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년 12월 8일 ~ 1998년 11월 6일)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사회이론에서의 의미와 관찰


1. 서론


루만의 이론체계에 있어 의미(Sinn)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사회학의 전통에서 의미는 중요한 개념이며 고전사회학자 베버 또한 의미를 기본개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루만은 자신의 이론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설명하는데 큰 비중을 두었지만 그럼에도 루만은 인문·사회계열의 학문 뿐 아니라 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과학문의 성과를 수용하여 의미의 개념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루만의 체계이론은 구(舊)유럽적 사고로 표현되는 주체철학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는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에 영향을 받아 의식 층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사회적 층위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어지는 내용은 루만 체계이론을 사회학적 전통의 경계 안에서 조망함으로써 루만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전통적 사회학의 비판적 기능과 사회학적 실천에 대한 루만의 입장을 서술한다.


2. 의미와 행위


루만에 의하면, 파슨스의 학문적 이력은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베버의 사회학적 제안을 발전시키려고 고민했던 것이라고 한다. 파슨스가 베버를 수용한 것과 같이 루만 또한 파슨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했으며 사회적 행위에 대한 인식론적 통찰을 제공하는 독일의 학문적 전통을 통해 파슨스의 구조 기능주의를 교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만은 의미와 행위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의미를 주체의 관점에서만 보는 기존의 사고를 비판한다. 전통적인 접근에서 의미는 주체의 입장에서만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루만은 이것을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보았고, 의미를 주체와 분리시켜 처리하면서 보편적인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만은 역으로 의미를 통해 주체를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 지점은 루만의 체계이론의 출발점이자, 의미와 행위 관계의 전회를 의미한다. 루만에게 의미를 생성하는 주체는 행위자가 아닌 의미를 사용하는 체계이다. 역으로 체계 자체에 대한 해명이 곧 행위에 대한 설명이 된다. 따라서 사회체계는 의미로 확인되고 의미를 경계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슨스의 체계이론은 사회구조의 분석이자 동시에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는 이론이며, 루만은 파슨스가 의미의 매체적 특성에 주목해서 베버가 제기했던 의미문제를 발전시켜 이론화했다고 평가한다.

베버의 사회학 프로그램은 스스로 이야기하듯 미완의 기획이며, 그 작업의 목표는 사회학이라는 분과학문을 정초하는 데에 있었다. 베버가 제안하는 행위자는 의미를 구성하는 주체이다. 베버에게 의미는 언제나 행위를 통해 규정되며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베버의 설명은 여기서 종결되지 않고 확장된다. 베버는 행위자가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상대방에 의해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의미가 주관적으로 생성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모든 의미가 주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행위가 역으로 의미를 통해서 규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베버는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구분한다.

