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1. 부르디외 사회학의 기본개념: 하비투스(habitus), 자본(capital), 그리고 장(champ, 場)

 

요약하자면 부르디외의 일반적인 개념도식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행위자가 가진 특정 자원(자본)은 특정한 사회적 게임(장)의 맥락에서 특정한 종류의 실천을 생산해내는 특징적 구조(하비투스)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황은 견고하게 재생산되는데, 이는 자본, 하비투스, 장을 함께 연결하는 이 과정이 기존의 불평등한 자원의 분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돕는 일상적인 이해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이 개념들을 계층화, 재생산, 그리고 사회이동에 대한 설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한다.(Riley, 2017: 111-112)

 

1) 하비투스(habitus)[각주:1]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철학적, 사회과학적 성과를 수용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구축된 하비투스는 부르디외 사회학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Loïc Wacquant, 2016). 사회적 행위자의 실천을 설명하는 하비투스는 ‘체화(體化)된 사회적 습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각주:2]

 

“아비튀스는 일종의 버릇이다. 버릇은 실천을 낳는다. 그런데 그 버릇은 사회적이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집단적이라는 것이며, 계급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성적 주체가 아니며, 나의 행위 역시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행위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회적 버릇은 개인으로서 나와 계급을, 행위와 구조를 매개한다.”(김동일, 2016: 1)

 

  앞선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하비투스는 일종의 습관이다. 부르디외는 이 습관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고, 계급적이고,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구성한다. 개인은 이러한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습관인 하비투스를 체화한 존재이다. 이 습관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사회적 실천이 발생한다.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개인의 사회적 실천은 자신의 이성과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과 집단에서 체화된 사회적 습관, 즉 집단적·계급적 무의식으로부터 발생한다. 하비투스는 특정한 의식적인 목표지향을 하지 않으면서도, 목표를 위한 실천을 만들어내, 조직하는 원칙이다(Bourdieu, 1990a: 53). 하비투스는 무의식적인 행위틀(frame)이며, 선반성적인(pre-reflective) 실천지향이다(정선기, 1999a: 57).[각주:3]

  더불어 하비투스는 기존 사회과학에서 대립하고 있던 미시적 행위(실천)와 거시적 구조 사이에서 양자를 매개하는 역할로 기능한다. 하비투스는 사회적 실천과 그 사회적 실천의 지각(知覺)을 구성하는 ‘구조화하는 구조’인 동시에 구조, 그리고 체계들의 구조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화된 구조’이기도 하다(Bourdieu, 1990a: 53; 부르디외, 2006: 312). ‘구조화된 구조’로서 하비투스는 사회와 행위자에게 구조화된(체화된) 구조이다. 사회의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구조는 하비투스는 생산하는 사회적 조건인 동시에 행위자에 내면화되어 구조화된 구조로 작용한다. 또한 하비투스는 구조화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하비투스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행위자들의 실천들은 이전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지만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 실천을 다시 재생산(구조화)하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상황과 마주한 사회적 행위자들의 사회적 실천은 지속적으로 실천을 갱신하며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정선기, 1999a: 57). 하비투스는 다양하고 새로운 사회적 상황을 접해도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실천을 조직하는 일종의 사회적 함수(function)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요컨대 하비투스는 체화된 성향, 인지, 판단 및 행위의 지속적이고 전이가 가능한 체계, 도식(schème), 또는 틀(frame)이다. 유의할 것 중 하나는 행위자가 하비투스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하비투스가 열린 성향의 체계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비투스는 행위자의 육체에 잠재하다가, 사회적 실천이 발생할 때 그때 그때 현재화되며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개념이다(부르디외·샤르티에, 2019: 99-101).

 

  오카모토 유이치로(2016)에 의하면, 부르디외는 현대사회를 ‘계급 분화된 사회’로 파악했다. 부르디외에게 사회적 행위자는 구조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실천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계급 하비투스는 개인의 사회적 실천에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동질적인 생활조선 속에 위치한 행위자들 전체로 나타나는 이 계급(classe objective)은 동질적인 조건화를 부과하고 유사한 실천을 생성해낼 수 있는 동질적인 성향체계를 생산해내며, 또 일련의 공통 특성 즉 흔히 (재화나 권력의 소유처럼) 법적으로 보장되거나 또는 계급의 아비튀스(특히 분류도식 체계)처럼 육화(肉化)된 객체화된 특성을 소유한다.”(부르디외, 2006: 197)

