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하버마스 정치사회학의 핵심은 비판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생활세계의 왜곡되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은 ‘의사소통행위’를 중심으로 제안하고, 이러한 의사소통행위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숙의 과정을 통해 근대 대의 민주주의에 대안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숙의 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부르디외는 그러한 하버마스의 논의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먼저 부르디외에게 장에 참여하는 개인은 “실천적인 위급함” 안에서 사회적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이들은 수직적으로 구성된 사회세계에서 상승과 지배를 원하고 상징투쟁에서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고 장의 전복을 꿈꾸는 코나투스적(conatic) 주체들이다(김홍중, 2017: 5-6). 사회세계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자기보존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며, 이런 까닭에 부르디외는 생활세계에서의 비판 잠재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론적 전제 아래에서 부르디외는 자신의 언어(소통)이론을 전개시킨다. 실천과 구조가 만나는 장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성격을 공유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관계 또한 경제적인 관계로 유추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에서의 언어실천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경쟁으로 특징지어지고, 이를 토대로 하버마스가 언급한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 즉 합리적 의사소통·의사소통행위는 현실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예이며, 하버마스가 제안한 소통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Bourdieu ‧ Eagleton, 1994: 270).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이론적 토대로 구축된 숙의 민주주의의 언어관에는 성찰이 필요해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조금 더 지식이 있다면 어떤 일들을 확실히 더 잘 이해할 텐데. 그게 전부예요. 내가 더 지식을 갖게 되면 일은 많이 달라질 텐데. … (중략) … 그러나 나는 정말 시간이 없어요. 조금만 시간이 더 있다면, 나는 그것에 관여하고 무언가 더 알려고 시도하고 그 흐름을 더 깊이 따라갈 텐데. 다시 말해서 조금 더 지식이 있다면 누군가와 더 많이 토론할 수 있고, 많이 알지 못할 때는 격리된 채로 남아 있게 되지요.” (가정부)*


*해당 인용문은 부르디외가 구별짓기 8장 문화와 정치에서 사용한 한 가정부의 이야기이다.


 부르디외가 관심을 가졌던 하나의 부분은 바로 계급 아비튀스로 체화된 언어능력이었다. 부르디외에게 언어능력은 계급 아비튀스를 보여주는 각별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계급의 아비튀스 전체는 언어적 아비튀스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한다(부르디외, 2014: 99).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인용한 학력자본이 낮고, 여성인 가정부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토론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정치적 의견을 소유한다”는 일종의 선험적인 토대를 지지하는데, 부르디외의 분석은 오히려 반대로 치닫게 된다. 부르디외는 하층 계급에서는 생활에 기능하는 것들 외에 생활과 동떨어진 정치적 의제에 대한 의견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부르디외, 2006: 722-731).


계급 아비튀스로 육화된 언어의 사회적 용법들은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 사회적 가치들을 통해 일종의 격차들의 상징적 질서과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부르디외, 2014: 55).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아비튀스를 체화하고 정치의 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정치의 장에서 일어나는 숙의과정에서도 각자 가진 자본을 통해 자유로울 수 없으며, 상징적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 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은 의제를 소비하는 주체로 전락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급일수록 정치적 장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논리와 그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소유하기도 어려운 실정에 놓여 결국 ‘정치적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김태수, 2008: 116).


부르디외는 근대 민주주의에 맹점을 자신의 이론적 토대인 아비튀스, 장 개념으로 지적해낸다. 특별히 부르디외의 언어적 아비튀스 이론은 하버마스의 핵심개념인 합리적 의사소통과 소통관계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부르디외(2001: 123)는 오히려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권력이 행사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다른 장들에 비해 합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조차도 그 관계 배후에 존재하는 사회계층적 구조와 특권들로 배제를 포함하고 있다(부르디외, 2001: 32). 이러한 부르디외 정치사회학의 개념은 자칫 숙의와, 절차적 정당성으로 포장되어 이상(理想)으로 여겨질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에 비판적 성찰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김태수, "부르디외 정치사회학을 통한 대의민주주의 성찰", 『사회와이론』 13, 2008.

김홍중, "부정자본론 -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한국사회학』 51(3), 2017.

피에르 부르디외,『파스칼적 명상』,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1.

_______________,『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 최종철 옮김, 새물결, 2006.

_______________,『언어와 상징권력』, 김현경 옮김, 나남, 2014.

Bourdieu, Pierre ‧ Eagleton, Terry. "Doxa and Common Life: An interview", in Savoj Zizek (ed.), Mapping Ideology, London: Verso,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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