베버에게 있어 객관적 의미는 관찰자의 해석과 이해를 통해 형성된다. 여기에서 행위 주체의 의미 구성 과정을 배제한다. 행위자가 관찰자와 전달하는, 스스로 의도한 의미 또한 상호의 해석도식(의미연관)을 공유하며 의도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적으로 사적인 의미가 아니다. 주관적 의미는 그것이 생성되는 과정을 환원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객관적 의미는 그러한 성취와 무관하게 이해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베버는 주체의 자의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의미의 사회적 형성을 설명할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객관적 의미는 관찰자가 주관적으로 의도한 의미에 의해 개념적으로 구성된 순수한 유형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스스로 의도한 의미의 개념이 실제 행위로부터 분리되고, 그 핵심은 실제 행위자 대신에 유형으로 이해되는 행위자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사회학의 임무는 실제적인 행위자가 아닌 행위자를 유형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베버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국한되지 않으며 주관적/객관적 의미의 구분을 통해 주관적인 의도가 담긴 의미를 탈주체화하고 사회적 의미의 생성을 설명한다. 또한 베버는 행위이론적 관점에서 주관적/객관적 의미의 차이를 ‘사회적 행위’로 개념화한다. 사회적 행위란 행위자가 의도한 의미에 따라 타인의 행동과 연관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행동을 지향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행위가 유의미한 관계를 매개로 실현될 때, 그것은 유의미한 행동으로서의 사회적 행위이며 의도한 의미의 특성으로 인해 여타의 유의미한 행위와 구별된다. 타인의 행동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베버는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추론해본다면 사회적 행위는 어떤 타인, 즉 언어와 행위 역량을 가진 다른 주체를 상정함으로써 가능하다. 다시 말해 타인을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가 타인의 행동을 통해 조건화되고, 그 진행 과정에서 타인의 행동을 통해 함께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행위는 현실 행위, 이론적으로 구성된 개인의 행동, 그리고 잠재적인 타인의 행동까지 포함한다. 덧붙여 행위자가 상대방을 표상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지향한다고 가정하면 이는 특정 행동에 대한 기대도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 속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베버는 사회적 행위의 중요한 ‘표준적인’ 요소는 타인의 특정 행동의 기대에 대한 유의미한 지향을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개별 행위자들은 사회적 행위에서 타인의 유의미한 행위를 기대한다. 개별 행위자들이 서로의 행위를 함께 기대하면서 구조, 즉 사회적 관계에서 '기대의 기대'를 가진다. 이는 의미 내용에 따라 서로를 향하고, 그를 통해 지향된 다수의 행동을 의미한다. 베버에 의하면 서로 지향하는 참여자의 행위를 말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의 성원이 동일한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 상호작용에 참가하는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고 기대를 지향한다면 둘 또는 그 이상의 행위자들이 서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참여자의 사회적 관계에 행위자와 파트너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를 지향한 쌍방향적 행위, 사회적 관계가 기대의 상호작용하는 성찰성에 연계된다. 이는 ‘기대의 기대’이기에 기대의 성찰성이다. 요컨대, 베버에서 사회적 관계란 행위의 기대구조, 다른 말로 상호작용적인 기대의 성찰성으로 인해 구축된 사회적 관계이다.


3. 매체로서의 의미


전통적으로 의미 개념은 체험하는 주체의 반성적 해명이 가능한 체험구조의 실행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루만은 이런 사후적 구분이 아닌 사전적 의미와 의식의 관계를 설명할 것을 요청한다. 유의미하게 구성되는 것은 이미 의미를 전제로 하기에 의미개념이 우선적이며 그것은 주체와 무관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첫째, 의미는 개별 행위자가 아닌 체계 스스로 구성하는 형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의미·체험·행위는 신체와 의식을 전제로 하며 사태(Sache)는 체험을 통해 의식에 주어진다고 해도 이것은 의식이나 의사소통을 통해 비로소 심리적·사회적 범주가 된다. 둘째, 의미는 세계의 복잡성을 행위로 하여금 체험의 과부하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 루만의 이러한 의미의 특성은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 지향성 개념과 큰 연관을 가진다. 의식의 체험은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체험이고,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 항상 의식은 ‘어떤 것’을 지향함으로써 여타의 부분은 배후의 지평을 물러난다. 이는 대상으로서의 체계, 지평으로서의 환경의 차이를 허용해줌으로써 체계이론의 기본 논리를 제공한다. 지향을 통해 대상과 지평의 차이가 생기고 체계가 생성된다. 현재화된 체계는 항상 잠재화된 환경을 전제로 한다. 지평 개념은 체험이 더 이상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을 지평으로 남김으로써 논리적으로 복잡성의 축소를 허용한다. 의식(심리체계)이 지향하여 대상을 현재화하면 동시에 다른 부분들은 잠재화된다. 어떤 것에 대한 지향은 다른 것에 대한 부정이다. 현상학적 시간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잠재화된 지평도 다시 현재화될 수 있는 구조적 동학이 마련된다. 체계/환경이 반복되면 과정적 재귀의 동학이 허용된다. 심리/사회 체계를 포함한 체계는 연쇄적인 계기적 사건, 행위·의사소통으로서 재귀적 작동을 허용하는 능동성·우연성·지속성·창발성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의 지평 개념은 모든 관찰에 불가피하게 맹점을 수반시킨다. 이는 모든 관찰에 어떤 위계적 우선성도 허용하지 않는 수평적 다원성과 체계의 성찰성 테제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체계와 환경의 개념을 통해서 인과적 설명이 불필요한 의식의 폐쇄적 작동 개념을 얻음으로써 객관주의적 사유인 인과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또한 ‘체험’과 ‘행위’를 구분해야만 의미개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체험은 현재화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감당한다. 이런 체험의 과부하는 복잡성과 우연성이라는 이중의 구조를 가진다. 전자는 실천적 선택을 강요하고, 우연성은 실망의 위험을 허용한다. 여기서 우연성이란 체험의 지평에서 통보되는 가능성이 후속 체험과 행위에서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현재화될 수 있음을 말한다. 요컨대 체험의 통보는 현존하지 않거나 기대하는 방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지시하거나 기대했던 것이 그간의 사건들에 의해 실현이 불가능하게 되어 실망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의식의 체험은 복잡성과 우연성을 의미의 형식, 곧 지시적 방식으로 선택적인 처리를 함으로써 과부하는 조절하고, 선택되지 않은 잔여 또한 보존시켜 남겨둔다.