 

“(계급은)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유사한 조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사한 유형의 상황 속에 종속되어 있어서, 유사한 성향과 이해 관심을 가지고, 유사한 실천을 생산하며, 유사한 자세를 취하는 온갖 기회를 갖는, 행위자들의 집합이다.”(Bourdieu, 2001; 김동일, 2016: 8에서 재인용)

 

  부르디외의 계급론이 독특한 지점은 부르디외는 단순히 계급은 객관적인 지표로만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급이 공유하는 동일한 행위틀과 계급 안에서 발생하는 동일한 사회적 실천으로 계급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앞서 구조와 행위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하비투스를 설명했듯, 거시적 구조의 수준에서 존재하는 계급구조는 계급 하비투스를 통해 행위자에게 내화(內化)되어, 사회적 행위자의 사회적 실천·행위를 조직하고 발생시킨다. 계급으로 묶인 각기 다른 개인들은 집단적으로 투영된 계급 하비투스를 매개로 “일련의 공통 특성”, “동질적인 성향체계”를 가지고 계급적 실천을 사회세계에 만들어낸다. 개인의 사회적 실천은 계급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지극히 계급적인 것이다(부르디외, 2006: 21). 계급별로 만들어지는 상이한 실천양식, 사회적(문화적) 실천을 중심으로 연구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상류층이 요트(yacht)같은 여가생활을 선호하는 것이나 중산층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그 계층이 가진 경제적·물질적 조건에 의한 계급적 무의식이기도 하다.

  하비투스를 요약하자면, 하비투스는 사회적 행위자의 사회적 실천·행위는 집단적이고 계급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습관에 제약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대사회는 계급 분화된 사회로 파악하는 부르디외에게 하비투스는 결국 사회적 행위자의 사회적 실천·행위에는 구조적 제약이 있음을 드러내준다. 더불어서 이 구조적 제약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바로 계급구조로, 각기 다른 계급마다 상이한 사회적 실천을 발생시킨다.

 

2) 자본(capital)

 

  부르디외에게 자본은 희소재 및 그와 관련된 이윤을 전유할 수 있는 능력(이상길, 2015: 518)이며, 물질의 형태로든 또는 내화되고 체화된 형태로든 모든 축적된 노동(정선기, 1999a: 63)을 포함하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은 스스로 증식한다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적인 자본의 의미를 가지고(김동일, 2016: 48), 베버적인 의미의 자산(asset)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이상길, 2015: 518). 개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을 가지고 사회공간에서 사회적 실천과 상징 투쟁에 참여한다. 즉 자본을 통해 사회적 행위자들은 사회공간 안에서의 희소가치를 두고 투쟁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자본 개념을 경제적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았으며 그는 자본의 개념을 보다 더 넓은 사회적 영역에 적용시켰다(보네위츠, 2000: 64; 김홍중, 2017: 6). 이를 통해 부르디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본론을 전개 시킨다. 1983년,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Ökonomisches Kapital, kulturelles Kapital, soziales Kapital)[각주:4]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자본의 세 가지 기초 유형에 대해 제시한다.

 

자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초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경제자본(eoconomic capital)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화폐로 태환(兌換)가능하며, 재산권과 같은 형태로 제도화될 수 있다.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특정한 조건에서 경제자본으로 태환가능하며, 교육적 자격과 같은 형태로 제도화될 수 있다. 사회(관계)자본(social capital)은 사회적 의무(연줄)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정한 조건에서 경제자본으로 태환가능하며, 귀족의 칭호로 제도화될 수 있다.(Bourdieu, 1986: 47)

 

  경제자본은 아마도 기존에 통용되던 자본의 의미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의미일 것이다. 경제자본은 화폐라는 형태로 객관화된, 또 외부에 축적되는 자본으로서, 여러 생산 요소들(부동산·노동·공장), 수입, 물질적 재화와 같은 경제적 재화를 포괄한 총체로 구성된 자본이다(김동일, 2016: 29; 보네위츠, 2000: 64-65).

  사회(관계)자본은 상호간의 친분 또는 인정을 통해 제도화된 관계나 지속적으로 유지가능한 사회적 관계망에 속하게 됨으로써 소유할 수 있는 실질적이거나 잠재적인 자원의 집합"(Bourdieu, 1986: 51)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한국적 맥락에서 인맥과 비슷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한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는 부르디외의 자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자본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이란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Bourdieu, 1986: 48-51).

