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讀後感, 『창세기 설화』

1. 두 개의 맥락

종교사 학파: 1787년, 독일 알트도르프 대학에 취임한 요한 필립 가블러는 교의학으로부터 성서신학을 구별해내며, 근대의 독립된 분과학문(즉, 과학으로서)로서 성서신학을 정초했다. 가블러로부터 시작된 구약 신학의 광맥은 구속사 학파와 종교사 학파로 이어진다. 구속사 학파는 이스라엘과 세계의 역사가 신의 활동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구체적 역사 속에서 신이 섭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구약 신학의 역사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런 구속사 학파를 극복하며 출현한 것이 종교사 학파인데, 이들은 기독교를 구별되고 독립적인 유대 종교로 보기보다는, 종교 일반의 관점에서 고대 유대-기독교의 성립을 역사·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려고 했다.

자료비평: 근대학문으로 전환되고 있던 구약 신학 연구에서 구약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자료비평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이른바 모세오경 연구에 착수했다. 문서 자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벨하우젠은 모세오경이 4가지의 특정한 형태를 가진 문서로 서술되어 있으며, 이것의 연대를 추정하고 이것이 가진 시대적 의미를 추출하고자 했다.

2. 헤르만 궁켈과 이 책의 의미

이런 두 가지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 헤르만 궁켈의 『창세기 설화』이다. 궁켈은 종교사 학파에 속하는 학자이며, 구약 연구에 있어서는 벨하우젠의 자료비평을 극복하고, 양식비평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척해낸 학자이다. 그리고 이 책, 『창세기 설화』는 궁켈의 『창세기 주석』의 서론, 즉 연구 방법론과 이론적 틀을 집약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을 번역한 책이다.

책을 통해 궁켈이 새로이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설화(Sage)’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벨하우젠은 ‘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반해 궁켈은 오경이 문서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있었던 구전의 형식, 즉 ‘설화’라는 장르가 가진 사회적 작용에 주목한다. 궁켈에 의하면, 설화는 거짓말이 아닌, 민간에서 구전되는 운문의 형태로서 과거의 인물/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가 역사서가 아닌 설화라고 파악한다. 역사서는 산문의 형태인 문서로 전승되고,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사실과 목격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라면, 설화는 운문으로 구전되며, 민간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허구와 상상을 기반으로 예술적인 장르인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창세기를 더욱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궁켈은 창세기가 문서 이전에 구두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창세기는 각각의 독립적 설화들이 따로 전승되다가 특정 시점에서 종합되어 현재의 문서로 완결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양식적 접근은 종래에 성서 연구에 있어 공시적 접근, 즉 역사적 접근이 미처 보지 못한 측면을 보게 한다. 설화라는 장르로 창세기를 조망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어떤 이유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강조되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생략되기도 한 것이다. 궁켈은 양식적 접근을 통해 이야기 배후에 있는 창세기의 설화를 구전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들어가 그 진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는 성서가 실증되어야 한다고 보는 문자주의의 입장이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창세기 “설화”라는 제목에서부터 이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100여 년 전 궁켈이 쌓아 올린 이 광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궁켈은 구약 신학의 과제가 “그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이해함과 동시에 그것의 다양한 굴곡과 변화를 추적하며, 그것의 가장 심오한 사살들이 생겨난 곳을 찾아가는” 데에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접근이 성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문자적 접근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를 통해 성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 즉 과학으로서,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소개 중이신 역자 진규선 선생님께도 이런 책을 번역하신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덧. 나는 신학에 문외한이라 글에 크고 작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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