체험의 과부하를 처리하는 형식이 바로 '의미'이다. 루만에 따르면 의식은 경험에 대한 선택으로 구성되며, 항상 외부세계에 대해 비대칭적으로 투입되어 세계 복잡성의 문제를 사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의식은 세계의 압력에 대한 내적 처리이다. 의미는 어떤 사태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을 축소하고 체험을 처리하는 기능의 수단이며, 복잡성의 축소를 일으키는 매체이다. 체험처리는 의미를 통해 복잡성을 축소시키고, 보존하며 실현한다. 의미를 통한 복잡성의 축소는 체험에 관한 ‘세계 자체’와 행위에 관한 ‘세계 내의 특정 체계’, 이중의 방식으로 구성되며 체계로 수행된다. 체험과 행위의 구분은 복잡성의 축소와 의미규정에 의해 정의된다. ‘체험된’ 의미는 타자에 의한 축소로, ‘행위’는 체계 고유의 성취로 이해되고 처리된다. 또 다른 의미의 중요 기능은 체험되지 않은 잠재성을 지시와 이해를 통해 도입시키는 것이다. 의미는 다수의 의식체계로 구성된 세계에서 인지의 내용을 계속 변화시키며 선택의 규칙으로 기능한다. 세계는 의식을 통해 들어오고 의미의 통해 다른 가능성들로부터 선택, 해석됨으로써 정보가 된다.

루만에게 체험과 행위는 구분은 체계 연관적인 개념화이다. 서로 다른 폐쇄적 심리체계는 체험으로부터 통보된 복잡성을 축소하여 통보하고 재통보하는 과정이며 이 의사소통 과정은 의미를 통한 세계의 구성을 매개한다. 즉 사람들은 체험, 행위를 통해 의미를 구성된 것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한다. 체험과 행위는 체계연관적인 개념이기에 사회체계에 따라 유동적이다.


4. 기대구조와 의사소통


사회구조는 ‘기대의 기대’ 형식을 지닌다. 루만에 의하면 타인과 연관된 모든 체험과 행위는 자신과 타인에 동시에 의존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통보한 기대는 서로의 기대에 대한 전제를 구성하고 그 조건이 반성되어 복수의 사람이 함께 기대할 때 실현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자유 규정을 자신의 기대구조에 산입해야 되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기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여기서 이중의 우연성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루만은 상호주관성을 부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회적인 것’, ‘사회체계’가 생성될 수 있다고 본다.

루만에게 의사소통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참여자에게 의미를 공동으로 현재화하는 것이며 서로 새로운 것을 조절할 수 있도록 의미구조가 작용하는 것이다. 의미를 전제로 새로운 것을 표현할 수 있고, 의사소통은 언제나 의미토대 위에 구축된다. 정보는 특정 시점의 사건으로 동일성을 가지는 것이기에 어떤 정보도 전달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에서는 새로운 것의 생성이 중요하다. 의사소통은 타인이 유의미한 체험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비언어적 표현도 의사소통의 한 요소이고, 언어는 부차적이지만 의사소통 과정의 높은 전문화를 통해 진화한 것이며 의사소통을 구분하도록 하며 사람들의 실천에서 타인에게 정보를 줄 행동방식을 증가시킨다. 언어는 기능적으로 의사소통 과정의 선택강화로, 의사소통은 인지과정의 선택강화로 정의 가능하다.

