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키케로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키케로(BC 106 ~ BC43)는 로마 남부 아르피눔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동명의 아버지 키케로 기사 계급과 평민 계급 사이에 해당하는 사업가였고 어머니 헬비아는 귀족출신이었다고 한다. 키케로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 덕분에 키케로는 좋은 교육을 받으며 그의 재능을 일궈나갔다. 그러던 중 키케로는 내란을 피해온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인 필론을 만나고 거기에서 비판적인 사유를 배우고 평생에 걸쳐 적용시켜나갔다고 한다. 키케로는 당시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키케로는 로마 역사의 전환점에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 로마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공포정치로 인해 공화정 체제에 도전을 받았다.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반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두각을 나타내며 집정관에 채택되고 후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장악하고 제정을 수립한다. 당시의 이런 변동성이 높은 정치상황이 키케로가 공화정의 이상을 표명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키케로는 무명 변호사로 시작하여 그리스에서의 배운 지식을 통해 유명한 변호사로 자리매김한다. 이후에는 공직이 진출하고 현실정치에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키케로는 결국 집정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것은 평민 출신인 키케로의 상황을 볼 때 굉장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론


2. 키케로 정치사상 요약


키케로의 사상의 백미(白眉)는 아마도 자연법 사상일 것이다. 당시 범신론적 세계관에서 신의 섭리를 주장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영향을 받는다. 스토아 학파는 보편적 이성이 자연(自然)이라고 하며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말했다. 키케로는 자연법에 대해 법은 정의와 부정의의 구별이며 만물의 원초적 상태, 자연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기준에 따라 악에는 벌을 주고 선을 지키는 인정법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키케로는 자연법을 철학적인 사유가 아닌 제도적으로 발현시킨 최초의 정치사상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법은 이성적 인간에 보편타당한 법률이다. 올바른 이성을 가진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에 반해 자연법을 기반으로 여러 사회에 적용시킨 인정법은 시대와 지역의 제약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연법은 세계국가의 법의 가능성을 지니고 세계시민으로 살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사해동포주의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읽을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 국가에서의 정치조직에 초점을 맞춘 데에 비해 키케로는 정치학의 외연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지위를 높였다. 키케로는 정치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정치가는 가장 높은 칭찬을 받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가들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인 관습이나 법을 제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도덕률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델을 제시한다. 키케로에 있어서 이상적인 정치가는 윤리적인 판단 능력은 물론이고 정직과 효용의 일치 그리고 신중함까지 갖추어진 지도자를 말한다. 이것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둘 간의 조화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자연법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지지했다. 일단 키케로는 ‘공화’의 개념을 공공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자연법 사상에서 당연하게 파생되는 개념이다. 키케로는 공화주의의 본질은 상호성에 있다고 봤다. 이런 까닭에 합의와 공유된 이익에 의해 협력되는 것이 공화정의 특징적 성격이다. 그리고 공화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지탱된다. 키케로는 시민의 자유가 어느 누구의 지배에도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의적인 지배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연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개인적인 욕망을 용인하면서 공공선에 대한 추구 또한 강조한다. 이것은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의미한다.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어떤 형태의 국가가 최선의 상태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키케로는 순수한 형태인 왕정, 귀족정, 민주정 제시하면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이런 정치형태를 말하면서 정치의 우연성을 부각시킨다. 시작은 왕정이다. 왕정 국가는 참주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런 참주정은 귀족이나 인민에 의해 타도된다. 따라서 이후의 정치 체제는 귀족정이나 민주정이 된다. 이렇게 정립된 민주정은 폭민정치나 우민정치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는데 반해 키케로는 우민정치가 왕정이나 귀족정에서 직접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폴리비오스의 순환론을 수정한 것이다. 키케로는 정치학에 있어서 논리로만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정치학의 내재적 불안성에 주목했다. 키케로는 민주정을 가장 불안한 형태의 정치체제로 간주했다. 민주정의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는 동등해진다. 그러므로 권위에 의한 복종이 어렵다고 보았다. 이런 상태는 쉽게 폭민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귀족정에서는 인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과두적인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왕정은 이성이 정신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듯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관대한 군주라도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면 인민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단점도 제시한다.


결론


4. 키케로 사상과 현대적 의의


키케로의 대표적인 사상은 자연법 사상과 공화주의 사상이다. 일단 자연법 사상은 중세의 기독교 사상과 더불어 인권개념에 대한 진보의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민법 성격의 자연법을 제시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공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연법 사상은 세계 시민주의를 표방했다. 이것은 세계화가 거부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megatrends)인 현 시대에 다시 재고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다문화에 대한 톨레랑스(tolerance)가 부족한 문제들이 자주 지적되고는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키케로가 제시하는 자연법 사상은 현대에도 유의미하며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으로 더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공화주의 사상은 현대사회에도 모범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추구는 자칫 님비(NIMBY)나 핌피(PIMPY)로 점철되는 집단 이기주의 또는 이기적 개인들로 인해 악덕으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키케로는 공공의 안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갈등조정이나 사회적 합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김창성, 2007, “국가론”, 한길사

곽준혁, 2007, “키케로의 공화주의” 『정치사상연구』, 한국정치사상학회


2015.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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