  첫째, 문화자본은 체화된(embodied) 상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체화된 문화자본은 경제자본이 외부에 축적된 자원인 점과는 다르게 소유에서 존재로 전이된 자본을 가리킨다. 체화된 문화자본은 사회화 과정에서 내화되며, 신체와 결합된 성향으로 체화된 개인의 능력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취향과 교육의 정도, 몸짓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둘째, 문화자본은 객관화된(objectified) 상태로 나타난다. 객관화된 상태의 문화자본은 문화적 생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물질적인 문화적 재화를, 예를 들면 회화·문학작품·도서·기념물 같은, 의미한다. 이는 경제자본과 같이 개인의 신체 외부에 하나의 대상물로서 존재하며 교환하거나 상속가능한 문화자본이다.

  셋째, 문화자본은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상태의 문화자본은 특정한 문화적 능력을 제도적으로 증명한 학문적 자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국가공인 자격증이나 학위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제도화된 상태의 문화자본은 학위와 같은 학력자본을 제도화하여 이 자본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유지시킨다.

 

구분 문화자본
유형 체화된 객체화된 제도화된
토대 인지: 역량
미학: 취향
지식 교육
양식 문화선호 문화상품 문화제도
속성 육체적 문화상품의 양도성 자격증
과정 내면화
사회화
대상화
생산
제도화
재생산
유연성 위임불가능 접근의 개방/폐쇄 경제자본을 보장하는 자격증
소멸위험성 습득한 자본의 구식화 · 인플레이션
가치척도 특징 문화적 정통성 부족성

 

<표 1> 문화자본의 유형(한스-페터 뮬러, 미출간)

 

  앞서 다룬 자본과 함께 부르디외의 자본론에서 중요한 자본으로는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이 있다. 상징자본이란 어떤 유형의 자본일지라도 그 자본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되면 기능할 수 있는 자본을 의미한다(이상길, 2015: 518). 예를 들어 경제자본을 축적한 거부(巨富), 문화자본이 많은 예술인, 사회(관계)자본을 통해 다양한 유명인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명인 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존경·명예 등은 상징자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상징자본은 사회적 행위자에게 위임된 하나의 인정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소유한 사회적 행위자는 상징자본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으며, 자본은 단순히 물질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자본형태 경제자본 사회(관계)자본 문화자본 상징자본
토대 화폐 관계 지식 자본의 사회적 인지: 특권
객체화 자본 연결망 문화상품·지식
제도화 소유권 ·개인적 속성으로 귀족·관료
·집단으로서 신분·직업
개인적 속성으로 학위
체화 · · 교육·취향
전이성 높음 낮음(불안정) 중간(교육 및 직종, 자본의 크기에 따라 다름)
소멸위험 사회변동(전쟁·금융위기 등) ·배은망덕
·불균형적 호혜
·기만
·교육팽창
·지식의 구식화
손실범주 ·인플레이션
·박탈
·관계
·지위
·하비투스의 구식화

 

<표 2> 자본형태의 논리: 현상형태와 재생산 방식(한스-페터 뮬러, 미출간)

 

  이외에도 부르디외의 자본론이 가진 특성이 두 가지 존재한다. 먼저는 자본의 태환(conversion)에 관한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부르디외에 있어 다양한 자본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관되며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자본의 총량을 증식한다(김동일, 2016: 52).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도화된 문화자본으로서의 학위는 문화자본의 경제자본으로의 태환을 공증(公證)하는 역할로 작용한다. 또한 사회(관계)자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본들 또한 자본의 태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부르디외 자본론이 갖는 특성은 자본 개념의 유연성에 있다. 김홍중(2017: 8)에 의하면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은 특정한 사회공간에서 특유의 자본의 형식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새로이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부르디외는 문학자본, 과학자본, 법-경제적 자본, 정치자본, 인격자본, 명망자본, 신체자본, 윤리적 자본, 지적 자본 등 자본을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적용시켜 개념을 구성했고, 다른 연구자들 또한 매력자본, 젠더자본, 정체성 자본, 감정자본 등으로 부르디외의 자본을 다양한 맥락에서 구성하여 사용했다.