의사소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미와 정보의 구분이 필요하고 이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분명해진다.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고 해도 정보는 수용자의 상이한 여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불어 정보와 관련해 의미는 체험처리의 전제로 작용한다. 의미를 매개로 복잡성을 축소하는 과정은 선택되지 않은 것을 배제하는 부정의 과정이다. 이 부정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부정의 부정을 통해 현재화 가능하다. 루만에게 부정의 개념은 배제와 선택의 행위이며 보편적 포함을 의미한다. 미래는 행위자가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선택하면서 움직이는 열린 지평이다. 체험되는 현실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교류를 위해 사전 상호교류가 없어도 응답을 기대하고 실수를 보호받을 수 있는 의미의 유형과 규칙을 발전시킨다. 이를 위해 의미 자체에 이미 실망하는 경우의 예방수단이 삽입되어 있고,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 ‘기대의 기대’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행동 원칙을 갖게 한다. 기대구조는 반성적 기대에 기초해 통합/유지 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의미의 사회성이란 의도한 의미의 인지가능성, 그 인지가능성이 타인의 기대를 설명해주는 구조적 적합성이 있다. 따라서 기대의 기대는 의사소통의 부담을 감소시키고, 무엇보다 의견 검증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을 피하게 해준다.


5. 관찰과 계몽


루만은 현상학의 판단중지를 가져와 연구 대상에 대한 모든 관심을 배제하고 연구자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루만은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통해 자연에 포함된 주체에 판단 중지를, 세계의 상호주관적 통용을 괄호 안에 넣어 사회학의 고유한 연구 영역을 확보한다. 루만은 근대사회 일반의 가능성 조건, 사회의 근본적인 과정을 기술하려고 한다. 루만의 목적은 체계구성을 통해 이론적, 실천적으로 세계의 복잡성을 파악하고 축소하는 인간 잠재력을 고양하는 데 있다. 루만은 경험적 현실에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서 현실 뒤에 존재하는 사회의 구조와 과정을 포착하려고 한다.

루만은 후설에 의한 소여를 통해 사회학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이와의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루만은 선험과 구유럽적 사고를 거부하며, 관찰자를 통한다 하더라도 관찰된 모든 것은 체계로서 수행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관찰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경험적/선험적인 것을 폐기함으로 2차질서의 관찰 개념을 도입할 수 있고, 체계의 다양성이 구축 가능해 진다.

첫째, 루만은 현상학이 전제하는 선험적 주체 대신 재귀적으로 환경을 가지는 사회체계를 마련한다. 루만은 심리체계로 시작해 사회체계는 자기지시적인 자동생산 체계들로 파악하고, 사회가 다수의 사회체계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론의 출발점으로 자동생산체계의 하나인 의식을 상정하고 경험/선험의 이분법도 이를 위해 폐기시킨다. 이는 근대사회의 끊임없는 재귀기술을 제공하는 회귀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둘째, 루만은 후설의 선험적 의식 성취에 의한 반성을 자기지시적인 자동생산 체계가 상호적으로 관찰되는 2차질서의 관찰이론으로 대체한다. 이는 선험적 현상학의 주관적 기술이 자기기술하는 체계이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모든 관찰은 맹점을 가지며, 관찰의 모든 위계적 질서는 부정된다. 셋째,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사회학적 연구 또한 언제나 고유의 맹점을 지닌 다양한 관찰 중 하나이다. 관찰은 연쇄적인 작동이며 재귀적 관찰은 개별 관찰이 아닌 수많은 의사소통에 의해 재귀적으로 작동하는 체계의 성취로 나타난다.

루만은 2차관찰을 통해 의식에게만 부여되었던 반성의 능력을 사회체계들에 부여했다. 관찰의 작동과 관찰의 관찰을 사회체계의 의사소통적 작동으로 보고 이는 사회의 자기관찰과 자기기술이라고 한다. 루만은 학문적 관찰 또한 여타의 의사소통 행위와 같이 복잡성을 축소하는 심리체계의 선택적 작동과 통보를 통해서 다른 심리체계의 반응에 초래하는 일종의 창발적 사건이다. 루만은 상호주관성을 배제함으로써 체계의 창발성을 확보한다.

