 관심이 생겨, 관련 책을 서서히 공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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