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은 뛰어난 지성사가이자, 사회학자이며 동시에 노동계급의 배경을 지닌 성소수자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랭스로의 귀환: 에리봉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인 랭스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에게 프랑스의 지방, 랭스는 자신이 잊었던, 잊으려 애썼던 장소로 계급적 모욕과 게이로서 성적 모욕을 당한 장소다. 그는 그곳에서 지금껏 애써 부정하려 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가족의 역사: 에리봉은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족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노동계급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어머니 역시 그와 비슷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사회적 상승 궤적에 진입했던 에리봉에게 노동자 가정의 거칠고 투박한 문화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는 그렇게 자신을 구성해온 정체성을 무시하며 부르주아의 세계를 열망하고,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개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환경의 힘을 자각하게 된 지금의 에리봉은 이제 가족의 역사를 들춰보며 자신에게 폭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마저도 다른 폭력에 의한 삶임을 깨닫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던 그는 관념 속에서 노동자 개념을 이해하기만 했을 뿐 정작 현실의 노동자인 자신의 가족은 부인했던 과거를 회고한다. 실제 노동자인 가족과는 유리된 채, 그는 부르주아로 주체화하기 위해 노동자 개념을 공부했다.

개인의 역사: 가족의 역사를 살펴본 그는 개인의 역사, 즉 자신의 역사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부르디외를 경유하며, 자신 역시 분열된 하비투스의 소유자임을 고백한다. 즉, 한편으로 그는 학교의 교육체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임을 자각하고 이에 격렬하게 대항했고, 한편으로는 교육체계의 교양과 고급스러운 문화를 동경하기도 했다. 부르디외처럼 그 역시 상층계급 문화의 혐오와 동경 사이에 자신의 삶을 만들었음을 회고한다.

“랭스는 내게 모욕의 도시이기도 했다.” 성소수자로서 지방 랭스는 사회적 폭력과 사회적 수치심을 안겨준 장소였다. 그것이 게이로서 그가 랭스를 떠나 파리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속하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한계 짓고, 결정지었던 계급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노동계급의 가정을 떠나 지식인이 되기로 결심한 그였지만, 그에게 부족한 것은 경제자본뿐 아니라, 그 진로에 필요한 조언 몇 마디마저 부족했다. 지식인 세계에서 한계를 경험했던 그는 당시의 자신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한다. “나는 내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내 출신에 다시 덜미를 잡힌 셈이었다. 나 자신과 관련해 그동안 부인해온 진실이 다시 떠올랐고, 그것의 법을 강제했다.”

나는 책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에세이 형식을 가진 이 책에는 많은 사회학적 개념이 응축되어 있다. 계급, 정체성, 하비투스, 궤적, 정당성, 계급정치는 물론이고, 역자이신 이상길 선생님이 쓰신 해제 역시 매우 유익하다. 이런 주제나, 사회학에 관심이 독자는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이 책을 통해 사회학 고전 독서회를 진행했다. 특별 게스트로는 현재 부르디외 학파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부르디외와 한국 문학장을 주제로 연구하고, 아니 에르노의 대담을 번역하고, 디디에 에리봉의 비판이론에 관한 글을 쓰고 계신 박진수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책의 맥락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또 모임원 모두 책을 재밌게 읽고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귀중한 시간이었다.

부르디외는 개인의 사회적 삶과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했다. 그의 이론에 힘입은 이 사회학적 자기분석은 개인을 위치지우는 사회의 힘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해방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결정지은 조건을 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화해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애써 부정하려 했던 고향으로 되돌아와, 자신을 되돌아본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책을 끝맺는다.

“나는 왜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에 나는 왜 그와 대화해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사회세계의 폭력이 그를 이겼던 것처럼, 나를 이기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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