루만은 구조적 과정과 변동 개념을 창조적으로 정의한다. 먼저 루만에게는 어떤 사건의 연속체가 선택성을 강화하는 특징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과정이 될 수 있다. 또 기대의 기대로 구조 변화가 적용이나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강하게 구조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지속적으로 좌절이 수반된다고 본다. 루만은 기대의 기대로서 구조의 변화는 자기 유지를 전제로 하고, 이에 따라 변화와 유지는 보수/진보 양자를 함께 다루어야만 한다고 본다. 새로운 것은 사회적인 것의 문제가 전체의 수준이 아니라 재생산이 유지되거나 그러지 못하는 계기적 사건들 사이의 관계 수준에 있다는 것에 대한 통찰이다. 기존 기대구조 내의 접속 행위, 벗어나는 기대구조에 기초한 접속 행위, 중간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3중의 차이가 모든 상황에 존재한다. 루만에게 구조변동은 상황적으로 확신해야만 가능하다. 먼저 후속 행위가 가능해야 하고 이후에 그것이 구조적 가치를 가지고, 기대를 만드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루만은 과정의 범주가 구조의 변동을 주체화하는 필수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자기준거적 체계는 독립적으로 자신에게 포함된 요소를 통해 자신의 구조변동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폐쇄체계이다. 체계는 자기 구조에 인과성을 부여하고 인과성은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6. 결론


루만의 논의는 베버가 제안한 프로젝트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루만에게 의사소통이란 사건이 선행한 사건을 다른 가능성의 지평에서 선택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행위가 선행한 행위를 이해하는 지속적인 해석과정으로 구축된다. 베버가 제안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기대·추론이 루만에 의해 사회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루만은 인과적 설명을 거부하고 우연, 차이, 선택에 기초한 사회이론을 제안하지만 그럼에도 베버와 공유되는 지점이 많이 존재한다.

첫째, 베버와 같이 루만의 사회학도 이론적 관점의 개방성을 허용한다. 의미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학은 탈도그마를 포함하고 모든 관찰은 맹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둘째, 루만은 의미를 사회학의 중심으로 두지만 행위를 연구대상으로 보는 데 부정적이다. 루만에게 행동을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체험과 행위를 통해 이해 가능한 다양한 형태 중 하나를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만은 체험과 행위를 구분하면서 의사소통 개념을 상세히 제시하는데 이런 개념은 베버의 사회학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다. 셋째, 베버의 전통에서 전형적인 인간행위를 경험적으로 연구하려면 합목적적 행위와 우연적인 것을 인과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사이에서는 행위자가 스스로 원하던 목표와 결과 사이에 인과성을 적합하게 추체험해야 한다. 루만은 실제로 이러한 사례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넷째, 루만에게 오늘의 사회이론은 사회가 마주한 문제점을 극복할 가능성에 대해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루만은 고전사회학의 주제들이 추상적으로 구상된 통합적 이론내로 다시 수용되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다섯째, 루만은 사회학의 영역과 대상을 정초했던 베버의 문제의식을 계승한다. 루만은 타분과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인 것의 영역을 확보하고 사회학의 이해의 폭을 확장한다. 여섯째, 베버의 합리화과정에 대한 이해처럼 루만에서도 사회의 재귀적 자기지시는 스스로 생성하는 출구없는 체계 작동이다. 선과 악은 허용되지 않으며 인간은 이미 탈출구 없는 사회에 존재론적으로 묶인 세계 내적 존재이며 루만은 뒤를 보면서 미래를 향한다.

오늘날 일상화, 점증하는 무관심, 불확실성의 확산은 현대사회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런 변화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고도의 복잡성으로부터 발생하는 합리적 선택의 요구는 오직 구조적 성취를 위해 충족되고 우연성이 감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복잡성, 우연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


본 글은 정선기. 2017. “Luhmann의 사회이론에서의 의미와 관찰.” 『사회과학연구』 28(4). 를 요약한 것입니다.


2018.3.21



“사상의 존재적 근원에 대한 강조, 그리고 사고행위를 다른 사회적 행위들 가운데의 하나로 보아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 그것이 어떤 형태의 질적 변화를 겪었던 간에 - 마르크스 사상 중에서 아직까지도 그 타당성이 지속되는 한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 과정에 대한 그의 경제적 해석과 함께 계급이론, 그리고 현대 사회 내의 사회생활의 소외적 측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사회학적 업적 중 불멸의 것이 되었다.” - 루이스 코저