 

3) 사회공간과 장(champ, 場)

 

  부르디외는 사회를 3차원의 “복합 구조(composition structure)”로 파악하고자 했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이 수직적인 차원에서 계급적 구성으로 사회공간을 개념화했다면 부르디외는 여기에 문화적 차원을 더하여 사회공간을 다차원적으로 확장시킨다. 이를 통해 사회공간은 경제자본의 크기로 수직적 구조를 이루고 동시에 문화자본의 양에 따라 수평적인 구조로도 위치하게 된다(Honneth, 1986: 9). 즉 부르디외는 자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직업집단의 투쟁을 수직적인 차원에서 구성하고, 동시에 사회적 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사회의 수평적 분화까지 설명한다(정선기, 2011: 143).

  부르디외(2006: 219이하)는 사회적 행위자들을 사회공간 안에 분포시킨다. 이상길(2018: 201)은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사회공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에 대해 설명한다. 부르디외의 사회공간을 구축하는 첫 번째 축은 행위자들이 소유한 자본의 총량에 의해 위치된다. 두 번째 축은 전체자본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상대적인 비중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각기 다르게 분포하게 된다. 세 번째 축은 행위자들의 사회적 궤적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는 행위자들이 소유한 자본의 총량과 구조가 겪은 통시적 변화에 의해 정의된다. 이 세 가지 좌표축을 중심으로 행위자들의 사회적 위치공간이 구성된다.

  결국 부르디외에게 사회공간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들로 구조화된 공간이며, 동시에 하비투스의 의해 구성된 공간이다(부르디외, 2006: 311). 사회공간에서 사회적 행위자들이 위치한 자리는 그들이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총량과 구조에 의해 종속되어있다(보네위츠, 2000: 64-65). 부르디외에게 사회란 3차원으로 이루어진 복합구조의 공간이었고, 장은 이런 사회공간에서 분화된 하위공간이자 개인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적 실천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2) 장의 기원

 

  앞서서 다룬 하비투스, 자본과 마찬가지로 장 이론은 부르디외 사회학에서의 핵심개념이다(부르디외, 2005: 8). 근대사회와 함께 탄생한 사회학은 ‘분화’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에밀 뒤르켐의 『사회 분업론』같은 저작 역시 근대사회의 분화에 대한 하나의 연구를 담고 있다. 부르디외의 장 개념 역시 분화된 근대사회의 구별된 사회공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장이란 앞서 살펴본 사회공간이라는 하나의 대우주 속에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진 공간적으로 분화된 소우주를 가리킨다(부르디외, 2002: 20).

  부르디외의 장 개념은 고전 사회학자 베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부르디외는 직접적으로 예술사회학에 대한 연구와 베버의 『경제와 사회』의 종교사회학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Bourdieu, 1990b: 22). 먼저 부르디외는 베버의 종교분석틀을 장에 적용시킨다. ‘장’은 베버가 종교를 분석할 때 사용했던 분석틀인, 공급·수요·자본·이익·경쟁·독점 등의 경제학적 개념들을 사회의 하위공간으로 확장시킨 개념이다(현택수, 2010: 278; 이상길, 2018: 229). 다음으로 부르디외는 베버의 사회분화 양식인 다양한 영역에서의 ‘가치의 제도화’ 테제를 차용한다. 베버는 근대사회의 이행 과정을 연구하면서 점진적으로 종교 영역이 다양한 가치의 영역으로 제도화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각각의 가치영역은 독자적인 가치이념(객관적 의미체계)를 기반으로 발전해 일정한 분화 수준에서 지식인 집단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근대사회는 분화되었고, 가치가 제도화된 영역들은 독립적인 가치체계를 구축하며 발전한다(정선기, 2011: 143).

 

 

(3) 장의 일반적 속성과 종합

 

  부르디외(2004: 125)는 복수의 장의 가지고 있는 일반법칙이 존재한다고 서술한다. 이상길(2002: 189-190)에 의하면 근대사회의 분화된 사회적 소우주를 가리키는 장 개념은 다섯 가지의 일반적인 속성들을 공유한다.

 

  첫째, 장은 사회공간의 소우주들로서 사회공간은 ‘예술장’, ‘정치장’, ‘경제장’, ‘학문장’ 등 위계적으로 구성된 장에 의해서 구조화된다. 이 장들은 고유한 내적 논리와 ‘구조적 동형성’을 가지며 서로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장은 위치 공간으로서 객관적인 위치들 사이에 구조화된 공간이다. 위치는 장 내부에 불평등하게 분포된 다양한 자본의 양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 구조는 장 내부의 개인, 기관들 사이의 세력관계에 의해 위치된다.