전반적인 사상체계


마르크스는 사회를 볼때 진화론적 입장 출발했다. 그에게 진보란 평화로운 성장이 아닌 갈등이었다. 긴장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사회적 갈등은 역사과정의 핵심이다. 그에게 역사의 추진력은 자연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려는 끊임없는 투쟁 속의 인간 관계의 형태였다. 인간은 의식주라는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쟁했고 이것이 만족되면 새로운 욕구를 추구했다. 원시공산발전단계를 벗어나자마자 적대적 협동관계가 시작되었고 분업이 시작되고 적대적 계급들이 등장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상체계는 물론 인간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도 각 시기에 특수성을 지닌 상대주의적인 것이라고 파악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투쟁에 참여해 싸우는 사람에 따라 변화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는 상이한 상황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류의 진보가 주로 관념이나 인간정신의 진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헤겔이나 꽁트의 사상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마르크스의 출발점은 인간의 물질적 조건과 그를 위한 인간의 결합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리나 기후 같은 비사회적 요인으로는 사회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것은 간접적인 것이다.


“국가의 형태는 물론 법률관계도 그것 자체로 또는 이른바 인간정신의 일반적 발전으로 파악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헤겔이 〈시민사회〉란 이름 아래 포함시킨 모든 것, 즉 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뿌리박고 있다. 정치경제학은 시민 사회를 해부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상호연결된 전체로 파악했고 이것은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헤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공헌은 마르크스는 헤겔의 체계에서 중요시되지 않던 변수, 경제적 생산양식을 원인으로 확정시킨 데 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적 현상은 수많은 요인들의 상호작용이긴 하나 경제적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요인들은 결과에 불과했다. 생산관계, 즉 생산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본의 원료나 기술을 이용할 때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총체가 그 위에 사회의 전체 문화적 상부구조가 형성되는 실질적 기반을 이룬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생산 속에서 그들은 필수 불가결하지만 자신들의 의지와도 독립적인 일정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그들이 가진 특정한 단계의 물질적 생산력과도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구성한다. 이것은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출현하게 되는 실질적인 토대가 되며, 여러 형태의 사회적 의식과도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은 생활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과정의 일반적인 특징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특정 계급에 속하게 되면, 사회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취할 행동양식은 이미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계급구조에 있어서 상이한 위치는 상이한 계급이해관계를 가져온다. 그러나 상이한 이해관계는 개인들 간에 계급의식이 형성되었거나 형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관련된 객관적인 위치로부터 생겨난다. 인간 행위의 구속성이라는 객관적 결정 요인을 강조하면서도 마르크스는 개인들을 희생시키면서 사회나 계급을 물화시키지는 않았다. 개인의 사회적 존재이며 따라서 개인의 생활이 표현하는 바는 사회적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개인이 사회적 구속을 없애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계급론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사회는 계급이익의 추구를 위해 대치하고 있는 여러 계급들로 나뉘어져서 존속한다. 마르크스는 희소한 자원과 권력에 대한 그들의 상이한 소유에 의해 그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사회학에서 계급이익이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회적 위치와 함께 특별한 사회적 상황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의 계급이익은 공리주의학파나 영국 고전정치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개인적 이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추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비슷한 위치에 속한 개개인들이 공동의 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대중적 의사소통망이 발달하고 그리하여 자기들의 공동운명을 의식하게 되면서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변화된다. 자기이익의 추구를 조화로운 사회의 조정자로 생각한 공리주의자들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가들 사이의 개인적 이익 추구를 자신들의 계급이익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고 이것이 결국 자본주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합리적인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는 심화되고 공공의 이익이 파괴된다.


소외론


마르크스에게 있어 인류역사는 양명적인 특성을 가진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증대하고 동시에 인간의 소외도 증대되고 있다. 소외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갇히는 역설적인 개념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사회의 모든 중요한 제도들, 종교, 국가, 정치경제 같은 제도들은 소외라는 상황에 특징지어진다. 객체화는 소외가 구체화 된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사람의 존재를 공작인(Homo Faber)로 보았고 따라서 작업장에서의 소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동의 영역에서의 소외는 4가지 측면을 지닌다. 생산한 대상으로부터, 생산과정으로부터, 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동료들의 공동체로부터의 소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의해 산출된 대상, 즉 생산물은 외부적 존재론서, 생산자와 독립된 힘으로 노동과 대치하게 된다. 노동자가 노동의 대상, 생산과정으로부터 소외되면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는 자기 개성의 다양한 특면들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노동할 때 노동자는 그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된다. 노동자와 그 자신의 행위와의 관계는 자기 행위가 그와 무관한 외부적인 어떤 것으로, 행위가 괴로운 것(수동적인 것)으로, 힘이 무력함으로, 창조가 나약함으로, 노동자의 개인적인, 육체적, 정신적 힘과 개인적 삶 등이 그와는 독립적이고 무관한, 그리고 그에게 대적하는 행위로 나타나는 관계이다.” - 칼 마르크스


마지막으로 소외된 인간은 인류공동체로부터, 즉 그의 종(種)으로부터도 소외된다. 마르크스는 그의 후기 저작에서는 소외라는 개념을 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소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상품의 물신화”라는 개념에서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소외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상품은 인간 노동의 소외된 산물이며, 결정된 표현이다.


지식사회학


마르크스 주장에 의하면 사상은 그 사상을 지지하는 자들의 생활조선과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부르주아 작가의 사상은 부르자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부르주아 시대 초기에 나타난 사상들과 그 시대의 최고 정점에서 나타난 사상간의 구분이 이뤄져야 한다. 미성숙하고 투쟁중인 부르주아와 성숙하고 지배적인 부르주아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한 계급을 대표하는 사상가나 정치적 대표자는 꼭 그 계급의 모든 물질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슷한 성품을 공유하고 나타낸다. 마르크스의 후기저작, 1890년대부터 주목할만한 엥겔스와의 일연의 편지에서는 초기의 노쟁적인 저작에 나타나는 날카롭게 모난 측면들이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이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하부구조”가 전적으로 관념적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단지 그것이 “궁극적인” 또는 “최종적인” 결정인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후기저작에서 마르크그와 엥겔스는 상부구조의 내재적 자율성은 인정한다.


사회변동의 동학


사회변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은 그의 모든 저작을 특징지을 정도로 중심적인 사상이었다. 그에게 역사발전의 동력은 “신의 뜻”이나 “객관적 정신”이나 초인간적 주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환경에 있어 능동적이다. 자연과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연합된 노동을 통해 그들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하여 인간은 특수한 생산양식에 부합하는 특수한 형태의 사회조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사회조직은 원시공산주의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적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상대적인 희소성이 지배하는 상황 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경제적 잉여가 축적되었든지 그것들은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지배력을 획득한 사람들에게로 귀속되었고. 그러나 이러한 지배력은 불변의 상태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이다.


사회학사, 사회사상사, 사회학이론사 도서목록

철학에 철학사가 있듯, 사회학에도 사회학사가 있습니다. 친구가 사회학사를 알 수 있는 책이 있냐고 해서 제가 본 책들을 조금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는 *학부생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연구한다는 관점보다는 과제를 위해서 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읽었기 때문에 숙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상비평에 가까울 것이고,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저의 독해력 부족을 책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1. 스무 살의 사회학, 랠프 페브르·앵거스 밴크로프트 지음


제가 사회학 입문서로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소설의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사회학과에 진학한 스무 살의 주인공 ‘밀라’가 “너 사회학해서 밥은 먹고 살겠어?”하는 주변인들에게 사회학이 무엇인지, 사회학 이론으로 현실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어거스트 꽁트 같은 사회학의 창시자들과 사회학 3대장, 파슨스, 피에르 부르디외와 시쿠렐·고프먼 등의 미시이론가 같은 선명한 사회학자들을 꽤 방대하게 다루고 있고, 푸코나 버틀러 같은 사회사상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학과 사회학 이론에 대해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서 보시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자체는 조금 부드러운 형식이지만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직접 서술한 책입니다.


2. 사회사상의 흐름, 레이몽 아롱 지음


부르디외의 스승이었던 레이몽 아롱 교수가 쓴 책입니다. 먼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몽테스키외나 토크빌 같이 사회학자로 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회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학자들도 다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거의 고전 사회학자라고 분류되는 학자들입니다. 몽테스키외, 꽁트, 마르크스, 토크빌, 뒤르켐, 파레토, 베버 이렇게 7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계신 김건우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이 책을 극찬하셨습니다. 탁월성, 명료함, 그리고 이론의 정수에 도달하는 학자적 능력이 발휘되는 책이라고 하셨습니다.