  셋째, 장은 투쟁공간으로서 각각의 장은 특수한 내기물(stakes)과 게임의 규칙을 가진다. 각각 장의 고유한 내기물과 게임의 규칙은 다른 장의 것들로 환원불가능하다. 장은 장 고유의 자본의 정당한 독점 또는 자본의 재정의에 관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자들의 투쟁의 공간이다. 이들은 서로 투쟁하더라도 장 내부에 있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한 존재들이다.

  넷째, 장에서는 하비투스·전략·일루지오(illusio)가 작동한다. ‘일루지오’란 장 내부에서 게임과 내기물의 신성한 가치를 향한 집단적 신념을 의미한다. 이는 게임의 조건이며 산물이다. 장 내부의 사회적 행위자들은 특정한 이해를 만들어내는 위치, 하비투스, 그리고 장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점유하고 있는 ‘사회적 궤적’에 의해 규정된다. 사회적 행위자들이 투쟁을 위해 사용하는 전략은 ‘위치’, ‘하비투스’, ‘사회적 궤적’ 이 세 가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장에서는 기존 세력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지배자(정통)의 보존전략과 그 관계를 뒤집으려고 하는 피지배자(이단)의 전복전략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존재한다.[각주:5]

  다섯째, 장이 하나의 객관적인 ‘위치공간’이라고 본다면, 각기 다른 위치들은 그에 대응하는 입장을 가지면서 위치 공간에 대응하는 ‘입장 공간’이 발생한다. 위치와 입장 사이의 조응은 기계적 결정론이 작용하지 않으며, 사회적 행위자들의 하비투스와 ‘가능성의 공간’에 의해 매개된다.

 

  부르디외(2004: 126)는 “학문장(學文場)과 같은 하나의 장은 다른 장에 고유한 이해관계와, 내기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내기물과 특수한 이해관계를 정의함으로써 그 스스로를 정의한다. (지리학에서 거는 내기물을 걸고 철학자로 하여금 일하게 할 수는 없다.) 장에 고유한 내기물과 특수한 이해관계는 장에 입장하도록 만들어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인식되지 않는다. (각각의 이해관계의 범주는 다른 이해관계, 다른 투자에 대한 무관심을 내포한다. 따라서 다른 이해관계들과 다른 투자들은 부조리하거나 상식 밖의 것으로, 혹은 이해관계를 초탈한 지고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나의 장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기물들과 유희를 할 준비가 된 사람들, 즉 유희의 내재적 법칙들과 내기물들에 대한 지식, 그리고 내기물들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하비투스의 보유자들을 필요로 한다.”라고 서술하며 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막스 베버(2013: 34)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통해 “눈가리개를 하고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라고 서술한다. 이는 근대사회에서 가치가 제도화된 학문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나의 학문장에서 각각의 하비투스를 체화한 장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다양한 자본을 가지고 ‘전문적 지식’이라는 상징자본을 얻기 위해 학문적 실천을 통해 투쟁에 참여한다. ‘전문적 지식’은 학문장 고유의 자본이다. 학문장에서는 ‘연구’라는 고유한 게임의 논리가 공유된다. 이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회적 행위자는 장 안에서 ‘인정’이라는 상징권력을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정통’의 지위를 얻어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지배적 학술담론에서 벗어난 피지배자들은 학문장의 전복을 위해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투쟁에 참여할 것이다.

  이런 학문장에서의 상징자본과 게임의 논리는 스포츠의 장이나 경제장에서는 환원될 수 없는 자본이다. 뛰어난 육체적 퍼포먼스를 수행할 수 있는 육체자본이나 천문학적인 경제자본은 학문장 고유의 상징자본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전문적 지식 또한 스포츠의 장에서 핵심적인 자본으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각각의 장은 서로에게 독립적이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하지만 장은 구조적 상동성과 자본의 태환 가능성 때문에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으며 상호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상길, 2018: 218-219). 장 내부에서 자신의 하비투스, 자본을 가지고 보전과 전복을 위해 투쟁한다는 상동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스포츠의 논리로 봤을 때 고대 필사본에 목숨을 거는 행위는 무가치한 행위이며 일종의 환상(illusion)으로 보일 것인데 학문장 내부에서는 그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를 일루지오로 볼 수 있다.