3. 사회이론의 역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 책은 사회학 이론이라고 호명되는 이론들 외에도 광범위한 사회이론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맹아가 틔워진 시기부터 고전 사회학과 현대 사회학 그리고 근대성과 탈근대성 논쟁 등의 현대의 논쟁들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방대한 양을 다룬 책입니다. 또 저자가 네오 마르크시즘 전통에 있어서 그런지 최근의 반자본, 반제국주의 이론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4. 사회학 이론의 형성, 조나탄 터너·레오나드 비글리·찰스 파워스 지음


이 책은 고전사회학자들을 주로 다루는 책입니다. 사회학의 기원부터, 오귀스트 꽁트, 허버트 스펜서, 칼 맑스, 막스 베버, 게오르그 짐멜, 에밀 뒤르켐, 빌프레도 파레토, 조지 허버트 미드 이렇게 총 8인의 사회이론가를 다루는 책입니다. 구성은 특정 사상가의 사상의 기원과 배경, 그리고 특정 사상가의 사회학 이렇게 사상가 1인마다 2챕터씩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술이 꽤 명료하게 되어있다고 느끼고 고전 사회학 책 중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입니다. 다만 이 책도 절판이라 구하기가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5. 사회사상사, 루이스 코저 지음


아마 고전사회학을 다룬 책들 중에 한국의 사회학과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고전사회이론가를 중심으로 다루었고 여기에 베블런, 찰스 쿨리, 로버트 파크 등의 사상가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은 쓴 루이스 코저 자체도 갈등 기능주의 전통의 이론가이고, 저는 고전사회학을 이 책으로 배웠습니다. 분량이 600여 쪽 정도 되는 방대한 책입니다. 가끔은 읽다가 지치기도 했습니다. 사상가를 사상, 개인적 배경, 지적 배경, 요약 이렇게 4챕터로 다룹니다. 사진에 있는 시그마 프레스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은 절판되었고 작년 9월에 한길사에서 기존의 이론가들과 더불어 ‘피티림 소로킨, 윌리엄 토머스, 플로리안 즈나니에츠키’ 등의 이론가와 미국 사회학의 최근 동향을 추가해 출판되었습니다. 아직 저도 새로 개정출판된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추사된 이론가들이 굉장히 생소한 이름들이고 추가된 미국 사회학의 최근 동향이 역자들이 추가한 것인지 코저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코저는 2003년에 사망했습니다.


6. 사회학 이론의 구조 · 현대 사회학 이론, 조나단 터너 지음


사회학 이론의 구조와 현대 사회학 이론을 같이 묶은 것은 이 둘이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학 이론은 사회학 이론의 구조보다 많은 내용들이 추가 되었습니다. 우선 사회학 이론의 구조는 절판됐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론가들을 기능주의 전통, 갈등주의 전통, 교환이론 전통, 상호작용론 전통, 진화론적 전통, 구조주의적 전통, 비판이론적 전통 이렇게 큰 맥락에서 분류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들에서는 현대 사회이론가들을 다룹니다. 그래도 부분 부분 맑·뒤·베라고 불리는 사회학 3대장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제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번역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글들을 좀 보았습니다. 저는 원서와 역서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비판할 수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독해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둘 중에는 사회학 이론의 구조의 번역이 조금 더 매끄럽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7. 사회학 이론 · 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 조지 리처 지음


‘맥도날드화(化)’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조지 리처의 저작입니다. 우선 사회학 이론이라는 책은 약 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방대한 고전 사회이론가들과 현대 사회이론가들을 모두 다룹니다. 아마 여기 소개한 책 중에 가장 많은 이론가를 다루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양이 많아도 다루는 이론가들 또한 많은 만큼 아쉽게도 각 이론가에 대한 서술이 깊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론가의 대강을 파악하기에는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도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처의 책은 대체적으로 평이하게 서술되었고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8. 제가 지금 보지못한 책 중에는 김덕영 교수님의 '사회의 사회학'이 사회학사를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 책은 목차를 보니 굵직 굵직한 사회이론가들을 중심으로 정리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서 책의 부제에도 써있듯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는 아마 김덕영 교수님의 문제의식인 서구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통한 한국의 근대성 전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쓰인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이 책이 한국인에 의해 쓰인 최초의 사회학사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쓸데없이 이걸 왜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도움이 안되실 것 같습니다. 공부하면서 중간중간 추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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