  부르디외에게 사회는 온정적이고, 협동적인 공간으로 연대가 일어나는 장소가 아닌 적자생존적 긴장감과 자본의 축적을 위한 투쟁이 지배하는 공간이며, 부르디외에게 행위자란 언제나 사회적 삶에서 ‘실천적 위급함’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전투적인 존재이자 자기보존에 힘쓰는 코나투스적(conatic) 주체들이다(김홍중, 2017: 5-6). 부르디외는 ‘실천’을 “[(하비투스) (자본)] + 장 = 실천”(부르디외, 2006: 196)이라고 정식화한 바 있다. 결국 구체적인 실천이란 하비투스와 자본을 가진 행위자가 장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적 공간인 장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체화시킨 계급 하비투스를 준거로 지각하고 판단하며, 집단적인 투쟁공간인 장에 참여한 행위자들을 끊임없이 분류·평가하고 구별짓는다(이상길, 2018: 204). 자본은 “실제로 이용가능한 자원과 권력의 총체”(부르디외, 2006: 220)이며, 장에서의 무기이자, 투쟁의 내기물이다(부르디외·바캉, 2015: 176). 행위자들은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본을 동원해서 장의 투쟁에 참여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김동일,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김홍중,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한국사회학』, 5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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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기, 생활양식과 계급적 취향: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적 재생산에 관하여, 현택수 외, 『문화와 권력 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 나남, 1999a.

______, 일상적 활동과 생활양식: 사회불평등 연구의 문화이론적 전환, 현택수 외, 『문화와 권력 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 나남, 199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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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장 이론-구조, 문제틀, 그리고 난점들”, 양은경 외, 『문화와 계급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동문선, 2002.

______, 학술번역과 지식수용, 혹은 “이론은 어떻게 여행하는가?” - 피에르 부르디 외의 경우, 『언론과 사회』 19(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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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 『사회학의 문제들』, 신미경 옮김, 동문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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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上』, 최종철 옮김, 새물결, 2006.

피에르 부르디외·로익 바캉,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이상길 옮김, 그린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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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페터 뮬러, 문화, 취향, 구별짓기, 정선기 옮김, 미출간

현택수, 피에르 부르디외 아비튀스와 문화자본의 사회학, 김호기 엮음, 『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 한울, 2010.

 

국외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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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üller, Han-Peter. “Pierre Bourdieu Eine systematische Einführung”, Suhrkamp 2016.

Riley, Dylan. Bourdieu’s Class Theory: The Academic as Revolutionary, Catalyst Journal, vol. 1, no. 2, 2017.

Wacquant, Loïc. A concise genealogy and anatomy of habitus, The Sociological Review, 64, 2016.

  1. habitus는 국내에 아비투스, 아비튀스, 하비투스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데, 이 글에서는 habitus의 역사성을 고려하고, 또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이 단어가 유래한 라틴어 발음인, 하비투스로 역어를 선택했다(이상길, 2011: 275). [본문으로]
  2. habitus는 부르디외 사회학 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개념어이다. 구체적으로 부르디외는 원래 이 개념을 베버가 사용했던 에토스(Ethos)로 사용하다가,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고딕건축과 스콜라 철학』을 번역하면서 habitus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부르디외의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헥시스(Hexis)부터 중세철학, 현대 철학·사회과학 등의 다양한 논의를 거쳐 구성된 개념이다. [본문으로]
  3.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부르디외가 단순히 사회적 행위자를 구조의 허수아비로만 파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기존의 레비-스트로스나 알튀세르 같은 구조주의자들이 행위자는 너무 단순하게 폐기 시켰다고 지적하면서 기존 구조주의자들이 등한시했던 생활세계(Lebenswelt)의 행위자를 다시금 사회학에 위치시키고 구조적 영향력 아래에서도 사회적 행위자들이 단순하게 구조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실천을 만들어가는 부분과 우연성을 자신의 이론에 추가함으로써 더 깊은 설명력과 사회변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Bourdieu, 1990b: 9). [본문으로]
  4. 독일어가 원본인 이 논문은 1986년, The Forms of Capital로도 출간되었다. [본문으로]
  5. 장 내부에서의 보전/전복, 정통/이단과 관련된 메커니즘 역시 베버 종교사회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베버는 전문가 집단이 출현해서 각각의 사회적 공동체에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한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체계화가 이루어지면 정설(Orthodoxie)이 이설(Heterodoxie)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다(정선기, 1999b: 8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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